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여름
키워드 : 유성우 / 여름 / 기다림 / 넌 여전히 아름답구나
마을 뒷산의 초입에 서서 크게 난 길을 못 본 체하고 옆에 겨우 흔적만 남아있는 샛길로 꺾어 들어가 나무에 패인 흔적 몇 개를 짚으며 들어가면 산 깊이 숨겨진 호수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기는 커녕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잊혀진 호수였지만, 녹조 한 점 없이 맑고 고운 모양새였다. 어쩌면 인간의 손길이 없기 때문에 이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카오루는 익숙한 몸짓으로 주변의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호수 바로 옆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만 한적하게 울렸다. 한낮 볕이 과하게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이곳은 기묘하게 공기가 차가웠다. 바람조차도 기분 좋을 만큼 선선했다. 숨을 쉬기 편했다. 아직 네 힘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카나타 군. 카오루는 작은 기대를 가지며 턱을 괴고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죽기 전에 네가 돌아와줄까. 흐린 색 희망이 곱게 빛났다. 차마 발끝도 담그지 못하는 잔잔한 수면을 내려다보며 카오루는 조용히 바랬다. 신이 한 번 버린 성지에 다시 걸음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자면, 대답할 말도 없었지만.
며칠 후면 별이 떨어진다. 마을의 점쟁이가 지팡이를 흔들어대며 예언했던 일이었다. 멀쩡했던 별이 떨어지는 것은 불길한 증조라 하여 마을의 어른들은 제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 틈새를 요령 좋게 빠져나온 카오루는 은밀하게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마을의 신사에 머무는 신은 더 이상 없는데. 고개를 바로한 카오루는 턱을 괴고 무의미한 손장난을 쳤다. 신이 떠난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토록 홀대하여 떠나게 만들었으면서 이제 와 찾는 것이 우스웠다. 저번 별이 떨어졌을 무렵 신이 떠났으니, 이번 별이 떨어질 때는 돌아와 줄까. 아니면 신이 떠난 자리를 불행이 채우려고 올까. 어느 쪽인지 퍽 흥미로운 일이었다. 카오루에게만큼은.
카나타, 카나타 군. 이 호수에 머물던 신의 이름이었다. 마을을 지켜주던 물색의 신. 카오루의 기억 속에만 흔적처럼 남아 있는 존재였다. 몇 년 전 유성이 떨어지던 날 망각을 이기지 못하고 이 마을을 떠나버린 카나타의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매달릴 수도 없었다. 망각에 잠긴 신이 얼마나 약해지는지 바로 옆에서 보았으니까. 가쁘게 숨 몇 번 뱉어내다가 죽은 것처럼 잠들어버리는 모습도 기억했다. 자신을 섬겨 줄 인간을 찾아 떠나는 그를 붙잡는 이기를 부릴 수는 없었다. 다만 기다리기로 했다. 신은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려줬으니, 인간 한 명 정도는 신을 기다려 줘도 괜찮을 터였다.
보고싶다, 카나타 군. 기억은 추억이 되어 덧칠된다는 것을 알지만 카나타에 대한 기억만큼은 보물처럼 반짝거렸다. 너는 푸른 색 머리카락에, 웃는 얼굴이 아주 고왔다. 신이니까 평생 변하지 않을 외모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카오루. 느긋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마치 노랫소리같았다.
계속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와 줘. 카오루는 작게 소망했다. 손끝을 호수에 담그고 파문을 그리며 작게 속삭였다. 내가 죽기 전에만 와 줘. 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겠지. 건강하게 웃어주면 좋겠어... 소원이 호수에 넓게 퍼졌다. 참방참방 형태를 그렸다. 매미 우는 소리만 여전히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