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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웨딩

별빛_ 2016. 10. 7. 18:58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사람의 숫자많큼이나 다양했다. 꽃을 선물하거나, 고백을 하거나, 입을 맞추는 것처럼. 마음이 맞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괜찮았다. 그 많은 방법 중 최고로 꼽히는 몇 가지가 있었고, 결혼식은 그 안에 들어있었다. 하늘하늘하게 떨어지는 하얀 베일과 레이스 가득 짜인 드레스, 그 안에서 가장 곱게 피어있을 신부는 결혼식의 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기도 할 터였다. 

 의외로, 신카이 카나타에게도 그랬다. 하카제 카오루는 딱히 그런 식의 로망은 없었다. 늘 여자친구가 있던 삶을 살기도 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꿈이 현실이 된 것 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의 로망은 카나타의 손을 잡고 마주 기대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카나타의 로망을 쉽게 본 점도 있었다. 방심은 우아하게 돌아와 카오루의 뒤통수를 멋지게 후려갈겼다.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미청년은 제 손에 들린 웨딩드레스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입어 달라고?”

“네~.”


 아주 예쁠 거에요...♪ 보기 좋을 정도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은 사랑스러웠지만 카오루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침대에서 저가 눕혀지는 쪽이기는 하지만 웨딩 드레스를 입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삭하게 굳은 입가로 드레스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복잡했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고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입을 수 있는 예쁜 웨딩드레스라니, 실현 난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실물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심란한 눈으로 웨딩드레스를 쓸어내린 카오루가 물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얻어 온 거야?”

“같은 반의 쿠로랑, 슈에게 부탁했답니다...♪ 모아 둔 용돈이랑, 모자란 돈은 두 사람의 축의금 대신으로 쳤어요.”

“축의금?”


 상상 이상으로 본격적이다. 드레스를 뽑아 와 카오루에게 들이밀었다는 부분에서 이미 진심이겠다만. 카오루가 드레스의 풍성한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때가 탈까 손길이 유독 조심스러웠다. 결혼식이라도 하자는 걸까. 아니, 물론 카나타와 함께 식장의 레드카펫을 밟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본인이 정장만 입고 있다면 더 완벽할 것 같았다. 소년은 제 연인의 발그레한 뺨을 응시했다. 별보다 빛나는 바다색 눈동자도.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웨딩드레스.

 두 배쯤 심란해졌다. 


“카나타 군, 차라리 하얀 정장을 입는 건 어떨까?”

“웨딩 드레스♪”

“베일 정도는 해도 괜찮은데.”

“예쁜 웨딩 드레스에요, 카오루♪”

“.....길고 치렁치렁하고. 눈에 나쁠 거야.”

“웨딩 드레스를 입은, 예쁜 카오루~.”


 아아. 카오루는 속으로 한탄했다. 바짝 다가온 카나타는 어느 새 카오루의 두 손을 꼬옥 맞잡고 있었다. 심해 속에서 혼자 빛나는 진주처럼 눈이 어여쁘게 빛나고 있었다. 카오루는 저 눈에 언제나 약했다. 아, 예쁘다. 카오루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넘어가면 끝장이었다. 남자의 자존심을 모조리 팔아치우고 드레스를 입게 되는 미래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절을, 거절해야 하는데. 카오루가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이토록 좋아하는 카나타의 앞에서,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나타 구운...”

“입어 줄 거지요?”


 울상에 가까운 표정이었지만 카나타는 단호했다. 곱게 휘어지는 눈매가 짙었다. 


“그으, 게...”

“고마워요♪”

“어?”


 잠깐만. 말 한마디 내뱉기도 전에 카오루의 양 팔이 덥석 붙잡혔다. 한 쪽은 키류, 다른 한 쪽은 이츠키. 잠깐잠깐 기다려봐 게로게로? 카오루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카나타가 화사한 미소로 웨딩 드레스를 둘에게 맞겼다. 제작자의 프라이드로써 두 사람은 카오루가 어여쁘게 착용한 모습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반항해보았지만 카오루의 근력으로 가라테부 부장인 키류와 수예부 부장으로 무거운 옷감도 척척 나르는 이츠키의 근력을 이길 리 만무했다. 


 옷이 타인에게─그것도 남자에게─갈아입혀지는 감각은 가히 끔찍했다. 흐익, 히익, 으악! 카오루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물론 이츠키와 키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곧 어여쁜 웨딩 드레스 차림이 된 카오루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은 히미 허옇게 질린 지 오래였다. 울상이 된 카오루의 머리에 이츠키가 심혈을 기울여서 짜낸 베일을 둘러주었다. 흐음. 두 제작자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걸렸다. 


“카나타 군... 저주할거야...”

“예뻐요, 카오루~.”


 죽고싶어... 유성대의 어느 녹색 후배의 입버릇을 읊으며 카오루가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카나타가 사뿐사뿐 다가와 베일을 쓴 카오루의 머리카락에 짧게 입맞췄다.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졌다. 카오루, 카오루~. 쉴 새 없이 부르며 행복함을 감추지 못하는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는 결국 해탈했다. 머리카락이며 이마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키스의 세례가 부끄럽기도 했다. 이런 짓을 당하고도 원망 외에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연정의 증거였다. 길게 한숨을 흘리며 카오루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얽혔다. 


“자, 웨딩 드레스 입혔으니까 결혼식이라도 설 거야?”

“원한다면요. 조금만 더 자라면 더 좋은 곳에서 더 예쁘게...”


 제 로망이니까요. 잔잔한 수면처럼 미소짓는 카나타를 보며 카오루는 결국 순순히 그에게 입술을 내 주었다. 그 로망을 함께할 사람으로 저를 원한다는 것만으로도, 결국 행복해져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