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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17 크로스오버
  2. 2021.05.12 [진아라] 소화기
  3. 2021.04.23 단문 이것저것
  4. 2021.04.09 [진아라] 생일
  5. 2021.02.21 [진아라] 10000000 + 1
  6. 2021.02.18 [진아라] 북극성
  7. 2021.02.16 [진아라] 스토리 박스
  8. 2021.02.13 [진아라] AS 부탁합니다!
  9. 2021.02.11 [월트리] 아라시야마 부대
  10. 2021.01.24 [진아라] 루트 F

크로스오버

2025. 2. 17. 22:02 from WORLD TRIGGER/SS

 

월트리 칠대죄 크로스오버 보고싶다 이런 거 누가 보고 싶어해 네가 써야 해 그 자체 완전 코어 수준... 이런 거 누가 보고 싶어해 그쵸 나만 보고 싶어... 그치만 보고 싶어...

최근 월트리 버닝기간이었는데 그 사이 칠대죄를 보면서 칠대죄 좋지... 남에게 추천은 못해주겠지만 좋아... 나 다이앤을 사랑하는듯 아무래도 N년 전부터... 하면서 같이 불타올라서 이런 크로스오버 혼종을 보고 싶어진 듯 

 

 

칠대죄 시작을 인간과 인간 아닌 자들이 나뉘어있지 않던 아득한 고대의 이야기... 이런 느낌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칠대죄 이후 묵시록까지 끝나고 (아직 묵시록이 어떻게 끝날지 전혀 모르겠지만) 인간과 인간 아닌 종족의 세계가 나뉜 뒤 2~3000년의 시간이 흐르고 월트리 세계가 찾아왔다는 느낌으로... 칠대죄에서 생존자는 요정왕인 킹이랑 요정계에서 살고 있던 다이앤 정도? 엘레인도 요정이니까 살아있을 듯 일곱개의 대죄에서는 멜리오다스랑 고서까진 살아있을 것 같은데 멀린은 묵시록 스토리에 따라 생사가 참 묘연할것같아서 생략하고 반은 불사를 엘레인에게 줬으니 역시 인간이라면 이정도면 죽어주는 게 예의겠죠... 아무래도... 슬프지만...

 

트리온이라는 게 과거 마력 기관의 퇴화한 형태라던가... 요정계는 요정왕의 숲이 있는 행성 (지구엔 없고 난성국가로 떠돌아다니면 좋겠네) 과 아주 극소수의 교류를 할 뿐인데 요정이 쓰는 마법을 흉내내는 형태가 인간이 사용하는 트리온 사용의 근원이라거나 하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면 좋겠다 사실 인간도 마법을 사용했고 마력이 있고 성기사가 있었지만 전투가 사라지고 모든 건 천천히 퇴화하여 사라졌고... 과학이 발전하고 기록이 사라지고 전승이 변하며 과학으로 인간의 퇴화한 마력기관 (= 트리온 기관) 을 사용하는 법을 익힌 게 트리온체라거나... 

사이드 이펙트는 그 퇴화된 마력기관 중에서도 조금 강한 사람들 (그리하여 트리온량이 많은 사람들) 이 자신의 마력을 살짝 깨운 형태인거지... 하지만 퇴화한 기관이기에 고대 성기사들처럼 자유자재로 조절이 불가능해서 사이드 이펙트라는 부작용 형태로 남는 거고... 

 

아무튼 이런 설정 아래 칠대죄와 월트리를 같은 세계관으로 묶은 상태에서 게라드의 환생체를 지금도 지키고 있는 오슬로 환생체 관계인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쥰을 보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너무 그뭔씹이라서 적으면서도 부끄럽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분명 이걸 맛있어할걸... 이건 오슬로 환생체가 아직 묵시록에서 등장하지 않은 2025년 2월 중순에 기록된 기록입니다... 미래엔 부끄러울거야 그렇지만 이 순간의 조온습을 즐거야하기에 꿋꿋하게 적는다... 보고싶다... 오슬로가 三눈을 하고 있잖아 그런 눈이 월트리에 너무 많이 나오잖아 환생체여도 괜찮을 것 같잖아 어쩔 수 없단 말이야 

 

시작은 아라시야마가 오슬로였는데 지금 적으면서 생각해보면 진이 오슬로인쪽이 좀 더... 그럴듯한가? 둘 다 나쁘지 않은듯... 게라드도 초대 요정왕의 여동생급인 고위 요정이라서 세계가 분리되고 난 뒤 거의 3천년이 지나서야 수명이 다해서 사망하고 미카도 시에 소년으로 환생하는데 이제껏 내내 바로 환생하지 않고 게라드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오슬로가 그제야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하면 좋겠다... 마엘의 마법으로 오슬로는 1턴은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 가능한 버프를 들고 있었기에 오슬로는 과거 3천년 전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는 어린 인간이고 게라드는 요정이었던 전생은 꿈에서도 상상 못하고 있는 소년이 된다... 아 역시 오슬로가 진이고 아라시야마가 게라드인쪽이 좀 더 대입이 쉽네...

 

이 망상의 시작은 아라시야마(=오슬로)는 예전에 종종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진이나 카자마 타치카와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사실 자기는 전생에 요정을 지키는 강아지였다는 말을 해뒀었고 대부분 그걸 농담으로 받았었는데 그 중 사토리만 믿는듯 아닌듯 그래도 멋있어요! 하고 외쳐줘서 아라시야마가 사토리에게만 좀 더 자세한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랑... 킹에게 요정어로 편지를 써서 부디 내 동료들이 무례하게 굴었더라도 내 얼굴을 봐서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내용을 적어 원정을 가는 사토리에게 맡겼다가 요정왕의 숲에서 트러블이 일어났을 때 킹이 원정 멤버들의 마음을 읽고 사토리가 전해 준 편지까지 확인한 뒤 월트리 멤버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씬에서 시작했는데... 이 설정일 경우 진이 먼저 태어나고 아라시야마가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게라드의 환생을 확인하고 오슬로가 환생했다는 점에서 납득이 쉬워짐 

 

적다 보니 역시 진이 오슬로고 아라시야마가 게라드인쪽이 좀 더 대입은 쉽다... 계속 아라시야마를 지키고 있었고 동생을 사랑하는 장남 포지션이 되었다는 점에서 예전에 여동생으로서 오빠를 흠모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는데 이번에는 예언의 마력 (이제는 사이드이펙트지만) 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지금 시대 인간은 무척 약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컸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생이 요정왕을 지키던 정령이었어도 지금은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구나 하면서 현생과 전생 밸런스를 다시 맞추기도 하고 그랬을 것 같네.... 이쪽 설정도 괜찮으니 어느 쪽이든 맛있는 쪽을 골라 상상해 먹어야지 

 

하지만 결국 보고 싶은 건 난 3천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로우 죽고 오슬로가 태어나서 게라드를 지킨 시간만 거의 3천년 가까운 시간이었던 것 같고) 너를 지켜왔다고 하면서 농담하며 웃는 진이랑 거짓말같진 않지만... 하면서 잠시 눈을 깜박였다가 나도 그랬을 거야. 하고 웃어버리는 아라시야마가 보고싶은거다 진아라의 한쪽만 알고 있지만 사실 거의 6천년 묵은 연애사가 보고싶다 겸사겸사 게라드도 환생해서라도 제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요정공주는 행복해져야 할 권리가 있는데... 

 

그리고 킹이랑 디안느가 부부세월 3천년 보내서 농익은 부부 된 것도 너무너무 보고싶어 킹이랑 오슬로 환생체랑 느긋하게 마주 앉아서 오슬로가 환생하지 않았던 3천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묵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너무 보고싶네... 오슬로 환생체 묵시록에 나와서 행복해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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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라] 소화기

2021. 5. 12. 00:38 from WORLD TRIGGER/NOVEL

 

  진 유이치가 화가 났다.

 

  분노에 순서대로 별을 붙여서 강도를 나타낸다면 이번엔 분명 별 다섯 개 짜리 분노였다. 흔히 말하기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진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애초에 감정이 격렬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끓어오르기보다는 가라앉는 사람이었으며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의 탓인지 애초에 화날 일을 자주 마주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진 유이치는 자신의 위치와 입장,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갈무리해서 정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별 다섯 개짜리 위험인물 진 유이치를 멀찍이서 힐긋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강도로 놀란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 저렇게까지 화난 진을 처음 보거나, 아주 오랜만에 봤다. 

 

  그만큼 진의 분노는 드물었다. 그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 역시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을 만큼 드물었다. 화내는 진 유이치라니. 평소 애초에 없거나, 별 한 개로 끝나고는 했다. 아니면 그 분노의 목적이 이쪽이 아니거나. 그렇기에 잔뜩 저기압으로 화가 나서,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힌 채로, 가끔 쯧 하고 혀도 차는 진 유이치를 어떻게 해야 평소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짜증날만큼 여유로운 진 유이치로 되돌릴 수 있는가 모두 고민에 빠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끼리 눈빛과 통신으로 답을 찾았으나 영 괜찮은 답은 나오지 않았다. 턱을 괴고 공기중으로 제 불쾌함을 풀풀 풍기다가, 머리를 몇 번 벅벅 긁고는 또 짜증이 가득한 우울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진 유이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진이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게 좋았다. 저 상태의 진 유이치가 유지되어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진 유이치가 화가 났다. 이유는 모른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다른 대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그는 몇 없는 S급 대원에, 구 보더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경력 긴 대원이자,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으니까. 

 

  어쩌죠? 애초에 왜 화난 거야, 저 놈은. 글쎄요, 그런 걸 말해줄 상태도 아닌 것 같고...... 누가 가서 화 풀릴 때까지 개인 랭크전이나 하는 건 어때? 아까 타치카와 씨가 갔다가 한 방에 거절당했어요. 움직이고 싶지도 않나 봐요. 타마코마에 연락해 봤어? 해봤는데, 그 쪽도 잘 모르겠대. 지부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다더군. 그럼 본부에서 화날 일이 있었다는 건가? 무슨 일이 있어서 화가 난 건데? 도돌이표잖아.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존재만으로 저 녀석을 비교적 원래대로 되돌릴만한 상대를 불러 와. 누구? 타마코마 후배들은요? 진 씨가 후배들 앞에서 저렇게 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겉으로라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연락은 해 봤어. 미쿠모는 가족 일정이 있고, 아마토리는 에마와 C급 대원 친구와 같이 나갔다더군. 쿠가는 휴스랑 요타로랑 같이 보호자 코나미를 동행하고 외출. 카라스마는 아르바이트 갔고. 하필 타이밍 참.

  ......어쩔 수 없지. 대원들은 그들 중 대표에 가까운 사람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대사에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카자마 소야가 팔짱을 끼고 최후의 보루를 입에 담았다. 

 

"아라시야마한테 연락해. 미안하지만, 일 끝나고 본부로 곧장 와 달라고."

 

 

 

 

  아라시야마 부대는 오늘 아침 일찍부터 빡빡하게 홍보 일정이 잡혀 있었다. 중학생 대원 키토라가 끼어있어서 겨우 저녁 10시까지. 그러니 보더 대원들은 그에게 굳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다른 부대들은 청소년이 다수인 만큼 아무리 길어도 7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보더에 7시간 이상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건 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훈련을 하는 경우였고, 다들 그건 노동이 아닌 놀이나 자기계발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보더 내부도 아닌 외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하는 홍보 부대, 아라시야마 부대는 이리저리 떠안고 있는 부담이 컸다. 대장인 아라시야마는 분명 마지막까지 대원들을 집에 데려다 준 다음에야 퇴근할테니까. 그러니 보더에 있는 그들은 굳이 아라시야마를 불러 오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그들끼리 진 유이치를 해결하고 싶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태산같은 진 유이치의 화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뭘 하든 틱틱거리기만 하니 보더 분위기가 이보다 더 심각하게 나빠지기 전에 히든 카드를 부를 수밖에. 부르면 분명 와 주리라는 것도 알았다.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아라시야마에게 빚을 마음 속에 하나 달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 빚은 진이 갚아 줄 거다. 불합리하고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였다. 

 

[진이 말인가요? 보더에서 화를 낸다고요?]

"그래. 상태가 좀 심각해."

[화를 내고 있어요? 지금도?]

"믿기 힘들겠지만. 최대한 빨리 원상복구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일이 끝나고 바로 보더 본부로 와 줄 수 있어?"

[본부로 말인가요?]

"꼴사납게 화가 나 있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멀쩡해질 때까지 보더에 있거나 암약이나 할 겸 밖을 어슬렁거리겠지. 여기 잡아두마."

[부탁드려요, 카자마 씨. 최대한 서둘러 볼게요.]

"그래."

 

  믿음직한 대답에 카자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못마땅한 표정의 진이 서 있었다. 역시나 드문 일이었다. 평소 표정이 반대인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허나 화난 진을 보고 불안함 따위를 느끼기에 카자마는 많은 역경을 스스로의 근성과 노력과 능력으로 넘어온 소형이고 고성능인 완벽한 남자였기에, 그는 무심하게 진을 응시했다. 

