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미ts사와] 배터리
미사와 전력 60분. 「배터리」
시간에 쫒겨 급전개 주의.... ^_ㅠ
사와무라ts도 주의해주세요!
“사와무라, 결혼해 줘.”
“저리 안 감까?!”
사와무라는 언제나처럼 같은 소리를 하는 미유키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이 남자는 질리지도 않나. 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을 보며 미유키는 씩 웃었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그에 사와무라는 그 고양이눈을 새초롬하게 드리우며 그를 흘겨보았다. 옆구리에 손을 얹고 허리를 쭉 펴는 모양새가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제 몸매를 조금 자각해주고 지금보다 더 조심해주면 좋겠는데. 미유키는 그리 생각하며 시선을 사와무라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어느 새 능청스러운 표정이 그 얼굴에 걸려있었다.
“벌써 이 나를 몇 번째나 차는 건지 알아?”
“대체 몇 번이나 장난질을 할 검까?”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 역시도 이제는 익숙한 것이었기에, 미유키는 조금 허탈한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는 그 모습에 사와무라는 홀랑 몸을 돌려 자리를 비웠다. 뛰어가는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유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뒷목을 쓸어내리는 손끝이 차가웠다.
***
쿠라모치는 조금, 아니 많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미유키를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흘겨보는 시선에 한심함 외에 뭐가 들어있을까. 동정심? 별로 달갑지는 않은 감정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반박마저도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미유키가 고개를 숙였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커피잔을 입에 대는 미유키를 보며 쿠라모치는 혀를 찼다.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기대는 모양새가 본격적이었다.
“그러게, 말을 그것밖에 못하냐?”
“그럼 그 외에 무슨 말을 해?”
사와무라를 향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모조리 진심이었다. 비록 상대에게 진심으로 닿지 않은 것이 좀 문제긴 했다만. 미유키가 포수로써 투수를 기운나게 만드는 말솜씨가 뛰어나다고 해 봤자, 이런 쪽으로 언변이 능숙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한참 서툰 쪽에 가까웠다. 얼마나 절망적이면 쿠라모치 자신을 불러 이런 상담이나 할까. 쿠라모치는 미유키의 꼴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꽤나 예뻐하던 후배를 주기에, 제 악우는 참 달갑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하는 꼴을 보고있자니 이제는 불쌍해서라도 그러려니 싶은 심정이었다.
미유키가 사와무라에게 반한 게 고등학교 이 학년. 지금같은 청혼을 시작한게 삼 학년. 그리고 지금 사와무라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 년. 그 동안 사이의 진전이 이토록이나 없을 수 있다는 게 참 우스울 지경이었다. 뭐, 어떻게 사이가 더 좋아지던 아예 망하던 하나는 되야 할 거 아니야. 쿠라모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타박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유키가 그 딴에 나름 노력을 하고는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결과가 안 나오잖아, 결과가. 쿠라모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유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벨소리가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진정해, 에이준 군...”
하루이치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사와무라가 진짜로 진정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와무라 역시도 별로 진정할 생각이 없었다. 까맣게 탄 속을 식히기 위해 냉수를 들이킨 사와무라는 곧 팔짱을 끼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위쪽으로 뾰족하게 치켜올라간 눈매며, 앙다문 입술이 아무리 봐도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루이치는 솔직히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늦은 감도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에 감춰진 눈이 한숨을 담았다. 여러가지 의미로 피곤했다.
“왜 자꾸 어울리지도 않는 장난질을!! 더군다나 그, 그, 그. 그런 단어까지 쓰면서!!”
“결혼?”
“그래, 그거!”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양 볼을 잔뜩 부풀리는 모양새가 꽤 사랑스럽기는 했지만, 몇 년 동안이나 그녀를 보아 온 하루이치의 입장에선 언제나와 같은 불평불만일 뿐이었다. 한 손가락으로 안 꼽힐 정도로 오랜 짝사랑을 하고 있는 사와무라를 보던 하루이치는 턱을 괴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눈치가 빠른 것은 코미나토 형제의 공통점 중 하나였고, 하루이치 역시도 미유키와 사와무라 사이의 감정선을 눈치챈 지 몇 년이었다. 둘 다 참 요령없기가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관계의 진전이 없는 것에 헛웃음을 지은 것도 얼마더라. 두 사람이 제대로 마주보기를 기다리고 있기는 했었지만 이젠 슬슬 답답하기까지 했다. 오기로라도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젠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루이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러려면 정확한 대답을 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에이준 군, 미유키 선배를 좋아하는 거지?”
“읏. 무, 뭐 그런 걸 묻고 그래, 하룻치!!”
“아니야?”
아니, 아닌 건 아니고... 맞는데... 우물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사와무라를 보며 하루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칼에 잘라버렸다.
