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FGO] 여신과 노래

별빛_ 2018. 1. 24. 19:29

※ 제 칼데아에 존재하는 서번트들만 출현합니다. 마이칼데아 덕질용 글(..) 

※ 아마마리 커플링 성향 주의. 3장 뇌광과 여신 커플링 성향 주의 







 잔느는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파란 눈동자가 가만히 복도 한 쪽을 응시했다. 잔느와 나란히 걷고 있던 마르타는 다섯 발자국쯤 더 걷고 난 뒤에야 동행인의 부재를 깨닫고 몸을 돌렸다. 잔느? 마르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잔느는 마르타가 두 번 더 이름을 부른 뒤에야 그녀가 자신을 부른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 죄송해요! 정신을 차린 잔느가 급하게 마르타의 뒤에 따라붙자, 마르타는 잔느가 응시하던 방향을 저도 응시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잔느?"
"아뇨, 그냥. 기척이 조금 미묘하다 싶어서요."


 마르타 님은 별 느낌 없으셨죠? 잔느의 물음에 마르타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성녀는 지금 이 칼데아에서 부정한 기운에 가장 예민한 서번트들이었으나, 마르타는 크게 이상을 느끼지 못한 상태였다. 허나 자신의 감각과는 별개로 부드러운 보랏빛 머리카락 사이에 감싸인 하얀 얼굴에는 벌써 걱정이 깃든 뒤였다. 잔느는 현재 이 칼데아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레이시프트 경험이 많은 서번트였다. 첫 날 이곳에 온 열 두 명의 서번트 중 한 명이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니까. 

 그런 잔느가 무언가 이상을 느꼈다면 그는 방심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염려에 젖은 시선으로 뒤를 힐긋이다가 두 주먹을 조용히 움켜쥐는 마르타를 보며 잔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어두움 한 점 없는 화사한 미소였다.  


"별 일은 없을 거에요. 아마도."

"그런가요?"

"네. 애초에 저 방향은,"

"아하."


 마르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힘을 풀었다. 이 칼데아에는 사람도 서번트도 많이 없는 터라 서번트들이 각자의 위치 정도는 그럭저럭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 방향에 머무르는 서번트는 마리, 아마데우스, 에우리알레, 아스테리오스. 거기에 안데르센과 셰익스피어까지 합친 이 여섯 명. 조금 불안한 서번트들도 있었다만 마리가 있는 이상 괜찮았다. 에우리알레와 아스테리오스도 있었고, 아마데우스도 마리를 힘들게 만들 서번트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느껴진 건 가벼운 위화감이었지 불안이 아니었으니까. 잔느는 큰 고민 없이 마르타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서번트들의 작은 의견대립도 예민하게 느껴버린 쪽에 가까울 터였다.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한 마르타도 걱정을 떨쳐버리고 몸을 돌렸다. 부디카가 좋은 간식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그러게 말이에요. 메두사도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릴리와 키요히메는 이미 도착하셨다고 해요. 메데이아와 우시와카마루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거절받았고, 흐음. 형가와 엘리자베트는 올까요? 글쎄요, 그녀들은 잘 모르겠지만... 따끈따끈한 햇빛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보드라운 대화가 복도에서 점점 멀어졌다. 레이시프트가 없는 칼데아의 어느 한가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잔느가 느낀 미묘한 위화감의 원인, 동쪽 복도에서 거주하는 서번트들은 모두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지금 이 칼데아는 인간은 물론이요 서번트도 숫자가 많지 않은, 거의 비어 있는 수준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방 사이에 휴식공간처럼 만들어 둔 곳이 있었다. 동쪽 복도에 만들어진 방은 소파가 유독 많았다. 거기에 덧붙여 거주를 위해 침대가 놓여 있는 개인방과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가운데에 피아노가 놓여 있다는 점. 마스터가 서번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불러낸 직후 이 칼데아 어딘가에 내팽게쳐져있던 피아노를 주워 이곳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정작 그 아마데우스는 피아노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지만. 