 

"아라시야마가 오는 미래를 봤어. 카자마 씨, 비겁해."
"제일 합리적인 길을 고른 거야."

"난 아라시야마 때문에 화난 거라고."

  이건 좀 의외다. 카자마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의외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언제나 진 유이치를 평소와 다르게 고장내는 건 늘 아라시야마였다. 불쾌할만큼 싱글벙글하는 진도, 어처구니 없을 만큼 풀이 죽은 진도 아라시야마가 만들어내고는 했으니 잔뜩 화가 난 진 유이치도 만들 수 있겠지. 그는 유연하게 생각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ㅡ 으로 시작되는 6가지 질문 중 충족된 건 '누구' 하나밖에 없었지만 카자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라시야마랑 만나서 해결해."

 

  그리고 화난 게 아라시야마 때문이라면 그를 부른 카자마의 행동은 역시 정답이다. 카자마는 한 번 가볍게 코웃음치고는 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나머지는 아라시야마가 알아서 해 줄 터다. 

 

 

 

 

  진은 턱을 괴고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카자마가 단단히 못을 박고 간 뒤로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한 풀 줄었다. 이제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라도 해 준 모양이었다. 카자마 씨 말이라면 누구나 믿을테니 안심하고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간 거겠지. 아라시야마가 올 때까지 진이 도망가지 않도록 몇 명 정도는 감시역으로 붙어있지만, 진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당장 붙잡히는 미래가 보이니 굳이 고르지 않기로 했다. 다른 대원들에게 뒷덜미가 붙잡혀 놓아달라고 두 손 들고있는 모습을 아라시야마가 목격하는 미래가 참으로 선명했다.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 멀쩡하게 앉아서 여전히 화내고 있다는 걸 어필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가지 말라고 미래가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진이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새벽녘, 아라시야마가 출근하기도 전 코로의 산책에나 어울려 줄 겸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해가 겨우 뜨기 시작하는 시간에 나가서 아라시야마를 만났다. 그리고 가장 확률이 높은 아라시야마의 미래가 언제나처럼 그 앞에 비췄다. 아라시야마의 미래는 확률적으로 행복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객관적으로 운이 좋은 사내였다. 아주 좋은 하루일 경우가 3할, 평범하게 좋은 하루일 경우가 6할,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하루일 경우가 1할.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1할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최악이었다. 아니, 최악일 예정이었다. 새벽같이 아라시야마의 얼굴 한 번 보자고 잠을 포기하고 나온 진은 가장 확률 높은 미래에서 아라시야마가 날계란, 혹은 뺨을 맞는 것까지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피할 수 있는 미래다. 피할 수 있는 미래인데. 진은 이미 거기서부터 조금 화가 났었다. 안티 보더는 어디에나 있었고, 일정 부분 진 역시도 할 말 없게 만드는 합당한 주장과 의견이 있었기에 그들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늘 보이는 미래는 달랐다. 아라시야마를 공격하는 상대가 원하는 건 합의나 토론,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이 아니라 모욕과 그 모욕으로 터져나올 만한 젊은 패기와 분노. 건방지고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을 행동거지들이었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아라시야마는 무척 부당하게 곤욕을 치루는 주제에 후배들을 감싸고 저 혼자 그걸 모두 받고 참았다. 아니, 참을 예정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미래가 보이는 진만 아는, 속이 터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릴 일이었다. 화가 났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라고 해도 화가 나고 서러웠다. 그런데 아라시야마는 말하기도 힘든 걸 겨우겨우 설명해준 진의 말을 듣고 참으로 여상하게 되묻기만 했다.

 

'그 미래를 피하면 보더에 다른 불이익은 없을까?'

'아라시야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미래가 얼마나 험악한데 무슨 보더의 불이익을 따져. 그렇게 따지면 네가 다치는 게 제일 큰 불이익이라고.'

'홍보부대라고는 하지만 나도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으니까. 그게 공개되면 보더 쪽이 훨씬 동정적 여론도 받을 거고. 물론 우리 대원들이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건 조금 곤란하기는 하겠지만, 조금 참아주고 보더에 이익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참아도 괜찮은데.'

'......난 안 괜찮아.'

 

  진 유이치는 바로 거기서 정말 화가 났다. 별 다섯 개 짜리 화남 상태 진 유이치를 탄생시킨 건 바로 이 아라시야마의 진심 어린 말이었다. 그리고 정말 분한 건, 그런 아라시야마에게 진은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점이었다. 청년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제 자신보다 보더의 안위를, 그리고 그로 이어지는 전체의 안전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건 진도 아라시야마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라시야마에게 있어서 보더는 굳건할수록 좋다. 그게 곧 그의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과 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니까. 진에게도 마찬가지. 진은 언제나 불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가꿨다. 모두가 다치지 않고 행복한 세상은 진이 보는 시야에서 가장 멀지만 진이 제일 꿈꾸는 미래였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줄세우다보면 진도 아라시야마도 자연스럽게 제 자신은 가장 뒤에 두기 마련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머리로 알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제 순서를 계산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존중을 물 흐르듯 생략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은 속이 상했다.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주제에서 두 사람은 절대 서로를 이길 수 없었다. 꼭 닮아 있었으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속상하다고 말하고 화내면 아라시야마는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겠지만, 언젠가 진은 비슷한 상황에서 꼭 같은 결론을 내고 행동해버릴터다. 그 때 아라시야마는 슬퍼할지언정 진에게 화내지 않을테니 진이 여기서 화내는 건 공평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았다. 머리로는.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머리로만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감정이겠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겠지. 고작 인간인 진은 아라시야마가 신경 쓰리라는 사실을 보았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덧붙이는 말 없이 새벽에 그렇게 아라시야마와 헤어져버렸다. 그리고 보더에 와서 꼴사납게 제 분노를 허공에 쏟아냈다. 계속 제 안에 고아두었다가는 언제 어디에 쏟아부을지 몰라 무서웠으니 영문 모르고 진의 분노에 놀랄 사람들에게 미안했으나 별 수 없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미래에서 아라시야마는 가장 확률이 높던 미래를 피하고 안전하게 오늘의 일을 끝마쳤다. 새벽에 진을 만났다가 그렇게 헤어진 탓이지만, 진은 미간만 한 번 좁히고 말았다. 아라시야마가 육체적으로 고난을 겪을 미래는 이제 진과 아라시야마만 아는 과거가 되었는데도 속에 응어리 진 것은 그다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끝내 아라시야마가 달려올 때까지 진은 입을 꾹 다물고 보더 라운지의 한 자리를 지켰다. 그가 상냥하게 제 자신을 달래주면 아무리 계속 화내고 싶어도 결국 물에 들어간 솜사탕처럼 약해질 제 자신을 알았다. 이미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이치, 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옆에 바짝 앉은 온기에 벌써 한 풀 꺾였다가, 손을 잡으며 다음부터 조금 더 조심하겠다며 속삭이는 말에 녹아버리겠지. 문제의 근본은 둘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결국 눈 감고 눈앞의 달콤한 사실만 먹고 넘겨버릴 터다. 그 사실에 진은 조금 슬퍼졌다. 내가 죽어서 앞으로 오래오래 무사히 끝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닥치면 나도 너도 스스로를 던져버리겠지만, 진은 좀 더 이기적이게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만큼은. 나는 늘 그런 사람을 사랑했고 그런 사람이라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두 명이나 잃은 진 유이치는 마지막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진!"

 

  라운지로 들어오며 곧장 자신을 찾아 달려오는 연인의 조금 가쁜 숨과 걱정 어린 눈을 보며, 진은 눈썹을 한껏 내리며 속으로 서글픔을 삼켰다. 아직 보이지도 않고 찾아올 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서글픔을 느끼는 건 미래를 보는 진 유이치의 별 수 없는 성품이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서글픔에서 눈을 돌려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아라시야마 쥰의 성정이었기에. 곧장 달려온 아라시야마가 흘러내리는 걱정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진의 손을 잡아 제 뺨에 대는 모습에 진은 조금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진의 표정이 안 좋다는 사실에 모든 걸 잊고 걱정하는 아라시야마가 좋았다. 이미 우울 속에 흔적도 없이 소강된 분노를 꺼내오는 대신 제 손에 닿은 아라시야마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며, 진이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그래, 또 다시 눈을 돌려 슬픔이나 우울 대신 너를 보고 있어야지. 그럼 뭐든지 괜찮을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이 슬쩍 찾아와 제 주변을 살짝 돌아다니는 것도 같았다. 위험한 미래 따위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대책 없고 막연한 믿음. 팔을 뻗어 아라시야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진은 깊은 숨을 뱉었다. 제 머리를 끌어안아 느리게 쓸어주기 시작하는 온기에 제 온몸을 맡기며, 그는 이곳이 보더 라운지라는 사실도 과감하게 눈을 감아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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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단문 이것저것

2021. 4. 23. 23:52 from WORLD TRIGGER/NOVEL

HL~ BL~ GL~ 다 섞여있는 좋아하는 커플링 단문 길이도 자유 잡다함 주의

 

 

 

 

 

01. 요네키토 

 

 

 야, 슈지. 큰일났다. 나 좋아하는 애가 생긴 것 같아. 

 

 요네야 요스케는 마치 세상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친구의 얼떨떨한 사랑고백을 듣게 된 미와 슈지는 그 당혹스러움이 고스란히 옮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껌벅였다. 순간적으로 '큰일났다' 는 문장과 '좋아하는 아이' 사이의 연관점을 즉각적으로 찾지 못한 탓이었다. 개인 랭크전밖에 모르는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는 요네야가 사랑이라니, 무척이나 어색하긴 하지만 그도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지 않은가. 좋아하는 아이 하나쯤은 생겨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보더에 재직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보다 일을 선택할 것 같은 구석이 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 금지인 조직도 아니고...... 지나가는 대원을 잘 잡고 캐물으면 남모를 사랑을 품에 안고 있는 대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는 평소답지 않게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왜 큰 일인데?"

"아니 그게,"

 

 제 부족한 설명을 그제야 깨달은 요네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버린 그의 표정이 다채롭게 순서대로 변화하는 모습을 미와는 조금 신기하게 구경했다. 곤란한데, 아니 그렇지만 말은 해야, 아 근데...... 쪽팔린데. 표정에 그렇게 써 있다. 요네야가 저토록 선명하게 표정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꽤 드문 일인지라, 미와는 퍽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래서 귓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요네야가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모양새를 너그럽게 기다려주었다. 자존심과 수줍음과 고민 사이 어드메에서 요네야는 한참을 해메는 모양이었다.  

 

"그게 말이지, 슈지."

"응."

 

 한참 고민하던 요네야가 마음을 정한 표정으로 미와를 응시했다. 

 

"나, 아무래도 키토라한테 반해버린 것 같은데. 나 어쩌냐."

 

 미와는 3초쯤 이 키토라가 누구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약간 요네야의 심각함이 옮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키토라가 아라시야마 부대, 키토라 아이?"
"......엉."

 

 눈이 높다고 해야할지, 꿈이 크다고 해야할지. 미와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친구의 의리로 삼켜줬다. 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라시야마 부대 소속 대원들은 하나같이 보더의 절벽 위의 꽃 아니던가. 가장 가볍고 말랑해보이는 사토리조차도 자신이 홍보부대라는 날카로운 인식이 박혀있어 그들이 생각치도 않는 부분에서 조심하거나 피하는 구석이 있었다. 헌데 그중에서도 제일 원칙적인, 그리고 막내인 키토라라니. 나쁜 상대는 아니겠지만 미묘한 반응을 돌려줄 수 밖에 없는 상대였다. 애초에 홍보부대인데 연애라는 걸 할 수는 있나? 미와는 의문에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보더 대원들은 모르지만, 그들에게만 해당될 암묵적 규칙이 백 개쯤 있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 아이돌보다 빡빡하게 지내고 있을텐데. 뭐, 대장이 아라시야마인 이상 대원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응원하면 응원했지 안된다고 할 것 같지 않으니, 일단 그 부분은 넘겨두기로 하고 미와는 다른 것을 고민했다. 

 키토라. 키토라인가...... 팔짱을 낀 미와가 잠시 생각했다. 요네야는 고등학생이고 키토라는 중학생이지만 고작해야 두 살 차이. 내년에 키토라가 진학하면 같은 고등학생이 되니까 큰 문제는 없을 터다. 외형, 키토라 쪽이 훨씬 미인이지만 제 대원이자 친구인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요네야도 못나지 않았으니 됐다. 미와는 기울어진 저울로 열심히 균형을 쟀다. 성격. 연애를 한다면 요네야가 키토라를 잘 받아주니 나름 균형은 맞을 듯 한데...... 문제는 여기였다. 미와는 이마를 짚고 요네야를 보았다. 

 

"앞으로 어쩌고 싶은데?"
"그야...... 기왕이면 연애?"

