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외로웠다. 사와무라는 이제 막 소년에서 어른이 되려고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원하지 않았던 성장통은 가혹하리만치 강렬하게 찾아온 불청객이었고, 사와무라는 별 수 없이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부정하기도 많이 부정했었다. 하지만 사와무라의 성정은 결국 그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웃었다. 고민걱정 하나 없는 것 같은 밝은 미소는 사와무라에게서 손꼽히는 장점 중 하나였다. 사와무라는 자신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특히 누군가가, 자신의 웃는 얼굴을 사랑스럽노라고. 솔직하지 않은 그 사람이 드물게 솔직하게 말해줬었으니까. 더더욱 그랬다.
아침이었다. 새벽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샌 사와무라는 해가 뜨는 것을 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이도의 아침은 일렀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해가 뜬다면 모두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물론 오늘은 드물게 쉬는 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자율연습을 꾸준히 참여하는 성실한 야구소년들이었으니까. 사와무라는 조금 개구진 표정으로 웃었다. 발끝으로 땅을 조금 긁기도 했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제 코밑을 비비며 기대어린 모습을 감추질 못하던 사와무라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그 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예민하게 귀에 집중했다. 조금 낮고, 자박자박. 거기에 제일 먼저 불펜에 찾아올 사람이라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황금색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그리고 결국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며, 사와무라가 활짝 웃었다.
“미유키!!”
다행이다, 미유키가 제일 먼저 왔어! 곧장 그에게 뛰어가 바로 앞에 선 사와무라가 손을 뻗었다. 유령이라도 본 듯 어리벙벙한 표정의 미유키를 보며 짓궂게 웃는 것 역시도 잊지 않았다.
“사탕 주십쇼, 미유키!”
트, 트릭? 오어... 뭐더라. 암튼 그거! 웃으며 외치는 사와무라를, 미유키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몇 번이나 제 눈을 깜박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미유키의 손을 사와무라가 맞잡았다. 손이 잡히는 순간 미유키가 살짝 몸을 떨었다. 그 손을 이끌어 제 뺨에 가져다댄 사와무라가 곱게 눈을 접었다. 특유의 활기참을 잠시 접어두고, 드물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미유키? 사탕 주지 않으면 장난칠 검다?”
“..,언제부터 사탕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푸딩이면 더 좋죠.”
그치만 사탕도 싫어하진 않슴다?! 절 그렇게 모름까, 미유키 카즈야!! 큰 소리로 소리치면서도 사와무라의 손은 미유키에게 닿아있었다. 미유키의 손끝이 조금 움직였다. 느릿하게 사와무라의 뺨을 쓸어내리는 손길을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몇 번 눈을 깜박이며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미유키가 잠시 입을 벙긋였다. 소리로 구현되어 나오지는 못한 무언의 말들이 그 안에서 부서졌다. 완성되지 못한 말들을 차마 뱉어내지는 못하고, 미유키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여러가지 감정들을 소리치고 있는 그 눈이 대신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한 달... 만이네.”
“음, 그렇죠?”
“고작, 한 달.”
겨우 짧게 한 문장을 뱉어내는 미유키의 말에, 사와무라가 단박에 긍정으로 답해주었다. 그래, 고작 한 달 만이었다. 아주 길고, 그보다 더 짧은 한달이었다. 사와무라가 슬쩍 개구지게 웃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게 만들어줄 정도로 긴 한달이었다. 사와무라에게는.
“왜... 지금 보이는 거야?”
“오늘이니까?”
미유키의 그 말이 이제서야, 라는 원망이 섞인 말이라는 걸 알았다. 사와무라가 조금 즐겁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이 할로윈이라는 거 암까?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온다는 날, 뭐 그런 거. 사와무라의 말에 미유키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 변화의 의미를 둘 다 알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모른 척했다. 그에게 한 달은 정말로, 정말로, 아주 긴 한 달이었으니까. 성장통을 겪고 그것을 이겨낼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고양이마냥 치켜올라간 황금색 눈을 곱게 접고, 사와무라가 웃었다.
“사탕 줘요, 미유키.”
“...사탕같은거 가지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럼 장난을 받으십쇼.”
무슨 장난을 칠 건데? 미유키가 어설프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 말에 사와무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 하든 안 통할 것 같으니까 제 멋대로 굴 검다. 공이나 받아주십쇼!”
맘껏!! 아주 온종일 던질거니까!! 신나게 소리치며 사와무라가 손에 들린 글러브를 흔들었다. 미유키가 느릿하게 글러브를 보았다가, 제 손의 미트를 보았다. 그리고 사와무라를 보았다가, 보았고, 또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예전에는 해주지도 않던 흔쾌한 허락이었다.
각자 그들이 서야 할 자리에 가서 섰다. 미유키가 미트를 대고, 사와무라가 공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글러브 너머의 황금색 눈이 노을처럼 불타올랐다. 그것 역시도 아주 오래 전에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유키는 자신을 향해 공을 던지는 사와무라를 조금 멍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글러브가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변칙 폼과 지저분한 공. 변한 것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좋은 소리를 내며 미트로 빨려들어오는 공을 잡으며, 미유키는 아주 잠깐 사와무라와 눈을 마주쳤다. 시선이 얽히는 순간 사와무라가 기분좋게 웃었다.
문득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미유키가 미트 속에 들어온 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정말 찰나의 시간 사와무라에게서 눈을 땐 것에 불과했다. 그 공을 쥐어서 나이스 볼, 하고 사와무라에게 돌려주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글러브 하나만 놓여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미유키가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펜은 텅 비어있었다. 사람이라고는 미유키가 유일했다. 허. 미유키가 짧게 숨을 뱉었다. 천천히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표정은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 마치 꿈이라고 꾼 것 같았다. 아니면 환상이라도 보았을까. 하지만 그 전부가 꿈이라고 한다면... 제 미트 속에 얌전히 자리잡은 공 하나만이 현실을 이어주는 작은 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