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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19 [카나카오+유성대] 추위




 카나타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잔뜩 어두운 표정에 지나치게 우울해진 모습은 평소의 유하고 부드러운, 물 흘러가는 것처럼 웃는 얼굴의 카나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틀림없이 천장에는 환하게 형광등이 반짝이고 있었다만 카나타가 틀어박힌 연습실 구석만 그림자가 지는 착각이 들었다. 심지어 컴컴한 기운이 꾸물꾸물 넓어지는 착각까지. 그런 카나타와 같은 유닛이라는 이유로 한 연습실에 있게 되어버린 유성대의 1학년들은 카나타의 반대쪽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울상이 된 미도리와 완전히 질린 표정의 테토라, 조금 겁에 질린 시노부는 소리없이 시선만으로도 대화를 나눴다. 입이라도 잘못 열었다가 상황을 악화시킬까 두려워 짧은 시간에 시선 대화라는 기술을 익혀버린 셋은 잔뜩 혼란을 겪고 있었다. 세 사람은 차라리 불처럼 타오르는 치아키가 간절히 그리울 정도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습에 조금 늦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슬슬 올 때도 되었는데...... 셋은 3초에 한 번씩 시계를 힐긋거렸다. 번갈아서 시계를 쳐다봐도 변하는 게 없으니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빨리 좀 오십쇼, 대장! 어서 와 주시오, 대장공~! 모리사와 선배...... 속으로 그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에 답례라도 하는 걸까. 치아키는 마치 히어로처럼 연습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모두들! 아하하하, 다들 착하게 연습하고 있었나?”

“어서 오십쇼, 대장!!”

“보고 싶었소이다, 대장공~!!”

“선배......!”


 음? 치아키는 평소와 다른 열렬한 환영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가슴 뜨겁게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막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려는 순간 셋에게 붙잡혀 어두운 기운 앞에 섰다. 음?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유성 레드는 머릿속을 빼곡하게 채우는 물음표와 함께 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이게 대체?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한 리더를 제일 앞세우고 세 사람은 열심히 항변했다. 어서 신카이 선배 좀 어떻게 해 주십쇼! 무, 무섭소이다! 화이팅......

 동료들의 뜨거운 응원을 뒤로 하고 강제로 기운 없는 카나타의 앞에 밀려 서게 된 치아키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카나타의 분위기가 워낙 우울하여 후배들이 겁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 유성대 3학년들은 제 권위를 내세우는 편이 아니니까, 가끔은 이런 식으로 반향이 오고는 했다. 카나타는 본디 존재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기도 했고. 치아키는 곤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했다. 


“저기, 카나타? 무슨 일 있는 건가?”

“......”


 카나타는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고 몸을 더 동그랗게 웅크렸다. 암묵적으로 보내는 거부의사에 치아키는 머리를 굴렸다. 카나타가 이토록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치아키가 딱히 짚이는 일이 없다는 건 유성대와 관련된 일은 아니라는 소리였고, 언데드와의 합동 라이브를 위해 방금 만나고 온 레이에게도 특별히 언질은 없었으니 기인 친구들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앓는 소리를 흘린 치아키는 반쯤 확신하며 물었다. 


“하카제와 관련된 일인가?”


 카나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동그랗게 떠진 연한 녹빛 눈을 보며 치아키는 씩 웃었다. 제대로 짚은 모양이었다. 치아키는 오늘 수업에 나왔던 카오루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카오루는 카나타보다 감정을 잘 갈무리하는 사람이었기에 (덧붙여서, 치아키에게는 카오루보다 카나타의 표정이 더 읽기 쉬운 점도 있었다) 방심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카나타? 하카제와 싸우기라도 했나?”

“......치아키이~!”