".......널 좋아하게 만들 방법은?"
"도와주십쇼, 슈지 님."

 

 그걸 모르니 이걸 말했지. 요네야는 미와의 어깨를 든든히 잡았다. 친구 좋은 게 뭐란 말인가. 미와는 대번 부담스러워졌다. 네이버 사냥만 목표로 삼고 달리던 삭막한 인생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분홍색에 미와는 체할 것 같았다. 제 분홍이 아니고 친구의 분홍이라 겨우 참아줄 수 있었다. 빈말로도 미와와 키토라는 친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둘 사이를 묘사하는 제일 적절한 단어는 직장동료 정도였다. 아니면 아는 사이.) 그런 미와조차도 키토라의 성정을 대충 알았다. 네이버를 생각하는 사상을 전부 제치고 순수하게 성격만 따져보면 미묘한 부분에서 미와를 조금 닮은 구석도 있었다. 조금 까칠하고, 하지만 소중하게 여길 건 제대로 소중하게 여긴다. 신뢰할 수 있는 선배에게는 정중한 편이다. 배짱도 있고 실력도 있...... 아니, 이건 전투 관련으로 넘어가잖아. 미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가 뜨며 요네야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이거 비밀이야?"
"어...... 고민 중?"
"미와 부대나 이즈미 불러서 다 같이 상의하기 부담스러워?"
"으으음~."

 

 저 혼자만으로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애초에 일 대 다수가 훨씬 더 승률이 높다는 건 보더의 기본 전략 중 하나였다. 네이버가 관련되면 머리가 뜨거워지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미와는 냉정하고 유능한 A급 부대 대장이었다. 그는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연애 소식에 다른 놈들이 도움이 될거라고는 사실 그다지 확신이 안 들었으나 이즈미는 사토리랑 친했고, 미와 부대를 부른다면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제 오퍼레이터 츠키미 씨는 믿을 만 했다. 보더는 가로선, 즉 동갑내기끼리 친하게 지내는 구석이 있었고 츠키미 씨는 아라시야마와 동갑인데다가 입대시기도 비슷하니까. 즉, 이리저리 찔러 볼 가장 유력한 구석이라는 소리다. 

 고민을 끝낸 요네야가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미와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무척이나 사적인 이유였다만, 미와 부대 대장의 이름으로 전 대원에게 귀환명령을 내릴 순간이었다.

 

 

 

 

 

 

02. 무라>콘<쿠니 

 

 

 타치카와 케이와 쿠루마 타츠야는 곤란한 시선을 공유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고 (보더에서 기본적으로 동갑내기란, 우선 친구가 되기 아주 좋은 조건과 거진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자비로운 쿠루마는 타치카와의 허술한 부분까지 대단하다고 진심어린 칭찬을 할 수 있는 배포가 있었다. 둘은 꽤 좋은 친구였다. 그러니까, 음. 이런 황당한 부분으로 이런 갈등답지도 않은 감정적 곤란함을 겪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엇다. 별 수 없는 사랑의 작대기 속에 아주 관계없으나 아주 곤란한 제 3자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참으로 머쓱한 시선을 열심히 공유했다. 주변에서 안타깝다는 듯이 보는 동갑내기 놈들의 시선은 덤이었다. 

 

 이 덜 큰 꼬맹이들이 어울리지도 않게 사랑과 전쟁 같은 걸 찍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타치카와는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대장인 저들조차 사랑과 관련 없는 건전한 삶을 살고 있건만 아직 열 여덟 살 먹은 고등학생들이 무척 곤란한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타치카와가 턱을 괴고 테이블에 과자를 하나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게 그. 콘 쨩이라면,"

"응."

 

 타치카와가 이번에는 아몬드를 하나 들어 과자 옆에 내려놓았다. 

 

"무라카미가 얘를 좋아한다고?"

"응, 아마도......"

 

 보더에서 대장이 대원을 보는 분석은 대체로 정답이기 마련이었다. 쿠루마라면 더더욱. 무라카미가 감정을 숨기는 데에 능숙한 녀석도 아니니 아마도 무라카미는 정말로 제 부대 오퍼레이터에게 연분홍빛 풋사랑을 하고 있으리라. 타치카와는 골치가 아파서 얼굴을 감쌌다. 물론 타치카와가 두 살이나 어린 오퍼레이터에게 발칙한 마음을 품어서 곤란한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얼마든지 뻔뻔하게 나갔으리라. 허나 그에게는 그보다 백 배 쯤 곤란한 이유가 있었다. 타치카와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두 번째 아몬드를 들어 과자의 빈 쪽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우리 쿠니치카도 얘를 좋아하거든."

"응......"

 

 타치카와가 부대실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이름이 바로 이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여자아이들끼리의 우정이겠거니 여겼으나 이젠 안다. 아니었다. 쿠니치카는 진심으로 콘을 좋아했다. 고등학생이 품을 수 있는 따뜻하긴 한데 가끔 데일 것 같은 발칙함과 욕심이 가득 섞인 사랑이었다. 타치카와는 무라카미보다 쿠니치카 쪽이 머릿속으로 굴려 본 생각이 더 불건전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헐렁하고 여유로워보여도 그녀 역시 A급 1위 부대의 딱 하나뿐인 오퍼레이터. 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이머이기도 한 그녀는 진심으로 온몸을 던져 전심전력으로 콘 유카에게 어택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잘 안 통했지만. 

 쿠루마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여운 오퍼레이터를 향한 귀여운 부대원의 사랑이 귀여워 응원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살짝 도와주라고 친구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얘기를 꺼낸 것 뿐인데 설마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 부대원을 향한 사랑의 라이벌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쿠니치카 씨도 참 좋은 아이인데. 하지만 스즈나리 제 1 부대의 대장인 쿠루마는 당연히 무라카미의 편이었다. 타치카와는 당연히 쿠니치카의 편이었고. 두 사람은 잠시 머리를 붙잡았다. 

 

"......어이, 니들이 지금 우리를 동정어린 눈으로 볼 때야? 니노미야 너는 이누카이한테 전화라도 해서 라이벌 추가 주문 들어오는 거 아닌지라도 물어봐야 한다고."
"뭣,"

 

 그리고 못마땅한 불만 섞인 조언에 열 여덟 살 대원을 데리고 있는 또 다른 스무 살 대장이 어깨를 굳혔다. 급히 니노미야가 휴대전화로 연락을 넣는 모습을 보며 열 여덟 살 대원이 없는 카코와 츠츠미는 조금 여유롭게 흥미로운 관계성을 응시했다. 저들도 모르는 사이 두 살 아래에서 재미있는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콘은 카코 부대에도 들어올 수 있는 인재라서 카코도 잘 알고 있었다. 귀엽고 똑부러진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무라카미와 쿠니치카. 보더에서도 굴지의 어태커와 손꼽히는 오퍼레이터의 마음을 모조리 빼앗아가다니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쿠루마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은 본인이 뭘 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지만. 

 

"츠츠미 군은 누구 편?"
"음, 무라카미 쪽일까."
"나는 쿠니치카 쪽 편을 들어볼건데."

 

 쿠니치카 역시 훌륭한 K다. 무척 귀엽다는 뜻이다. 카코가 빙긋 웃으며 머리를 맞대고 한숨을 쉬는 두 동갑내기들에게 새로 채운 맥주잔을 내밀었다. 니노미야가 위로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삼각관계에 새롭게 한 축으로 포함될 사람은 현재 열 여덟 살 중에는 없다는 이누카이의 전언을 건내주는 것과 동시였다. 

 

 

 

 

 

3. 후유<토마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이다. 그리고 감정 하나 참 오래 간다. 열 여덟 살 대장에게 사랑에 빠진 토마 이사미는 이제 내년이면 그 시절 대장과 동갑이 된다. 십 년의 짝사랑은 참 길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후유시마를 좋아했다. 처음엔 대장이 미성년자의 마음을 받아 줄 리 없다는 걸 알아서 참았다. 그 다음은 대장으로서 대원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걸 알아서 참았고, 그 뒤로는 관계가 무너질 게 싫어서 참았다. 그가 토마를 토마와 똑같은 감정으로 좋아해주지 않을 걸 알아서 참았다. 그는 스나이퍼고, 맞지 않을 총알은 쏘고싶지 않았다. 어떻게 쏴도 빗나갈 게 느껴지는데 쏠 수는 없었다. 겁쟁이같다고 놀림받아도 할 말이 없었으나 처음 겪는 뜨거운 감정 앞에 사람은 누구나 나약해지기 마련이었다. 토마조차 그랬다. 무엇보다 후유시마를 잃는 게 무서웠다. 착하구나, 토마. 그리 다정하게 불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잃어버리면 방향 모를 분노가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그는 참고, 참고, 침묵하고 인내하며 기다렸다. 물론 시간만 허비한 건 아니었다. 보더에서 최고로 우수한 스나이퍼답게. 상대를 쏘아 꿰뚫어 맞출 수 있을 모든 준비를 하면서. 

 대장, 이제 내년이면 나는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대장이랑 동갑이 돼. 나는 이제 어리지 않고, 십 년 동안 보더에서 구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았어. 이 마음은 집념도 아니야. 나는 분명 대장을 좋아해. 이제 대장은 내 대장이 아니지만. 대장이 마흔 살이 되어도 좋아. 오십이고 육십이고 되어도 좋을 거야. 스물 아홉과 열 여덟은 대장이 절대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마흔과 스물 아홉 정도면 크게 차이도 없잖아. 싫다면 조금 더 기다릴게. 마흔 하나와 서른이면 덜 부담스럽겠어? 당신이 넘어와 준다면 얼마든지 기다릴거야. 언젠가 반드시, 반드시 마지막에 나한테 넘어와서 끝까지 곁에 있기만 하면 돼. 

 응? 후유시마 씨. 

 

 

 

 

 

 

04. 이즈오사 

 

 

 이즈미는 오사무의 등에 달라붙어, 그를 뒤에서 끌어안은 상태로 어깨에 목을 묻고 있는 걸 좋아했다. 품에 가득 들어차는 연인의 조금 마르고 살짝 단단해질 기미가 보이는 몸뚱이를 끌어안고 있으면 행복했다. 달짝지근한 살내음이나 달달한 향수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상대가 미쿠모 오사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즈미 코헤이는 만족했다. 바짝 몸에 힘을 주고 혹여 무게라도 실을까 긴장하던 연인이 저에게 몸을 기대고 꼼질꼼질 오래 안겨있어도 편할 자세로 고치는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더더욱 그랬다. 

 

 

 

 

 

05. 진아라

 

 만나기 전부터 알았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만난 직후에 알았다. 이 사람한테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앎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은 언제나 많은 것을 먼저 아는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흐름대로 흘러갔다. 특히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눈으로 보았던 것과 실제 일어나는 것의 차이가 커서, 미리 수많은 스포일러를 당했으면서도 진은 별 수 없이 그 순간 감정이 흔들렸다. 이건 좋아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고,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으나 반전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 유이치는 아라시야마 쥰에게 제 마음을 줬다. 사이드 이펙트로 보았던 것보다 백 배는 아름답고 천 배 쯤 멋진 사람에게 별 수 없이 사랑에 빠졌다. 

 

 아라시야마를 어떻게 이기겠어. 진은 일찌감치 단념했다. 사랑에서 먼저 반한 사람이 진다고 한다면 진은 시작하기도 전에 졌다. 구 보더 시절부터 어태커로 일했으며 A급 1위 타치카와와 라이벌로 맞서던 진은 지는 걸 싫어하고, 질 것 같으면 판에서 발을 빼버리는 성격 나쁜 승부사였으나 사랑 앞에서는 하릴없이 나약해졌다. 들어간 줄도 모르고 들어간 판에서 싸울 거라고는 상상해보지 않던 상대를 만나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졌다. 두 말 할 것 없이 진 유이치의 완패였다. 두 손 두 발 다 든 그는 제 종잇장같은 나약함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사랑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진은 아라시야마의 앞에서 약해지는 것조차 좋아졌다. 강하지 않은 제 자신이 좋아진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이어지는 산책은 진이 아라시야마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제안은 아라시야마가 해 줬지만 말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일정에 보더밖에 적혀있지 않는 진의 생활패턴은 몹시 불규칙해졌다. 잠드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들쑥날쑥. 덕분에 일정한 시간에 타마코마에서 보내는 식사마저 들쑥날쑥 엉망이 되기 시작하자 소중한 친구의 건강을 걱정한 아라시야마가 진의 생활 습관을 고착시키기 위해 건낸 일시적인 제안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아침 일찍 강아지 코로의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시간에 일어나야 했고, 산책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가 고프니 아침을 먹었으니까. 최소 한 끼의 식사와 한 시간 이상의 운동. 진으로서는 마음은 고맙지만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 거절하고 싶어지는 제안이었다. 허나 제안해 준 상대가 누구도 아닌 아라시야마이지 않은가. 좋아하는 아라시야마와 단 둘만 보낼 수 있는 고정시간이란 놓치기 힘든 달짝지근한 먹이였다. 결국 큰 맘 먹고 진은 아라시야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매일매일 이어지는 습관으로 박아넣었다. 진의 건강을 위한 단발적인 약속은 어느 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암묵적 규칙이 되었다. 문앞에서 기다리다보면, 아라시야마가 문, 가끔은 창문을 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진! 하고 새벽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진은 이제 알았다. 

