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체온
생일 축하합니다, 하카제 카오루!
정말 좋아해! 앞으로도 카나타와 행복하길.
*
신카이 카나타는 독특하다. 삼기인들에게 누가 더 이상하냐 묻는다면 사상의 차이에 따른 대답이 나올 정도로 기인 셋 모두 범인과는 한참 거리가 먼 존재였지만, 하카제 카오루의 시점에서 제일 독특한 사람은 신카이 카나타였다. 물과 바다를 사랑하며 분수대와 베스트 프렌드 관계를 맻고 있는 것도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그 옷차림이었다. 긴 팔, 긴 바지. 두툼한 장갑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누가 봐도 완전무장이었다. 드러나는 맨살이라고는 나긋하게 접히는 부드러운 눈매가 전부였다. 맨얼굴조차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카오루 뿐만 아니라 같은 유닛의 리더인 치아키마저 그랬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같은 부활동이기에 어쩌다 카나타의 학생증을 본 적 있었다. 반듯한 정자체의 이름과 함께 붙어있는 사진 속의 소년은 놀랄만치 수려한 미소년이었다. 바다색 머리카락, 하얀 피부. 반듯한 생김새에서 유일하게 카나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은 에메랄드 색 눈동자에 나긋한 눈매였다. 엄지손가락으로 학생증 속의 얼굴을 쓸어본 카오루가 주인에게 물건을 건냈다.
“카나타 군, 잘 생겼잖아? 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내 품었던 의문이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학생증을 건내받은 카나타는 그저 곱게 웃기만 했다. 온통 가리고 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예쁘게 휘어지는 눈 뿐이었지만 카오루는 카나타가 웃었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었다. 미소는 질문을 정중히 사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만 사진 너머로나마 카나타의 맨얼굴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소소하게 만족하기로 했다.
유성대에 소속된 카나타였지만 무대에 설 때는 언제나 히어로 가면을 쓰고 있었으므로, 카나타의 얼굴은 유성대의 팬들 가운데에서도 초유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부드럽고 느긋한 목소리로 유추하는 수많은 얼굴들을 인터넷 화면으로 보며 카오루는 종종 자신이 보았던 학생증 사진 너머의 카나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유추본보다 훨씬 곱게 생겼던 얼굴. 왜 가리는 걸까. 무슨 병이라도? 하지만 햇볕을 질색하는 사쿠마 형제조차도 그런 식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카오루는 의문을 마음 속에 묻었다. 귀찮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본인이 받아도 질색하는 부분이었다. 카나타에게 그런 식으로 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냥, 삼키고 말았다.
사랑에 빠진 것이 언제였는지 몰랐다. 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나타에게 잠겨 있었다. 호흡이 힘들어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그저 깊이 빠져들었다. 남자라고 해도 말투나 행동거지가 성별불명인데다가 외모까지 가려져 있으니. 어쩔 수 없었어. 카오루는 의미모를 사람에게 변명했다. 카나타 군이잖아. 카오루에게 있어서 그것은 제 감정의 모든 것을 납득시켜주는 마법의 말이었다.
카나타 군이니까, 어쩔 수 없어.
카나타 군이니까, 사랑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어.
카나타를 좋아하고, 또 좋아함 받았다. 카오루. 상냥하게 불러주는 목소리에 가끔 오싹하게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다. 확신컨대 그저 기뻐서였다. 신카이 카나타가, 기행을 일삼고 독특하고 맨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쩐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카나타가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런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면 카오루는 카나타를 끌어안았다. 온 몸으로 좋아한다고 소리치며, 분수대에 몸을 담그면서도 모자 하나, 마스크 하나 벗지 않는 제 연인을 끌어안고 밋밋한 천 위에 입을 맞췄다. 조금은 간절히, 어쩌면 애원하듯.
그러면 카나타는, 어쩐지 조금 미안해하는 것처럼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천 너머로 카오루에게 입을 맞춰왔다. 체온이 닿지 않는 키스였다.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고, 졸업을 하고. 그래도 여전히 연인이었다. 같은 집에 살지는 않지만 카오루는 카나타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카나타 역시도 마찬가지. 카나타도 종종 카오루의 집에 걸음했지만, 카오루가 카나타의 집에 찾아올 때가 더 잦았다. 집 안에서조차 카나타는 맨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끔은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팬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좋다는 진담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걸린, 어여쁜 얼굴을 드러내고 웃어주었다. 손을 대는 것까지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카오루. 하고 작게 부르며 분홍빛으로 물드는 뺨은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맨 얼굴을 보이는 카나타는 누가 봐도 명백한 남성의 선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카나타 군이니까. 카오루는 다시 한 번 마법의 말을 속삭였다.