“미유키 선배가 결혼해 달라는 게 싫어?”
“아냐!! 그건 아냐!!”
격한 부정이었다. 이번에도 하루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사와무라의 얼굴이 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에는 남자들 등을 후려쳐도 될 만큼 씩씩한데. 지금에 이르러서야 사와무라의 성별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하루이치였지만, 연애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사와무라가 여자아이라는 걸 실감하곤 했다.
“미유키는 계속 장난질만 하니까!! 평소에 맨날 놀리기만 하면서...!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결혼은 무슨! 능글능글 웃는 얼굴로!!”
“그럼 장난이 아니면 괜찮은 거야?”
“그거야...”
만약 그렇다면... 꾹 다물어진 입매며 손가락으로 제 머리카락을 꼬는 모양새가 퍽 수줍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하루이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와무라를 보며 걱정 말라며 웃어주기도 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하루이치는 바깥으로 나왔다. 저와 오랫동안 키스톤 콤비를 맞추고 있는 쿠라모치에게서 또 미유키의 바보짓 들으러 간다는 연락을 받은 게 몇 시간 전이었으니, 아마 지금도 그곳에 있을 터였다. 휴대전화를 꺼내들며 하루이치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풉, 컥.”
콜록콜록. 미유키는 그대로 흉하게 뿜을 뻔 한 커피를 억지로 삼켰다. 목구멍에서 쓴맛이 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하루이치가 내뱉은 말은 과하게 핵심이었다. 형과 비교했을 때 유순하고 상냥한 성격은 잠시 접어두었는지, 이리보고 저리봐도 료스케를 꼭 닮은 가차없는 말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에이준 군에게 고백을 하세요.”
미유키 선배가 진심이던 아니던 결국 장난으로 받아들여지는 청혼 말고. 뭐든 좋으니까 진지하게. 그리 말하는 표정이 단호했다. 미유키가 고개를 숙였다. 사와무라와 대화하는 것조차 언제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결혼해 달라는 말도 버릇처럼 내뱉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고백했다가 너무 두근거려서 그 앞에서 기절하면 어쩌지? 하루이치나 쿠라모치가 들었다간 얻어맞을지도 모를 생각이었다.
미유키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몇 년 전부터 늘 주머니 속에 넣어두던 것이 이번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뭉툭한 상자 안에는 은색의 반지가 들어있을 터였다. 미유키의 표정에 쑥쓰러움이 올라왔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래, 해라. 이젠 답답해서 못 봐주겠다.”
“뭐든 해 보시라구요. 뭐든.”
에이준 군은 골목 너머 카페에 있으니까 가 보세요. 뭐든 제대로 안 끝내고 오면 죽는다, 진짜. 푸념 듣는 데에 충분히 지친 두 사람이 그대로 미유키를 집에서 쫒아냈다. 물론, 미유키의 집이었지만 그건 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유키의 옷차림이 썩 차려입은 옷이 아닌 편한 옷이라는 것도 신경쓸 바 아니었다. 그렇게 미유키는 제 집에서 쫒겨났다. 있는 것이라고는 주머니에 있는 반지와 손에 들린 휴대전화 뿐이었다. 쾅 닫힌 문이 오늘 반드시 뭔가를 끝마치라는 의지를 드러내주었다. 걸쇠 잠기는 소리에, 미유키는 결국 몸을 돌렸다. 그의 수중에 집열쇠도 없었다.
***
“사와무라.”
“미유키?!”
하루이치가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남기고 떠난지 사십분 남짓. 등장한 사람은 하루이치가 아니라 미유키였다. 사와무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동시에 오늘의 제 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만나는 사람이 하루이치였던지라 별로 신경쓰지도 않은 외모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엄처 신경쓰였다. 어쩔 줄 몰라하는 사와무라를 앞에 두고, 미유키도 머릿속에 터지기 직전이었다. 몇 번이고 머뭇거리며 바보처럼 서 있던 미유키가, 곧 사와무라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와무라가 미유키를 올려다보았다.
“사와무라.”
“무, 뭠까?”
“사와무라 에이준 씨.”
미유키의 표정이 진지했다. 지금 제 모습이 어떻든, 여기가 어디든, 결국 시작한 원인이 어떻든. 결국 지금 미유키가 해야 하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수도 없었다. 미유키의 표정에 긴장이 어렸다. 사와무라의 표정에도 똑같은 긴장이 들어찼다.
“좋아합니다.”
“......”
“좋아합니다. 결혼해주세요.”
제 삶의 배터리로, 계속 옆에 있어주시면 안 될까요? 미남으로 이름높은 포수가 고백했다. 사랑스러운 외모의 투수가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 성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얼굴을 붉혔다.
작은 대답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