 

 덕분에 요즘 코로가 내 얼굴을 산책이라고 인식한 것 같단 말이지. 진은 천천히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끔 볼일이 있어 새벽이 아니라 낮이나 저녁에도 아라시야마를 보기 위해 종종 찾아갈 때가 있다만, 그 때마다 코로는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붕붕 휘두르며 온 집을 뛰어다녀 진은 가끔 무척 민망해졌다. 매일 산책할 때만 보는 얼굴이라고 인식하다보니, 이 얼굴을 보면 산책을 나간다고 기억해버린 것 같았다. 아라시야마의 작은 가족이 자신을 반가워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만, 그리고 그렇게 흥분한 코로를 보고 기쁜 듯 머쓱한 듯 웃으며 시간이 괜찮다면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는 아라시야마는 사랑스러웠지만. 

 

 산책 말고 조금 더 발전한 사이가 되고 싶은데. 기왕이면 코로의 산책이라는 목적이 없어도 빈 시간에 만나도 되는 사이가 좋겠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좋다. 진은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앉아 무릎에 제 뺨을 대고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는 세상 많은 일을 스포일러 당하며 살아가고 있으나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으니 고르기 힘들어 고민하게 되었다. 뭘 선택하더라도 아라시야마가 자신을 싫어하는 미래는 없다. 그런 기쁘고 비겁한 결과를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진은 무엇이 최선일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느라 종종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타치카와와 싸워서 지는 것처럼. 타치카와에게 베였을 때는 화나고 억울하고 열이 받는다면, 아라시야마와 연관된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아라시야마가 먼저 다가와줘서, 부끄럽고 기쁘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래, 이번 선택지마저 아라시야마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 진은 좀 더 몸을 웅크리고 깊게 심호흡했다. 각오를 다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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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생일

2021. 4. 9. 23:54 from WORLD TRIGGER/NOVEL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느즈막한 아침, 생일날 눈을 뜬 진 유이치가 제일 먼저 생각한 문장이었다. 

 

  물론 꿈결처럼 생각했을 뿐, 실제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진작 했지. 진 유이치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감사 인사를 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간 아침을 입에 넣으며 그런 회의적인 생각 따위나 했다. 그는 별써 몇 년 동안이나 아라시야마 쥰에게 제 마음을 뚝 떼어 아무도 모르게 건내준 상태다. 아라시야마를 좋아한다. 아마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평생 좋아할 예정이었다. 마음을 준만큼 돌려받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라시야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에게 특별한 사람은 피가 통하는 가족들 뿐이었다. 물론 친구인 이상 조금 더 특별할 수는 있겠지만......

  진은 턱을 괴고 맛있는 아침에 최대한 감흥을 가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씹었다. 생각하는 것이 우울하니 있던 맛도 달아나는 기분이었으나 아침을 해 주는 키자키에게 미안했으니, 진은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식사했다. 어떻게든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자마자 감사인사를 하며 지부에서 나와버렸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은 수학이나 과학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진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학업에 크게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지만─혹시 몰라 미리 변명하자면, 그에게는 성적보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불성실하게 듣던 거진 졸면서 듣던 수업 사이에서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눈은 확률싸움이고, 진은 그 확률을 잘라내고 키워내며 좀 더 나은 미래로 밀고 나가는 일을 했었다. 허나 인간이 어떻게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을까. 일부분만 보이는 미래를 이리저리 기우고 꿰매어 맞추다보면 한두 땀 정도는 빠지기 마련이었다. 진은 그렇게 놓치는 미래에 눈물지을 때도 있었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럴 모양이다. 지부 주변의 강가를 느긋하게 걸으며 진은 눈앞에 보이는 미래를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아라시야마가 저를 보며 기쁘게 웃고 있었다. 조금 발그레한 뺨이며 곱게 휘어지는 눈가가 예쁘다. 그는 속절없이 조금 행복해졌다. 꽤 확률이 높은 미래다. 아무래도 저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직 본인도 모르겠다. 생일을 맞은 건 나니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아닐거고. 뭐지? 미리 7월에 가족들이랑 보내는 생일을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나? 아니면...... 진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제 눈에만 보이는 미래의 아라시야마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무튼 꽤 높은 확률로 저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올 생일은 꽤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다시 불쑥 가슴에서 속삭이는 욕망은 곱게 접어 모른 척 했다. 행복해질 때마다 욕망은 가끔 고개를 들어 진의 가슴에 작고 선명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며 속삭이고는 했다. 말했다가는? 진은 눈을 감고 상상해보았다.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몰라 표정을 굳히고 곤란해하는 아라시야마의 얼굴을. 심장을 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대번 올라왔다. 욕망은 그 상상 하나에 대번 고요해지고는 했다. 오늘도 그랬다. 진은 다시 눈을 뜨고 행복하게 웃는 미래의 아라시야마를 응시했다. 괜찮아, 웃고 있어.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생일이라고 동네방네 알리지는 않았으나 몇 년이나 보더에 근무하고 있다보면 알음알음 개인정보는 알기 마련이었다. 구 보더 소속인 진은 더더욱 그랬다. 시노다 본부장이나 린도 지부장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물을 챙겨주던가 제자에게 진의 생일을 알려주는 일도 있었으니까. 몇 년 전부터 진의 생일은 쉬이 알려졌다는 말이다. 애초에 모르던 사람들도 당일이 되니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빠르게 번지는 보더 내부에서 진의 생일 소식도 빠르게 퍼졌다. 기본적으로 호인들이 많은 보더에서 경사는 특히 발 달린 것보다 빠르게 도는 경향이 있었다. 보더를 걷고 있다보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좋아하는 쌀과자나 작은 선물 따위도 몇 개나 받을 수 있었고.  

 

  웃는 얼굴로 기꺼이 축하를 받은 청년은 이동하던 도중 개인 랭크전 라운지에 앉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B급, A급 대원들도 종종 볼 수 있는 이곳은 미래를 보기 좋은 곳이었다. 보아하니 동기들이 생일 파티를 준비해주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 부대실이지. 진은 미래 배경을 꼼꼼히 보려 애썼다. 좀 넓은 것 같은데.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실인가? B급 부대실보다는 A급 부대실이 넓다. 동갑내기 대원들 중 가장 생일이 빠른 진인만큼 올해 첫 생일파티를 큼직하게 해준다면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실이리라. 아직 연락이 없긴 한데 미리 가 있어야 하나, 아니면 타이밍이 맞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서 시간이나 떼울까. 근데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타치카와 씨한테 붙잡혀서 개인 랭크전을 오십 번은 하게 될 것 같은 미래가 있는데 말이지. 다른 곳에 있을까? 턱을 살살 쓸며 고민하던 시간이 너무 길었을까. 진은 제 어깨를 덥석 잡는 손길에 움찔 몸을 떨었다. 타치카와 씨가 벌써 왔나? 청년이 고개를 휙 돌렸다. 

 

"진! 생일 축하해!"
"아라시야마!"

  진을 붙잡은 사람은 아라시야마였다. 화창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내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순간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도 제 사랑은 참 눈부셨다. 무심코 게슴츠레하게 변할 뻔한 눈매를 애써 평소처럼 가다듬으며 진도 웃었다. 

 

"고마워, 아라시야마."

"미래, 봤지?"
"음, 아마도? 파티?"
"응, 그거. 역시 진인 이상 서프라이즈는 글렀지만 그래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꼴사나우니까, 나는 시간벌기 담당이야."

 

  연락이 올 때까지 나랑 같이 여기 있자. 미래 보는 거 삼가기야. 아라시야마가 그리 말하며 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 타치카와 씨랑 오십 번 개인전하는 미래 없어졌다. 진은 사라진 미래의 한 갈래를 느끼며 아라시야마를 응시했다. 아라시야마에게 시간벌이로 진이랑 대화나 하라며 등을 밀어 준 친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연하게 고마웠다. 

 

"선물 많이 받았네. 역시 진이야. 저녁은 지부에서 파티하려나?"
"음, 아마도. 그런 미래가 보이니까."
"저녁에도 먹을 것 같아서 일부러 케이크는 작은 걸로 골랐어. 아야츠지랑 키토라가 맛있다고 했던 가게니까 맛있을 거야."
"그래? 기대되네."
"우리 다 선물도 골라왔으니까. 나중에 케이크 먹으면서 뜯어봐. 기대해도 좋아."

 

  어떤 선물인지 어른어른 보이는 것도 같았으나 진은 애써 의식을 아라시야마에게 돌렸다. 당장 선물을 뜯어보고 놀라며 기뻐지는 감정의 파편 정도라도 진실되게 느끼고 싶었다. 물론 이미 다 안다고 하여 감정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행복해지는 순간은 분명 있다. 지금 제 친구들이 저를 위해 파티를 준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벌써 기뻐졌지만, 당장 아라시야마 부대실의 문을 여는 순간 이보다 몇 배는 더 기뻐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허나 서프라이즈는 서프라이즈로 기뻐하고 싶다는 마음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두 청년이 마주보고 웃었다. 아, 진은 문득 아라시야마의 얼굴 위로 아른거리는 웃는 얼굴을 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기쁘고 행복한 아라시야마다. 지금 이 순간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저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지? 진은 짧게 고민했다. 머릿속에 답이 속삭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짧게 의심했다. 정말 이 말이 맞는 건가? 허나 삶과 함께 미래를 보아왔던 청년의 직감이 그렇다고 속삭였기에, 그는 불신과 기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라시야마야. 고마워, 진짜 엄청 좋아해."

"나도 진이 좋아!"

 

  아하, 이래서 아침부터 그런 욕망이 어른거렸던 거구나. 아라시야마는 아침에 보았던 것과 꼭 같은 얼굴로 행복하게 웃어줬다. 진은 체념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며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찬스가 있을 줄이야. 솔직하지 못한 청년은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지 않지만, 직설적인 구석이 있는 아라시야마는 가족에게도 사랑한다는 진심 어린 말을 종종 하고는 했으니 좋아한다는 말에 크게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후쿠나 사호를 끌어안으며 하는 좋아해나 진에게 하는 좋아해나 대원들에게 하는 좋아해나, 심지어 애완견 코로에게 하는 좋아해나 뭐 다 큰 차이는 없겠지. 다행이다. 솔직한 욕망이 언어가 되어 나왔으나 아라시야마는 기쁘게 웃으며 받아줬다. 이런 겁쟁이같은 고백을 겁쟁이같은 방식으로 넘길 수 있다니. 진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기꺼이 안도하며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아, 카키자키한테서 연락왔다. 이제 오래, 진."

 

  아라시야마의 휴대전화가 두 번 울었다. 곧장 내용을 확인한 아라시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진도 주섬주섬 내려놓았던 선물들을 챙겼다. 실망하는 것조차 우습다.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답을 들을 수 있던 걸 기뻐해야 마땅하겠지. 생각을 떨쳐내며 그는 선물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라시야마 부대실에 분명 굴러다니는 종이봉투가 몇 개는 있을 테니 나중에 한 개 쯤 달라고 해야겠네.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선물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던 진은 문득 제 뺨을 당기는 손길에 속절없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아주 순식간에. 

 

  쪽. 놀라 커지지도 못한 눈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가까이 담겼다. 살풋 감은 눈과 긴 속눈썹과 하얀 피부가. 그리고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진...... 어? 

  진이 멍하니 눈을 껌벅였다. 지금 무슨, 뭐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에러가 일어났다. 지직지직. 같은 광경을 반복은 하는데 인식을 못하며 멍하니 있자니, 진에게 키스한 아라시야마가 멋쩍게 웃었다. 뺨이 조금 붉다. 살짝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다. 지금 방금 무슨, 무슨 일이. 뭐야? 고장난 로봇처럼 눈만 껌벅이는 진의 품에서 선물을 절반 빼앗아 나눠 들으며 아라시야마가 조금 빠르게 속삭였다.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그리고는 재빠르게 부대실 방향으로 가 버리는 아라시야마의 뒷모습을, 진이 멍하니 응시했다. 지금 아라시야마가 저에게 뭐라고 말했지? 방금 우리 입을 맞췄던가? 꿈이나 환상이 아니고? 진이 천천히 제 입술을 매만졌다. 여기에 닿았던가? 정말 닿았던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정말이야. 나도 좋아해. 

  ......엄청 좋아해. 

  나도 진이 좋아.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천천히 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들고 있던 선물들을 모조리 떨어뜨릴 뻔 했다. 이 겁쟁이같은 고백 속에 진심을 어떻게 알고. 아니, 지금 네가 나를. 뭐? 

