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고백
※ 먼 미래 설정
마오는 저택을 청소하고 있었다. 워낙 커다란 집인 탓에 몇 번이고 쓸고 닦아도 먼지가 나오는 게 저택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이 집에 살게 된 지도 상당히 오래됬지만, 정작 집주인이 챙기지 않는 탓에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건 모두 마오의 역할이었다. 리츠는 할 필요가 없다고 일갈하기는 했지만 역사 있는 저택이 먼지 속에서 삭아가는 걸 보는 쪽이 속이 상했다. 복도의 장식물은 모두 골동품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마른걸레로 조심스럽게 닦아낸 마오가 리츠의 방문을 열었다. 리츠는 여전히 침대 속이었다.
“리츠, 일어나! 아침을 넘어서 지금 점심때라고.”
“으으으......”
싫어... 꾸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이제 너무 익숙해진 것이었다. 마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설임없이 이불덩이를 흔드는 손길에 리츠가 몇 번이고 더 신음성을 내뱉었다. 심술쟁이... 골이 난 목소리에도 마오는 꿋꿋했다. 리츠! 단호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리츠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눈과 시선이 얽혔다. 마오의 입가에 별 수 없다는 미소가 걸렸다.
“점심 먹자. 오늘은 나가봐야 한다며?”
“응...... 일이 있어서.”
일찍 올 거지만. 리츠가 눈을 비비며 마오에게 엉겨붙었다. 온기가 곧장 닿자 마오가 반사적으로 리츠를 끌어안았다. 천천히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참으로 익숙한 것이었다. 리츠가 마오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몇 번이고 리츠의 등을 도닥여주던 마오가 곧 리츠를 때어냈다. 이제 밥 먹자.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묻는 마오의 모습을 보며 리츠가 살짝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식사는 간단했다. 리츠도 마오도 거창한 식사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마오는 물만 홀짝이는 수준이었다. 입안에서 물을 굴리는 마오는 생각에 잠긴 기색이었다. 리츠는 마오의 식사량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마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컵을 내려놓았다. 턱을 괴고 저를 바라보는 마오를 보며 리츠가 표정을 반듯하게 폈다. 곧 눈매를 상냥하게 휘었다. 그 안에 맻힌 감정을 보지 못하며 마오가 물었다.
“언제쯤 올 것 같아?”
“아마 한 시간... 하고도 반 정도?”
“알았어.”
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 토마토 한 개를 집어먹는 것으로 저도 식사를 끝낸 리츠가 걸려있던 자켓을 입었다. 문가에서 마오가 리츠를 배웅했다. 다녀 와, 리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똑같은 답례가 돌아왔다.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다녀올게, 마오.
리츠가 집을 나서자마자 마오가 몸을 돌렸다. 조금 급한 걸음으로 서재에 들어간 마오가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을 돌돌 말았다. 네모난 문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청년이 힘을 줘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 하나 없는 문은 꽤 손쉽게 열렸다. 마오는 물끄러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응시했다. 며칠 전 발견한 비밀의 문이었다. 기억도 없던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 살았지만 처음 보는 문이었다. 내내 리츠가 집에 있었기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다만 처음 본 순간부터 소름이 돋고 기분이 나빴다. 리츠에게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몰랐지만 마오는 계속 이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몇 번이고 망설이던 마오가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안쪽에서는 미묘한 냄새가 났다. 약품 냄새에 정체모를 무언가들. 소름이 돋았다. 불안하게 제 팔을 쓸어내린 마오가 계속 걸었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떨치기 어려웠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걸음소리만 어지럽게 울렸다. 계단이 끝났다. 마오가 마지막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보이는 광경은 그렇게까지 경이롭지 않았다. 마오는 천천히 시야를 채웠다. 벽 한 쪽 면이 사진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언뜻 보아도 마오의 사진들이었다. 다만 몹시도 낡아있었다. 마오는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했다. 너무나 오래되어 삭아가는 사진을 약품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릿하게 깨달았다. 장담컨대 마오는 그 사진이 찍힐 무렵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고개를 돌리자 수많은 인간 형태가 보였다. 언뜻 시신으로 착각했던 그것들은 모조리 인형이었다. 잘 만든 인형. 한 눈에 착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지만 결국 조금만 집중해보아도 인형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마오가 천천히 그것들에게 다가갔다. 하나, 둘... 눈대중으로 세어도 대충 열 구는 가뿐히 넘었다. 스물, 아니면 서른? 마오가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무기질한 녹색 눈알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모조리 같은 외형이었다. 붉은 머리, 녹색 눈. 인형들에게서는 묘한 냄새가 났다. 소리없이 침묵하던 마오가 천천히 손목을 들어 제 체향을 맡았다.
“결국 이번에도 들어와 버렸네.”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오가 고개를 돌렸다.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쉬는 리츠가 보였다. 당혹스러우면서도 짐작하고 있던 얼굴에 마오가 시선을 내렸다. 어두운 방 안과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미슷한 것을 한참 노려본 마오가 시선을 들었다. 리츠는 슬퍼 보였다. 얼핏 비참한 것도 같았다. 단언컨대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오가 옅게 미간을 좁혔다.
“왜 모른 척 해주지 않았어? 마오.”
“미안, 그럴 수 없었어.”
“조금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러게.”
하지만 나는 벌써 알아버렸는걸. 마오가 인형들을 응시했다가, 사진들을 보았다. 사쿠마 리츠가 보물처럼 고이 간직해놓은 흔적들을 보았다.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을 보았다. 만들어내고 싶은 것을 보았다. 마오가 미소지었다. 곤란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의, 애정 가득한 미소였다. 사진 속의 청년이 가장 많이 짓고있는 표정과 매우 흡사한. 어쩌면 똑같은.
“내 차례는 끝이네, 리츠.”
“응. 이제 잘 시간이야.”
“리츠.”
마오는 천천히 다가오는 리츠를 응시했다. 마오의 바로 앞에서 리츠가 멈추자 마오가 손을 뻗어 그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따뜻했다. 리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오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읽었지만 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마오는 계속 웃는 얼굴로 마지막을 고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쩌면 탄생부터 품었을 감정을 고백했다.
“사랑해, 리츠.”
인형의 생이 끝났다. 마오였던 인형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것을 리츠는 방치했다. 인형이 나뒹구는 소리만 방을 막막하게 채웠다. 조금 따뜻했던 손이 그대로 인형의 것으로 바뀌는 감각이 생생했다. 몇 번이고 제 손을 매만지던 리츠가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서른 여섯번째의 마오는 제일 이사라 마오와 닮아있었다. 마지막에 속삭인 말조차 어쩜 이리 닮았을까. 어쩌면 더 오래 살아주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보기좋게 기대를 배신당한 상태였다.
리츠가 손을 뻗었다. 이제껏 만든 인형들은 마법으로 만들어놓은 혼이 빠져나가자마자 한 곳에 모아 전시하여 방치했지만 이번의 마오는 제대로 시신으로 처리해주고 싶었다. 저에게 사랑한다 말해준 혼에게 대한 예우였다. 하얀 손이 인형의 이마에 닿았다. 매끈하고 차가운 이마였다.
“이번 장난 끝.”
인형이 부서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