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리허설
리허설이 끝난 직후 본방을 준비하는 무대는 소란스럽다. 하카제 카오루는 그 틈새 사이를 요령 좋게 빠져나와 쉬고 있었다. 휴식시간 정도는 저 좋은 장소에서 보내고 싶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다면 전화를 걸겠지. 뒤늦게 카오루의 부재를 깨닫은 코가가 버럭버럭 화를 낼 모습이 눈에 선했다만 그닥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말씨는 험해도 코가는 결국 착하고 말 잘 듣는 후배였다. 다루기 편하고 화를 내도 넘기기도 쉬웠다. 도리어 우직해서 다루기 힘든 건 아도니스 쪽이었다. 사쿠마는 기껏 다니는 카오루를 일부러 잡아 메어 둘 사람이 아니었으니 잘만 숨어있다가 시간 맞춰서 나간다면 딱히 걸릴 일도 없겠지. 카오루는 손쉽게 생각했다.
어디가 좋으려나. 예쁜 여자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쉰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한 시간 이내에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갖고 싶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안 그런 척 하고 있었지만 카오루도 꽤나 프로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세나나 치아키에게 옮은 것일지도 몰랐다. 감정의 뿌리를 이렇게 따지는 것도 좀 우습겠지만.
갈 곳을 헤아리며 걷고 있던 카오루의 앞에 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순간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던 카오루가 반사적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허억. 길게 숨을 들이켰다가 느리게 내쉰 카오루가 부드럽게 상대를 타박했다. 순간 뾰족해졌던 눈매는 어느 새 둥글게 평소처럼 돌아온 뒤였다. 경계심을 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놀랐잖아, 카나타 군.”
“미안해요, 카오루... 가고 있는 게 보여서.”
리허설은 끝났나요?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 느리게 카오루의 얼굴을 살폈다. 적당히 화장하여 평소보다 화려하게 아름다운 얼굴을 꼼꼼히 살핀 카나타가 꽃이 피듯 웃었다. 좋아하는 기색이 낭낭한 연인을 보며 카오루도 마주 웃어주었다.
“카나타 군, 여기는 어떻게 왔어?”
“레이가 콘서트 티켓을 주었답니다~.”
저도 아이돌이고... 관계자 취급을 받아서 무대 뒤까지 들어왔지요. 덕분에 카오루를 만났답니다~. 신이 나 보이는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는 조금 멋쩍어졌다. 뒷목을 매만지며 머쓱해하고 싶었지만 의상이며 머리 세팅이 망가질까 손대지 못한 카오루는 대신 카나타의 옷자락을 조금 움켜쥐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는데다가 다들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카나타가 저를 잡은 카오루의 손을 붙잡았다. 미지근한 온기가 닿았다. 조금 더 인적이 없는 장소로 자리를 옮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둠이 깔려 그림자가 숨겨줄만한 장소로 살짝 몸을 감췄다.
작게 심술을 부리자면 저도 얼마든지 티켓을 줄 수 있건만 레이에게 받아 여기에 왔다는 게 불만이기도 했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온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깜짝 선물처럼 찾아와 준 카나타 덕분에 사르르 녹아내렸으니 할 말이 없었다. 반한 사람이 진다더니.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카오루가 한 걸음 카나타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의 빈 간격이 바짝 좁아졌다. 온기가 닿았다. 숨이 섞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시선이 맞자 생각이 통했다.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즐거운 곡선으로 유려하게 휘어졌다.
먼저 입을 맞춰 온 건 카나타였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수준의 작은 입맞춤이 두어 번 이어지고 그 뒤에 호흡이 멈추는 키스가 짙어졌다. 카오루의 양 팔이 카나타의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카나타의 희고, 조금 거친 손이 카오루의 날개뼈에서 허리로 느릿하게 선을 그렸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떨어지며 천천히 눈을 뜨면 눈 앞의 사람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언제나처럼 어여쁘다.
“......”
“무대, 힘내요? 카오루.”
보고 있을테니까. 마침표를 찍듯 가볍게 카오루의 뺨에 다시 한 번 도장을 찍어낸 카나타가 몇 걸음 떨어졌다. 카오루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부끄러웠다. 카나타의 낮은 웃음소리에 얼굴을 쓸어내리고 싶었다. 눈 근처를 꾹꾹 누르는 것으로 대신한 카오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마주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결국 작게 웃었다.
“응. 나중에 봐, 카나타 군.”
역시 조금 망가졌을 테니까, 미리 들어가 봐야겠어. 입술을 한 번 쓸어내린 카오루가 몇 걸음 물러섰다가, 몸을 돌렸다. 대기실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조금 가빴다. 은근히 도망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카나타가 살짝 눈을 굴렸다. 사실 카오루에게 서프라이즈로 숨기는 일이 하나 더 있는데 말이지요. 나중에 많이 놀라려나요~. 동그랗게 떠져 파르라니 흔들릴 연한 회색 눈동자를 상상하며, 카나타가 즐겁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