 

"아라시야마! 잠깐만!!"

 

  몇 박자는 늦게 정신을 차린 진이 급하게 아라시야마의 뒤를 쫒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기다려 줘, 아라시야마. 너 지금 생일 선물로 나한테 뭘 줬는지 알아? 아니, 그거 정말 내가 받아도 돼? 너도 절반 나한테 줄 거야? 받으면 나도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라고! 당장이라도 붙잡아서 묻고 싶은 게 속에서 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진은 급하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제 얼빠지고 못나빠진 얼굴을 수습할 여유도 없었다.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뒤에서도 훤하게 보이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아라시야마를 붙잡아 그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미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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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시야마. 나, 사실 미래를 보는 힘 같은 거 없어.

 

  어느 날 찾아온 고백은 은밀하고 평범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고백을 들은 대상자, 아라시야마는 도통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옅게 미간을 좁혔다. 미래를 보는 힘이야 누구에게나 없는 것이라지만 진 유이치는 홀로 그 모든 법칙 위에 서 있던 사람 아니었는가. 미래시의 사이드 이펙트 소지자, 진 유이치라는 명제를 통째로 흔드는 말에 아라시야마는 혼란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하고 늘 그러하듯 진의 말을 신뢰하고 납득하기에 진은 이제까지 미래를 보는 수많은 행동거지를 보여 왔다. 그렇다고 농담하지 말라고 넘기기에도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진은 아라시야마에게 웃지 않는 얼굴로 농담을 한 적 없었다. 

  그럼 이건 진실? 그러면 이제껏 행동으로 증명했던 수많은 말들은? 그리고 진의 예지는? 혼란에 빠져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하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 싶었지만, 영 잘 되지 않았다. 조금 초조한 듯 진은 제 손가락을 매만졌다. 긴장하기도 하고, 어쩌면 겁을 먹기도 한 태도에 아라시야마는 그제야 마음을 정했다. 진이 하는 말이 어떤 것이든, 얼마나 믿기 힘든 것이든 아라시야마는 진을 믿었다. 그를 믿기로 아주 예전에 마음을 정했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이 말이 얼마나 믿기 힘든 말이더라도 진이 말한 이상 아라시야마는 신뢰해야 했다. 한 번 눈을 꾸욱 감았다 뜬 청년은 새롭게 믿어야 하는 명제 위로 쌓이는 질문을 차곡차곡 물었다. 

 

"그러면 이제까지 했던 예지들은 뭐였어? 감?"
"아니, 그건 아니야."
"사이드 이펙트 검사는 어떻게 통과했어?"
"사이드 이펙트는 있어. 아마."
"예지는 아니고?"
"아니야."
"하지만 예지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지?"
"맞아."

 

  간단한 질답을 주고받으며 진은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색이었다. 아라시야마는 그런 진을 아주 천천히 관찰했다. 그는 제 오랜 벗에게 어떤 긴장도 주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보는 그 능력과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더 물어도 괜찮을까, 아닐까. 그만둘까 아닐까. 아라시야마의 저울에서 진실이나 의문 따위는 감정보다 낮은 가치를 가졌다. 우선 상대가 괜찮아진 다음에 천천히 들어도 괜찮았다. 특히 소중한 사람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한 아라시야마의 가치를 진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진은 크게 심호흡하며 제가 괜찮다고 행동으로 어필했다. 좀 더 물어도 괜찮다는 친구의 배려에, 아라시야마는 조금 고민하다가 물었다. 

 

"미래를 볼 수는 없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했던 일을 할 수 있었어?"
"아라시야마는 회귀나 루프라는 거 알아?"
"회귀? 루프?"

 

  아라시야마가 검지손가락으로 허공에 빙글 원을 그렸다. 이거? 무언으로 묻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비슷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계속 사는 거야. 꿈인지 현실인지 이제 모를 정도로."
"계속 산다고?"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다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 다시 진 유이치로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삶을 살아가는 거야. 계속."

"계속?"
"계속. 아주 오래."

 

  나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야, 아라시야마. 나는 과거를 보고 있어. 내가 살아온 모든 과거의 기록과 경험이 곧 미래가 될 만큼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아마도, 이게 '사이드 이펙트' 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
"과거를…."
"그래서 이걸 미래시의 사이드 이펙트 삼기로 했지."

 

  몇 번째의 삶에서, 라는 문제는 삼켜버렸다. 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살았고, 끔찍하게 오래 살아가다보면 기억은 마모되기 마련이었다. 진은 닳고 닳은 기억의 흔적만 겨우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만으로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았다. 백만 번, 아니 천만 번? 감히 헤아리기도 힘든 시간의 파편 속에서 진은 살아왔다. 

  처음엔 몇 번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 모두 붙잡고 최고로 행복한 선택을. 최선의 미래를 만들어 내가 위해 애를 썼다. 아무리 행복해도 죽으면 다시 시작되는 것에 환멸을 느낄 때까지 열심히 살았다.

  그 다음으로는 괴로워서 몇 번이고 포기했다. 스스로 삶을 몇 번이고 내던지다가, 그조차도 질려버릴만큼. 시간이 독처럼 끔찍하고 숨쉬는 것조차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스물은 커녕 열 살도 되기 전에 스러지듯 사라지던 삶들이 촘촘하게 이어졌었다. 

 

  그걸 끝냈던 게 너였어, 아라시야마. 너는 모르겠지. 몰라줬으면 하니까 말해주지 않을거야. 진 유이치는 웃었다. 아홉 살의 어느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에 처박혀 있던 날. 어머니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숨만 쉬는 아들을 위해 눈물 짓기도 지쳐가던 날에 네가 찾아왔다. 집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단단하게 정체되어 있던 긴 권태의 삶을 깨트리는 것처럼 들렸었다. 저도 어리면서 더 작은 동생들의 손을 암팡지게 잡고 죄송하다며, 야구공을 잘못 던졌다고, 다치지 않았느냐며 절절매던 어린 너는 내가 흘려보낸 모든 기력과 생명을 전부 뭉쳐 만든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오랜만에 보는 아라시야마 쥰이, 그리고 처음 보는 어린 아라시야마 쥰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보였던 반응에 어머니는 희망을 보았다. 제 아들을 위해 그녀는 아라시야마를 간절하게 붙잡았고, 아라시야마는 그런 간절함을 뿌리칠 아이가 아니었다. 

  그 삶이 처음이었어. 어린 너와 친해진 첫 번째 삶. 길고 긴 삶의 순환을 처음 들은 아라시야마가 그 아라시야마였어. 내 영원을 너에게 종속시킨 것도 그 삶이었어. 진 유이치는 지금도 기억했다. 그 뒤로 수많은 아라시야마 쥰을 만나 수많은 사랑을 했고, 그 수많은 사랑이 진의 기억이 되었다. 쌓이고, 마모되고, 스러져버리는 기억들 사이로 사랑만 띄엄띄엄 빛나고 있어서 그걸 연결시키다보면 먼지가 된 기억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나왔다. 

  그 삶 이전에도 너를 사랑했지만 사랑조차 지쳐버렸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권태와 탈력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사람도 너였어. 진 유이치가 아라시야마 쥰을 포기한 삶도 몇 번이나 있었다. 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친구로 응시한 적도 몇 번이나 있다. 그런데도 그 삶 이후. 내 긴 삶의 도돌이표를 너에게 말한 그 삶 이후부터 너와 만난 모든 인생이 특별해졌다. 이전에도 특별했지만, 이후로 더 특별해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말해주지 않을 터다. 너는 지금처럼, 많은 것을 짐작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아주는 지금의 아라시야마 쥰이니까. 

 

"…힘들었겠네."
"그럴 때도 있었지."
"늘 같은 삶을 살았던 거야?"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니었던 때도 있었고. 엄청 많아."

  그래도 대부분 미카도 시에 있었지. 보더에 있었어. 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진에게 가치 있는 많은 것이 여기 있었으니, 진은 중력에 이끌리는 위성처럼 미카도 시로 돌아왔다. 기억도 감정도 이곳에 묶여 있으니 몸만 떠나도 보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떠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 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아라시야마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라시야마는 늘, 깊게 생각이 잠기면 녹색 눈동자가 허공을 노려보며 몽롱하게 색이 번진다. 진은 그 색을 좋아했다. 

 

  이번 삶의 아라시야마 쥰은 친구다. 진 유이치는 수많은 아라시야마를 사랑했지만 늘 삶을 엄격히 구분하려고 애썼다. 그는 같은 사람이고 자신도 같은 사람이지만 저번 삶에서 사랑했다고 하여 지금 삶마저 사랑하는 게 옳은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명료한 이성조차 사랑과 인내로 갉아내며 버티고 있는 존재에게 가혹한 말이었으나 진은 늘 그렇듯 결벽적인 구석이 있었다. 고쳐지지 않는 천성이었다. 하지만 아주 예전에 시작했던 이 고민은 또 긴 시간을 소비한 뒤에 이미 답이 나온 난제였다. 

 

"그럼 진은 미카도 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 봤겠네."
"그렇지."
"보더의 사람들도 전부 알아?"
"아니. 의외로 전부를 알게 되는 일은 없더라."
"그렇다면 내일은 나랑 같이 보더에서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들어오는 모르는 사람을 알러 가자."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새로 인연을 만들어보는 거야. 아라시야마가 그리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긴 시간이 쌓여있더라도,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아래쪽 모래들은 다 퍼지고 흐려졌더라도 그 위에 새로운 무언가를 쌓는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잖아. 그리 말하며 손을 뻗는 아라시야마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 이미 답이 나온 난제였다. 진 유이치의 고백을 들은 아라시야마 쥰은 늘 이렇게 새로운 '처음' 을 진에게 선사했다. 어느 시기여도, 어느 관계여도 상관없었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어린 아이여도, 삼십 대여도, 죽기 직전이어도. 친구여도, 이미 연인이었더라도 아라시야마는 늘 새로운 일을 진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런 아라시야마에게 진은 가장 새로운 일을 겪고는 했다. 다시 한 번 너에게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삶을 곧 사랑으로 꾸려나가는 모든 기적의 시작이 또 하나 쌓이는 특별한 경험을. 

 

  진이 어설프게 웃으며 아라시야마가 뻗은 손을 잡았다. 응, 그러자. 

  그리고 다시 진 유이치는 천만 한 번째 사랑을 아라시야마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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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북극성

2021. 2. 18. 00:38 from WORLD TRIGGER/NOVEL

 

  네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네가 가장 찬란했을 때. 너는 나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다. 

 

  병이었다. 진은 미래를 보는 특별한 사이드 이펙트의 소유자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아라시야마가 쓰러지는 미래를 본 순간 이미 늦어 있었다. 젊고 건강했는데. 그 말은 이미 떠난 사람을 추억하는 말로 남아버렸다. 보더에서도 손에 꼽히던 우수한 병사는 네이버의 침략이 아니라 작은 바이러스의 침략으로 죽었다. 사람은 참 보잘 것 없는 이유로 죽는다. 목에 사탕이 걸려도 죽고, 떡을 잘못 삼켜도 죽고, 실내와 화장실의 온도 차이로도 죽는다.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병에 걸렸다는 사망원인은 정말 어처구니 없을만큼 흔한 사망원인이었다. 쓰러지는 미래가 보여서 며칠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간 정도로는 아라시야마를 살릴 수 없었다. 며칠 더 빨리 그를 병원에 가둬두었을 뿐이었다. 

 

  진 유이치는 가끔 그 날의 꿈을 꾼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꿈. 턱이 한결 가냘프게 말라있던 아라시야마가 흰 침대 위에 누워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네 얼굴 위로 네가 죽는 미래가 겹쳐지듯 어른거려서, 진은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었다. 아니면 멀리멀리, 죽음도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으로 아라시야마를 품에 안고 도망치고 싶었다.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서, 진은 창백한 얼굴로 아라시야마 옆에 얌전히 앉았다. 아라시야마는 제 연인의 시퍼런 낯에 도리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만큼 상냥했다. 죽어가고 있는 건 저 자신이었으면서. 

 

  아라시야마는 진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내가 살 수 있을까? 진은 부정했다. 조금의 확률도 보이지 않았다. 단 1%의 확률이라도 있었으면, 진은 희망에 말라버렸겠지만 아라시야마는 분명 그거로 충분하다며 웃었을텐데. 허나 눈에 시뻘겋게 핏대가 설 만큼 미래를 헤집어도 없었다. 조각조차도, 계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답을 기다리는 아라시야마 앞에서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 작은 몸짓조차 괴로웠다. 아라시야마는 그런 걸 묻는 게 무척이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진의 대답을 들을 아라시야마는 잠깐 병원의 천장을 응시했다. 같은 무늬의 흰 색 타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천장이 아라시야마에 무슨 답을 주었는지 진은 모른다. 다만 아라시야마는 평온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나한테 트리거를 빌려 줄 수 없을까? 진은 그 부탁조차 거절했다. 그래, 알았어. 아라시야마는 무척 담백하게 거절을 납득했다. 그는 언제나 진의 선택을 믿었으니, 이번에도 그랬던 걸까.

