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너의 기적 2
하카제 카오루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이 장소에 왔다. 해가 저무는 바닷가는 유독 아름다웠다. 평소의 푸른 색감은 잠시 접어두고 붉게 물들어가는 그 모습이 넋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워서 카오루는 그 시간의 바다를 좋아했다. 유독 운이 나빴던 어느 날은 일찍 걸음하기는 했지만, 카오루가 바다를 보는 시간은 늘 이 정도의 시간이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그가 좋아하는 여인들의 곁에 머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를 만나는 것도 늘 이 정도의 시간이었다. 카오루는 해를 삼키는 바다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옅은 바다색 머리카락이 작게 흔들렸다. 눈이 마주치자 대번 기쁘게 손을 흔드는 그를 적당히 받아주며 카오루도 짧게 손을 흔들었다. 통성명을 한 지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체 모를 사람이었다.
“좋은 「저녁」이에요, 카오루.”
“그래, 좋은 저녁. 오늘도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네. 오늘은 「해마 씨」를 돌보았답니다.”
해마 씨? 카오루가 그리 물으며 카나타의 옆에 앉았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 쉽게 말해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지만, 카나타는 의외로 대하기 편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도리어 좋은 요소로 작용했다. 서로 아는 것이라고는 서로의 이름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인다는 사실뿐이었다. 카오루는 턱을 괴고 오늘 있었던 일을 잔뜩 풀어넣는 카나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가 이것저것 찌른다면 대번에 구멍이 뚫릴만큼 허술한 관계였지만, 그에 이름을 붙인다면 벗이라 불러도 괜찮았다.
동성의 친구가 생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데. 카오루는 무심코 그리 생각하며 헛웃음지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그를 벗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본인은 이렇게 경계가 낮은 사람이 아니라고 중얼거려보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불쑥 치솟았다. 카오루는 즐겁게 해마 씨에 관해 이야기하는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카나타 군.”
“네, 카오루.”
부름 한 번에 카나타가 곧장 입을 다물고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한낮의 바다처럼 빛나는 연한 눈이 애정을 듬뿍 담아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저런 눈으로 바라보아진 것은 손에 꼽는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돌아가신 어머니, 지금에 와서는 형과 누나 정도. 그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그들이 전부였다. 나름 눈칫밥 먹고 자란 입장에서 카오루는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카나타는 카오루에게 퍽 애정을 쏟아부어주고 있었다. 마냥 받는 입장에서는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나타 군 여기에 자주 있는 모양인데 설마 나 여기서 운 적이라도 있었나? 동정심에서 꽃피어난 부성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니 매우 낯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머쓱하게 뒷목을 매만지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오루? 「무슨」일 인가요?”
“아냐, 아무것도.”
음, 카오루는 짧게 말을 삼켰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주워 뱉었다.
“카나타 군은 계속 여기에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내 바다 이야기뿐인데.”
완전히 그냥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카나타의 이야기는 알쏭달쏭한 내용이 종종 끼어있기는 해도 일단 재미있었고, 카오루는 일단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는 했다. 카나타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생물들은 모두 바다생물이었다. 오늘은 해마 씨, 어제는 고래 씨, 그 전은 도미 씨, 갈매기 씨...... 이야기의 앞뒤구조를 따져보아도 바다생물의 별명이 붙은 사람은 아니었다. 새삼 의문을 품으며 카오루가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카나타가 연녹색 눈을 곱게 빛냈다. 사르르 휘어지는 눈꼬리가 고왔다. 유독 기쁜 얼굴이었다.
“네. 「저」는 계속계속 「여기에」있답니다.”
“집은? 가족이라던가.”
카나타가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조곤조곤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는 흔들림 하나 없었지만 카오루는 도리어 약간 낭패감이 들었다. 괜한 걸 물었나.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답하기 싫은 종류의 물음일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대답하기 싫은 종류의 물음일 터였다. 카오루 본인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잔뜩 있는데 카나타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쩔쩔매는 카오루의 모습을 보며 카나타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작게 웃었다. 파도 부서지는 것과 닮은 가벼운 웃음이었다.
“왜 웃는 거야?”
“카오루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니까요...?”
