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STARS/NOVEL

[리츠마오] 차이

별빛_ 2016. 10. 15. 22:00




 나라를 대표한다는 말을 들으며 외화마저 긁어모으는 톱아이돌과 대기업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이름은 있는 중소기업의 평범한 회사원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이사라 마오는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너와 나 사이에는 별과 별 사이만큼의 간격이 있다고. 마오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생명체라면 리츠는 까마득한 밤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차마 손조차 뻗을 수 없는 멀고 먼 별. 그 간격을 확인할 때마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무력감이었다. 


 사쿠마 리츠와 그가 소속되어있는 knights는 유명하다. 모델로도 활동하는 나루카미 아라시와 세나 이즈미는 우스갯소리로 길거리를 걸으면 세 발자국 걸을 때마다 얼굴을 볼 수 있으며, 츠키나가 레오는 전 세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곡가이자 아이돌이다. 스오우 츠카사는 그 출신까지 합쳐져 어지간한 고급 브랜드에서는 대부분 광고탑으로 부탁이 쏟아져들어오는 사림이었다. 멤버들 개개인이 그토록 대단한데 리츠가 평범할 리 없었다. 사쿠마 리츠 역시도 텔레비전을 돌려보면 안 나오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아이돌이었다. 예능보다는 음악 프로에 더 자주 나오고,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췄다. 며칠 전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라는 이름을 획득한 드라마의 남자 주연도 리츠였다. 광범위적으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말 대단해, 리츠. 어쩐지 목을 죄는 양복 넥타이를 조금 풀어내며 마오가 작게 웃었다. 지금도 인연을 이어나가는 소꿉친구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당장 휴대전화를 들어서 번호를 눌러 전화를 해도 기꺼이 받아서 저 너머에서 투정을 부리는 사람과 화면 너머의 사쿠마 리츠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멍하니 옆 건물의 전광판 속 리츠를 넋 놓은 듯 바라보았다. 


“이사라 씨, 이것 좀 봐줄래요?”

“아, 네!”


 생각에 빠졌던 그를 강제로 건져낸 건 현실이었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자린 마오가 몸을 돌렸다. 느긋하게 리츠에 대한 감정을 되새겨 볼 시간도 있을 리 없었다. 오늘도 일에 치이면 피곤해질 게 뻔했다. 마오는 조금 조급하게 방금 받은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사라 마오의 상사는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좋은 상사를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자신의 일을 부하 직원에게 미루지 않았다. 시간도 딱딱 맞춰서 최대한 부하들의 퇴근시간을 맞춰주려고도 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위에서 내려오는 일의 분량이 너무 압도적인 탓에 목적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지만. 오늘도 나란히 야근에 걸려버린 하스미 케이토와 이사라 마오는 나란히 앉아서 한숨을 삼켰다. 


“미안하군, 이사라. 고생이 많다.”

“아뇨, 괜찮습니다...”


 차마 케이토의 앞에서 불평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퀭한 얼굴로 눈두덩이를 누르는 케이토를 보며 마오가 머쓱하게 웃었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보이는 옆 건물의 리츠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친 마오는 고개를 돌려 케이토를 보았다. 제 상사는 알게 모르게 회사 내에서 아주 유명했다. 그 유능함으로도 유명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외모와 과거였다. 2년 남짓한 수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아이돌이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아이돌. 유메노사키 학원 출신의 홍월의 리더였다. 아직까지도 팬이 잔뜩 남아있을 정도였다. 


 유메노사키 출신. 마오는 케이토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저 전광판에 박혀 있는 남자와 아주 연관 깊은 의문이었다.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하고 속입술만 씹다가 그저 삼키고 말았던 의문이었다. 마오는 물끄러미 열려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리츠를 보다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 밤 늦은 시간에 둘뿐인지라 케이토가 크게 힐난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저기, 하나 물어도 괜찮을까요?”

“뭐지?”

“학창시절에, 리츠... 그러니까 사쿠마 리츠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 시절의 너마저도 지금처럼 내가 아는 릿쨩과 이렇게나 달랐을까. 아이돌이라는 이름을 달았기 때문에 달라진 걸까. 너를 따라 유메노사키에 입학하지 않은 내가 잘못 골랐던 걸까. 본인에게는 물을 수 없는 질문을 케이토에게 대신 물었다. 케이토가 고개를 돌려서 마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시선에 마오가 작게 어깨를 떨었다. 괜히 물은 것 같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제멋대로에 툭 하면 어디서나 잠을 자는 녀석이었지. 같은 학년으로 입학한 주제에 유급이나 했고 말이지. 덕분에 같은 유닛의 멤버들을 꽤나 고생시킨 것 같던데.”

“아......”

“나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 에이치는 친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건너 들은 수준밖에 안 돼.”


 더 필요한가? 그렇게 묻는 케이토의 손끝이 휴대전화에 닿아있어서, 마오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긍정하면 정말로 케이토가 에이치에게 전화를 걸 것 같았다. 텐쇼인 에이치, 그 fine의 리더에게.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마오는 조심스럽게 몸을 뺐다. 케이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리츠의 이야기는 이사라 마오의 릿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에 우습게 조금 안도하는 자신이 있었다.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다시 서류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마오를 보며 케이토가 흘리듯 무언가 던졌다. 


“다만, 일어나라고 세나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면, 늘 비슷한 말을 하더군.”

“네?”

“내년에 입학해줄 소꿉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1학년때는 같은 반이었지. 덕분에 귀가 아플 만큼 들었다. 대단치 않다는 듯 덧붙이는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심장이 덜컥 울렸다. 케이토의 시선은 컴퓨터에 박혀 있었기에, 마오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마오는 그에 감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 지 보고싶지 않았다. 차가워진 손을 움켜쥐며 마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을 끝마치고 새벽 늦게 걸어 들어온 집은 불이 켜져 있었다. 멍하니 환한 창문을 응시하던 마오가 힘 없는 걸음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렸다. 세 번 울리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사람이 걸어나왔다. 검은 머리카락, 붉은 눈. 집의 불빛을 뒤로 하고 그림자가 진 얼굴마저 아름다운 청년. 사쿠마 리츠였다. 편하게 입은 옷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놀랄 만큼 아름답고, 또 현실감있었다. 전광판에서 이쪽을 매혹적으로 바라보는 사쿠마 리츠와는 닮고도 달랐다. 마오가 힘 빠진 얼굴로 웃었다. 


“다녀왔어, 리츠......”

“어서 와, 마 군.”


 곧장 다가와 굳어있는 마오의 몸을 끌어안고 뺨을 마주대는 리츠를 끌어안으며 마오가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있지, 리츠. 내가 널 따라갔으면 지금같은 차이는 없었을까? 너무 늦었기에 건낼 수 없는 물음을 눈물처럼 꾸역꾸역 삼키며 마오가 리츠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다녀왔어. 다시 한 번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