 허어엉. 치아키이. 카나타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곧 숨길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카오루가 저를 싫어하면 어떻게 해요. 눈물을 뚝 떨군 카나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참고 참던 서러움이 터져나오기라도 한 것 같은 눈물에 치아키는 카나타가 우울하게 있던 방금보다 훨씬 더 당황했다. 카, 카나타. 울지 마라. 하카제가 널 싫어할 리 없다. 쩔쩔매며 달래는 치아키의 옆으로 후배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열심히 카나타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물론 카나타가 왜 우는지 몰라 저가 잘못했다며 영문모를 사과나 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의 눈물로 넷이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삶아지는 상황을 겨우 벗어난 건 카나타가 가까스로 눈물을 그친 뒤였다. 조금 훌쩍이고 있기는 했지만 뺨의 물기를 닦아내고 진정한 카나타는 방금보다 썩 차분해져 있었다. 그러한 카나타를 앞에 두고 넷은 완전히 긴장해 있었지만. 말 조심하십쇼, 대장. 테토라는 치아키에게 잔뜩 눈치를 줬다. 울리면 안 돼...... 미도리는 우울해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흐아아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소. 시노부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치아키는 다시 한 번 총대를 맸다. 


“음, 카나타. 오늘의 하카제는 평소처럼 보였는데...... 무슨 일인지 물어도 괜찮은가?”

“카오루한테 차였어요...... 카오루가 저한테 화를 냈어요, 치아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하카제가? 찼다고? 아니, 화를 냈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카제가 카나타를 거절해? 치아키의 상식으로는 영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하카제는 가볍고 경박해보이기 쉽지만, 그가 얼마나 진지해질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카나타를 좋아하는지 치아키는 잘 알고 있었다. 카나타의 이야기를 하는 카오루가 얼마나 부드럽게 웃는지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치아키의 앞에서 카나타가 최대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울먹임과 서러움과 걱정 사이를 마구 비집고 튀어나오는 상황설명을 치아키는 최대한 간추리고 정리하려 노력했다. 유성대 대장의 입에서 간단한 한줄설명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얼음이 얼기 시작한 추운 날씨였는데 해변으로 데이트를 갔다가 하카제가 말리는 것도 듣지 못하고 물장구를 치는 바람에 하카제에게 혼이 났다는 건가?”


 카나타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엉. 어떻게 해요, 치아키. 다시 완연히 울상이 되어버린 카나타를 앞에 두고 유성대 네 사람은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이건 신카이 선배가 잘못한 건 같슴다... 이를 어쩌면 좋소. 으, 으음......! 치아키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카오루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건 결국 이런 의미였구나 싶었다. 카오루도 좀 토라지기는 했겠지만 본격적으로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지만. 이를 어쩐다 고민하기 시작한 유성대들 사이로 미도리가 살짝 손을 들어 물었다. 


“그, 그럼 차였다는 건 무슨 소리인지......”

“그건, 그으. 며칠 전에 카오루랑 다음에 같이 가자고 수족관 티켓을 줬는데, 반성 끝내고 다시 신청하라면서 돌려받아 버렸어요......”


 이걸 어떻게 하죠. 카나타는 품에서 깨끗한 수족관 티켓 두 개를 꺼냈다. 데이트를 이런 식으로 거절당한 건 처음이었기에, 카나타는 다시 한 번 풀이 죽었다. 카오루는 늘 카나타에게 지나치게 물렀다. 물론 그에게 화가 난 순간까지도 그랬다. 테토라는 입가를 가지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제 착각이 아니라면 화해하고 사과할 찬스까지 아예 손에 쥐어준 것 같슴다. 시노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럼 그거 들고 정말 잘못했다고 빌면 되는 것 아니오? 미도리가 생각했다. 와아...... 치아키가 호쾌하게 웃었다. 모든 고민이 사라진, 악의 수장을 물리친 정의의 히어로같은 미소였다. 


“그걸 들고 다시 하카제에게 데이트 해 달라고 말하면 되겠군! 아하하핫,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하면서 같이 가 달라고 다시 부탁하면 된다, 카나타!”

“그럴까요......?”

“그럼! 걱정하지 마라, 카나타! 하카제는 너를 정말 좋아하니까.”


 카오루가, 저를...... 카나타가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발갛게 색 물든 뺨은 울어서 부은 탓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사랑으로 행복해져버린 카나타의 등을 떠밀며 치아키와 테토라, 미도리와 시노부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소소한 사랑싸움이었다. 나머지는 카오루가 잘 해 줄 터였다. 넷은 그리 믿으며 카나타를 그에게 보냈다. 고마워요. 방긋 웃고는 카오루가 있을 곳으로 바쁘게 뛰어가는 유성 블루의 뒷모습을 보며 네 사람은 잠시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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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