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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오] 크리스마스

별빛_ 2016. 12. 25. 23:46



 크리스마스의 아이돌은 바쁘다. 


 실시간으로 정상급 아이돌 위치에 발을 디디고 있는 카오루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쉴 시간 따위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특집으로 진행되는 예능은 며칠 전 이미 녹화를 끝냈지만 다른 멤버들과 함께 예정된 팬미팅과 악수회가 있었고 그 뒤에는 빠듯하게 다음 주 방영될 프로그램 녹화에 참여했다가 삼십 분 겨우 쉬고 타야 할 비행기를 위해 공항으로 달려야 할 처지였다. 아이돌에게는 크리스마스는 휴일도 아닌 거지. 카오루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지어 연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낼 짬도 없었다. 짬은 커녕 얼굴 보는 것도 사흘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카오루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프로그램 녹화가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공항으로 가는 자동차에서 카나타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게 전부일 확률이 아주아주 높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정점급 아이돌은 아쉬움을 삼켰다. 이제 와 새삼 그러기에는 작년도 재작년도 카오루와 카나타는 일에 치여 아주 소소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연말과 연인의 날이라는 이름은 몇 년째 열렬하게 연애중인 두 사람을 묘하게 들뜨는 상태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키스 한 번 나누지 못하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다고 키스해달라며 칭얼대기에는 부끄러웠다. 좀 심각하게. 학창 시절에는 어떻게 젊은 패기에 말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한 글자만 내뱉어도 혀끝을 깨물만큼 부끄러웠다. 지금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줍어 어쩔 줄 모르고 있으니 직접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보다 훨씬 부끄러운 말들도 수줍은 요청도 수십번이나 주고받은 사이였지만 이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양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덮었던 카오루가 붉어진 뺨을 열심히 수습했다. 


 메이크업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손부채질하여 얼굴을 수습해낸 카오루는 금방 말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카오루가 얼굴을 식힌 것과 스텝이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카제 씨, 시작합니다! 부름에 카오루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팬들과 가까이서 교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아까의 설렘과는 다른 의미로 들뜨는 것을 느끼며 카오루가 걸음을 서둘렀다. 




 팬미팅도 악수회도 그 뒤에 있던 방송 녹화까지도 별 문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드문드문 예상치 못한 소소한 사고는 일어났지만 별 문제 없이 덮을 수 있는 작은 사고에 불과했다. 카오루에게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그건 녹화가 끝난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생겼던 NG들로 지연된 시간이 쌓여 카오루의 짧았던 쉬는시간마저 증발시켜버렸다. 아니, 공항 가는 차가 막히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것 같았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아쉽기는 했다. 카나타 군이랑 만날 시간은 진짜 없네. 사탕을 본 개미때처럼 슬금슬금 기어오는 감정들을 카오루는 애써 떨쳐냈다. 


 차 안에서 카나타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만, 벤은 심하게 흔들렸다. 속도를 과하게 내는 탓이었다. 사고 나면 큰일 난다고? 보험 들어놨어? 카오루는 손잡이를 꽉 잡고 농담처럼 진담을 걸었다. 미안, 급해서! 운전하는 매니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차가 다시 한 번 크게 위아래로 덜컹거렸다. 카오루는 죽기 싫어 손잡이에서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수속을 밟는 절차가 있으니 전화할 짬 하나 없을까. 애써 자위하며 카오루가 창 밖을 슬쩍 보았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찾기도 힘들었지만, 어둠 앉은 밤에 빛나는 차의 불빛도 하나의 일루미네이션이 되어 반짝였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짜적 특성 탓일지도 몰랐다. 감상에 잠기다니, 나도 설마 늙었나? 카오루는 상상하기 싫은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창 때의 아이돌이었다.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도 웃겼다. 


