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외톨이
리츠마오 전력 60분 주제 「외톨이」
초승달이 뜬 날이었다. 얇은 달조각은 검푸른 하늘에 조그마한 흔적밖에 남기지 못하고 있건만, 유독 빛이 밝아 주변이 환하게 보이는 밤이었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가 고즈넉하게 주변을 채웠다. 반딧불이가 하나 둘 제 모습을 드러내어 작은 빛무리로 변해가는 모습을 리츠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맨발로 호수를 걷는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사붓했다. 내리깐 속눈썹이 길게 그림자를 그렸다. 인내는 언제나 쓰고 고달프다. 기다림은 늘 슬픔과 기쁨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신령이라 불리며 칭송받았던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너무 길게 늘어져서 제단할 수도 없었다.
반딧불이가 첫 날개짓을 펼칠 즈음부터 리츠는 기대를 품었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은 잠으로 보내며 어린 신령은 제 사랑을 기다렸다. 어린 인간이었다. 뽀얀 뺨이 사랑스럽고 또랑한 눈동자가 선명하여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였다.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야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지만 리츠를 불러낸 것은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울지 않고 입술을 눌러 참는 게 마음에 유독 밟혔다. 헤매고 또 헤매면서도 차마 울지 못하고 잔뜩 울상이 되어 눈물만 삼키는 게 이유없이 못마땅해서 리츠는 그를 호수로 불렀다.
아이는 리츠를 처음 보고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령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리츠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만을 어렵사리 납득했다. 아이에게 있어서 아가리 벌린 괴물이나 마찬가지인 밤의 산은 리츠에게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장막이라는 것을 공감해주지는 못했지만 머리로 이해해주었다. 상냥한 아이였다.
그래, 처음에는 그저 그런 감각이었다. 작은 호기심과 겨우 고개 들이민 새싹과 같은 무언가. 그것으로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고사리같은 손이 덥석 저를 움켜쥐었다. 리츠의 체온은 산의 온도와 같았다. 밤에 등장하는 리츠는 당연히 체온 역시도 서늘했다. 그에 반해 아이는 너무 뜨거웠다. 맞닿는 순간 어깨를 떨었다. 체온이 닿는 부분이 낙인이 되어 어린 신령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진득한 낙인을 찍었다. 여름 내내 아이는 리츠를 위해 산으로 찾아와주었고, 리츠는 기꺼이 아이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어렸던데다가 한 번 길을 잃은 전적이 있는 마오는 해가 진 이후로는 산에 올 수 없었다. 마오가 찾아오는 시간은 언제나 태양이 힘을 펼치는 시간이었다. 반딧불의 신령인 리츠는 한없이 약해져 잠들어야 하는 시간. 그럼에로 리츠는 마오를 기다렸다. 반딧불이가 빛나지 못하는 낮의 산이 그토록이나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
릿쨩! 무어가 그리 반가운지 마오는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반딧불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을 만큼 환한 미소였다. 너무 뜨거워서 닿아있는 피부가 짓무를 것 같았다. 신록의 눈은 리츠가 사랑하는 숲을 닮았다. 아이는 온전하게 리츠의 안에 들어왔다. 다가와 머리를 기대오는 어린 생명체를 보며 신령은 사랑스러움을 배웠다. 벅차오를 만큼 귀한 감정이었다. 품에 끌어안았다.
고작 삼십 일 정도의 시간이었다. 마오는 짧은 순간 리츠에게 깊게 낙인을 찍어놓고는 그 다음 순간 떠나버렸다. 여름 방학이라 시골에 온 거였거든. 내년에 또 올게. 그 때 보자, 리츠.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마오의 앞에서 리츠는 힘겹게 감정을 추슬렀다. 느리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고작 실 몇 개 매듭지은 수준의 얇은 약속은 너무 미약했다. 지켜지지 않아도 더 많이 상처받는 게 누구일지 명확했다. 리츠는 그 순간 직감했다. 단단한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듯 답답했다. 숨을 쉬기가 뻐근해 짧게 숨을 삼켰다가 몇 번이고 뱉었다.
