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SP/NOVEL

[포케스페] 루비사파 17

별빛_ 2019. 3. 25. 00:07


보니까 작년 4월쯤에 루비사파 글을 썼고 또 재작년 12월에도 루비사파 글을 썼더라고요 약간 봄겨울 텀인건지 뭔지 아무튼 지금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고... 요즈음은 어떤 장르에도 큰 버닝상태 없이ㅠ 쉬는 중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다시 키보드를 잡게 만드는 너희를 사랑해 루비... 사파이어...... 오루알사 다시 읽어본 지금 둘은 정말 사랑을 하고 있었고 (이하생략



 * 




"그럼 끊는다?"


 에메랄드는 되돌아오는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지금 상대는 여러가지 이유로 머리가 꽉 차서 이쪽의 전화예절을 따질 상황은 아닐 터이니. 도리어 저가 끊지 않으면 저 쪽에서 먼저 끊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면이 어두워진 포켓기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소년은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의 우아한 행동거지를 이어가지 못할정도로 초조해졌다는게 눈에 선하면서 아직까지 헛소리를 하고 있는 루비의 모양새가 우습고 안쓰러워서였다. 

 온화하기보다는 부드러운 열기를 품고 있는 녹옥의 눈동자와 엷은 심록의 눈동자가 가만 마주쳤다. 혀나 끌끌 차는 에메랄드와는 달리 미츠루는 퍽 걱정에 젖은 모양새였다. 염려로 가득 차오른 다정한 시선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과자와 그 옆에 놓여진 에메랄드의 포켓기어를 향했다가, 부드럽게 올라와 에메랄드의 시선에 닿았다. 


"괜찮을까? 루비."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미츠루가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닿은 시선에 끝에 있는 사람은 소녀였다. 여인의 형태를 띄워가는 부드러운 몸의 실루엣이나 겨우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미츠루는 그녀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주변을 밝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화창하게 미소짓고 있으리라.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 평소의 그 사람이 아니었을 뿐. 미츠루는 턱을 괴고 먼 곳에 있을 루비를 속으로 불렀다. 루비, 지금 사파이어가 자기한테 고백한 남자한테 웃어주고 있다고. 정말로 괜찮아? 

 제 벗의 걱정으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미츠루와는 달리, 그와 꼭 같은 자세로 사파이어를 응시하는 에메랄드는 퍽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걱정은 무슨. 아직도 앳된 티가 남은 동그란 얼굴에는 이곳에 없는 상대를 향한 한심함만 잔뜩 묻어났다. 지금 사파이어의 곁에 서 있는 사내가 사파이어와 만나서 그녀를 좋아한다는 티를 내고 끝내 사파이어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들은 지금의 상황을 상세히 루비에게 보고한 것도 그였다. 


 루비의 반응은 겉으로는 참으로 한결같았다. 사파이어의 연인은 사파이어가 선택해야지. 나는 사파이어의 연인이 아닌 걸. 사파이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응원할거야.

 사파이어가 행복해진다면 누구라도, 좋아. 


 헛소리. 에메랄드는 코웃음을 쳤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미츠루. 우리는 쟤네들 구경하면서 떡이나 먹고 있으면 된다고."
"정말 그럴까나."


 어슴푸레 웃는 얼굴로 미츠루가 눈썹을 작게 찡긋거렸다. 그는 이제 숙련된 실력을 가진 유망하고 젊은 트레이너였으나, 그 얼굴이나 순한 시선은 여전히 갓 흙을 헤집고 솟아난 새싹과 닮아 있었다. 순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을 응시하며 에메랄드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한 긍정에 미츠루마저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안심될 정도로. 


"루비 걔는 자기가 좋은 남자인 척 하고 싶은 모양인데, 웃기지 말라지. 걘 사파이어 없이는 안 되는 글러먹은 놈이라고."


 긴 금발을 가지고 노는 후파를 손으로 슬쩍 밀어내며 에메랄드는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단어는 모두 적나라할 정도로 제 벗의 실체를 찌르고 있어서, 미츠루는 일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힘주어 삼킬수밖에 없었다. 소년의 말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줄줄 새어나왔다. 미츠루 본인은 몰랐으나, 에메랄드는 이 말을 꽤 오래 참고 있던 모양이었다. 불만과 약간의 비웃음, 하지만 흥미와 애정과 그 모두를 끌어안은 심술까지 덕지덕지 끌어안고 에메랄드는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쟤네 둘은 서로 없으면 안 될 것처럼 구는 바보 커플이니까, 기분 나쁠 정도로 찰싹 붙어있기나 하면 돼. 루비 걔는 지금은 아닌 척 그렇게 자기세뇌하고 있는 모양인데, 헛소리 말라지. 아마 일주일 안에 머리 박고 후회하다가 당장 날아온다는 데에 내 나무킹 잎사귀를 걸 수도 있어."

"역시 그렇겠네."

"걔는 보기보다 욕심이 많다고."


 에메랄드가 과자를 하나 입에 넣었다. 미츠루는 이제 걱정을 완전히 접어버리고 에메랄드의 입에서 나오는 뾰족하지만 상세하게 관찰한, 애정 넘치는 친구의 해석을 듣는 데에 집중했다. 에메랄드, 루비랑 사파이어를 엄청 좋아하는구나. 미츠루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버럭 화를 내고는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서 소년은 저가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삼켰다. 


"상대가 사파이어니까 점잖고 로맨틱한 흉내를 내고 싶은 모양인데, 루비는 그럴 사람이 못 돼. 멀리 떨어져도 사파이어가 행복하면 괜찮다니, 그건 사파이어가 루비한테 할 수 있는 말이지 루비가 사파이어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거든."

"그래?"

 미츠루도 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멀찍히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파이어에게 적당히 손을 흔들어준 에메랄드가 성의 없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심드렁한 시선은 꺼진 포켓기어의 화면 끄트머리를 의미없이 서성였다. 


"만약 노력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사파이어가 다른 사람 옆에서 서 있는 꼴 루비는 못 볼 걸. 걔의 대부분의 욕심은 다 사파이어한테 향해 있는데 될 리가 없지. 지금이야 사파이어가 루비를 좋아하고 있으니 잘 모르나 본데, 본인도 그거 깨달으면 아주 금방~ 금방~ 튀어올테니까 우린 걱정할 필요도 없어."

"그렇구나."


 두 녹안이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거울 너머의 상대를 응시하듯 가만 마주한 시선이 곧 개구지게 휘어졌다. 꼭 닮은 모양새로 미소를 나눈 둘은 여유롭게 차를 한 잔 마셨다. 사파이어가 다가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냐며 활기차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