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조] 꽃다발
이사라 마오는 화분증이다. 그를 봄에 비유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지만 봄은 이사라 마오가 가장 괴로워하는 계절이었다. 진짜 끔찍한 병이야. 마오는 종종 리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했다. 정말 진심이었다. 코가 다 헐고 눈도 간지러운데다가 긁을 수도 없었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 정말 끔찍했다.
리츠는 그런 마오의 괴로움을 이해하지도 동조해주지도 못했지만 동정하고 안쓰러워 해 줄수는 있었다.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하며 눈물도 콧물도 줄줄 흘리는 마오는 정말 괴로워보였다. 2학년 B반에 소속된 이후로는 코가라는 동지도 생겼다. 마 군, 힘내. 고급 티슈를 마오의 손에 쥐어주면 마오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오는 꿋꿋하게 허세를 부리는 코가와는 달리 꼬박꼬박 일기예보를 챙겨보고 계절에 맞춰 약도 잘 챙겨먹었지만,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이런 괴로움을 피하지 못하고는 했다. 코를 훌쩍인 마오는 오늘 달력에 엑스 표시를 쳐 놓을 거라고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런 연유로, 이사라 마오는 꽃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떠밀면 받아버리는 나쁜 습관 탓에 꽃다발을 주면 거절은 못했지만 언제나 한 손에 들고, 품에 끌어안는 일은 없었다. 꽃집도 최대한 멀리 돌아갔고, 꽃놀이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이 끝나고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했다. 따끈한 양지를 닮은 사람치고는 참 가혹한 일이었다. 리츠는 가끔 안쓰러움에 혀를 끌끌 찼다. 리츠는 꽃을 꽤 좋아했다. 집 뒷마당을 장미 정원으로 장식한 사람도 리츠였다. 앞마당을 꾸미지 않는 이유는 마오가 드나들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었다. 화려하게 핀 꽃을 꺾어 꽃다발처럼 장식하는 것도 즐겼다. 마오에게 줄 수는 없어 가끔 만드는 꽃다발을 바치는 건 주로 아라시였다. 제일 좋아해주니 리츠도 주는 보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그렇게 꽃다발을 만들어 가져온 날이었다. 요 며칠 나이츠의 업무로 손대지 못했더니 꽤 난잡하게 자라 있는 것을 정리하고 잘라 꽤 화려한 꽃뭉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아라시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으나 나이츠의 스튜디오에는 세나와 왕님 둘 뿐이었다. 왕님이 있다니 드문 날이었고, 아라시와 츠카사가 없다니 역시 드문 날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은 육상부 후배와 연관된 일로 바빠 불참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츠카사는, 잘 모르지만 그에 휘말려 있다고. 스 쨩의 교우관계까지 참견하는 건 너무 과보호 아니야? 가방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둔 리츠가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나도 몰라. 세나가 짜증스럽게 답했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아라시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귀찮게 됬네. 리츠가 까칠한 소파 쿠션에 뺨을 비비며 생각했다. 안즈가 생각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프로듀서 아가씨는 늘 바빴다. 그리고 리츠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을 찾아 헤멜 정도로 부지런한 성격이 절대 못 됐다. 안 주고 말지... 리츠가 길게 하품했다.
“왕님, 꽃 좋아해~?”
“꽃? 왜?”
종이에 펜을 휘갈기다가 입 위에 얹고 잔뜩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을 반복하던 레오가 리츠의 물음에 돌아보았다. 개구진 녹빛 눈을 마주보며 리츠가 다시 한 번 나른하게 하품했다. 흠냐흠냐. 느긋한 잠소리를 흘리며 리츠가 방긋 웃었다.
“좋아한다면 꽃다발 줘 버리게~? 왕님이 별로 안 좋아하면 루카쨩한테나 선물로 줘.”
“오옷, 우리 귀여운 루카땅과 꽃의 조합은 최고지! 앗, 그렇지만 안 팔리는 물건 떨이 하는것처럼 우리 루카땅에게 꽃을 맡기지 마! 와하하, 하지만 내 귀여운 기사가 선물을 준다면 고맙게 받겠어☆ 앗, 꽃과 함께 있는 릿츠라...! 괜찮잖아! 인스피레이션~!”
저 좋을 대로 신나게 떠드는 왕님은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한 모습인지라 리츠는 대충 결론만 뽑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꽃을 받아준다는 의미였다. 가방을 뒤져 장미와 안개꽃이 화려하게 장식된 꽃다발을 꺼낸 리츠가 가볍게 그것을 레오에게 던졌다. 종이에 곡을 휘갈기다가도 요령좋게 그것을 받아낸 레오가 씩 웃었다. 깊게 휘어지는 눈이 보기 좋았다. 리츠가 입가에 옅게 미소를 그렸다. 언제나 여왕님께 바치던 꽃이었지만 왕에게 바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왕님 뒤에 있을 공주님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나름대로 훈훈한 분위기를 한 방에 박살낸 건 팔랑팔랑 패션잡지를 읽고 있던 세나였다. 바닥에 떨어진 안개꽃 머리와 장미 꽃잎 몇 개를 내려다보면 세나가 툭 말을 뱉었다. 뾰족한 가시를 닮은 목소리였다.
“쿠마 군, 꽃 같은 걸 함부로 던지지 마. 꽃잎 떨어지잖아.”
“에에, 잘 던졌는걸~. 투덜이처럼 굴지 마, 셋쨩.”
“와하핫, 맞아! 투덜이처럼 굴지 마, 세나~.”
세나의 가시에 상처받기에 레오와 리츠는 너무 많은 걸 세나와 함께 겪었다. 놀리듯 야유하는 왕과 참모를 보며 선봉장이자 역전의 용사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들고 있던 잡지를 돌돌 말아 왕과 참모의 머리를 마구 때려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딱 3분이었다. 레오는 저가 들고 있던 종이와 펜만 쥐고 잽싸게 몸을 피했고 리츠는 그냥 몸을 웅크려 조금 맞았다. 셋쨩 너무해~.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세나는 단단히 인상을 썼다.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험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가 너무해! 스튜디오 안에 브금으로 왕의 웃음소리가 깔리는 것을 들으며 리츠가 덮으려고 준비한 담요를 세나에게 덮어씌웠다. 어픕. 세나가 숨 막힌 소리를 흘렸다가 손으로 담요를 치웠다. 천 속에서 나온 건 아까보다 더 화가 난 얼굴이었다. 지금 쿠마 군 해보자는 거지?! 2차전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에 레오가 신이 나서 참전했다. 오옷, 나랑도 놀아 줘~! 왕님은 조용히 해! 꼬집는 손길이 매웠다. 레오가 저가 쓰던 악보를 신나게 던졌다. 시야가 하얗게 어지러웠다.
나이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 사람의, 심각하게 유치한 다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