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빛나는 밤
유려님께 키워드 받았습니다 : 네가 없음에도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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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마오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에서 퇴장한 사쿠마 리츠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비록 나이가 달라서 학년이 달라져도, 그가 한 발 먼저 다른 학교에 진학했을 순간조차도 리츠는 마오의 곁에 있었다. 잠깐 떨어지는 것으로는 이별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손이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전에 조금 낮은 체온이 저를 붙잡아왔다. 마 군, 하고 부르면서 느긋한 미소를 짓는 아름다운 얼굴이 늘 곁에 있었다. 마오에게 기대며 그를 피곤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리츠는 언제나 마오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뢰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안개보다 은밀하고 그림자보다 조용해서, 마오는 자신이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서 제 발을 찌르는 순간에야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리츠. 리츠? 릿쨩?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서늘해진 손을 몇 번이고 쥐었다 펴도 온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리츠! 사쿠마 리츠! 부르고 헤매도 느긋한 걸음걸이며 느른하게 휘어지는 매력적인 눈매가 없었다. 물어 뜯기듯 공포가 찾아왔다. 리츠의 부재에 마오는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예리하게 날이 벼려진 조각에 상처가 났다. 통증이 찾아왔다. 사쿠마 리츠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자 눈이 아렸다. 송곳니를 세워 입술을 자근자근 씹어 눈물을 참았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리 없어. 릿쨩이 나를 두고 갈 리 없어... 절대적인 확신을 잃은 말이 허공에 부서졌다.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달이 떠 있었다. 네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이었는데도 네가 없었다. 마 군. 내게 의지해주는 네가 없었다.
불현듯 마오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며칠 전의 리츠였다. 마 군은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질문을 던지는 그는 웃고 있었고, 어조도 평탄했다. 마오는 당연히 그것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그렇기에 농담으로 받았다. 그저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했었다. ‘글쎄? 좀 슬프겠지?’ 영양가 따윈 없는 말이었다. 하루의 언저리에 흘러간 대화 중 하나. 이제껏 기억 한 조각 겨우 가지고 있던 기억이 지금에서야 크게 제 존재감을 주장했다.
“싫어... 아냐, 릿쨩. 그거 거짓말이었어.”
리츠가 곁에 없는 삶 따위 상상할수도 없었다. 조금 묵직하게 등에 기대어오는 사람이 없는 삶, 늘 자신을 원해주는 사람이 없는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딛기 두려운 길이었다. 무작정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 없는 발걸음이 어지럽게 헤맸다. 보고 싶은 이는 있으나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한 번 작정하고 몸을 감춘 리츠는 찾을 수 없다는 걸 마오는 잘 알고 있었다. 늘 리츠는 마오가 찾을 수 있는 장소에 머물러 주었으니까.
너를 빚어낸 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안에 네가 없었다. 유독 하늘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자 소나기처럼 서러워졌다. 내일이면 보름이 되겠거니 속삭이던 목소리가 귀에 어른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을 속삭여 주었으면서 모든 걸 부질없게 만들며 사라져버린 너에게 원망이 어렸다. 너의 홍색과 얽히면 그대로 불타올라 사라질 원망이 겹겹이 쌓였다.
“릿쨩! 릿쨩!”
손을 놓친 어린아이가 되어 마오는 밤을 해맸다. 애써 참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러움이 병을 열고 세상에 터져나왔다. 눈물이 별이 되어 그가 헤맨 길을 수놓았다. 빛을 내며 제 존재를 주장했다. 모든 것을 마음에 묻고 잠을 청한 밤의 사자를 깨울 정도로 곱고 애처롭게 빛나고 있었다.
“릿쨩, 어디 있어?”
“......”
“가지 마......”
리츠는 일말의 비참함과 범람하는 기쁨을 움켜쥐고 마오를 응시했다. 저를 찾아 헤매는 어린 소년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들이밀어진 미래가 슬펐다. 지금처럼 마오의 곁에 있으면 그는 곧 리츠의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릴 터였다. 수명이 다른 생명체다. 어떤 수를 써도 마오는 리츠보다 먼저 죽겠지. 세상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방법 따위, 리츠는 몰랐다. 그 전에 도망치고 싶어 마오를 두고 떠나려 했건만 그의 목소리가 리츠의 발목을 잡았다. 가지 말아 달라 매달렸다.
이미 늦었구나. 천천히 한탄하며 리츠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나왔다. 마오의 목소리에 발목이 잡히고 눈물에 숨이 막힌 순간부터 떠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오래오래. 리츠가 손을 뻗었다.
“마 군.”
“릿쨩...!”
“집에 가자, 마 군.”
곧장 달려와 품에 안기는 온기가 뜨거웠다. 마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를 잠식했던 공포가 천천히 씻겨나가는 것을 보며 리츠가 눈물 젖은 뺨에 입을 맞췄다. 얼굴이 엉망이야, 마 군. 마오가 그제야 웃었다. 누구 때문인데.
리츠가 마오의 손을 잡았다. 드물게 먼저 이끄는 사람이 리츠였다. 조곤조곤 대화가 나뉘어지고 맞잡은 손이 차가운 온기를 공유했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체온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리츠가 앞을 보았다. 마오의 눈물로 빛나는 길이 밤의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눈물자국을 하나하나 밟아 지우며, 리츠가 앞장섰다. 집에 가자, 같이. 낮은 목소리에 마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밤길 아래에 어둠을 길게 덧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