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STARS/NOVEL

[카나카오] 이번

별빛_ 2017. 4. 7. 00:20



  카나타는 창 안쪽으로 보이는 광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머리 위로 잘게 뿌려지는 분수대의 물길은 이미 의식 저편에 날아간 뒤였다. 화사한 황금색 머리카락, 수려한 이목구비, 경박하게 꾸미고 있는 연한 눈동자, 하얀 피부. 선 고운 모양새며 발갛게 보기 좋은 혈색에 조금은 제멋대로 입은 교복차림 하나하나 놓치는 것 없이 집요했다. 물빛의 눈동자가 옷자락이라도 잡고 매달리는 꼬마아이마냥 그의 뒤꽁무니를 쫒았다. 클래스메이트인 치아키며 세나와 대화하는 게 즐거운 모양인지, 곤란한 표정도 지었다가 머쓱하게 웃기도 하는 그 다채로운 얼굴표정이 사랑스러웠다. 길게 단숨을 뱉으며 카나타가 분수대의 차가운 돌에 뺨을 대었다. 물기로 넉넉하게 체온이 빼앗겼다. 


 서른 여섯번째 너도 사랑스럽다. 

 카나타는 짧게 숨을 삼켰다. 서른 여섯번째 겪는 삼학년의 봄이었다. 그와는 반이 갈렸지만 친구들과는 한 반. 아직 2학년 A반에 전학생이 들어오지 않은 이른 시기였다. 앞으로 쏟아질 수많은 일들이 별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는 느리게 참잠했다. 시간을 돌리는 그 사이사이 수많은 변수들이 끼어들며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조금이라도 기억에 잠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첫 번째의 과거였다. 시간을 돌린 이유, 너와 사랑을 했던 시간. 겨울, 졸업하기 전에 이별한 시간. 



 신카이 카나타는 사람이 아니었다. 흔히 인어라고 불리는 물에 사는 종족. 신비와 마법이 사라지며 인간의 세상에 발을 디딘 그는 인간을 사랑하여 그를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 그가 제 곁을 떠나는 것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길고 긴 삶을 사는 동안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고작 삼 년이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끝없이 피부를 물에 적셔야 겨우겨우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건 카나타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카오루가 살아서, 자신을 본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저를 사랑해주지는... 않지만요. 카나타가 느리게 눈을 내리깔았다. 돌이 닿는 뺨이 서늘하니 얼얼했다. 가장 첫 번째의 카오루는 카나타를 사랑했다. 시선에서, 태도에서, 어조에서 모두 티가 났다. 카나타 군, 하고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는 꿈에서 들어도 가슴 저릿하게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오롯하게 첫 번째 기억 속의 하카제 카오루였다.


 몇 번이고 다시 만나고 몇 번이고 그를 사랑했지만 카오루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잘 있어, 카나타 군. 또 보자. 안녕. 겨울날 전해진 이별. 담백하게 떨어지는 손길과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 모두 분명하게 애정이 빛나고는 있었다만, 카나타와 같은 색은 아니었다. 깔끔한 친애. 우정. 살아있다는 그마저도 감사했지만 처음과 꼭 같지 않은 감정 탓에 늘 되돌아왔다. 3학년의 봄. 처음 사랑을 시작했던 그 무렵. 


 이번의 카오루는 처음의 카오루와 가장 많이 닮아있었다. 가끔 다정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유독 달았다. 이번이라면 사랑해줄까요. 나를 좋아해줄까...... 의문을 품으며 카나타는 얕은 분수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뽀그르르 올라오는 물거품이 보글보글 위로 터져올랐다.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 아니다. 물 소리만 요란했다. 


“카나타 군!”


 아, 그리고 그 너머의 너. 카나타는 저를 건져올리는 카오루를 보았다. 물 속에서도 선연하게 보이는 황금빛 어른거리는 빛무리 너머로 카오루가 있었다. 당혹스러운 듯 미간을 좁히고는 걱정스럽게 저를 보는 모습에 부끄러울 정도로 기뻤다. 서른 여섯번째로 보는 봄의 네가 상냥했다. 드문 일이었다.


“카오루~.”

“빠져서 위험한 줄 알았잖아. 위험하니까 고개 정도는 내밀고 헤엄쳐달라고.”


 깜짝 놀랐네. 실없는 일이었다는 양 한숨을 내쉬며 머쓱하게 웃는 얼굴에 카나타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수대에 뛰어들어 젖은 옷을 그제야 짜내며 불평하는 모습까지도 좋기만 했다. 카오루, 카오루. 수백번의 밤과 수백번의 낮을 지나 서른번이 넘는 봄을 돌아 만난 이번의 카오루. 

 좋아해요. 좋아해주세요.

 차마 건낼 수 없는 말을 마음 속 깊이 삼키며, 카나타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는 늘 그렇듯 다시 사랑을 시작했으니, 이제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