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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수조

별빛_ 2016. 11. 20. 20:51





 기포 올라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소파에 누워 깜박 잠들어있던 카나타는 물방울 터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방에는 푸른 조명과 켜진 텔레비전만 얼룩덜룩했다. 카나타는 자신이 출현했던 드라마가 화면에 비치는 것을 보다가 곧 텔레비전을 껐다. 화면의 소음이 사라지자 방 안에는 작게 참방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머리 한 쪽이 멍멍했다. 바다에 잠긴 것과 흡사한 압력이었다. 기묘한 두통이라도 느끼는 듯 머리를 꾹꾹 눌렀던 카나타가 곧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벽 한쪽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는 수조로 시선을 돌렸다. 


 수조는 방을 한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했다.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저 수조와 겨우 놓인 소파와 텔레비전이 끝이었다. 비어있지만 꽉 찬 방이었다. 카나타가 턱을 괴고 수조 속의 생명체를 응시했다.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바다에서 퍼 온 모래를 깔고 해양 생물을 심어두는 등 여러가지로 노력했지만 수조 안이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었다. 바닥에 바짝 가라앉은 인어는 우울해보였다. 안색은 언제나처럼 창백했다. 


“카오루, 배가 고픈 건가요?”

“......”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카오루는 조금 더 비참한 얼굴을 했다. 제 목에 걸려있는 쇠사슬을 움켜쥐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는 평소처럼 시선을 돌려버렸다. 붕대로 둘둘 묶인 카오루의 손바닥은 이미 한참 갈라지고 찢어져 있었다. 처음 수조 속에 들어왔을 때에는 맑았던 물이 붉게 얼룩질 정도로 격렬하게 반항했었다. 몇 번이고 수조를 타넘어 탈출하고 싶어했기에 별 수 없이 쇠사슬로 묶어둘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목이며 양 팔과 꼬리까지 단단히 속박했었지만, 지금은 많이 얌전해졌기에 목에만 남겨두었다. 카나타는 그 사실이 조금 기쁘기도 했다. 언젠가는 구속을 풀고도 얌전히 수조에 머무는 카오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카오루는 수조에 들어가게 된 뒤로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어의 목소리는 힘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인어의 힘을 사용하면 틀림없이 탈출해버릴 터였다. 수조에는 인어의 목소리를 훔치는 기능이 달려 있었다. 인어용으로 만들어진 수조에는 필수적인 기능이었다. 카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조에 등을 기댔다. 수조의 파란 조명만 남은 방 안은 마치 만들어진 바다와 같았다. 카나타는 그 인조적인 공간 속에서 숨을 쉬었다. 


 바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받지는 못했다. 수영을 할 수도 없었고 물 속에 들어가면 늘 힘이 빠졌다. 체질적으로 거절당했다. 미련이 생겨버린 것은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날짜를 헤아리는 것이 의미없을 정도로 자주 해안가를 드나들던 카나타가 인어를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바다를 헤엄치다가 우아하게 뛰어올라 즐겁다는 듯 노래를 부르는 인어는 아름다웠다. 그 화려한 황금빛도 잘 짜인 비단같은 목소리도. 참으로 보석같은 인어였다. 카나타는 한눈에 인어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다. 


 친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어는 경계심이 높았지만, 카나타는 생각보다 빠르게 인어와 친해졌다. 이름은 카오루. 바람의 이름을 받은 인어였다. 영리한 인어는 자기 종족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카나타는 그보다 빠르게 인어에 대한 모든 것을 학습했다. 인어의 사육 허가증을 받은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카오루와 친해지며 행복했다. 카나타에게 있어서 카오루는 곧 바다였다. 다만 그가 떠날 것이 무서웠다. 카오루가 바닷속으로 도망친다면 카나타는 평생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건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다. 


  좋아해, 카나타 군. 수줍은 얼굴로 인어가 자신에게 고백한 날 카나타는 인어를 사냥했다. 양 팔목에 흉한 멍자국이 남고 온 몸에 붉은 손자국이 찍혔다. 배신으로 얼룩진 인어는 수조 속에 가라앉아버렸다. 목소리를 빼앗기고 믿음 역시도 빼앗겼다. 첫 일주일은 내내 울기만 했다. 인어의 눈물이 진주가 되어 수조 바닥을 빼곡하게 채웠다. 진주가 쌓이는 소리가 바작거렸다. 카나타는 침묵했다. 카오루의 다른 순간을 조금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카나타 군. 텅 빈 시선을 든 카오루가 카나타와 시선을 맞췄다. 벙긋거리는 입모양이 뚜렷하게 카나타를 부르고 있었다. 카나타가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어떤 말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원망이라면 무시할 터이고 저주라면 눈감을 터이지만 카오루가 속삭이는 말은 텅 비어버린 다정함이었다. 카나타의 양심도 애정도 깊게 찌르는 다정함. 


 시선을 피해버리는 카나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카오루가 제 팔을 깊게 깨물었다. 이미 한참 잇자국이 남고 상처가 남은 팔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몇 번이고 물어뜯었다. 통증이 올라오고 피가 터질때까지, 단단히.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