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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너의 기적 3

별빛_ 2016. 7. 9. 01:24




“그럼 카나타 군은 소꿉친구가 두 명 있는거야?”

“그렇네요...♪ 「그렇게」 묘사하는게 맞을 거에요.”

“뭐야, 그게.”


 애매하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오루가 낮게 웃었다. 부드럽게 깔리는 웃음소리에 카나타의 표정에도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카오루가 웃는 얼굴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방싯방싯 잘도 웃는 카나타의 모습을 보며 카오루는 문득 하늘을 보았다. 카나타와 만날 무렵은 언제나 주황빛으로 물들어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파란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카나타에게 진주를 받았던 그 날 이후로 카오루가 찾아오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제는 해가 지기도 몇 시간이 남았는데 진작 이곳에 걸음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을 때 제일 마음이 편하니까. 카오루는 그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여성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카나타의 곁만큼 편안한 곳은 없었다. 카오루가 새삼스럽게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카나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정말 독특하다니까. 그리 중얼거리며 카오루가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늘은 선명했지만 여전히 공기는 건조하기만 했다. 바다 근처인데도 이렇게나 건조해지다니. 청년의 표정에 일견 그늘이 드리워졌다. 카오루? 옷깃을 붙잡아오는 손길에 대번 표정을 풀기는 했지만, 카나타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어디 「아픈」 건가요?”

“아니, 아니. 아픈 곳 없어. 걱정하지 마.”


 정말이지요? 「아프지」 말아요, 카오루. 그리 말하며 카나타가 카오루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주먹에 쏙 들어오는 매끈매끈한 감각에 카오루는 속으로 한탄을 삼켰다. 이제는 익숙한 감촉이었다. 손을 펴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예상 그대로 동글동글한 진주였다. 이번엔 흑진주. 그것도 큰 거. 이게 얼마짜리지? 카오루는 속으로 금액을 책정해보며 경악을 삼켰다. 쌀이 몇 석이고 물이 몇 통이었다. 선물받은 것을 팔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지고는 있었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이런 것을 덥석덥석 쥐어주는 카나타 덕분에 이제는 갖고 있기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돌려준다고 하면 대번 고개를 저어버리고 말이지. 카오루가 한숨을 삼켰다. 매일 바다에서 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것은 어디서 이렇게 잘 찾아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카오루가 새삼 카나타를 보았다. 문득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나저나 카나타 군은 늘 물에 들어가는 거지?”

“네. 매일 「첨벙첨벙」한답니다...♪”

“그럼 어디서 씻어?”


 바다에서 놀고 나면 소금기라던가 불편하지 않아? 바다에 들어간 뒤에 씻으려면 물도 많이 필요할텐데. 그렇게 묻는 카오루의 말에 카나타가 크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답을 주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리는 카나타를 보며 카오루가 먼저 손사래를 쳤다. 아냐, 괜찮아. 내가 괜한 걸 물었네. 카오루가 그리 말해주는 것에 카나타가 입가를 가리며 살풋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였다. 옅게 깜박여지는 눈이 흐린 고민을 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깜박이던 카나타가 문득 물었다. 


“카오루,  지금은「가뭄」이라고 했었지요? 많이 「심각한」건가요?”

“가뭄? 음... 좀... 많이 심각하긴 하지.”


 카오루의 얼굴에 순식간에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자신의 하얀 손가락을 매만지며 카오루는 문득 망설였다.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짧은 고민은 깊었고 결정은 빨랐다. 차마 말할 수 없어 카오루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카오루의 망설임을 카나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카나타 역시도 저 나름의 고민에 잠겨 있어서 카오루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쪽이 옳았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던가. 역대급 규모로 기우제가 열릴 거야.”

“「기우제」인가요?”

“오래 가물었으니까.”


 바다 근처라 늘 비는 풍족했었는데. 카오루가 쓴웃음을 삼켰다. 대략 10년 전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는 횟수가 줄더니 요 1년은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몰랐다. 농사짓는 사람이 많은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수확량도 매년 조금씩 줄다가 이번 농사는 완전히 망해 있었고, 굶거나 갈증으로 죽은 사람도 여럿 나왔다.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지에 사는 모두가 이번 기우제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카오루 역시도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할수밖에 없었다. 


“물의 왕한테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거지. 뭐, 미신이라지만 이제 매달릴 게 그쪽밖에 없고.”

“「물의 왕」이요......”


 카나타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 바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카오루가 말을 이었다. 


“카나타 군도 그 전설 정도는 알고 있지? 세계에는 세 명의 왕이 있다는 거.”

“「물」과 「하늘」. 그리고 「땅」의 왕이지요.”

“응.”


 과연 기우제를 한다고 비를 내려주실지는 의문이지만. 그리 말하며 카오루가 짧게 웃었다. 웃는다기보다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것에 더 가까운 자조적인 미소였다. 손가락으로 해변의 모래를 긁던 카나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오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려한 얼굴에 드리운 수심을 보았다. 카나타의 표정이 단박에 시무룩해졌다. 


“미안해요, 카오루.”

“카나타 군이 뭐가 미안해?”

“「비」를 못 내려줘서요.”


 왜 그게 미안해? 카오루가 제대로 정신을 부여잡고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화사하다못해 반짝거리는 분위기마저 축 가라앉아있는 카나타의 모습이 보였다. 카나타 군? 카오루가 그 이름을 불렀다.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손목을 잡아오는 손길에 카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수심 깊은 연녹색 눈을 마주했다. 물색의 머리카락이 엷게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물을 빚어 만들어낸 것 같은 화사한 미인이 미안함을 담아 하늘을 등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엷은 색의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에도 독특한 분위기를 온 몸에 감싸고 있는 카나타였지만, 지금처럼 낯선 적은 없었다. 

 아주 문득, 카오루는 직감했다. 카나타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건 정말 급작스럽고 머리를 한 대 후려갈기는 듯한 충격이었기에, 별모래빛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카오루의 경악을 읽으며, 카나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이었다. 


“제가 「그」 전설 속의 「물의 왕」이에요, 카오루.”


 미안해요... 기 죽은 듯 흐릿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멍하니 그를 바라볼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