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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바다

별빛_ 2016. 11. 6. 22:00




 집은 바다가 좋아요. 

 나도 바다가 좋아. 


 두 사람이 살 집을 구하는 데에 제일 처음 들어간 의견이었다. 그 외에 방에서 바다가 보이는 게 좋다던가, 창문이 큰 게 좋다던가, 침대는 무조건 하나를 써야 한다던가. 여러가지 의견이 덧붙여지며 수정된 의견도 많았지만 위치 선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 해변이 더럽지 않고 사람들의 인적이 적은 장소를 찾아 헤매다보니 두 사람의 집은 유메노사키 학원 근처로 정해졌다. 해양생물부 활동때도 자주 다녔던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에게 있어서 익숙한 바다였으니까. 


 창문을 열면 바다냄새가 나는 곳에 집을 마련하고 그 안을 두 사람의 손길로 가득 채웠다. 벽지에 소파, 커튼에 침대, 각종 가구들까지 두 사람의 생활로 빼곡했다.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 양 옆에 자리잡은 장식장에는 유성대와 언데드가 받은 상들, 하카제 카오루와 신카이 카나타라는 이름으로 받은 상패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것은 잘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상대의 이름이 새겨진 상들은 종종 들여다보며 수줍게 웃고는 했다. 잘 닦인 투명한 장식장 곁표면에 행복이 잔뜩 묻어있었다. 


 날이 추워지니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 때마다 들어오는 냉기가 서늘했다. 며칠 전 꺼낸 푹신한 털이불에 잠겨 있던 카오루가 꾸물꾸물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기분 좋게 잠에 잠겨있다가 곧장 건져진 느낌이 불쾌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카오루가 얼굴을 파묻고 골이 난 신음소리를 흘렸다. 보나마나 범인은 뻔했다. 


“카나타 군... 창문 닫자......”

“바다 냄새가 좋아요, 카오루~.”

“응... 닫자......”


 추워... 카오루의 투정에 카나타가 조금 입을 비죽였다. 카오루가 이불 속에서 얼굴만 내밀었다. 여전히 반 쯤 감긴 눈에 곤란함이 어렸다. 


“이따가 아침 먹고 바다에 나가자. 응? 지금은 창문 닫자, 카나타 군.”

“약속이에요?”

“응, 약속.”


 카나타가 창문을 닫았다. 카오루가 다시 얼굴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았다. 거북이처럼 둥글고 느릿한 모양새였다. 카나타는 조금 토라진 얼굴로 불룩한 이불덩이를 바라보다가, 그 안으로 끼어 들어갔다. 우왓, 카나타 군 몸 차갑잖아. 카오루가 투정을 부렸다. 이불에 감겨진 금발 머리카락 아래는 하얀 맨몸이었다. 품에 끌어안겨오는 카나타의 등을 반사적으로 끌어안으며 카오루가 불평을 내뱉었다. 그래도 팔을 풀지는 않으면서. 카나타가 길게 미소지었다. 어깨에 쪽 입을 맞추자 바싹 굳는 몸이 사랑스러웠다. 바다에 데이트를 나가기로 약속했으니 가벼운 입맞춤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어깨며 뺨에 키스한 카나타가 배시시 웃었다. 얼굴만큼은 순진무구했다. 

 곤란한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낸 카오루가 카나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뒤였다. 


“잠 다 깼어, 카나타 군.”

“이제 일어날래요?”

“응. 아침은 뭐 먹고 싶어?”

“고등어 씨요.”

“어제 점심도 저녁도 생선이었잖아.”


 오늘 아침은 다른 거. 몸을 일으키며 카오루가 카나타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카나타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럼 카오루가 좋아하는 걸로 먹어요.”

“정말?”


 생크림이 얼마나 있으려나. 얼려둔 딸기가 남아 있나? 이불 속을 꼬물꼬물 빠져나오며 중얼거리는 카오루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어서, 카나타가 낮게 웃었다. 옷을 주워입고 주방으로 향하는 카오루의 뒤를 쫄래쫄래 쫒으며 카나타가 그 뒷모습을 내내 응시했다. 손가락을 꼽던 카오루가 뒤돌아 카나타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바다와 해변이 얽히는 순간 어느 시선이던 애정을 담아 녹아내리듯 휘고는 했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 줘, 카나타 군.”