 에우리알레는 아스테리오스에게 기대어 그 하얀 털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고, 셰익스피어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펜을 놀리고 있었다. 마리는 우아하게 홍차를 한 입 머금었다. 잔잔한 흥미와 무관심 사이에서 안데르센이 팔짱을 끼고 그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아마데우스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피아노를? 이 천재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왜?"

"소재가 부족해. 소재가! 영감이!"

 주먹에 힘을 준 안데르센이 눈썹을 가파르게 세웠다. 당장 특이점으로 레이시프트도 안 하지(물론 이건 몸이 편해서 좋았지만), 배경이라고는 바뀌지 않는 눈보라 천지에, 마스터는 새로운 서번트 소환을 삼가고 있는 상태였으니 요즈음의 칼데아는 변화 없이 부드럽고 온유하기만 했다. 몇몇 서번트들은 그런 현상유지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적응하고 지내고 있었으나, 몇몇 서번트들은 그러한 일정함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지루함을 어떻게든 떨쳐내기 위해 이미 복원이 끝난 장소에 마스터 훈련 겸 재료 수집 겸 놀러 나가는 서번트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표적으로 쿠 훌린 세 명이나, 로빈, 혹은 아라쉬 등이 있었다) 안데르센은 그렇게까지 해서 몸을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고정되어버린 다섯 명의 특이점 복원 멤버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피곤했다. 레이시프트 이외로 자신이 힘들지 않을 만 한 방식으로 영감을 얻고 싶었다. 그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는 늘 글을 썼고 마감에 시달렸다. 천재로 이름 높은 안데르센도 퍽 가련한 글쟁이였다. 그 모든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은 작가는 깐깐한 얼굴로 아마데우스를 못마땅하게 올려다보았다. 아마데우스는 형편없는 인간 쓰레기였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그 음악적 재능만큼은 진짜였으니까. 


 아마데우스는 고민하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에게 어떤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예쁘지도 않은 작가 선생을 위해 그가 피아노를 쳐야 할 이유도 없었다. 물론 이것저것 받아낼 것을 받거나 놀리거나 살짝 골려 주고 그 대가로 피아노를 한 곡 쳐준다면 그는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이겠지만. 아무 대가 없이 무료봉사를 할 바에는 차라리 마리와 왈츠라도 추는 게 백 배 쯤 행복하리라. 아마데우스는 반쯤 무의식으로 마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금 후회했다. 마리는 눈을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시선의 색을 아마데우스가 모를 리 없었다. 기대. 보석처럼 반짝이는 마리아의 기대. 


"와아, 아름다워요. 그럼 아마데우스의 노래를 테마로 한 동화가 나오는 건가요?"

"제대로 된 영감이 내려온다면 그렇겠지."

"Vive la France!"


 멋져라! 마리의 감탄이 터졌다. 아아. 아마데우스는 그 쯤에서 적당히 포기했다. 마리가 좋아한다면 아마데우스가 피아노를 칠 이유로는 차고 넘쳤다. 심술을 부릴 수도 없었다. 아마데우스는 그제야 굳이 서번트가 몇이나 모여 있는 이곳에서 안데르센이 부탁해 온 이유를 눈치 챘다. 셰익스피어는 진작에 알고 있었는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마리가 살포시 웃으며 아마데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데우스, 피아노를 쳐 줄 수 있나요?"

"마리아."

"어머, 당신 피아노 칠 거야?"


 묘한 곳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떨어졌다. 에우리알레였다. 아스테리오스의 어깨에 앉아 그 머리를 끌어안고 토닥여주던 여신이 작게 미소지었다.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사람들의 우상을 그대로 빚은 마냥 아름다운 여신은 그 존재만으로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스테리오스와 함께 있을 때의 표정, 둘 사이의 관계 따위를 따져보았을 때 저 여신 역시도 그럴듯한 뮤즈였다. 허나 이미 안데르센과 셰익스피어는 에우리알레와 아스테리오스를 뮤즈 삼아 몇 편의 작품을 써내려갔다. 

