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AZUMA/NOVEL

나노바나 키나코, 끝

별빛_ 2014. 2. 2. 17:16


가쁜 숨과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생명력으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본능이, 직감이, 그 다른 모든 무언가가 전부 한 가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었다. 제 삶에 끝이 다가오는 것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가지고 있는 직감으로서 느끼며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천장에서 내려 제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돌렸다. 울 것 같은 얼굴, 저 간절함을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 표정을 보았던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을 안개처럼 흐릿하게 떠올리며 그녀는 양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눈꼬리를 미끄러뜨렸다. 미소짓는 그 얼굴에 상대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열을 참기 위해서였다. 

"미안해, 아스레이…"

그저 미안했다. 먼저 떠난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마음아픈 것이라는 것을 키나코는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문득 손을 뻗어 눈물이 가득 차오른 그의 눈가를 닦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손을 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아쉬워 키나코는 작게 손가락을 두 번 까닥였다. 그리곤 깊게 숨을 내쉬었다. 

"페이는…?"

키나코의 부름에 아스레이가 곧장 이동용 요람에 뉘여져있던 페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키나코의 옆에 눕혀주었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얼굴로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사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에 키나코의 얼굴에 안도가 번졌다. 아직 이렇게나 어린 갓난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멋지게 성장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직접 보고 왔었으니까. 얼마나 눈부시게 자랐는지, 얼마나 자랑스럽게 자랐는지, 키나코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줄수 없다는 것이 가슴 미어질 정도로 안타까웠다. 

키나코가 조심스럽게 페이의 자그마한 손에 제 손가락을 얹었다. 그 가벼운 행동마저도 힘겨웠다. 페이는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신록과 같은 그 아름다운 눈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지만, 그 눈에 비칠 광경이 어미의 죽음이라면 차라리 페이가 계속 자고 있기만을 바랬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사랑하는 아들, 내 아들. 열 달을 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던 사랑하는 존재.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이었을까, 키나코의 머릿속에 수채화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은 어린 시절이었다. 중학교 일학년. 무엇이든 기운넘치게 미소지으며 해내곤 했던 그때 그 시절. 다른 또래들과는 전혀 다른, 특별하고도 위험한 시간을 보냈지만 행복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자신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면, 키나코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키나코가 그들의 여정에 끼어들어 동료로서 녹아든 목적은 페이.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비록 아스레이에게 이야기밖에 듣지 못한 아이였지만 자신이 사랑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아이를 지키러 올 이유는 충분했다. 어쩌면 반 쯤 책임감으로, 절반은 어렴풋한 동정과 애정으로 넘어온 과거에서 처음 만나게 된 아이는 낮설었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웠다. 중세시대와 에도시대, 삼국지 시대를 거치면서 느릿하고 천천히 아이를 알아갔다. 

그리고 그 뒤에 넘어가게 된 공룡 시대에서 아이의 상처를 눈치챘었다. 언제나 강해 보여서 정녕 지켜야 하는 걸까 자그마한 의심을 품게 했던 아이의 상처투성이 내면을 보게 되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담담함을 뒤집어쓴 쓸쓸한 말을 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우울해 보여서, 키나코는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켜야 돼. 지켜야 할 만큼 상처입은 아이야. 

아서 왕 시대에서 마스터 드래곤을 만난 인연을 키나코는 기억하고 있었다. 상냥했던 그녀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그녀의 충고를 듣고서야 자신이 페이를 생각하는 감정이 애정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모성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와 믹시맥스 했던 순간의 벅차오르는 다정함을 키나코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페이의 여린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사랑하는 아들을 가까스로 낳아서 품에 안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사실 출산의 순간부터 키나코의 목숨은 상당히 아슬아슬했다. 그 때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흐려지는 의식의 가운데에서 환상처럼 자신의 화신, 새벽의 무녀 아마테라스를 본 기억이 있었다. 차마 그것이 현실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든든한 친우가 제 목숨을 이어주었다는 사실을 키나코는 직감하고 있었다. 

키나코는 시선을 다시 돌려 아스레이를 바라보았다. 울지 않은 것이 이상할 만큼 슬퍼보이는 제 남편, 사랑하는 사람. 키나코는 멍하니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우습게도 키나코가 지금보다 열살하고도 조금 더 어렸을 무렵, 지금의 그보다 열 살하고도 좀 더 많았을 그와 만나게 됬다. 그렇게 나열하니 우습지만 키나코는 그 때 지금만큼 간절한 표정으로 페이를, 우리의 아이를 구해달라, 지켜달라 애원했던 그의 모습을 기억했다. 

사실 걱정하기도 했다. 페이를 낳아야 했지만 그를 사랑해서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그건 전부 기우라는 듯 결국은 그에게 반해서 이렇게 결혼하게 되어버렸지만. 과거도 미래도 알고 있는 키나코와는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아스레이의 얼굴을 보며 키나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레이… 페이를,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해요."

잘 지켜줘요. 절대 놓아버리면 안 돼요. 키나코는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말을 가만히 삼켰다. 제 사랑스런 아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에 대해 아스레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페이더에게, 세컨드 스테이지 칠드런에게 페이를 넘겨주면 안 돼요. 상처입히면 안 돼요. 연약한 아이에요. 내 빈자리만큼 사랑해줘요.... 한 번 숨을 들이쉬고 가쁘게 내쉴 때마다 말하고 싶은 말이 쌓여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를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말들이 쌓여만 갔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우리 아이를……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해줘요, 아스레이."

키나코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몇 번이고 긍정의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한 쪽 손을 꽉 부여잡는 남편의 모습에 키나코는 안심하며 웃었다. 

"사랑해줘요……. 내 자리만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줘요. 외면하지 말고, 알았죠?"

결국 마지막으로 하나의 보험을 걸어놓고, 키나코는 웃었다. 아직까지도 자고 있는 페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 몇 년 전 보았던 페이의 얼굴이 겹쳤다. 중학생의 페이, 자신을 만나러 와 주었던 페이의 웃는 얼굴이 겹쳐졌다. 

미안해, 페이. 새로운 인터랩트를 만들어주지 못해서…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땐 든든했는데, 혼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내는 건 내게 좀 벅찬 일이었나 봐.

안타까움으로 얼룩진 얼굴을 가리며 키나코는 미소지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소였다. 점점 의식이 멀어져갔다. 눈 앞에 보이는 페이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눈을 뜨는 페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지도 불확실했다. 

"마마?"

제대로 들은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한 번도 듣지 못했었는데, 엄마라고…… 귓가에 울리는 페이의 목소리에 키나코가 밝게 미소지었다. 아스레이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와 페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멀어진다. 마지막으로 숨을 한 뭉큼 내쉬며 생각했다. 후회가 없다면 거짓이었지만 그것으로 얼룩지진 않을만큼의 삶이었다. 삶을 뒤돌아보고 '수고했어!' 라고 외칠 수 있다니, 좋지 않은가.

아, 행복한 삶이었어.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