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꽃망울
앙스타 전력 60분. 「천둥치는 밤」
하나하나 AU
사쿠마 리츠의 몸에는 꽃이 피어있다. 오른쪽 귀 바로 위쪽, 머리카락이 나지 않은 부분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붉은 꽃봉오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양식으로 하고 피어나는 그 여린 꽃봉오리는 꽃 한 송이 피어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저 풋익은 꽃몽울로 남아있었다. 완전히 개화하지도, 그렇다고 시들어버리지도 못한 그 어설픈 꽃은, 그래도 꽃이었기에 보기싫지는 않았지만, 머리에 피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수술로 제거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여러번 들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리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가벼운 움직임은 무거운 거부를 담고 있었다. 그 꽃은 그에게 있어서 미련이자 흔적이었다. 지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리츠는 언제나 제 꽃이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가끔 거울로 피어나지 않는 제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하나하나라는 이름의 병은 손꼽히는 희귀병 중 하나였다. 비슷한 종류의 병들이 두엇 있었지만, 리츠가 걸린 병은 사랑을 받을 경우 죽는다는 비정함 탓에 가장 악질로 꼽히는 불치병이었다. 사랑받는 것으로 낫게 되는 병이 얼마든지 있는데. 소년은 문득 제 꽃을 응시할때마다 치미는 감정을 익숙하게 억눌렀다. 깊게 숨을 삼키는 것으로 감정은 고스란히 제 안에 가라앉았다. 물에 잠겨 숨을 죽이는 감정이 뱃속을 어지럽혔다. 불쾌했다. 엷게 미간을 좁혔다가 풀어낸 리츠가 거울에서 시선을 때어냈다. 곧 레슨 시간이었다. 드물게 왕님까지 참가한 지금 늦었다가는 세나나 츠카사에게 귀찮게 쪼아질 게 뻔했다. 리츠는 조금 발걸음을 서둘렀다.
언제나 모이는 스튜디오에 리츠가 참가한 것으로 다섯이 모였다. 각자 제멋대로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문이 열리자 개성 넘치는 인삿말이 쏟아지는 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오오, 릿츠! 오늘따라 씩씩해보이네! 신이 난 듯 경쾌하게 외쳤다가 다시 제 망상에 빠져 오선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하는 왕의 모습에 리츠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네. 그리 말하며 소파에 앉는 리츠를 보며 세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소파에 드러눕는 것이 아니라 얌전히 앉아있다는 점에서 세나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왕님 말대로네. 무슨 일 있어, 쿠마 군?”
“음~, 그냥 그거.”
그리 말하며 리츠가 가볍게 제 오른쪽 뺨을 두 번 두드렸다. 그 작은 행동의 뜻을 세나는 금방 이해했다. 평소보다 잠을 자지 않고, 오른쪽을 신경쓰는 리츠는 제 꽃을 보고 감정에 잠기게 되어버린 사쿠마 리츠였다. 묵은 사랑에 발을 담그고 온 사쿠마 리츠였다. 삼 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동안 보아왔던 경험이라는 것은 그것을 알게 해 주기에 부족함 없는 재료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그 안에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리츠 선배?”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는 세나나 레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아라시와는 다르게 츠카사는 무구한 시선으로 리츠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어리둥절함과 호기심을 담고 바라볼 수 있는 어린 막내를 보며 리츠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닥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지만, 여기서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 주지 않으면 후배가 저를 얼마나 귀찮게 굴 지 불 보듯 뻔했다.
어차피 내년까지,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함께하게 될 후배였으니 미리 말해두는 것이 낫겠다 싶어 리츠는 소파에 길게 드러누웠다. 머리카락이 뺨과 뒷목을 간지럽혔다. 이대로 잠에 취하고 싶다는 마음도 문득 치솟았다. 변덕스러운 잔물결처럼 찰랑이는 감정이 무슨 색인지 리츠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내 꽃.”
“flower? 아.”
츠카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리츠의 꽃에게 향했다. 갓난아기 주먹만한 꽃봉오리는 꽤 큼지막했기에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꽃을 응시했다. 리츠는 온 몸으로 제 병을, 피워내지 못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었다. 누군가 그 꽃에 시선을 빼앗겨 있으면, 리츠는 그보다 붉은 눈을 곱게 휘며 물릴 정도로 많이 내뱉은 말을 또 다시 읊어야 되는 것이었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면 피지 않는 케이스야.’ 하고.
물론 그 주고받는 사랑이란 연애적 감정이 듬뿍 들어간 에로스적인 의미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나하나병 중에서도 제일 목숨부지하기 쉬운 케이스였으니. 팬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고, 가족에게─그닥 원하지는 않지만─사랑받아도 괜찮았다. 다만 리츠의 사랑만 피워내지 못한 꽃처럼 말려 죽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영리한 후배는 그것으로 꽤 많은 것을 짐작했다. 그 사이사이 끼어들어간 망상이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지는 잘 몰랐지만, 잘못 물어보았다는 낭패감과 죄책감에 기가 죽어버린 후배를 보는 것은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별로, 괜찮으니까~. 나른하게 중얼거린 리츠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잠에 취하고 싶었다. 나이츠 전원이 모인 레슨시간이었지만, 수면를 청하는 리츠를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꽤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는 점이었다. 제 병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 아니, 병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시기는 언제나 어렴풋했다. 앳되었던 기억 속의 얼굴로 적당히 시기를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시기의 애매함과는 관계없이 그 때의 상황만큼은 사진보다도 선명하게 재생해낼 수 있었다.
