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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첫

별빛_ 2016. 10. 11. 00:54




 카오루는 해양생물부의 단 셋 뿐인 부원 중 하나였지만, 부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도리어 후배인 소마 쪽이 훨씬 더 열성적인 부원이었다. 그는 부장인 카나타와 함께 부활동의 첫 문을 연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지도 않았다. 카나타 군이 봐 주니까. 가볍게 웃으며 활동을 빼먹는 건 예사였다. 소마는 해양생물부실에서 카오루의 얼굴을 본 적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그런 카오루에게 칼을 뽑아들며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오루의 행동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산들바람보다 자유롭고 돌풍보다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다만 3학년 두 사람만의 비밀이 하나 있었다. 새로운 달이 시작하는 첫 번째 목요일 방과후.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기본적으로 착한 어린이인 소마는 하교하고, 기온이 낮아지며 분수대에서 나오게 된 카나타는 부실에 있었다. 푸르스름한 조명이 불빛 없는 교실을 어지럽혔다. 신카이 카나타만의 심해에 잠겨 자신의 친구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벼운 노크가 두 번. 답은 듣지 않고 문이 열렸다. 카나타는 자신의 세계에 찾아온 손님을 응시했다. 어둡게 빛나는 회색 눈동자도 푸른 조명으로 기묘하게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도 오롯하게 카나타의 세계 안쪽에 있었다. 


“어서 와요, 카오루.”

“안녕, 카나타 군.”


 카오루가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카나타와 한 뼘 거리를 둔 간격이 좁았다. 마치 약속처럼 카오루는 부실에 걸음했다. 카나타와 둘만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카오루는 그저 하염없이 어항을 바라보았고, 카나타는 침묵했다. 나란히 심해에 잠겨 있는 시간이었다. 뻐끔뻐끔 공기방울 터지는 소리와 어항의 산소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울렸다. 둘만의 바다 속에서 먼저 손을 뻗는 건 언제나 카나타였다. 맨손이 겹쳐지고, 타인의 체온이 닿는 것이 하나의 신호였다. 카오루가 고개를 돌려 카나타를 보았다.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시선은 복잡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에서 어두운 회색으로 빛나는 눈을 보며 카나타는 입을 맞췄다. 핥고 얽혀 느리게 호흡을 섞으면 카오루는 기꺼이 그에 응했다. 숨을 나누는 시간이 길었다.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닿았다. 호흡이 짙었다. 가늘게 눈을 뜨면 눈을 질끈 감은 상대가 보였다. 마음 한구석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카나타는 다시 눈을 감고 시야를 닫았다. 


 매달 카오루는 잊지 않고 찾아왔고, 카나타는 그런 카오루를 붙잡아 입을 맞췄다. 암묵적인 약속이자, 일 년이 넘도록 이어진 둘만의 비밀이었다. 시작은 카나타였고 카오루는 그를 따라왔다. 참지 못해 키스했던 카나타를 외면하지도 않았다. 카나타는 가끔 카오루가 무슨 생각으로 매달 부실을 찾아오는지 궁금했다. 차마 풀어내지 못할 의문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 키스했던 2학년의 여름 카오루는 당황했고, 놀랐으며, 몸을 피했다. 흘러넘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흘리며 부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는 관계의 종말을 느꼈다. 머리가 울렸다. 아득한 절망이었다.


 먹구름 가득 끼어 있던 바로 다음 날 카오루는 다시 카나타를 찾아왔다. 당혹에 젖어 있는 카나타를 붙잡아 당겼다. 입을 맞춘 이유를 묻지 않고 다시 입을 맞췄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던 관계마저도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카나타는 카오루의 허리를 끌어안고 열렬하게 그에 응했었다. 서툴고 설랬다. 슬플 만큼 행복했다. 그 때 카오루의 표정이 어땠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렴풋했다. 다만 입술을 때어내고 카오루가 했던 한 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첫키스였는데.’


 한 마디 남았던 그 말에 카나타도 똑같이 대꾸했었다. ‘저도 그래요.’



 3학년이 된 지금은 두 손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입을 맞췄다. 그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 좋아하는 사람. 연모. 연정. 감정을 음악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온갖 달콤한 언어들이 쏟아져 내렸을 터였다. 카나타가 시선으로 카오루를 훑었다. 입을 맞춘 뒤 곧장 나가버렸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조금 더 머물러있었다. 조금씩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어항 속 해파리를 응시하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는 속으로 물었다. 마음이 닿고 있나요? 아닌 것 같았다. 몸이 닿고 입술이 닿았는데 마음은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이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또 다른 의문을 삼켰다. 몸 속에서 의문이 섞여 잔뜩 엉키기만 했다. 풀기 위해서는 자를 수밖에 없는 털실이 되어버렸다. 입안이 꺼슬했다. 입마저 맞출 수 없는 관계가 될까. 마침내 종말이 될까. 하나의 마침표가 되어버릴 말이 무서워 카나타는 침묵했다. 


“카오루.”


 작은 부름이 부실 안을 가득 매웠다. 카오루가 카나타를 돌아보았다. 옅은 웃음기가 어린 얼굴에, 조금 상냥한 눈. 


“왜, 카나타 군?”


 저 시선을 잃을 수 없어서, 카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사랑이 잠겼다. 온통 새어나오기 전에 자물쇠를 잠궈 마음의 바다에 침몰시켰다. 작게 기포가 터졌다. 뽀글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