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동거
“카오루~.”
“글쎄, 안 된다니까...!”
제 옷을 부여잡고 칭얼거리는 카나타를 돌아보며 카오루가 한껏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카나타의 양 뺨은 이미 빵빵하게 차오른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카오루, 미워요! 하며 투정을 부릴 것 같은 얼굴을 보며 카오루는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한숨을 열심히 삼켰다. 누구는 싫어서 거절하는 줄 아나. 원망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카오루가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겼다.
“모리사와 군 덕분에 유성대는 숙소 생활이 원칙이잖아?”
“그래도...! 치아키는 제가 잘 설득했으니까요.”
“아니, 너무 눈에 띈다고...”
몇 년째 함께한 같은 유성대 멤버들과의 숙소생활을 그만두고 고등학교 친구라고 알려진 나랑 같이 산다니. 그게 커밍아웃이랑 뭐가 달라. 그런 식으로 인식되지 않아도 불화설밖에 더 생기겠어? 카오루가 열심히 카나타를 설득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다 맞는 말 뿐이었지만 카나타는 속이 상했다. 이성과 별개로 감정이 자꾸 마음 한구석을 푹푹 찔렀다. 그게 아파서 잔뜩 울상이 되었다. 카나타의 얼굴을 본 카오루도 영 속이 쓰린 표정이었다. 몇 번이고 발을 구르던 카나타가 카오루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카오루는 나랑 같이 살고 싶지 않나요?”
“......”
그래, 문제는 바로 이 것이었다. 하카제 카오루는 신카이 카나타를 좋아했다. 아마도 평생 그를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런 상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카오루도 당연하게 카나타와 함께 사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해 보았다. 입을 다물어버리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도 시선을 내렸다. 본인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카오루가 거절할 것도 생각은 했었다. 마음 아파서 깊게는 안 했었지만. 그는 카오루에게 함께 살자는 말이 듣고 싶을 뿐이었다. 진짜로 함께 산다면 더더욱 좋았고. 물론 그를 위해서 준비도 철저히 해 뒀다. 열심히 미래를 꿈꿨으니까.
카오루에게 괜히 민폐나 더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카나타가 깊게 한숨을 뱉었다. 낮게 깔리는 한숨에 카오루가 어깨를 떨었다. 카나타의 머리 위에 있을 리 없는 고양이 귀가 축 늘어지는 환각마저 보일 정도였다. 잔뜩 풀이 죽어버린 카나타를 보며 카오루가 머쓱하게 뒷목을 매만졌다. 대중의 시선을 생각하여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었다.
“저 집을 샀어요.”
“응?”
“수조도 사고, 물고기 씨랑, 카오루가 좋아하는 소파랑, 둘이 잘 수 있는 침대도 샀어요.”
“어... 어?”
“방음 처리도 잘 해 놨고, 방비도 잘 했어요. 자물쇠도 많이 달린 집인데.”
“잠깐만. 잠깐, 잠깐만? 카나타 군 대체 언제?”
“카오루.”
카나타가 카오루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잡힌 손으로 옮겨지는 미지근한 체온에 카오루의 표정이 점차 물들었다. 곤란함에 부끄러움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잔뜩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데 하카제 카오루는 신카이 카나타를 좋아했다. 당연히 카나타에게 아주 약했다. 간단한 공식이었다. 이거 위험한데. 마음 속에서 울리는 경고음을 들으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간절히 말했다.
“저랑 같이 살아요, 카오루.”
“......”
“네?”
카나타가 손에 쥐어주는 건 분명 집 열쇠였다. 카오루는 속으로 한탄했다. 언제부터 카나타 군 준비성이 이렇게 좋았지? 또 한탄했다. 나는 왜 이렇게 카나타 군에게 약하지? 수많은 갈등과 번뇌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혼자 납득했다. 카나타 군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카제 카오루에게 있어서 그만큼 마법의 말은 또 없었다.
“이거 암묵적으로 우리 사귀어요, 하고 말하는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저희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하고 광고하는 거라고.”
“완전 멋지네요~.”
“인터넷에서도 엄청 떠들거고.”
“카오루가 인터넷 대신 저를 봐 주면 좋겠어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날 책임져야 해.”
“얼마든지...☆”
하늘을 한 번 노려보고 땅을 한 번 노려본 카오루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그대로 제 두 손을 꼬옥 붙들고있는 카나타를 그대로 당겨 입을 맞췄다. 짧게 쪽 닿았다가 떨어지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드러운 곡선 속에 기쁨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나랑 같이 살자, 카나타 군.”
카나타가 팔을 뻗어 카오루를 끌어안았다. 뺨을 붙잡고 키스해오는 카나타에게 응하며 카오루도 결국 길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