 

  진은 천천히 그 날의 일을 곱씹었다. 태엽을 감으면 노래를 들려주는 오르골처럼, 진은 늘 제 머리에 태엽을 감고 똑같은 풍경을 머리 속에 천천히 그려냈다. 그 때 그 선택이 옳았을까, 틀렸을까, 대안은 없었을까, 있었다면 그 대안은 옳았을까, 아닐까. 진은 늘 자신의 선택을 고민했고 그만큼 이미 결정한 일을 되돌아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순간 그 둘뿐이었던 병실에서 있던 모든 일은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제 사랑과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었으니 회상한다고 하여 누가 손가락질 할 수는 없으리라. 진 유이치는 턱을 괴고 몽롱한 바다색 눈동자로 허공을 멍하니 맴돌았다. 

 

  생존확률이 제로라는 사실을 알고 난 네가 블랙 트리거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알았어, 아라시야마.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트리온은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부하들에게,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 무언가 남겨주고 싶어한다는 것도 눈을 보고 바로 알았어. 익숙한 눈이었어. 몇 번이고 봤으니까. 네 눈이 그렇게 빛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트리거를 줬더라면 성공률도 꽤 높았을 거야. 그 때 보였던 미래로 따지자면, 8할 쯤 되는 확률로 성공했을텐데. 그 정도면 미래시 중에서는 거의 이뤄지리라 말할 확률이야, 높은 확률이거든. 

 

  하지만 아라시야마, 만약 그 미래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너를 강탈하게 되는 거야. 네가 사랑했던 가족들에게서, 네가 사랑했던 부하들에게서 전부. 블랙트리거가 되어버린다는 건 결국 네 시신도, 그리하여 네가 여기 잠들어있다고 기도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위안도 가족에게서 빼앗아 버리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들도, 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전부. 그 순간이 욕심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네 가족들이잖아. 네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들한테서. 그리고 똑같이 너를 사랑해주고, 그리하여 너를 이렇게 멋지게 키워 준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미 너를 받아갔는데. 그러니 그 권리마저 훔쳐갈 수는 없었어.

  게다가 블랙트리거 아라시야마를 내가 사적인 욕심으로 절대 놓지 못하는 미래도 보였거든. 네가 나를 적합자로 골라 버려서 그래. 아니, 뭐. 그래. 너니까 적합자는 분명 상당히 많이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더 강했으니까 나는 너를 놓지 않아. 후우진조차 놓는데 정말 오래 걸렸어. 너는 얼마나 더 붙잡고 있게 될까 나도 몰라. 그 이후의 미래까지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블랙 트리거가 된 너는 분명 뛰어난 트리거였겠지. 어쩌면 너를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 그랬겠지. 블랙 트리거가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어쩌면, 너에게 트리거를 주고 네 마지막 말을 듣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전해주고 유서를 쥐여주며 마지막으로 너에게 트리거를 쥐여주는 게 옳았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어떻게 그러겠어? 그게 가장 옳은 길이고 현명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네가 죽을 걸 알고 있는데. 단 며칠이라도 네가 더 살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진이 몇 번이고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라시야마의 두 번의 물음에 모두 부정의 대답을 내놓은 진은 마지막 부탁만큼은 들어주고 싶었다. 아라시야마는 손을 뻗었고, 진은 기꺼이 그걸 붙잡았다. 맞잡는 손에는 아직 조금 힘이 들어 있었다. 아라시야마는 구명줄이라도 붙잡는 것처럼 간절하게 저를 잡아오는 연인을 보며,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정답일지, 아라시야마도 분명 고르지 못했던 게 뻔했다. 진도 그랬다. 방금 너에게 가망이 없노라 말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진은 아라시야마의 손만 잡고 있었다. 따뜻하고, 여전히 단단한. 

 

'있지, 진.'

'응.'

'외로워진다면'

 

  아라시야마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생명의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사람은 늘 진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마치 아라시야마가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찰나, 진은 예언을 받아듣는 사제가 되어 제 신이 읊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의 곁에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응.'

'타마코마에도, 본부에도. 보더는 늘 진의 편이야.'

'아닐 때도 있는걸.'

'다들 솔직하지 못할 뿐이야.'

 

  다들, 진의 편이야. 아라시야마는 그렇게 속삭여줬으나 진은 속으로 입을 비죽였다. 그럼 솔직하게 늘 내 편을 들어주는 아라시야마가 곁에 있어주면 되잖아. 울면서 매달리고 싶었다. 바로 저 자신이 아라시야마에게 마지막으로 가망이 없다는 말 따위를 지껄였으면서도, 인간은 누구나 절박한 마음으로 가망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마련이었다. 진은 꼭 그런 마음으로 아라시야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네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응.'

'하늘을 봐, 진.'

 

  아라시야마가 다정하게 진의 눈을 응시했다. 하늘을 닮은 제 연인의 눈을.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는 그 슬픈 눈을 아라시야마는 신뢰를 담아 응시했다. 

 

'내가 빛나고 있을 거야.'

'아라시야마,'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진.'

 

  너는 다섯 개의 별 중 하나인 아라시야마 쥰이니까,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하늘로 올라가면 다른 별들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괜찮아지더라도, 큰 별 하나는 이제 될 수 없잖아.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진은 어떠한 부정 한 마디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라시야마의 손을 끌어당겨 제 뺨에 대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말로 아라시야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라시야마도 그랬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아라시야마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진은 수면제를 먹고 몇날 며칠을 강제로 잠들었다. 울면서 코나미가 진의 뺨을 때리며 억지로 깨우는 순간, 진은 그 통증이 아라시야마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알았다. 네가 없는 세계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뺨을 얼얼하게 만들고 가슴 어딘가를 잘라내 버리며 시작되었다. 

 

 

 

 

 

"아라시야마."

 

  겨울 공기는 차가웠다. 진은 짧게 입김을 내뱉었다. 희게 흩어지는 공기 사이로 진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 없는 어두운 하늘을. 

 

"거짓말쟁이."

 

  네가 없는 하늘에 별 같은 건 보이지 않아. 진짜로 보이지 않는 건지, 내 눈이 흐려져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하지만 네가 없어, 아라시야마.

  하늘에도 땅에도 내 곁에도.

  어디에도 네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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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01. 초콜릿의 행방을 찾아라!

 

 

  다음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콜릿을 주면 안 돼? 

  그건 진 유이치가 짜낼 수 있는 용기를 모두 짜내서 겨우 건낸 말이었다. 너를 좋아한다는 솔직한 고백도 못하는 소년이 가까스로 내뱉은 일말의 사랑이었다. 매년 아라시야마는 발렌타인 데이를 챙겨줬지만, 진의 손에 쥐여지는 건 유독 좋아하는 쌀과자였다. 진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저가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동원하여 상대가 좋아할만한 것을 줬다. 애초에 아라시야마에게 있어서 발렌타인이란 기념일을 즐기며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수단이었으니 당연했다. 올해에는 초콜릿을 받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아라시야마 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잠시 하늘을 보고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활짝 웃으며 그러겠노라 말해줬다. 진의 부탁 속에 무슨 감정이 담겨있는지 그가 알아차렸는지, 아니면 그저 오랜 친구의 변덕이라고 생각했을런지는 진조차 알 수 없었다. 

 

  무사히 초콜릿을 받아내는 미래도 봤다. 자신에게 웃으며 초콜릿을 건내주는 아라시야마 쥰을 확실히 봤으니, 진은 별 걱정 없이 마음을 놓았다. 발렌타인 데이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초콜릿. 그게 평범한 우정 초콜릿이어도 충분했다. 사소하고 꼴사나운 욕심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진 유이치는 미세한 혼란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우당탕탕 발렌타인데이 진아라 이벤트. 스토리를 단순하게 나열해보자면 진이 받았어야 했을 초콜릿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려고 가져온 우정 초콜릿 사이에 섞여있던 탓에 보더의 어딘가로 진의 초콜릿마저 흘러들어가버렸고... 진이 그걸 찾으러 가는 내용이었다 보더를 한바퀴 빙 돌고 만날 사람 다 만나며 아라시야마가 홍보부대답게 정말 초콜릿을 끝장나게 많이 뿌렸다는 사실만 깨닫고 쪼끔 씁쓸했던 진이 마지막으로 끝내 타치카와가 아라시야마가 준 자기 초콜릿이랑 같이 진 이름이 쓰여있는 것도 있길래 약올릴 겸 냉큼 그걸 먹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어서 속으로 눈물흘리면서 타치카와 멱살을 잡고 흔들뻔했는데 이즈미가 진 씨~ 아라시야마 씨가 부르는데요 하고 들어와서 타치카와를 구원해주고... 아라시야마 부대실로 돌아간 진은 아라시야마가 건내주는 하트모양 초콜릿을 받게 된다는 해피엔딩이었다 하트모양 초콜릿을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무사히 준비하기 위해 우정초코를 하나 더 준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려던 초콜릿 사이에 섞어 보내버리고 시간을 벌었던 아라시야마 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를 짜내기 위해서 진의 사이드이펙트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난관에 부딪혀서(+발렌타인데이가 2시간 남았을 때 컴을 잡았으니 시간이 없었고) 스톱해버린 글 

 

 

 

02. 진단메이커

 

이 프로그램 > 재밌어서 애용하지만 역시 가끔 뒤에 사람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진아라 의 연성용 단문은 "괜찮다고 연기를 했지만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나봐."

kr.shindanmaker.com/702848

 

진아라 의 연성 문장
앞으로 더 얼마나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거야?

kr.shindanmaker.com/679163

 

[ 진아라 ]
: "오늘의 하늘은 내게 누군가가 두고 간 선물같아. 어제보다 더 따뜻해."

kr.shindanmaker.com/529971

 

뭐 뒤에 사람 있으신지...... 물론 진아라콩깍지가 단단히 껴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정말 좋다고밖에 말할수없음 상황 생각하면서 좋아서 기절함 언젠가는 보면서 생각나는게 있으면 연성하려고 백업용으로 박아두기 

 

 

 

03. 블랙트리거

 

작품 내에서 눈물나게 만들고 겁나게 만드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지만 2차로 오면 이건... 좋다고밖에 할 수 없음 울면서 좋다고 말해야 함 아라시야마 트리온 수치 7 진 트리온 수치 7...... 트리온 수치조차 똑같은 이 유사쌍둥이...... 사이드이펙트가 있는(=트리온이 발달되었다고 말하는) 진의 트리온수치가 7인걸 보면 아라시야마도 상당한 트리온인걸 알 수 있고 그건 곧 둘 다 블랙 트리거를 만들 조건은 충분하다는 소리가 된다... 사이드이펙트가 있는 진은 가산점을 받는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진에게 사망 플래그(ㅋㅋ) 비슷한게 너무 많이 꽂혀있어서 그런가 2차에서는 블랙트리거가 되는 진 연성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라시야마가 블랙트리거가 되는 쪽을 더 좋아한다. 남은 사람이 좀 더 괴로워지는 선택지겠지만... 그렇지만... 그래서 더 좋음 (망해버린 개인취향) 진도 아라시야마도 상대가 블랙트리거가 되어도 관성적으로 일어나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충격을 어떻게 소화해내는가는 다른 문제니까... 아라시야마는 죽도록 괴롭고 죽도록 슬퍼도 결국 주변인들과 함께 차차 이겨내며 블랙트리거 진을 진의 유산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진은... 진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진을 잃은 아라시야마가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면 아라시야마를 잃은 진은 눈앞에 강제로 보이는 미래를 과거에 고인 채로 응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에게 현재가 되어 줄 아라시야마를 잃어버린 이상... 진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사람이고 본인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사이드이펙트를 가진 이상 이렇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같은 감정이 무척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라시야마를 잃으면 정말 그 감정만으로 움직일거라고 생각함 으으음 미래를 만들며 미래에서만 살아가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똑같은 진 유이치처럼 보이겠지만 속은 완전히 망가져있을 것 같다 어머니도 모가미 씨도 아라시야마도 진의 현재가 되어주는 사람을 세 번이나 잃은 진에게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낼 용기 따위는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음 어머니를 잃었을 때는 처음이었으니 모가미 씨를 받아들였고 둘이나 잃었을 때 이미 진의 용기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라시야마가 그만큼 용기를 채워줬으니 진도 아라시야마를 받았던 건데 아라시야마마저 잃었다면... 역시 무리라고 생각해 

진은 블랙트리거가 되어도 두루두루 꽤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풍인같은 블랙트리거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아라시야마는 까다롭게 주인을 가려도 좋다. 그게 고의는 아니고 블랙트리거가 되는 순간 급하고 절실했기 때문에 선택지가 좁혀졌다거나~ 하는 느낌도 좋아함 유마의 블랙트리거는 유마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서 유마밖에 기동 못할것같은데 (물론 추측임 아무도 기동시험을 안해봤고 할수도 없으니...) 아라시야마의 블랙트리거도 눈앞에 위험한 상태였던 진을 살리기 위해 (꼭 진이 아니어도 괜찮음 '눈앞의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아라시야마가 순간적으로 진을 위한다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버린 바람에 의외로 기동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트리거면 좋겠다 '누군가' 를 위한다는 염원이 담겨버렸기 때문에 바로 그 '누군가'와 아라시야마와 특별히 파장이 닮은 진 정도나 쓸 수 있는 까다로운 블랙트리거

진은 미래를 보는 탓에 순간적인 강한 염원보다는 내내 마음의 준비를 하며 대비해왔기에 마지막 순간 모두를 위한 블랙트리거를 완성시킬 수 있다면 아라시야마는 미래를 볼 수 없으니 눈앞의 순간을 소망해버릴 수 있는 차이 좋아함 

진의 눈앞에서 아라시야마를 잃는 전개도 좋지만 아라시야마를 잃어버린 순간 진은 비틀리는 미래를 목격하며 아라시야마를 잃었음을 깨닫는 전개도 좋다

 

 

 

04.