많은 것이 속에 쌓여 있었지만, 카오루는 참아주었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연인이었지만 덮어줄 수 있었다. 왜, 냐고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인내했다. 언젠가는 말해 주겠지. 그건 신카이 카나타가 하카제 카오루의 안에 쌓아올린 신뢰의 증거였다. 그에게 향하는 애정이기도 했다. 가끔 절박한 시선으로 저를 응시하는 연인을 불안하지 않게 만들고 싶은 바람이기도 했다.
다만, 보잘것없는 소망을 품어보자면. 한 번 손을 잡고 싶었다. 장갑같은 것 하나 없이 맨손으로 체온을 나누고,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연인에게 원하는 것 치고는 참 볼품없고 간절한 소원이었다. 카오루는 자기 자신을 살짝 비웃어보았다. 바보. 멍청한 하카제 카오루.
“카오루.”
카나타는 문득 그 이름을 불렀다. 뺨이 어는 초겨울이었다. 내일의 일정을 꼽아보던 카오루가 고개를 돌렸다. 미려한 미인이 고민에 빠진 기색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녹빛 바다색 물고기가 답을 찾으러 황금빛 모래 해변에 발을 디뎠다. 카오루. 카나타가 다시 한 번 불렀다.
“저를 좋아하지요?”
“응, 좋아해.”
“...저, 카오루의 손을 잡고 싶어요.”
그래? 카오루가 별 고민 없이 제 손을 내밀었다. 희고 손가락이 잘 뻗은 잘생긴 손이었다. 카나타는 저에게 내밀어진 손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잡았다. 얇은 장갑은 여전히 끼고 있는 채였다. 하염없이 쓰다듬던 카나타는 곧 천천히 웃었다.
“카오루, 곧 생일이네요.”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됬던가? 그렇네.”
그러고보니 오늘 사쿠마 씨랑 세나 군 생일 축하를 했었지. 카오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보니 날짜가 바뀌기 몇 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생일 다음 날이 제 생일이라는 인식은 남아 있었다. 몇 번이고 함께 보낸 생일이었다. 몇 달 전 카나타의 생일도 비슷한 느낌으로 함께 축하하고 보냈던 기억도 있었다.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게 전부였지만 그걸로 충분히 기뻤다. 제일 먼저 축하해 줄 거야, 카나타 군? 카오루가 개구지게 웃었다.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어쩐지 집요했다. 지켜보는 카오루마저 미묘하게 긴장시킬 정도였다.
째깍, 초침이 지나고 날짜가 바뀌자 카나타가 성큼 카오루에게 다가왔다. 카나타 군이 얼굴을 드러낸 상태로 이렇게 가까이 오는 건 처음 아니던가, 하는 생각을 막 하던 순간이었다. 카나타가 입을 맞췄다. 마스크는 없었다. 맨입술과 맨입술이 닿았다.
닿았다.
숨이 멈췄다.
조금 말랑하고 묘하게 거칠고, 하지만 부드러운 입술이 카오루에게 닿아 있었다. 혀가 한 번 닿았다가 깊게 들어가는 키스에 카오루가 숨을 길게 쉬었다가, 다시 멈췄다. 이성이 뱅글뱅글 돌아서 어지럽게 머리를 때렸다. 잠깐,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싶은데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쩔 줄 모르고 헤매던 손이 곧 카나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열렬히 키스에 응했다.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조금이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짧게 떨어졌다가, 다시 붙고. 또 떨어지고. 호흡 섞이는 소리만 공기에 돌았다. 분위기는 천천히 달아지고 있었다. 카오루. 속삭임처럼 부르는 목소리에 등을 떨었다. 응. 작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그와 동시에 긍정이었다.
“카오루, 나는 따뜻한가요?”
잠들기 직전의 가물한 정신 너머로 카나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따뜻해. 한껏 붙은 맨몸에 머리를 기대며 카오루가 흐릿한 시야를 열심히 정돈했다. 피곤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죽을 만큼 졸렸다. 다만 품에 들어오는 온기가 기꺼웠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 동안 오래 쌓였던 기쁨과 서러움이 합쳐져 많이 울었던 것만 생각났다.
“좋아해요, 카오루. 생일 축하해요.”
“나도 좋아해, 카나타 군......”
미안, 일어나서 대화하자...... 목소리에 웅얼거림이 섞였다. 잠에 취해 이겨낼 수가 없었다. 완전히 잠에 빠지기 직전 자장가처럼 들리는 카나타의 목소리만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둥실둥실 밀려왔다.
“미... 요, 인어......., 닿...면, ...녹... 사...져서.”
“으응.......”
“사랑하고 있어요.”
그 목소리만 뚜렷하게 들렸다. 잠의 나락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