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오토]Drop
그 날은 쌀쌀한 날씨에 그 해 처음으로 가디건을 걸치기 시작한 날이었다. 토키야는 바닥에 떨어져 천천히 말라 바스러지는 낙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을 닮은 선명한 붉은색이 인상적인 단풍잎에 토키야는 별 감상 없이, 그저 은행이 아니라는 것에만 작게 만족해할 뿐이었다.
정녕 그뿐인 감상을 속으로 남기며 붉은 잎들을 훑어 보던 토키야의 눈에 무언가가 담겼다. 결코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낯설 것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 그렇게 흙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그것이 믿을 수 없어 토키야는 몇 발자국 다가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전문가가 아닌 그의 눈으로는 그리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허리를 굽혀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얹어보았다.
놀랍게도, 비록 식어가고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따뜻했다. 그리고 오싹하리만치 선명히 제 존재를 알려왔다. 토키야는 단박에 그것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피. 사오토메 학원의 한적한 단풍나무 아래에서 발견하기에는 과할 만큼 연관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한 웅덩이나 되는 피였다.
토키야는 본인 스스로도 제 얼굴이 질려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당연했다. 비록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입학했다는 제법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결국은 아직 20살도 채 되지 않은 그였다. 그의 인생을 전부 통틀어 보아도 이토록 많은 피를 볼 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에서 보게 되었다는 충격은 생각보다 상당했다. 어쩐지 머리 한 구석이 찌르르 울리듯 아파왔다.
그리고 문득 그는 피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이상하리만큼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었지만 어설프게나마 흔적을 쫒을 정도는 되었다.
고민했지만, 결과는 나왔다. 온 몸에 고슴도치마냥 경계심을 얇게 두르고 그는 그 흔적을 따라 밟았다. 한 발자국 더 걸을 때마다 비릿한 피 비린내가 풍기는 듯 한 불쾌한 느낌에 그는 옅게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피 특유의 냄새에 코가 완전히 적응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특출나게 향이 짙어졌다는 것을 토키야는 깨달았다. 그리고 다섯 발자국 더 걸었을 때, 그는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단풍과 피를 섞어놓은 것 같은 지저분한 적색이었다. 아니, 사실 본색은 노을과 같은 고운 단풍색임이 틀림 없으리라. 다만 여기저기 얼굴 여기저기에 흐르고 굳은 피 탓에 그리 보였다. 옷 역시 전체적으로 붉은 색이 강한 차림새였기에, 언뜻 봐도 시선을 쉬이 땔 수 없는 상대임은 확실했다. 다만 토키야는 그와 다른 의미로 얼굴을 찡그렸다. 의외로, 그리고 놀랍게도. 상대는 토키야가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코 여기서 이런 말도 안되는 꼴로 있을 상대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토키야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상대가 토키야보다 몇 배는 더 놀란 듯 보였다. 검은 무언가로 입을 가리고 있어서 표정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휘둥그레 휩뜬 눈과 경악한 기색이 역력한 분위기는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옆구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음에도 상대는 벌떡 일어섰다. 그 행동에 고여 있던 피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것에 토키야는 소리없이 경악했다. 가장 큰 상처가 허리였을 뿐 온 몸이 자잘한 상처투성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뺨도, 팔도, 다리에도. 마치 칼과 같은 날붙이에 베인 듯한 엷은 상처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토키야에게 다가왔다. 상처의 고통이라고는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토키야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질리기까지 했다. 허나 그런 그의 심정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듯, 상대는 토키야의 손목을 붙잡았다. 경악할만한 악력이었다. 토키야는 순식간에 미간을 좁혔다. 팔에 힘을 주어 봤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토키야?"
믿을 수 없다는 듯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금 쉬어있었다. 토키야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 토키야는 정확히 한 시간 삼십 분 전에 상대를 보았었다. 그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피나 상처와는 전혀 연관없는 모습으로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그는, 아무리 봐도 오래되어 굳어있는 상처까지 여기저기 덕지덕지 굳어있는 모양새였다. 마치 당장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구른 사람마냥.
토키야는 가만히 자신을 붙잡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네가, 왜, 여기에, 여기는. 차마 문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말들을 띄엄띄엄 내뱉고 있는 상대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토키야는 가장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말을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꽤나 영리한 그는 눈 앞의 사람이 자신이 아는 소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몹시 닮은 사람이 아닐까, 비록 그 확률이 천문학적 숫자에 가까운 것은 알았으나 그 외에는 딱히 나올 결론이 없었다. 그렇기에 토키야는 그리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상대는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우에 홀린 것과 같은 표정일까.
빠르게 두 번, 천천히 다시 두 번. 시선을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면서 상대는 눈을 그리 깜박였다. 그렇게 바닥을 바라보는 상대의 표정이 어떤지 토키야는 알 수 없었으나, 다시 고개를 든 상대는 놀랄만큼 안정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이 본 표정이 꿈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만큼이나.
"내 이름은, 잇토키 오토야."
신분을 말하라면, 그저 그런 닌자. 만나서 반가워. 마지막 한 마디 덧붙여지는 말과 함께 자신의 손목을 놓는 상대를, 토키야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잔뜩이었다. 아니, 일단 눈 앞의 상대부터가 일단 비일상의 원인이자, 주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키야가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손이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조심스럽게 놓아주는 그 손길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애처로울 만큼이나 작게. 닿지 않았더라면 분명 몰랐을 만큼.
그것이 어쩐지 안정적인 표정으로 눈을 접어 웃고 있는 상대의 진심과 같이 느껴져서, 토키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