 

미래시를 볼 수 있다는 건, 모든 관계에서 비겁해진다는 소리야. 

 

로 시작하는 진아라 보고싶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미 알고 시작하는 대화인 거잖아 진의 입장에서는 (아니 물론 확률 문제도 있겠지만) 거의 보고 내는 가위바위보 느낌인데... 이 사람과 이 대화를 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지 어느 정도 알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관계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 늘 의문이 남는 지점임... 좋은 친구, 좋은 선후배... 물론 감사할 일이지만 이렇게 말했을 때 좋다, 이렇게 말했을 때 나쁘다는 걸 진은 대충 막연하게 알텐데 그러면 진은 이 관계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을까 모르겠음 아니 상대의 감정만큼은 진짜니까 관계의 진실성은 믿지만 자신이 이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감정을 받아도 괜찮다는 확신이나 자신의 성실함을 믿을 수 있을까... 에 가까우려나 나는 당신이 좋아해줄 걸 알고 이런 말을 한 거야 이미 답이 있는 선택지를 보고 이런 행동을 한 거야 이렇게 제 자신을 부정적으로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 놓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기에 진은 너무 섬세하고 상냥함... 진 유이치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늘 얘의 행복에 의문이 남음 그래서 자꾸 아라시야마 붙여주고 있지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내 안에는 사랑에서도 아라시야마의 대답을 알수밖에 없어서 이건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차마 한 발자국 못 내딛는 진이 있다... 아라시야마가 그걸 붙잡아주는 해피엔딩 진아라를 제일 좋아하지만 아라시야마가 가지고 있는 건 정말 담백한 우정이고 진은 사랑이라서 진도 손을 내밀지 못하고 아라시야마도 감히 기만적으로 손을 내밀 수 없어서 딱 한발자국 모자란 진>아라도 좋다 네가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그게 네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야... 반대로 진<아라일경우에는 이쪽이 훨씬... 파국이 아닐까 싶어서 상상이 잘 안간다 진은 우정이지만 아라시야마는 사랑이고 진은 미래를 본다... 성애적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하고 있는건 사실이니까 연인이 되는 미래도 있을거고 내내 친구로 남는 미래도 있을거고... 진이 어떤 걸 골라야 진실로 아라시야마에게 행복한 미래일지 확신이 없어서 도망쳐버릴것같음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진에게 부담이 된 걸 알아서 못 붙잡고 도망치게 그냥 두는 아라시야마... 파국이다 파국 

 

 

05.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하기에 아라시야마는 이미 가족이 제일 소중하고 진은 극단적으로 말하지면 세상의 평화가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함... 상대에게 제일의 자리를 주기에 너무나 쥔 것이 많은 사람들끼리 빈 자리를 내어주는 연애...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소중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고 마음 속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게 제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미묘함... 둘 다 그걸 알고 그걸 납득하며 인정하고 그 부분조차도 사랑하기에 둘의 사랑은 제일이 아니더라도 온전하게 완벽한 사이...

그 2% 부족한 최선의 사랑을 하는 진아라도 좋아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에서 제일이 될 수 있도록 관계가 변하는 것도 좋아함. 세상의 평화를 위해 결정적인 키 카드가 되어가는 아라시야마와 아라시야마의 가족이 되는 진 같은 거... 그리하여 언젠가 네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말해도 그게 진실이 되는 순간이 오겠지 그리고 진은 즐겁게 그 순간을 기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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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보더는 자동 시스템을 쓴다. 트리거 인식으로 열리거나 대실 안쪽의 사람이 열어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소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열리는 문이라는 소리다. 허나 트리거 인증 자동 허가를 받고 혼자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며, 대실 안에 있던 대원들은 문이 벌컥 열리는 환청을 다 함께 공유했다. 잔뜩 토라진 얼굴의 진 유이치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아라시야마 부대실로 찾아왔다. 이미 몇 번이고 똑같은 일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아라시야마 부대원들은 익숙하게 시선을 공유했다. 저 표정은 어필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일지 모르겠다만, 저 표정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진이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며 아야츠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를 가지런히 모아 한 쪽으로 치웠다. 다용도실에 들어선 키토라와 토키에다가 마실 것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왔고, 사토리가 소파 건너편에 나란히 놓인 의자를 끌어 옆쪽으로 가져왔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아라시야마 대원들의 연계를 보며 진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 건너편에 나란히 놓여진 의자 중 하나를 끌어 앉았다. 아야츠지와 사토리는 소파에 앉았고, 차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키토라도 아야츠지의 옆에 앉았다. 세 명이 앉아 소파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차자 토키에다는 사토리가 끌어줬던 의자에 앉았다. 아라시야마 부대 네 명과 함께 테이블에 동석한 진은 대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라시야마가 자리를 비웠으면서 동시에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이 그다지 바쁘지 않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찾아온 건 진의 사이드이펙트 덕분일 터. 간단히 말해서 아라시야마 몰래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대원들은 모두 경험을 통해 진이 어떤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진은 늘 제 자랑스러운 연인에게 심장이 멎을 뻔 한 경험을 하면, 그걸 대원들에게 불평하러 오고는 했으니까. 이러라고 진의 트리거에 아라시야마 부대실 출입 인증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해 준 건 아닌데 말이다. 뭐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남이 들었다가는 어처구니 없어 호흡도 잊을 정도의 한심한 언쟁일 터다. 허나 그들은 모두 장본인. 나름대로 싸움을 앞둔 마음가짐으로 그들은 진중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상대에게 질 수는 없었다.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은 홍보 부대라는 특성까지 덧붙여져 사람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사교를 이끄는 데에 특출난 재주가 있는 사람들 뿐이었지만, 다들 부러 말을 꺼내지 않고 완벽하게 웃는 얼굴로 진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진이 들어온 뒤로 대실에 울렸던 소리는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차와 간식을 내온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고스란히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아야츠지와 사토리, 다정하게 무표정한 토키에다, 그리고 뾰로통한 표정의 키토라. 평소라면 부드럽게 말을 걸으며 대화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줄 상냥한 사람들이 말한마디 없이 압박하는 공기는 무시무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진작에 기가 죽어버렸을 분위기였으나 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하고 이겨 온 숙련자였다.

 

"어제 말이야."

 

  그리고 운을 떼는 사람은 늘 진 유이치였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그였고, 컴플레인을 걸러 온 사람도 그였으니까. 그리고 꿋꿋하게 그 컴플레인에 항의할 사람들은 아라시야마 대원들이었고. 이기는 사람은 늘 달랐지만. 

 

"아라시야마랑 같이 있었는데."
"그렇군요."

"아라시야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쥰은 연애하는 사이였다. 둘의 관계에 연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은 건 정확히 6개월 전. 시작은 우당탕탕 차마 말로 적기에 부끄러운 둘만의 사건사고였으나 작은 눈덩이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눈사태가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사랑싸움은 보더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대형 사고가 되었다. 그걸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연관 있는 대원들이 이리저리 뛰었던 사건들은 차마 보더 밖에 내보내지 못할 쪽팔린 사건이었다.

  작게는 대원 두 명의 감정싸움이라지만 크게 보면 미래시 사이드이펙트 보유자이자 보더의 기둥 중 한 명과 보더의 홍보부대 대장이자 시노다 파 최고의 병사의 감정적 갈등이었다. 타마코마 지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다른 두 파벌과도 온건한 관계를 취하는 진이나, 시노다 파의 필두나 다름없으나 키도 파인 네츠키 씨의 총애를 받는 아라시야마 둘 다 놓치기 힘든 인재였다. 무엇보다 둘의 감정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이게 바로 보더가 얻을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이리라.

  어처구니 없는 동갑내기 두 사람의 사랑싸움에 더 크게 휘말리기 전에 적당히 휘말린 죄 없는 사람들은 그 선에서 싸움을 무사히 끝내야만 했다. 그걸 위해 몇 사람이 개고생을 하고 낯부끄러운 말을 들어줬어야 하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으나 카자마가 진저리를 치고 타치카와가 질린 표정을 지었으며 카키자키가 얼굴을 쓸어내리고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 모두가 한숨을 푹 쉬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끝내 라운지 한가운데에서 사과보다도 벌겋게 달아오른 진 유이치가 키쿠치하라도 들릴까 말까 긴가민가한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좋아합니다 고백을 하게 만든 대사건. 그리고 그 말을 용케 들어낸 아라시야마가 태양보다도 찬란하게 웃는 얼굴로, 모든 라운지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성량으로 나도 좋아한다 외치며 진을 끌어안은 바로 그 사건. 아라시야마의 목소리와 미소는 사건이 무사히 끝났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특히 A급 B급 대원들─은 남의 고백을 듣고 그렇게 진이 빠진 건 처음이었으리라.

  여하튼 두 사람은 바로 그렇게 모두에게 알리며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낯부끄러울만한 연애를 했다. 둘 다 공사는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이었으나 두 사람은 공적인 자리도 사적인 자리도 보더인 사람들이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를 누군가들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걸 본 적도 있었고, 나란히 기대 앉아 있는 것도 본 적 있었으며, 귀에 정담을 속삭이는 것도 본 적 있을 터다. 그보다 심한 건 본 적 없지만, 학창시절의 청춘을 보더에 갈아넣고 있는, 분홍색 부족한 대원들에게 그것만으로도 지나친 자극이었다.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시선조차도 이미 충분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낯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가끔 타마코마 지부나 미디어 대책실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오니 확실했다. 여하튼 두 사람은 그렇게 화려하게 연애 데뷔를 했다. 중요한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열고 들어온 진은 엄한 눈으로 입을 열어 상세하게 어제 있던 일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출입제한구역 안에 포함된 놀이터 그네에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홍보 부대 대장은 이 미카도 시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한 구역 바깥으로 나가면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보더 내부에서 하기 조금 더 부끄러운 연애는 대체적으로 제한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아라시야마의 방은 그의 가족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진의 방은 타마코마 내부에 있어서 자꾸 지부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을 써 줘 민망했으니 별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 넓은 제한구역에는 당연히 보더의 카메라가 들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었고 진과 아라시야마는 모두 그곳을 훤히 꿰고 있었으니 연애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냥 진의 사이드이펙트로 오늘 네이버가 등장하지 않는 방향이 어디인지 찍어 그곳에서 만나면 됐다.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올라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어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 서로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정하게 웃는 모습도 충분히 보였다. 저번에 만나고 이번에 만나기까지 그 사이에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두런두런 풀어내다가, 문득 그와 연관된 과거의 이야기를 건져내서 줄줄 대화하는 목소리는 조곤조곤 부드러웠다. 마지막으로 상당히 먼 곳에서 총소리와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밤에는 가까운 연인의 목소리만큼이나 먼 곳의 네이버를 잡는 소리도 참 잘 들렸다. 로맨틱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환경이었으나 진은 충분히 만족했다. 아라시야마가 있고 저 자신이 있고 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평화롭다.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아라시야마는 언제나 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는 그 이상 바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 대화하던 도중, 순간적으로 어두운 놀이터를 밝게 만들 정도로 환하게 웃은 청년이 그네에서 일어나 진의 앞에 다가왔다. 그네가 앞뒤로 움직이며 삐걱삐걱 작게 나던 소리가 뚝 그쳤다. 따라 일어서지 않고 여전히 그네에 앉은 채로, 진은 어렵잖게 이어질 미래를 봤다. 다가온 아라시야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신이 고개를 들면 아라시야마가 이마에 키스해주는 미래. 행복한 미래였기에 부끄러운 기색을 참아낸 진은 기꺼이 아라시야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약간의 기대와 행복을 담아서. 

