[◆A/미사와] 별 내리는 밤
아마... 꽤 과거... 19세기 즈음...? 시대고증은 제대로 안 되어있지만()() 중앙아시아 정도의 배경입니다() 이어... 쓸까..? 쓰려나? 잘 모르겠다...
00.
“여행을 왔슴까?”
눈이 마주친 순간 사내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크게 휘어지는 미소가 명쾌했다. 미유키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들 제 갈길 따라 걷는 사람들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상대의 시선은 정확하게 미유키에게 닿아있었다. 미유키는 그제야 상대가 자신을 향해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을 왔슴까?”
상대가 다시 물었다. 미유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그러자 상대가 환하게 웃었다. 미유키는 그제야 천천히 상대를 살폈다. 갈색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 아무리 봐도 앳된 얼굴이었다만, 내미는 손은 단단해보였다. 미유키는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한 번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보아도 맞잡으라는 의미였다. 미유키는 곧 상대의 손을 맞잡아 가벼이 흔들었다. 의미없는 악수였다.
“사와무라 에이준임다! 앞으로 잘 부탁드림다!”
아. 미유키는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를 깨달았다. 혈혈단신으로 타국에 떠난다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부터 미유키를 걱정하던 대학 선배 크리스가 추천해 준 안내인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여행을 다닐 일 년간 미유키와 동행할 유일한 동행자이기도 했다. 미유키는 다시 한 번 상대를 바라보았다가, 가볍게 목인사를 건냈다.
미유키 카즈야입니다.
일 년을 함께할 여행의 첫날이었다.
01.
동행자,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많이 다른사람이었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말이 많고, 소란스러웠으며, 안내인 일에 서툴렀다. 손길은 다부졌지만 야무지지 못했고, 소소하게 빠뜨리는 구석도 있었다. 요리는 잘하지만 설거지에 서툰 것처럼 아주 미묘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채우는 것은 미유키의 역할이었다.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그렇게 하나씩 챙겨줄때마다 머쓱하게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미유키는 어느정도 지금의 동행인에게 만족했다. 사와무라가 안내인 일이 완전히 몸에 벤 숙련된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하나 있었는데, 함께하는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잠깐 품었던 상상 이상으로, 지금의 여행은 기분나쁘지 않을정도의 소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사와무라의 덕분이었다. 사와무라는 미유키로써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이곳에 대해 말하는 사와무라의 표정에는 언제나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별처럼 빛나고 있어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감탄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향이 싫어 도망치듯 이곳으로 오게 된 미유키로써는 차마 흉내내기도 힘든 것이었다.
멀리서 들리는 양때 울음소리, 청명한 하늘, 그 하늘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매와 야생 동물을 사냥하여 낚아채는 그 몸놀림, 날개짓. 까마득한 돌산과 그 위를 뛰어오르는 산양. 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흥겨운 춤과 노래. 모두가 어울리는 축제와 화려한 자수,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 전통들. 장인이 만들어낸 나무장식과 사람이 가득한 결혼식, 그리고 결혼하는 신부...
마치 노래에 가깝게 음을 붙여 흥얼거리는 사와무라의 목소리는, 유일한 청자인 미유키에게는 참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02.
사와무라는 언제나 한 쪽 어깨에 활을 매고 다녔다. 사와무라의 말에게는 화살통과 화살 역시도 묶여있었다. 사와무라는 밤에 종종 사용하지도 않은 그것을 손질하고는 했다. 그것은 일견 버릇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장식용, 혹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위협용이 아닌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미유키가 알게 된 것은 여행을 시작한 지 삼 주가 조금 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유키는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강이 약하다거나 심신이 미약하지도 않았으니 어떻게든 입에 쑤셔넣어 한 입이라도 더 씹고는 했지만, 썩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너무 기름지거나, 너무 퍽퍽하거나, 혹은 너무 짰다. 음식을 만드는 사와무라는 그 사실에 미안해하고는 했지만, 그리고 어떻게든 미유키에게 맞춰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와무라의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또, 미유키는 사와무라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은 훌륭했으나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인 탓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겁니다.
미유키는 그리 말하며 기 죽은 표정의 사와무라를 달랬다. 사와무라가 저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떠난 뒤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지만, 미유키는 아직까지도 사와무라에게 거리감 있는 존칭을 쓰는 중이었다. 말을 꽤나 편하게 하는 사와무라와는 반대의 일이었다.
미유키는 그 뒤로 사와무라가 미유키의 식생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마 미유키의 오산이었던 모양이었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와무라에게 있어서 그 일은 어지간히 중요한 것이었는지, 사와무라는 그 날 옆을 지나가는 야생 토끼에게 활을 겨눴다. 이제껏 몇 번이고 야생동물을 지나친 적이 있었지만, 사와무라가 활을 쥔 것은 처음이었다.
미유키는 그 날 처음으로 사와무라의 과거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과 힘이 들어간 팔, 둥근 눈매가 순간 날카로운 위압감을 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일견 정적이 내려앉았다가, 쏘아진 화살은 그대로 토끼의 목을 꿰뚫었다. 즉사였다.
죽은 토끼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사와무라의 모습을 미유키는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아마 하늘일 대상에게 기도하고, 화살을 뽑아내고 칼로 토끼를 해체하기 시작하는 모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와무라는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안내인은 사냥꾼일 필요가 없었다.
미유키는 한 손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빠짐없이 응시했다. 도축작업따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미약하게 꺼림칙하기까지 했지만 사와무라의 모습에서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일견 경건해보이기까지 했다. 이유는 몰랐다. 어쩌면 활을 쏘는 그 옆모습이 꽤나 아름다워서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기도하는 그 모습이 그 누구보다 진중해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 같은 것은 알 수 없엇고, 미유키는 그런 감각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날 저녁은 토끼구이였다. 그것은 맛있었고, 그 뒤로 더 이상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