하루종일 마오의 손에 이끌려 놀다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내내 맑은 날이었지만 해가 지니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멀리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천둥이 치는 모양이었다. 곧 비가 올 모양이었다. 해가 진 뒤 유독 또렷해진 눈매로 리츠는 컴컴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것이 그의 생체리듬에 걸맞았지만, 낮에 내내 활동했기 때문에 조금 피곤했다. 아마도 마오의 곁에서 잠드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마 군, 하늘 좀 봐. 리츠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하늘을 보며 그리 말했다. 어린 마오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게 떠졌다가 영 불안하다는 듯이 일그러진 녹색 눈이 퍽 아름다웠다. 마오는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다가와 리츠의 손을 붙잡았다. 시선은 여전히 비 내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였다. 리츠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어린 여동생이 태어난 뒤로 마오는 어리광을 피우지 못했다. 천둥번개가 치는 어두운 밤에도 귀엽게 어리광을 피우며 파고들 따뜻한 품이 없었다. 오늘 같이 자게 되서 다행이다. 리츠는 그리 생각했다. 마오를 붙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자 마오가 퍼득 리츠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제가 붙잡은 손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마 군, 하늘 예쁘지?”
천둥이 쳐서 반짝반짝해. 그리 말하며 곱게 웃는 리츠의 모습에 마오가 눈을 껌벅였다. 이 장면을 리츠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놀라서 둥그렇게 떴던 심록의 눈이 천천히 휘어졌다. 입가가 화사한 곡선을 그리고 뺨이 엷게 달아오르는 장면. 양 입꼬리가 깊게 패이고 곱게 접혀 살짝 보이는 눈은 애정을 담고 있었다. 조금 쑥쓰럽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올라가는 어깨도 흐트러지는 머리카락도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했다. 천둥 치는 밤, 제 손을 붙잡은 어린 마오는 그렇게나 사랑스러웠다.
꽃이 피어난 것은 바로 그 날 밤이었다.
리츠는 눈을 떴다. 손을 들어 제 꽃을 짚었다. 여전히 단단히 오무려져 피어나지 않은 꽃이 손끝에 닿았다. 말랑하니 여린 꽃잎을 그대로 뜯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치솟았다. 그러나 동시에 치솟은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감정이 그를 이겼다. 리츠는 그대로 손을 내렸다.
저에게 꽃을 피우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당연했다. 리츠 역시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꽃이 피어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의 탓이었다. 아니,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책임을 돌리자면 병의 탓이었다. 그러나 병에 대해 알게 된 이후, 그 혼자 더럭 겁을 먹어 먼저 감정을 그만두었다. 아마도 그만두었을 터였다. 꽃이 피지 않는 것이, 몸에 번져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 혼자 깔끔하게 감정을 정리해버렸다. 아직 피어나고 싶어하는 리츠의 감정은 그대로 무시해버리고. 품은 사랑을 모르는 척 해버리고.
정말 나빠, 마 군. 속삭이며 리츠가 몸을 옆으로 돌렸다. 이해했다. 마오는 리츠의 생명과 자신의 사랑을 저울질해 리츠의 생명에 무게를 두었다. 다만 그 저울질에 리츠의 사랑을 얹는 것을 잊어버린 것 뿐이었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모른척 한 것일지도 몰랐다. 리츠의 사랑까지 저울에 올려버리면 마오 역시도 답을 내릴 수 없었을 테니까. 나빴어. 리츠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본인에게 뱉을 수 없는 원망만 속에 쌓였다. 묵은 사랑이 또 한 겹 쌓였다.
사랑은 피지도 시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리츠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 꽃이 마오의 사랑이라 여겼다. 이 붉은 꽃은 마오의 사랑이었다. 주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사랑이었다. 꽃이 시들지 않는 것은 마오가 리츠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피어나지도 주변으로 번지지도 않는 꽃은 그 마음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너무 오랫동안 파묻어둔 탓에 감정의 크기도 의미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였다. 일견의 비참이었다.
꽃이 피지 않아서 다행이지. 피었다면 마 군이 다가오기 힘들었을 테니까. 리츠는 위안삼아 중얼거렸다. 사실 그것은 꽃이 피는 데에 일조했던 제 애정의 영리함일지도 몰랐다. 화분증을 앓고 있는 제 사랑이 다가와줄 수 있도록. 고작 이런 것에 몇 천 번이나 위안을 얻었더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해줘, 마 군.
나를 사랑해줘.
차마 본인의 앞에서 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리츠가 입 밖으로 내뱉었다가는 틀림없이 슬픈 표정을 지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안 돼, 혹은 싫어 따위의 말을 하겠지. 그에게 있어서 사랑보다 리츠의 생명이 소중할테니까. 사쿠마 리츠가 이사라 마오에게 주고 있는 사랑은 모른 척 해 버리고.
마 군의 사랑을 받아서 죽을 수 있다면 나는 괜찮은데.
이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버린건 몇 년 전부터지? 리츠가 소파에 몇 번 뺨을 부볐다. 그는 알았다. 마 군의 사랑을 받아서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그의 삶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사라 마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의 눈물과 사랑을 수분과 햇볕삼아 꽃이 피어나는 날이었다. 사쿠마 리츠의 마지막이었다.
그건 아주,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사쿠마 리츠는 생각했다.
붉은 꽃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