저에 대해 「질문」해 주었답니다. 기뻐요...♪ 진심으로 기쁜 듯 웃는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가 한 층 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면 언제나 만나서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것은 카나타였다. 카오루는 별 걱정 없이 이곳에 와서 카나타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기만 하면 되었다. 늘 고요하고 평화로웠기에 휴식이라고 느끼던 시간이 즐거워진것은 카나타를 만난 뒤부터였다. 카나타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소한 일상이거나 그럴 수 있는거야? 하고 되묻고싶어질만큼 알쏭달쏭하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어느 쪽이든 카나타가 굉장히 즐겁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에 듣는 카오루마저 즐거웠다. 굉장한 능력이었다.
마냥 받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카오루가 고민하듯 끙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그럼 카나타 군도 뭐든 나한테 물어봐. 궁금한 거라던가, 알고 싶은 거라던가.”
“「뭐든지」요...?”
“응, 뭐든지.”
카나타에게 이제껏 즐거운 시간을 받았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염치없이 눈 앞에서 웃으며 비꼬아대거나 눈치없이 제 자신을 긁어내리는 사람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에 비하면 카나타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즐겁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록도록 굴러가는 눈동자며 여전히 미소띈 입가가 무엇을 물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 그가 활짝 웃었다.
“카오루, 「바다」는 좋아하나요?”
“어? 어어. 좋아하는데...”
제일 첫 질문이 그거? 카오루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카오루의 모습을 보며, 카나타가 환하게 웃었다. 피어나는 물꽃보다 고운 미소였다.
“아, 벌써 「갈 시간」인가요?”
“응. 늦으면 혼나니까 말이야~.”
“「내일」도 오나요, 카오루?”
“응. 내일 봐, 카나타 군.”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은 어제보다 조금 더 친근하게 웃고 있어서, 문득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나타가 잠깐 손을 뻗어 카오루의 옷깃을 쥐어당겼다. 카나타 군? 카오루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카나타는 언제나 카오루가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떠나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으니까.
“이거, 「선물」이에요. 받아주세요.”
“선물?”
카오루가 반사적으로 손에 쥐어준 것을 바라보았다. 말갛게 빛나는 손톱만한 진주였다. 바다 근처 마을의 영주 아들로 태어났기에 진주 볼 일은 자주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크기와 색의 진주라면 적어도 쌀 몇 석은 받을 정도다. 카오루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어디서 어떻게 얻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귀한 것이다. 고작 선물이랍시고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대에게 덥석 내밀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런 건 못 받아, 카나타 군!”
“왜요? 「더 좋은 것」이 지금 없어서...”
“아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너무 좋은 거야.”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이런 건 못 받는다고. 그리 말하며 카나타의 손에 진주를 넘겨주려 했지만, 카나타는 단호했다. 두 손을 뒤로 숨기고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모양새에는 돌려받는 것에 대한 거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카나타 군. 카오루가 타이르듯 불렀다. 살살 달래는 목소리이기도 했지만 카나타는 단호했다.
“선물이 싫으면 「보상」이라고 해요.”
“무슨 보상?”
“거짓말 안 하고 질문에 「솔직하게」말해준 「상」이에요.”
그게 뭐야. 카오루의 표정에 선명하게 드러난 말이었지만 카나타는 저가 한 말에 만족하여 방긋 웃기만 했다. 그런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가 깊게 한숨을 뱉었다. 절대 제 말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졌다. 결국 받은 진주를 떨떠름하게 챙겨넣을수밖에 없었다. 방에 빈 함이 있었던가. 넣어둬야겠네. 진주를 넣은 주머니를 불편하게 매만지던 카오루가 하늘을 보고는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일단 시간이 늦었다. 더 늦었다가는 정말 불호령을 받을 터였다. 밖에 못 나오게 감금당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몇 번이고 머뭇거리던 카오루가, 잠시 카나타를 돌아보았다. 녹빛 눈이 둥글게 떠졌다.
“내일은 좀 더 빨리 올게, 카나타 군.”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내 바다에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내내 카오루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카나타의 말에서 언뜻 드러나는 행동범위는 그들이 만나는 해변을 중심으로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 가볍게 손을 흔드는 카나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응시하며, 카오루가 몸을 돌렸다.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금방 작아지는 카오루의 뒷모습에 물빛의 청년이 엷게 웃었다. 흰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