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인어
전력 1시간... 생일 축하해 카나타... 카오루랑 행복하길... 제발 생일연챠에서 5성나와줘 (사심폭발)
인어 카나타*인간 카오루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태어난 생명이 있다. 인간이 아니면서도 높은 지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흔히 괴물로 분류되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물이라 부르기에 그들은 너무도 낭만적인 생명체라며 그 명명을 반대하는 사람도 적잖다고 알고 있었다. 그 숫자는 매우 희소하여 일생 삶을 살며 한 번 만날 일도 드물었기에 카오루는 괴물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종종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 몇 장은 인간과 닮은 듯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호기심에 길게 감탄사를 흘릴 뿐이었다. 여러 문학작품에 이름이 붙여져서 등장한 괴물들도 있었다. 바다에 떨어진 별에서 태어난 괴물은 인어.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깊은 곳에 떨어진 별에서 태어난 괴물은 악마. 인간의 피가 묻은 땅─주로 무덤─에서 태어난 괴물은 흡혈귀.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었지만 가장 대중적인 것을 꼽아 그 정도였다. 카오루가 알고있는 수준도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먼 세상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먼 세상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카오루는 침착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건조한 감각에 혀로 입술을 몇 번 쓸었다. 머쓱하게 뒷목을 몇 번이고 매만졌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카오루는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어둑한 해양생물부 조명 아래에서 황회색 눈이 짙은 회색으로 빛났다. 투명한 그 너머에 비치는 모습은 꽤나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머쓱하게 내민 손가락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얌전히 접어 내렸다. 갈 곳 잃은 손은 허공을 헤매다가 애꿎은 옷자락만 늘어져라 잡아당겼다.
“카나타 군. 인어...... 였어?”
“「인어」였답니다~.”
푸카, 푸카. 하며 덧붙여지는 말에 카오루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인어라는 말은 순화한 것이었고, 결국 별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를 통칭하는 공식적인 언어는 괴물 하나뿐이었다. 카오루는 찬찬히 상대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물에 녹아들어가는 바다색 머리카락, 밝게 빛나는 연한 수초색 눈동자. 하얀 피부에 낭창한 곡선까지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 아래쪽에 길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은 인간의 다리와는 전혀 다른 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른 의미로 물고기같은. 허허. 카오루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황스러웠다.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야 솔직히 자주 했다만은, 설마 진짜 인간이 아닐 것이라고 누가 짐작을 했을까. 더군다나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것을 들킨 사람치고 카나타는 너무 태연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수조 안에서 참방거리는 모습이 너무 현실감 없어서, 카오루는 진지하게 저가 서서 꿈을 꾸나 고민했다.
카나타가 수조 너머로 몸을 내밀어 카오루의 얼굴에 가볍게 물을 튀겼다. 얼굴에 닿는 액체의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역시 꿈은 아닌가. 카오루는 허탈한 표정으로 카나타를 응시했다. 하기야, 걱정이나 긴장과는 여러가지 의미로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했다.
“인어라는 거 막 들켜도 괜찮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잖아.”
실제로 그랬다.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하는 아이돌에게 인어라는 것은 태생적인 문제였다. 대개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괴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괴물들이 이렇게까지 인간 생활에 밀착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몰랐지만, 될 수 있다면 있는 힘껏 숨기는 게 좋았다. 카나타와 꽤 친하게 지냈던 카오루마저도 인어라는 걸 몰랐으니, 노력한다면 평생 숨기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저도 자각하지 못한 듯 싶지만,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방긋 웃었다.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괜찮답니다, 「카오루」라면~.”
“어라, 나 그 정도로 카나타 군에게 신뢰받고 있던가?”
남자아이의 신뢰같은 거 부담스러운데~. 카오루가 시선을 피하며 덧붙였다. 슬쩍 올라갔다가 재빠르게 내려오는 입꼬리를 카나타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카나타가 낮게 웃었다. 꼬리가 한 번 크게 찰랑였다. 카오루는 그제야 다시 한 번 해양생물부 부실을 둘러보았다. 1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공사를 거듭해 부실의 안은 심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음, 실제로 가 보지는 못했으니 상상 속의 심해와. 그리고 카나타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수조는 3학년이 되서야 들여온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꽤 치밀하게 준비했네. 카오루는 늦은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홍월의 일로 오늘의 소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실에 오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라도 부실에 오라며 살벌하게 칼을 휘두르는 소마 덕분에 카오루가 온 것이었으니 확실했다. 카나타 군, 의외로 확실하잖아. 카오루가 짧은 감탄을 덧붙이며 소파에 앉았다. 수조 안쪽으로 제대로 들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카나타는 여전히 비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뽀그르르 소리를 내며 기포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의미없는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숨은 쉴 수 있어? 말은 들려? 인간 발로 있을 때 불편하지는 않아? 대답은 전부 고개짓으로 나왔다. 카오루가 턱을 괴었다.
“물 속에 있을 때는 말을 못하는 거야?”
카나타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기에 카오루의 눈이 둥글어졌다. 인어가 물 속에서 노래를 잘 한다는 건 잘못 알려진 상식이었어? 카오루는 동화와 만화의 폐해를 느끼며 길게 감탄사를 흘렸다. 카나타가 단 한번의 튀어오름으로 수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지느러미가 땅에 닿는 순간 인간의 다리로 변하는 모습은 일종의 경이였다. 별가루가 부숴지는 것처럼 바다색 지느러미가 부서져 떨어지고, 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두 번 보기 힘들 광경이겠지만 카오루의 의식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옷 입어, 카나타 군! 카오루가 질색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카나타가 키득키득 웃었다. 잔뜩 흔들려진 탄산음료같은 웃음소리였다.
카나타가 제대로 옷을 다 차려입은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눈을 가린 손을 내린 카오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카나타 특유의 비상식이 납득되는 기분이었다. 꼭 맞는 벽돌을 맞춰 끼운 것처럼. 카나타가 제 넥타이를 고쳐 매며 입을 열었다.
“카오루에게는 「알려 주고」 싶었어요.”
“왜? 아는 사람은 적을 수록 좋잖아.”
“카오루뿐이니까 「괜찮」답니다...”
아는 「사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끝맻은 어조가 영 마음에 걸렸다. 손톱자국처럼 흔적이 남았다. 이거 굉장히 불안한데. 꼭 사람이 아닌 존재는 알고 있다는 것 같은 뉘앙스인데. 설마 아니겠지. 카오루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오기인이며 삼기인이 스쳐지나갔지만 무시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정중히 사양이었다. 황금모래색 머리카락을 벅벅 긁은 카오루가 길게 한숨을 뱉었다. 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한숨이었다. 카나타는 마냥 해맑게 웃었다. 어두컴컴한 부실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미소였다.
카나타는 알고 있었다. 카오루가 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카나타가 가진 마음과 꼭 닮은 색이었다. 다만 카오루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자각하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순순히 인정할 사랑치고는 꽤 험난한 길이었다. 카나타도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인간이 아닌 이종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무언가를 숨긴 채로 사랑받을 수는 없었다. 인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 카오루가 카나타에 대한 사랑을 피어나게 해줄까, 아니면 볕을 보지 못하게 하여 말려 죽일까. 그건 오롯하게 카오루의 선택이었기에 카나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카오루가 저를 사랑해주기를. 자신과 꼭 같은 시선으로 마주보고 키스할 수 있기를. 그래서 별에게 받은 인어의 본명을 들려줄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