마오가 떠난 직후 리츠는 잠들었다. 호수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가 다음 여름을 기다리며 꿈에 빠져들었다. 아주 오래 잠겨있었다. 종종 눈을 떠 바라본 세계는 아득한 겨울의 호수였다. 눈이 덮여 조용하고, 볕이라고는 들지 않는 빽빽한 공간이었다. 조금만 더 자면, 마 군이 올 거야. 다시 눈을 감고 따뜻한 세계를 그리며 잠을 청했다. 긴 기다림이었다.
그런 기다림 끝에 만난 마오는 리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은 뒤였다.
우리 같이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는 잊혀지기 쉽단다. 그 말을 하던 슬픈 표정이 늦게 기억났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는 크고 단단한 손의 서늘한 온기도. 인간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마려무나, 리츠. 네가 슬퍼하게 될까 무섭구나...... 리츠보다 많은 세월을 살며 많은 것을 알고 있던 그의 형은 리츠에게 분명 경고했었다. 그의 모든 것을 염려하고 사랑해주는 존재의 경고는 쉬이 무시해서는 안 되는 종류였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있었다. 모든 것이 잊혀진 신령은 다시 산으로 소년을 불렀다. 길을 열고 손을 뻗었다. 선택을 했다.
소년은 기억 속보다 조금 자라 있었다. 안녕? 처음 보는 것처럼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는 마오를 보며 리츠는 침묵을 선택했다가, 느리게 그것을 깨어냈다. 옅은 파도가 마음 속에 밀려왔지만, 제 옆에 있는 마오가 더 중했기에 그것을 외면했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마오는 다가왔고, 또 다시 떠나갔다. 그러면 리츠는 다시 잠에 빠졌다.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도. 길고 고단한 기다림이었고, 만남은 추억을 부쉈다. 깨진 유리는 언제나 리츠의 마음을 찔러왔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마오는 여전히 리츠를 기억하지 못했고, 찾아오는 기간은 점점 짧아졌다.
“내일이면 떠날 것 같아, 리츠.”
“......벌써 가는 거야? 마 군.”
“응. 내년이면 고등학생인걸.”
사실 내년부터는 안 올 생각이었는데, 리츠가 여기 있으니까. 또 올게. 그리 말하며 마오는 쑥쓰러운 듯 웃었다. 그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보다 어렸던 마오는 이제 리츠보다 훨씬 자란 외형을 하고 있었다. 고작 다섯 살 꼬마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츠와 달리 마오는 이제 소년의 길을 밟아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과연 올까? 자조가 차올랐다. 돌아가면 마오는 다시 리츠를 잊을 터였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만남이 되겠다는 기묘한 확신이 찾아왔다. 신령의 직감은 곧 미래의 예지가 되는 법. 마음 속에 속삭여지는 그 말을 모른척하며 리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와야 해, 마 군. 품에 파고들어 조르는 것밖에 리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 해의 여름은 내내 고요했다. 여름 매미가 첫 울음을 트기도 전에 깨어난 리츠는 귀뚜라미가 숨을 거둘 순간까지 기다렸다.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그저 호수의 가운데에 앉아 저에게 흔적을 남긴 소년의 자취를 밟을 뿐이었다. 하얀 손이 수면을 쓸면 길게 파문이 일었다. 혹 자고 있을 적에 제 소년이 올까, 겁이 나서 잠들지도 못하며 세 달을 꼬박 기다렸다. 마오가 언제나 찾아오던 시간보다 일찍 시작하여 늦게 끝냈다. 결말은 비참함과 그보다 무거운 슬픔으로 매듭지어졌다. 올 해의 소년은 또다시 그를 잊었고, 그래서 찾아오지 않노라고. 그걸 인정하기가 너무 힘겨웠다. 리츠는 눈물에 젖어 호수 속으로 파고들었다.