“네에~.”


 부엌의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카나타의 시선이 워낙 집요하게 따라붙어서 카오루는 꽤 곤란해하고는 했다.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등이 따끔따끔하고 귓가가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카오루가 요리를 시작하면 카나타의 자리는 늘 텔레비전 앞의 소파였다. 긴 소파에 앉아 저번에 녹화해 둔 흰동가리 다큐멘터리를 틀어 보기 시작하는 카나타를 확인한 카오루가 핫케이크 가루를 꺼냈다. 몇 장이나 구울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카오루가 반갑게 웃었다. 

 카나타는 고개를 돌려 부엌 방향을 바라보았다. 소파에서는 그 안쪽이 보이지 않는 위치였지만, 작게 들려오는 콧노래소리는 분명 카오루의 것이었다.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 카오루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나타도 기쁘게 웃었다. 조금씩 공기를 채우는 달콤한 향기가 달가웠다. 




 아침으로 배를 채우고 소화를 시킬 겸 두 사람은 산책을 나왔다. 손을 맞잡은 데이트였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에 집을 정한 이유도 조금이나마 편히 돌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에 가까운데다가 바다가 인기있을 시기는 지났으니 조금 안심하며 카오루도 카나타 가까이 붙었다. 겨울바다의 바람은 슬슬 겉옷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운 기온이었다. 두꺼운 가디건을 입고 와서 다행이었다. 조금 긴 소매에 손가락을 숨기며 카오루가 카나타의 손에 힘을 주었다. 설마 그럴 리는 없으리라 믿지만 여기서 바다에 뛰어들면 곤란했으니까. 


 카나타는 미련 넘치는 시선으로 바다를 응시했지만, 걱정처럼 뛰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곤조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늘은 오프였으니 괜찮았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활동에 들어가니 스케줄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오전 일찍 나가서 늦지 않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카오루도 제 스케줄을 읊었다. 오전이나 오후 활동이 잦은 유성대와는 달리 언데드의 활동은 리더의 생활패턴에 맞춰 밤이나 새벽이 잦았다. 밤에는 카나타가 잠들고 오전에는 카오루가 잠드니 두 사람이 함께 나눌 시간은 꽤나 부족했다. 서로 자는 얼굴만 보다가 뺨에 키스하고 잘 자라고 속삭여주는 날이 잦았다.


“그래도 내일 모레 정도는 같이 있겠네요...☆”

“응, 그러네.”


 카나타가 방긋 웃었다. 카오루도 동조하며 마주 웃었다. 카나타가 손가락으로 카오루의 손등을 길게 쓸어내렸다. 검은 매니큐어를 지우지 않은 손가락도 매만졌다가, 문득 잡아당겨 손끝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비처럼 쏟아지는 입맞춤이었다.


“그럼 그 날은 오랜만에 수족관이라도 같이 갈래요?”

“데이트 권유인거야?”

“네에.”


 같이 가 줄거지요? 카나타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슬쩍 내리깐 시선부터 달착지근하고 진득했다. 아주 잡아 먹히겠어. 카오루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쑥스러움 섞인 머쓱함이었다. 홀랑 고아서 낼름 먹어버릴 것 같은 시선이었다.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카나타가 저럴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인간같았다. 어여쁜 에메랄드 바닷빛 눈에 담긴 건 분명 소유욕이었다. 그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카오루의 소유욕도 짜릿하게 만족시켰다. 두 사람은 같은 감정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지표였으니.

 카오루가 카나타에게 머리를 기댔다. 슬쩍 치켜떠서 휘어지는 눈에 가벼운 도발이 섞여 있었다. 황금빛 머리카락이 바다에 잠겼다. 두 사람이 바짝 가까워졌다. 


“그럼, 같이 가야지.”


 카오루의 코끝이 카나타의 뺨을 가볍게 간지럽혔다. 마주 웃는 시선에 애정과 장난이 어우러졌다. 서로의 바다에 애정이 물들었다. 분홍빛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