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나토 하루이치(2학년, 2루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야구에 전념한 탓에 상대적으로 학업에 소홀하기는 해도 야구부에서는 영특한 편에 속하는 그였는데 말이다. 아니, 지금 이 말이 상식적으로 조금 이해하기 힘든 말이 아닐까. 하루이치는 스스로에게 그리 속삭이며 상대에게 되물었다. 기왕이면 방금 들은 말이 잘못 들은 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사항도 품고 있었다.
“에이준 군, 방금 뭐라고 했어?”
“푸딩 먹을래?”
“그보다 좀 전에.”
“심부름 다녀왔어?”
“그거 뒤에.”
하루이치는 끈기있게 사와무라의 말을 수정해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와무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맞는 답을 뱉어냈다.
“좋아하는 사람?”
“그래, 그거.”
하루이치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슬퍼졌다. 그와 동시에 의아해지기도 했다. 분홍색 머리카락 사이에 감춰진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제 형을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보통 시합 때나 보여주는 하루이치의 모습에 사와무라가 은근히 몸을 움츠렸다. 그런 사와무라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이치는 그가 했던 말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미유키의 심부름을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잔뜩 불평을 내뱉었었고, 하루이치는 그 말에 후배들을 시키면 되지 않겠냐는 말로 대꾸해주었다. 그러자 사와무라가 했던 말이...
‘좋아하는 사람 심부름은 다녀오는게 점수따기 좋을테니까!’
...이랬더래지. 하루이치는 다시 사와무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빠지고 어리둥절한 표정. 새까맣게 탄 얼굴. 주관적인 시선으로 아무리 봐도 사랑과는 백만광년 정도 거리가 있는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하루이치는 입 밖으로 내뱉으면 실례인 말을 속으로 마음껏 중얼거렸다. 친구로써 아끼는 만큼 인정사정없는 평가였다. 더군다나 상대도 상대였다. 미유키 선배라. 하루이치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입가를 매만졌다. 차라리 매니저들이었으면 훨씬 승산이 있었을텐데, 골라도 어쩜 그런 사람을 골랐는지. 그리고 좋은 연애 대상도 아닐 것 같은데. 하루이치는 하늘같은 삼학년 선배에게도 망설임없이 실례일 말을 중얼거렸다. 그 눈에 어린 것은 염려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 에이준 군이 좋다면야... 하루이치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숨 한 번 내뱉는 것으로 염려를 끝마치고 응원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와무라이니,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 생각할수밖에 없기도 했다.
“혹시 에이준 군이 미유키 선배를 좋아...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더 있어?”
이 말은 그냥 해 본 것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혹시’ 였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이런 기대까지도 시원하게 부숴버리는 남자였다.
“응! 못치 선배에... 형님도 아실걸?”
“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예상범위 안이었다. 쿠라모치 선배라면 같은 방 룸메이트인데다가 눈치 또한 보통이 아니니 알 수 있을 법도 싶었다. 제 형도 마찬가지였고. 물론 지금 형은 졸업했지만... 하루이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