잠이 들고 다시 깨어 기다리는 걸 몇 번이고 반복했을까. 그 사이에 마오는 한 번도 찾아와주지 않았다. 신령은 슬픔을 먹고 자랐다. 길게 떨어지는 눈물이 별이 되어 은하수를 넓혔다. 오랜 기다림동안 마음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여 잘라버려도 참 끈질기게도 다시 자랐다.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지우려면 너무 많은 마음을 잘라내야만 했다. 그 모든 것을 잘라낸 리츠가 어떤 모습이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잃기가 무서우면 숨기기 마련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마오의 겉외양과 비슷한 나잇대로 성장한 리츠는 이제 저가 마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여름만 되면 하염없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기다림이 아니면 무엇이냐 변명할 말을 찾지도 못했다.
마 군. 나의 마 군. 나의 마오. 올 해의 여름도 고요했다. 반딧불은 피었다가 지고, 나무가 물이 들어 있었다. 이제 리츠도 잠이 들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까지만 더. 대상 없는 누군가에게 변명의 말을 내뱉으며 리츠가 하늘을 보았다. 초승달이 엷게 웃는 날이었다. 그와 만났던 날과 꼭 닮은 달이다. 리츠는 호수의 한 가운데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사랑을 안 것은 정말이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것을 몰랐더라면 그는 이토록이나 외롭지 않았을 터인데.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아름다워 홀로 있는 시간이 너무 처량했다.
아. 발소리. 리츠가 고개를 들었다. 침묵만 가득한 숲에 이방인이 발을 디뎠다. 아니, 손님이 찾아오셨다. 붉은 눈이 작은 기대를 품었다. 바람 앞에 사라져버릴 여리디 여린 불빛이었다. 꿈에서도 꿈꾸었던 발소리를 잊을 리 없었다. 소리내는 심장을 삼킨 리츠는 길을 열었고, 상대는 똑바로 호수를 향해 걸어왔다. 수면 위에 앉아있는 소년 신령은 성숙한 청년을 보았다. 오래 기다린 제 사랑을 보았다.
“...아, 음. 이 숲에 있다는... 신령님?”
놀라움을 애써 숨기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은 리츠를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마오는 그저 처음 본 사람과 신비한 존재에게의 예의를 차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사라 마오의 안에 두 사람은 남이었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점에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몸을 돌리면 잊혀질 한 순간의 꿈. 마오에게는 신기한 꿈이었고 리츠에게는 차가운 현실일. 리츠의 표정이 무너졌다. 벽이 부서졌다. 모든 감정을 참아내던 방벽이 모래가 되어 떨어져내렸다. 인정하지 못해 참고만 있던 모든 것이 강제로 어그러져 목구멍을 막히게 만들었다.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저의 죄라는 것도 알고 있건만.
“......나는 기다리고 있었어.”
“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마 군을 기다리고 있었어...!”
몇 번이고 실망해도 몇 번이고 기대했다. 리츠! 눈이 마주친 순간 저를 그리 불러주는 이사라 마오를 기대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망한 리츠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 마오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신령의 슬픔에 숲이 반응했다. 이방인이 되어버린 손님을 숲에서 추방했다. 산 밑으로 쫒겨났을 마오를 떠올리며 몸을 웅크렸다. 호수의 수면 위에 쉴 새 없이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그렸다. 눈물이 가라앉아 보석이 되었다. 사랑을 얻지 못해 죽어가는 반딧불의 빛처럼 흐릿한 빛만을 발하는 보석이었다. 리츠는 그 힘겨운 빛에 잠겨 울었다.
“마 군, 마 군...!”
외톨이로 두지 마... 기억해 줘...! 숲에 울음이 차올랐다. 침묵 속에 물기가 어렸다. 젖어서 얼어붙어갔다. 숨이 막혔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제 사랑이 그리워 눈물에 빠졌다. 숨구멍을 틀어막고 키스해오는 깨진 추억조각만 끌어안고 사쿠마 리츠는 가라앉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잠이었다. 사랑이 나오는 꿈을 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