 아마데우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자리에 마리만 없었어도 안데르센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아마데우스를 위해 고대 로마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수집하러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마리가 있고 마리가 안데르센의 말에 기대를 가진 이상 다 틀렸다. 저번에 오케아노스로 한 번 같은 장난을 친 적 있어서 그런가, 안데르센도 철저하게 준비한 모양이었다.


 아마데우스는 결국 별 덧붙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의 천재가 피아노를 치겠다는 확답을 내리자, 여신이 기분 좋게 고개를 기울였다. 


"좋네. 기왕이면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곡을 쳐 줄래?"

"에우, 리알, 레. 노래, 해?"

"그래. 잘 듣고 감탄이나 하렴, 아스테리오스."


 여신과 괴물 사이의 정담을 들으며 두 작가는 저들의 뜻보다 좋게 굴러가는 상황에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아마데우스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 곡 위에 겹쳐지는 여신의 노래라. 이는 칼데아에 소환되었기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호사가 아닌가. 그는 제 음악이 여신의 노래에 묻히지 않으리라 자부했고, 두 노래는 조화를 이루는 순간 세상 여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축복의 일부가 될 터였다. 아마데우스는 에우리알레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로 추론해낸 결과 노래 한 곡을 선택한 아마데우스가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길고 반듯한 손가락의 끝에서 음악이 터져나왔다. 부드럽고 섬세한 피아노 소리가 네 마디 쯤 넘어가자 그에 맞춰 여신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에우리알레는 아스테리오스의 어깨에 앉아 온전하게 몸을 기대고 화려한 음색을 아낌없이 뽐내고 있었다. 마리가 황홀한 표정으로 뺨에 손을 얹었다. 안데르센과 셰익스피어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라 했다. 제 몸뚱아리에 달린 눈이 고작 두 개 뿐인 게 아쉬울 정도였다. 천재 음악가가 자아내는 노랫소리, 그 피아노 치는 모양새, 그를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응시하는 왕비, 노래하는 여신, 그 여신의 노래에 행복해하는 괴물. 어느 쪽이든 작가의 영감을 자극하고 뇌를 짜릿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글을 쓰러 책상으로 뛰쳐가고 싶었다. 

 노래를 마지막까지 들어야만 한다는 의지 하나로 곡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영감을 좀 더 짜릿하게 자극하는 뮤즈 쪽을 각자 응시하고 있던 두 사람은 곡이 끝나고 소리가 멈추는 순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들의 공동집필장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아마데우스는 어이없이 응시했다. 저들이야 원래 저런 자들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마데우스는 곧 시선을 마리에게 돌렸다. 마리는 지금까지도 감동을 느끼는 듯 눈을 감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아마데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만족하기로 했다. 덕분에 여신과 듀엣을 즐길 기회도 얻었고.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뺨을 발갛게 붉힌 리츠카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마데우스! 피아노 쳤지! 에우리알레도 노래했지!" 


 나도! 나도 가까이에서 듣게 해 줘! 마스터는 발을 동동 굴렸다. 둘의 노래는 칼데아 전역에 퍼졌으나 당연히 멀수록 잘 안 들렸다. 가장 황홀한 순간을 놓쳐버린 마스터는 아쉬움에 바로 달려와버린 게 분명했다. 그 말고도 노래에 흥미가 있는 서번트들이 하나 둘 모여들겠지. 아마데우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에우리알레를 돌아보았다. 여신은 입가를 가리고 능청스럽게 고민하는 척을 했다. 아마데우스도 그 모양새를 보고 똑같이 능청스럽게 고민하는 척을 했다. 안데르센에게는 실패했지만, 마스터에게는 여신이라는 공범도 있으니 좀 더 질질 끌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