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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날

별빛_ 2016. 9. 4. 18:24

슬님께 리퀘받은 발키리 수예부의 일상.






 수예부에 주로 상주하는 것은 슈와 미카의 역할이었다. 츠무기와 다른 부원들은 각자의 유닛 활동 및 개인활동으로 바빴으니까. 물론 슈와 미카가 바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부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이 달랐다. 덕분에 수예부의 분위기는 대체로 고요했다. 소란을 썩 즐기지 않는 슈와 그런 슈의 마음을 잘 알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미카 덕분이었다. 나즈나까지도 발키리에 있을 무렵에도 분위기는 대체로 그랬다. 천 자르는 소리와 조용하게 손이 움직이고 옷깃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필요한 대화가 전부였다. 종종 슈가 미카에게 던지는 타박의 말이나 미카의 사과가 끼얹어졌고, 수업시간 무렵의 일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미카의 목소리가 낮게 깔릴 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예부의 분위기는 꽤 온화한 편에 속했다. 편안하다고 묘사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책상 모서리에 얌전히 자리잡은 마드모아젤의 무기질적인 눈에 일상의 풍경이 맑게 비쳤다. 


 슈가 만드는 옷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작품이거나 의뢰 혹은 부탁이 대부분이었다. 유닛의상같은 품이 많이 들고 집중해야 하는 작품들도 대부분 슈의 손길이 들어갔다. 미카가 맡는 역할들은 대부분 자질구레한 심부름이거나, 반 친구들─주로 나루카미─의 부탁. 혹은 슈가 시키는 아주 단순한 것들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종종 손가락 끝에 바늘구멍을 내서 어깨를 짧게 떨기 일쑤였다. 그러면 슈는 기가 차다는 의미를 내포한 한숨을 쉬며 손끝을 자근자근 물며 통증을 먹는 미카의 일감을 빼앗아 저가 하고는 했다. 그러면 미카는 색 다른 눈을 별처럼 빛내며 슈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는 했다. 스승님, 대단하당께! 감탄은 당연한 덧붙임이었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냐는 거다. 슈가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마드모아젤의 앞에서 온갖 옷감들을 늘어놓고 종알종알 말을 거는 미카의 모습이 보였다. 저 딴에는 나름 진지한 행동이겠다만 어깨를 움츠리고 어쩔 줄 몰라 절절매는게 너무 잘 보였다. 


“우리 마드 누나야는 뭘 입어도 이쁘겠다마는 내도 누나를 위해서 해주고 싶으니께... 응? 어느 색이 제일로 낫나?”

「글쎄~. 나는 미카쨩이 생각해준다면 뭐든 좋을 것 같은걸!」

“응아아 고맙데이. 하지만 마드 누나랑 제일 어울리는 색을 내는 잘 모르겠구만. 누나가 골라주면 안 되긋나?”

「음~. 슈에게 골라달라고 하면 어떨까? 난 뭐든 좋으니까!」

“그렇고마! 스승님, 뭐가 제일 좋을 거 같나?”

“애초에 뭘 하고 있는 거냐, 카게히라.”


 슈는 제일 궁금한 것을 물었다. 카게히라가 손에 쥐고 있는 검적색 옷감을 힘차게 흔들었다.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결의였다. 


“마드 누나를 위해 옷을 만들어주고 싶당께!”

“마드모아젤의 옷은 내가 만드는데다가 디자인이 까다롭다. 네놈이 만들기엔 무리야.”

「어머, 슈도 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미카쨩, 슈는 미카쨩이 또 손가락을 다칠까봐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내 윽수로 열심히 만들끼다! 손도 안 찌르고, 옷감도 안 상하게 할끼라!”


 다짐이 대단했지만 못미덥다. 의욕만으로 해결되기에는 실력의 차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뭐라 덧붙여도 그만두라고 말해도 기 죽은 고양이 꼴을 하고 힐긋거리며 눈치만 볼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결국 슈는 순순히 미카의 손에 다음 마드모아젤의 옷으로 디자인해둔 종이를 쥐어주었다. 미카가 완벽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만 노력이라도 열심히 하면 성의 정도는 받아 마드모아젤의 몸을 잠깐이라도 감쌀 영광을 줄 수는 있었으니까. 미카가 활짝 웃는 꼴을 보니 마음 가득 채운 껄끄러움도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마드모아젤이 고른 암적색의 옷감을 쥐고, 꼬물꼬물 초크로 선을 긋고, 가위질을 하고, 열심히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바느질을 시작하는 미카를 슈는 찬찬히 관찰하고 있었다. 선끝도 고르지 않고 손끝이 다칠까 끼워놓은 골무를 몇 번이나 찌르기는 했지만 코앞까지 옷감을 들이대고 노력하는 것은 확실했다. 뭐, 완성품도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닐지도. 슈는 그 정도의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작품으로 시선을 내렸다. 소소한 개인 작품 정도였다면 미카에게 신경을 쓰면서 만들어도 문제 없었겠지만, 이번 것은 이츠키 슈의 이름으로 받은 타 유닛의 유닛복 의뢰였다. 날림으로 줄 수는 없었으니 슈도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둑거리는 목을 길게 뒤로 젖히며 슈가 시간을 확인했다. 세 시간은 거뜬히 지났다. 옷은 이제 완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손보면 끝이었다. 남은 실의 양을 헤아려보며 손가락을 몇 개 접은 슈가 미카를 돌아보았다. 이만 돌아가지, 카게히라. 덧붙이려던 말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슈의 눈에 엎드려 잠든 미카의 모습이 보였다. 


“나 참. 뭐 하고 있는 게냐, 실패작이.”


 그래도 자기 전에 바늘은 잘 치우고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옷감에 구김을 넣으며 새근새근 자고 있는 미카의 모습에 슈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그 밑에 깔린 옷감을 빼내는데도 미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피곤이 남아있던것인지, 아니면 집중을 너무 써서 도리어 방전인 것인지. 슈는 미카가 만들다 만 옷을 살폈다. 그럭저럭 봐줄 만 하지만 마무리가 엉망이었다. 쯧! 슈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매듭을 자르고 실을 조금 풀었다. 바늘을 쥐고 미카의 근처에 앉아 바느질을 시작하는 손길은 섬세하기 그지 없었다.

 마무리 정도는 몰래 슈의 손길이 닿아도, 상냥한 마드모아젤은 화내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