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칠석의 어느 저녁
사쿠마 리츠에게는 이사라 마오만이 알고 있는 습관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용모단정 뛰어난 미색을 자랑하는 유메노사키에서도 눈에 띌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황홀하리만치 고아한 미소를 걸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 군, 정말 좋아.’ 하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속삭여주고는 했던 말이고, 지금까지도 종종 예상치 못했던 뜬금없는 순간에 리츠는 그런 말을 내뱉고는 했다. 어릴 때야 마냥 좋다며 받아주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마오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백번 해도 뭐 할까. 두어 번 애둘러서 앞으로 하지 말라는 의사표현을 비춰보아도 리츠는 언제나 모르는 척 해 버렸다. 이길 수 없을 만큼 곱게 웃으며 다시 말해버리는 것이었다. 마 군, 좋아해.
그러니 결국 리츠의 고집을 이길 수 없는 마오는 언제나 돌려주었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알고 있어.’
언제나 하는 같은 대답이었지만, 리츠는 그 대답을 들을때마다 늘 못마땅한 반응을 숨기지 못하고는 했다.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부루퉁하게 부풀어오른 리츠의 양 뺨과 샐쭉해진 표정을 보며 마오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버리면 리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저가 한 말을 잊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는 했다. 그 일련의 절차가 둘 사이의 오랜 습관처럼 굳어질 정도였다.
음, 문제가 있어. 고칠 필요가 있는 습관이야. 이제는 다 컸는데 어린애처럼 좋아한다는 말을 막 쓰는건 오해하기 딱 좋은 습관이라고. 펜끝을 물며 마오가 미간을 좁혔다. 제 옆자리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리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어쩐지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사처럼 자고 있는 연상의 소꿉친구가 아주 조금 얄미웠다.
요즈음 들어 리츠가 마오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는 빈도가 늘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말해준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횟수가 늘어나니 곤란한 건 매한가지였다. 어릴 적에야 자신에게만 좋아해준다고 말해주는 것이 의지해주는 것 같아서 기뻤지만, 이제는 자랐지 않은가. 아니, 그것보다도 결정적으로 리츠의 태도가 문제였다. 마치 고백하는 것처럼 곱게 웃으면서 말해주는 모습이 마치,
“응, 그거 정답이야.”
“어?”
언제 일어났어? 아니 그보다도 뭐? 마오가 눈을 둥글게 떴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 선명한 녹빛 눈을 보며 리츠가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정말 오래 고백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겨우 그 색을 눈치채준 소꿉친구가 조금 야속하면서도, 옅은 색으로 물들은 뺨이 너무 고와서 모든 것을 용서해줄수밖에 없었다. 귓가에 소근대는 것처럼 들려오는 그의 속마음 역시도 만족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거 정답이라고 했어, 마 군.”
“뭐가 정답인데?”
“마 군이 생각한 거.”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마음을 다잡고 고백했더니 들려오는 속마음이 릿쨩은 정말 좋은 친구구나! 였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더없는 발전이었다.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리츠가 턱을 괴고 마오를 보았다. 마 군이 너무너무 좋아서 두근두근할때마다 고백해줬는데, 맨날 알았다고만 하고. 마 군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잔뜩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지금 알아주었으니 되었다. 먹이를 잡아챈 맹수처럼 나른하게 웃으며 리츠가 속삭였다.
“마 군, 정말 좋아해.”
“그러니까 그건...”
“마 군이 생각하고 싶어했던 포근포근한 ‘좋아해’가 아니라는 뜻이야.”
마오의 뺨이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다. 리츠의 귓가가 조금 더 시끄러웠졌다. 상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복잡한 마음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그 사이사이 끼어있는 두근거림에 리츠의 표정이 조금 더 만족스러워졌다. 고개를 살풋 기울이니 밤하늘같은 흑발이 하얀 목덜미를 드러냈다. 보석을 닮은 눈이 애정과 기쁨을 동시에 담아 휘어지는 모습에 마오가 짧게 숨을 삼켰다.
“나는 이것저것 잔뜩 하고싶다는 의미의 ‘좋아해’인데. 마 군은 어때?”
싫어? 살짝 눈을 내리깔자 순식간에 애처로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과연 아이돌답게 극적인 변화였지만 마오는 그런 사소한 것을 눈치챌 정신도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음.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마오의 얼굴은 이미 펑 하고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제 고백에 어쩔 줄 몰라하는 마오를 보며 리츠가 소리없이 웃음을 참았다. 심장께가 간질간질했다. 행복했다.
리츠가 손을 뻗어 마오의 손을 붙잡았다. 체온이 닿는 순간 크게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귀에 들리는 심장소리가 마오의 것인지, 아니면 리츠 본인의 것인지 이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둘 뿐인 교실에 온통 두근거림뿐이었다. 단 둘이었다.
“정말 좋아해, 마 군.”
향기가 묻어날 만큼 달콤한 목소리에 마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며 목덜미까지 붉었다. 사랑스러웠다.
“알고... 있어.”
나도, 좋아해. 바람소리에 흩어질 정도로 작은 속삭임이 덧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