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너의 기적 4
아니, 잠깐만. 카오루가 두 손을 다급하게 휘저었다.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그 행동에 카나타의 표정이 한층 더 우울해졌다. 눈을 내리깔고 두 손가락을 얽히게 매만지며 우물거리는 카나타를 보며 카오루는 결 좋은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철저하게 받았던 교육이 그것을 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전설 속에서나 듣던 장본인이 눈 앞에 앉아있는 친구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가뭄으로 심각하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 그 친구가 물의 왕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납득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일부 섞여있을지도 몰랐다.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푸는 것을 반복하며 안절부절 못하던 카오루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이야?”
“......네.”
카나타가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카오루가 제일 잘 알았다. 청년은 아주, 아주 미묘한 얼굴로 카나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모래색 눈 안에 유영하는 감정의 색은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한 색을 띄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아마 앞에 말했던 이유와 연결되는 이유일 터였다. 비를 내려 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동시에 문득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카오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카나타 군 때문이야?”
“.......”
한 층 낮아진 목소리에 카나타가 고개를 숙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 무언이 긍정이라는 것을 두 사람 다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얼굴과 동그란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색의 머리카락이 파랗게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설명해 줘.”
오해하는 건 질색이야. 미련같은 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 ...전부 이야기해 줘, 카나타 군.
목소리에 섞여있는 감정은 질척했다. 배신감이 그 중 가장 옅은 것일 정도였다. 그것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날것으로 드러내며 괴로워하는 카오루의 목소리에 카나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오루를 보았다. 옅게 떨리는 녹색의 눈이 카오루를 응시했다. 마주보는 시선이 괴로웠다. 망설이며 머뭇거리던 카나타가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오루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그가 무슨 선택을 할 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왕」이라는 존재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존재들이에요. 각자의 「힘」은 강하지만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기적」은 일으킬 수 없어요. 기적을 불러올 수 있는 건 「인간」 뿐이에요.”
“......”
“하지만 「힘」이 강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머물면 그 자리의 규칙을 「모두」 휩쓸어버려요. 그래서 왕들은 모두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아요. 계속 계속 「떠돌아」다녀요.”
하지만 카나타는 머물렀다. 십여년 넘게 계속 이 바닷가에 머무르며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12년쯤 전에... 「여기서」 카오루를 만났어요. 카오루... 「울고」 있었어요.”
“12년 전?”
카오루가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듣자마자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잃고 이곳에 와서 하루종일 울던 때가 분명 있었다. 카나타 군은 그 때 나를 봤던건가. 카오루가 침음을 삼켰다. 카나타가 말을 이었다.
“울고 있는 「카오루」를 보고... 카오루가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줄곧 이 바다에서 기다렸다. 종종 카오루가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었다. 왕이다보니 시간개념은 흐릿했고, 제 힘에 규칙이 휩쓸려 비가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독 자주 찾아오게 된 카오루가 반가워서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건 것이 처음 만난 날의 일이었다.
모든 것을 말한 카나타가 침묵으로 카오루의 답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카오루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감은 눈꺼풀 아래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그만큼이나 낮았다.
“결국 비가 오지 않은 거, 내 탓이네.”
“아니에요! 카오루 잘못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내가, 나 때문에. 울 것 같은 얼굴로 매달려오는 카나타를 보며 카오루가 손을 뻗어 그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느리게 쓸어주는 그 손길은 예전만큼 다정하지는 않지만 거칠지도 않아서, 카나타는 멍하니 카오루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