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민물
인어. 명사. 바다 혹은 민물에 사는 해양성 포유류. 희귀 보호종.
사전 한 쪽에 짧게 적힌 문장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반질반질한 사전의 감촉만 손끝에 남아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희귀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인어에 대해서는 카오루도 잘 알고 있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는 종종 서핑을 하다가 인어를 본 적 있었으니까.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수면을 뛰어오르는 인어들은 아름다웠다. 곱게 휘어지는 몸의 곡선을 보며 신기한 생명체라는 생각도 몇 번이고 했었다. 드물지만 민물에 사는 인어도 있었다. 경계심이 강한 개체라 민물인어는 본 적 없었다. 모든 인어들은 조금씩 개체가 줄고 있어 언젠가는 멸종할 것이라는 말도 쉼 없이 들어왔다.
허리선부터 돌고래와 같은 미끈한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생명체. 인간과 닮고도 다른 존재. 카오루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니, ...그러니까. 이토록 인간과 같은 인어가 있다고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카나타 군, 뺨.”
“아.”
카나타가 반사적으로 제 뺨을 짚었다. 물에 젖은 피부에 언뜻 비늘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머쓱하게 웃는 표정이 꼭 감사를 표하는 것 같아서, 카오루는 다시 한 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인간과 꼭 닮은 평범한 다리에 수려한 외형. 물을 고스란히 뽑아 형상화한 것처럼 생겼지만 카나타는 정말로 인간 같았다. 인어에서 인간이 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카나타의 고백도 농담으로 치부했을 게 뻔했다.
인간의 다리를 가진 인어라니. 말도 안 돼. 카오루는 천 번 정도 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카나타는 저가 특별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여러 강을 떠돌았지만 저와 같은 인어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바다는? 카오루는 물었고, 카나타는 짧게 웃기만 했다. 카나타는 민물인어였다. 바닷물에는 깊게 들어갈 수 없었다. 몸이 소금기를 견디지 못한다고 했었다. 넓디 넓은 바다라면, 어쩌면 같은 인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말하는 카나타는 굉장히 슬퍼 보여서, 카오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구나, 하고.
카나타는 그 성정에 비해 철저하게 인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지만, 스스로 정체를 터놓은 사람에게만큼은 허술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처럼 가끔 엷은 비늘을 드러낼 때가 그랬다. 가끔은 손의 물갈퀴가 희게 빛나고, 하얀 양말을 신은 발끝이 언뜻 꼬리지느러미처럼 변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카오루는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카나타 군, 이름을 부르면서. 카오루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삼기인인 레이, 와타루. 그가 따르는 리더인 치아키. 마지막으로 카오루 자신까지. 카나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다른 셋이 납득할법한 이유가 붙어 있는 것에 비해 카오루는 이유랄 것도 없었다. 같은 해양생물부 소속. 그 외에 두 사람은 그 흔한 클레스메이트조차 아니었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말해준다면 슈와 나츠메에게도 비밀로 할 이유가 없었다.
카오루는 딱히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감정적으로 둔하지도 않았다. 시선이 얽히고 곧장 휘어지는 엷은 녹색 눈동자는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은 발갛게 달아오른 뺨도, 그에게 비밀을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도 어렵잖게 한 가지를 설명했다. 남자에게 그런 감정, 부담스러운데 말이지~. 카오루가 뒷목을 조금 쓸어내렸다.
“카나타 군, 카나타 군.”
“네, 카오루~.”
두 번 부르면 카나타가 돌아보았다.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눈을 깜박이며 카오루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나 너무 자기애 넘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카오루가 물었다.
“카나타 군, 혹시 나를 좋아해?”
카나타가 입술을 둥글게 말았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꼴이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카오루가 막 입을 열기 직전에 카나타가 가볍게 대답했다.
“좋아한다는 건, 인간이 정한 규칙이라서~, 저는 잘 모르겠답니다...”
“아.”
납득할만한 대답이었다. 카나타는 인어였고,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족속이기는 하지만 사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어를 보는 시선은 아직까지 동물이었다.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독립지성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희귀종이라 보호받고 수족관에 가면 하나 이상의 인어를 볼 수 있었다. 숫자를 세는 단위도 명이 아닌 마리였다. 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수준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사회 통념적으로 깔린 인식은 여전히 인어를 말이 통하는 예쁜 고래 정도였다.
카나타가 인어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부터 카오루는 인어에 대한 모든 상식을 쓰레기통에 쳐넣었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인어는 인간보다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카나타는 그저, 인간이 정의해놓은 개념에 대해 무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단지 개념에 무지할 뿐, 그는 영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꽤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카오루의 곁에 있으면 행복하고,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 싶어지고... 여기가 두근거리다가도 아파진다는 걸 좋아한다고 묘사한다면...”
카나타가 제 가슴깨를 짚었다. 심장이 있을 장소를 두어 번 쓸어내린 카나타가 카오루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수줍은 미소였다.
“저는 카오루를 좋아해요.”
물에 잠긴 것처럼, 귀 어딘가가 멍멍했다. 카오루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