 도착하자마자 티켓팅을 하고 입국절차를 밟고 급하게 이동하는 속도는 빨랐다. 카오루도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이번 비행기를 놓치면 곤란했다. 스케줄이 크게 틀어지는 것은 카오루도 바라지 않았다. 다행히 늦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막 비행기 탑승로까지 걸어온 카오루는 화면에 떠 있는 대기 표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행기의 준비로 10분정도 대기 시간이 생긴 모양이었다. 의자 하나에 앉으며 카오루가 그제야 좀 숨을 골랐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연락하면 받으려나. 카오루가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쓸었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스텝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카오루에게 크게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구석으로 슬쩍 빠져 전화를 걸면 받을까. 지금 카나타 군 스케줄이 어디지? 카오루는 고민했다. 걸었는데 받지 않으면 그것도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걸지 않는 쪽이 훨씬 후회될 것 같아서, 카오루는 이미 외운 번호를 화면에 찍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은 언데드의 신곡이었다. 첫 반주가 한 마디 울리기도 전에 뒤에서 진동이 울렸다. 카오루가 문득 뒤돌았다. 


“카나타 군?”

“카오루~.”


 카나타가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살짝 끌어내렸다. 작은 틈새 사이로 보이는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반갑게 휘어졌다. 아니, 정말로 카나타 군? 카오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째서 여기에? 온통 의문을 보이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턱을 괴었다. 상냥하게 고아지는 얼굴은 고스란히 제 연인의 것이었다. 주변을 살짝 둘러본 카나타가 조심스럽게 카오루의 손을 잡았다. 은밀하고 따뜻했다. 


“새 스케줄이 생겨서, 홋카이도로 간답니다.”

“지금? 아, 그래서 비행기로?”

“네. 저는 국내선이에요. 30분 뒤에 타야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카오루가 와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반갑게 웃는 얼굴이 유독 들떠 보이는 건 그 탓인 것 같았다. 카오루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기쁘게 웃었다. 연인과의 만남에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예상치 못했기에 훨씬 기꺼웠다. 사소하게나마 산타의 선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 사람이 슬쩍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다른 사람의 눈에 쉬이 띄지 않을 곳으로 숨은 연인이 마주 웃었다. 둘 다 곧 비행기가 뜨는 처지이니 오래 숨을 수는 없었지만, 짧은 틈새로도 충분했다. 


 시선이 얽혔다. 잔뜩 휘어져있는 색채가 뒤섞여 애정의 빛을 그렸다. 카나타가 고개 숙여 카오루의 입술에 제 것을 부볐다. 몇 번이고 노크하듯 쪼아내리던 입맞춤이 금새 농밀해졌다. 호흡 삼키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뺨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손끝이 저릿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몇 번 헤매던 카오루의 손이 카나타의 옷자락을 잔뜩 구겼다. 체온은 떨어지는 구석 없이 밀착해 있었다. 키스하면서 둘이 떨어지는 순간은 한 쪽의 호흡이 한계에 다다는 순간 뿐이었다. 카오루가 먼저 떨어졌다. 더 멀어지는 게 아쉬워 카나타가 반듯한 이마를 맞댔다.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숨 고르는 소리가 열기에 섞였다. 카나타는 카오루의 귓가마저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보았다. 사랑스러웠다. 


“나 갈 시간 아니야?”

“아마 맞을 거에요.”

“찾으러 왔다가 카나타 군을 보면 곤란한데.”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완곡한 말이었다. 이해는 했지만 아쉬움에 작게 입을 비죽였다.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카오루에게 짧게 키스하는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가 짙게 웃었다. 저도 아쉬웠다만 연인이 표현해주는 감정이 기꺼워 가벼이 녹아내렸다. 카오루가 카나타의 뺨에 입맞췄다. 


“신년에 집에서 보자, 카나타 군.”

“도착하면 전화해요, 카오루.”


 카오루의 짧은 입맞춤에 카나타가 답례처럼 카오루의 양 뺨에 입맞췄다. 시선이 맞고 다정하게 휘어졌다. 짧게 맞잡았던 손이 떨어졌다. 조금 부푼 입술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카오루가 몸을 돌렸다. 저를 찾는 부름에 답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산타의 선물이 끝나고 이제 다시 모두의 아이돌이 될 시간이었다.

 얼굴, 이상하지 않겠지? 기내에 탑승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며 가방에 넣어뒀던 여권을 꺼낸 카오루가 손등으로 뺨을 꾹 눌렀다. 여전히 따끈따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