  그리고 아라시야마는 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마가 아니었다. 진과 눈이 마주친 아라시야마는 작게 웃더니, 허리를 굽히고 눈을 감아 진에게 도장을 눌러 찍었다. 가볍게 소리가 날 만큼의 키스였다. 쪽, 그리고 다시 한 번 쪽. 갑작스러운 키스에 멀뚱히 눈을 뜨고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진은 얼이 빠졌다. 부드럽게 미소짓느라 눈이 예쁜 반달 모양으로 휘더니, 곧 얼굴이 한결 가까이 다가오면서 녹빛 눈은 눈꺼풀 밑으로 숨어버리고 긴 속눈썹과 하얀 이마가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입술에 쪽. 살짝 떨어져서 눈을 뜨고 시선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다시 웃더니, 눈을 뜨고서 쪽. 

 

"아, 아라시야마......!"

 

  두 번의 키스를 머릿속으로 몇 번 굴려보며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진을 보며 아라시야마가 키득키득 웃었다. 어두워서 둘 다 뺨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따위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최소한 제 뺨의 열기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밤공기는 꽤 차가웠는데도, 손난로라도 된 것 마냥 따뜻했다. 

 

"그냥 이마에 키스하는 거였잖아!"
"그럴 생각으로 일어난 거기는 했는데."
"왜 갑자기......!"
"싫었어?"
"그건 아니지만!"

 

  이 세상 그 누가 너한테 키스를 받았는데 싫다고 생각하겠어? 자신은 공주님이 아니지만 아라시야마는 그림같은 왕자님인데. 곤란하지만 좋아서 곤란한 거였다. 한 손으로 입가를 몇 번이고 쓸어내린 진이 속으로 열심히 심호흡했다. 아라시야마는 가끔 이렇게 심장에 나빴다. 아니 좀 자주. 하지만 벌써 연애도 6개월 째. 이 정도의 두근거림은 거뜬히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진은 농담처럼 말했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었어?"
"진이 나를 올려다보는데, 어쩐지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윽, 그건......"
"그래서 그냥 키스하고 싶었어."

  아라시야마가 이번에는 무릎을 굽히고 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내 그네에 앉아있던 진의 시야가 아라시야마를 따라 내려왔다. 진의 허벅지에 팔을 얹고 그 위에 제 턱을 얹어서 진을 올려다보는 아라시야마는 사랑스러웠다. 다리에 닿아오는 온기도 좋았다. 젠장, 두근거림에 내성이 생길만하면 아라시야마는 이렇게 엄청난 공격을 해댄다. 과연 아라시야마 대장. 화력전에 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남자였다. 진은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꺼냈다. 

 

"실력파 엘리트는 아라시야마 대장을 유혹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래?"
"그래그래."
"하지만 나는 지금 유혹하고 있는 거야."

 

  뭐. 진의 호흡이 뚝 멈췄다. 크게 벌어진 푸른 눈동자가 멍하니 제 연인을 담았다. 영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잠시 피했던 아라시야마는, 곧 눈썹을 내리며 조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넘어와 줄래?"

 

  멀리서 들리는 네이버를 포격하는 소리와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사실 진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미 전부 네 거인데. 지금 여기서 더 넘겨줄 것도 없다고. 보더에게 바친 몫을 제외하면 진 유이치는 흔적도 없이 아라시야마 쥰에게 속해버렸는데. 방금 떨어진 심장이 네 쪽으로 굴러간 것 같은데 그거라도 가질래?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빴다. 심장이 너무 떨려서 당장 실려가도 될 것 같았다. 진 유이치는 당연히 그 유혹에 넘어갔다. 거부할 수 있는 힘도 자격도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네에...... 그렇군요......"

 

  어느 정도 생략과 축소를 섞어 말해준 에피소드를 들은 아라시야마 부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키토라의 시선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대략 10도는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은 꿋꿋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일이 있을 때 이런 이유로 이 부대실에 찾아왔다. 

 

"우리 아라시야마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갈수록 심장에 나빠! 이러다 진 씨가 죽겠어! AS 요청합니다, 아라시야마 부대!"

"사토리 이의 있습니다! 우리 대장에게 그런 걸 가르친 건 진 씨 아닌가요! 이쪽이야말로 저희 소중한 아라시야마 씨에게 뭘 가르치신 거에요!"
"진도 이의 있어! 그런 거 안 가르쳤어! 아라시야마가 어디선가 배워 온 거라고!"

"키토라도 이의 있어요! 저희 아라시야마 씨가 진 씨 때문에 배운 거잖아요!"

 

  사토리와 키토라, 진이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했다. 토키에다와 아야츠지는 한 발 떨어진 심정으로 차를 마시거나 과자를 먹었다. 진심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진은 거진 장난을 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아라시야마 부대의 귀하디 귀한 대장이다. 아라시야마와 진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대원들이 일정 부분 아라시야마와 공유하던 시간을 양보해준 것도 알았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하고 무척 충족하게 행복하다고,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오는 거겠지. 연인의 대원들과 보다 친해지고 싶다는 희망사항도 있었을 것이고. 

  뭐어어, 아라시야마 에프터서비스를 요청하는 것도 아예 빈말은 아닐 것이다. 저들의 대장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탓에 죽을 것 같다고 투정을 부리는 진은 진심이긴 할테니까. 가장 처음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열고 중얼중얼 아라시야마를 대체 어떻게 키운 것이냐고 물어보는 진은 참 절박해 보였었다. 저희들이 키운 건 아닙니다만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줄 정도였으니까. 그 뒤로 진은 종종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진이 이겨서 대원들이 아라시야마 씨에게 그 부분은 말해두겠다며 두 손 들고 사과한 적도 있었고, 대원들이 이겨서 진이 끄응 앓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었다. 이제까지 전적은 4승 5패. 

 

  하지만 귀하디 귀한 대장을 보더 전체까지 끌어들여 모셔가지 않았던가? 둘의 사랑싸움에 가장 진하게 휘말렸던 사람들 중 하나가 여기 있는 아라시야마 대원들이다. 둘을 무사히 엮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진이 종종 찾아오는 데에 이 이유도 있을 터다. 고생해서 엮어둔 보람이 있도록 사귀고 있다고 어필해주는 거겠지. 진도 귀한 사람이다만 여기는 아라시야마 부대. 당연히 아라시야마가 더 귀한 곳이다. 진의 편이 되어 줄 아라시야마조차 없다. 그리고 승리보다 패배 카운트가 높은 것도 마땅찮으니, 토키에다와 아야츠지는 이제 절대적인 승리의 주문을 써야겠다는 시선을 교환했다. 

 

"진 씨."
"응?"

  토키에다가 부르는 것과 아야츠지가 찻잔을 내려놓는 건 거의 동시였다. 미래라도 본 것인지, 진이 조금 불안한 듯 아라시야마 부대의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 씨, 벌써 그 사건 이후로 6개월 쯤 됐지요?"
"그, 렇지."

"6개월이에요."

 

  토키에다가 날짜를 강조하자 사토리와 키토라가 히죽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두 사람은 대번 이해했다. 진 홀로 이해하지 못해 눈만 멀뚱히 껌벅였다.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는 실력파 엘리트에게, 사토리가 척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족한 설명을 보충하듯 명랑하게 외쳤다.

 

"아라시야마 부대 에프터 서비스 품질보증 기간은 끝났습니다, 진 씨~! 앞으로는 진 씨가 열심히 해나가 주세요!"

"뭣!"
"저희 대장은 빨리 배우고 잘 배우는 타입이니까요. 진 씨에게 달려 있어요."
"화이팅! 저희 대장이 매력적인 건 뭐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라시야마 씨를 데려가셨으니 당연히 감수해야죠."
"쓰러질 것 같으면 전화하세요! 토리마루에게 연락해 드릴게요~."

 

  눈을 동그랗게 뜬 진을 응원하며 토키에다, 아야츠지, 키토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사토리가 말했다. 제각각 승리의 미소를 짓는 아라시야마 대원들을 앞에 두고, 진이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 아라시야마가 키워낸 대원들 다웠다. 이제 저들이 끼어들지 않아도 두 사람이 잘 사귀리라 믿고 있다는 의지표현 앞에 무슨 말을 할까. 이제까지 저보다 나이 어린 대원들에게 신세졌다며 고개밖에 숙일 게 없잖은가. 지는 싸움은 잘 하지 않는 승부욕 강한 진 유이치는 완전히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에게 완전히 졌다. 

  대신 진은 웃고 있는 대원들에게 모이라며 손만 조금 휘저었다. 조금 뒤 제 사랑하는 연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진과 대원들을 확인하고는, 자신만 따돌리고 다섯이서 놀았느냐며 서운한 듯 입을 비죽이는 미래가 보였으니, 이제 그걸 무사히 넘길 방법이나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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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이하 편하게 썰체로 말합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합니다 뇌피셜 多 날조 多 개인설정 多

 

 

 

 

홍보부대 시작은 분명 아라시야마였겠지? 사실 아라시야마-카키자키가 기자들 앞에 서서 의견말하기(?) 하던 그 때부터 네츠키 씨는 홍보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홍보대원의 필요성은 느꼈던 거라고 생각함. 정확하게 시기 궁금해서 BBF랑 실물책 꺼냈다 보더 홍보 이벤트에서 카키자키랑 아라시야마가 나섰고 이 때가 보더 본부가 완성된지 3개월 되었을 시기. 이 때 C급이나 B급 A급 확실한 구분이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이 때 둘 다 B급 정대원. 훈련생 시기를 거쳐서 막 정대원이 됐을 것 같은데 그렇게 정대원 된 사람이 한두명도 아니고 그 중에서 이 두 명이 픽업됐다는건 네츠키 씨가 아마 이런저런 개인적인 평가를 통해 이 둘을 꼽았을 거라고 생각함. 카키자키도 아라시야마도 운동부 계열의 서글서글하고 성격 좋으면서도 외형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머리도 나쁘지 않게 굴러간다... 사실 여기서부터 상당히 드문 계열이라고 생각함 특히 B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더더욱...

  BBF에 따르면 (그 이후 밝혀진 애들은 잘 모르지만 BBF2 내주세요) 이 시기에 보더에 있던 사람들은 구 보더 제외하면 타치카와 후유시마 카자마 아즈마 미와... (오퍼레이터 제외함) 실력으로 상승세를 보이던 사람들이 이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이름만 나열해도 나였어도 이중에 아라시야마랑 카키자키 뽑았겠다 싶음(;) 타치카와나 미와는 아무리 봐도 홍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고 후유시마는 시작은 아무래도 엔지니어로 입대했을 때니까 후보로 들어가지도 않았을거고 아즈마랑 카자마가 남는데 카자마는 역시 겉보기에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보이니까... 그리고 아즈마는 참모로 쓰면 썼지 홍보로 쓰기에는 역할이 어긋난다는 느낌 그렇게 하나하나 지우다보면 역시 이 둘이 네츠키 씨가 제일 좋다! 고 생각해서 뽑은거였던 안되는 사람들 다 지우니까 이 둘이 남는군요! 하고 뽑은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왜 이 둘이 선택되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감. 게다가 결정적으로 둘 다 시노다 본부장파임. (아라시야마는 타마코마, 카키자키는 키도파에 살짝 치우쳐져있지만) 홍보용으로 타마코마는 대외적으로 절대 내세울 수 없고, 키도파는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라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음. 겉으로 보여지기에는 시노다 본부장파가 제일 나을 거고... 네츠키 씨는 그것까지 고려해서 둘 다 홍보용으로 써먹을 수 있겠노라고 생각을... 했던거겠지...

  홍보행사에다가 텔레비전에까지 나갔던 행사인 것 같은데 (테루야랑 토모에가 텔레비전에서 이 행사 본 게 카키자키 부대 들어온 계기라고도 했었고) 아무래도 보더 본부가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보더를 홍보한 첫 행사? 그런 게 아니었을까? 공식 이름이 붙은 첫 번째 대대적인~ 무언가... 거기서 아라시야마가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냄 (웃으면서 가족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지키겠다고 하는 중학생 솔직히 무서움 카키자키쪽이 상식인이고 아라시야마쪽이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함 객관적으로) 네츠키는 아마 그 때 본격적으로 아라시야마를 홍보대원으로 픽업해서 조금씩 화면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을까 뇌피셜로 생각하는 구석이 있음... 사실 네츠키로써는 땡잡은 기분 아니었을까? 아마 엄청나게 큰 기대는 없이 평범하게 우수한 중학생 수준으로만 말했어도 네츠키는 잘 수습해서 포장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 둘을 달랑 텔레비전과 기자들에게 노출시켰던 거였을텐데 거기서 아라시야마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아주 좋은 방향으로(네츠키 기준임) 사실 뭐 아라시야마는 홍보부 입장에서는 거의 굴러들어온 호박이었을거라고 생각함 비주얼부터도 귀한 비주얼인데 내면은 더 귀한 멸종위기종이 보더에 와줬지... 

  이 행사 때 이 둘은 갓 정직원이 된 상태였고 -> 아라시야마 '부대' 가 홍보부대가 되면서 카키자키가 탈퇴한 사이 아마 최소 몇개월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함 진짜 최소한 반년 길게는 1~2년 정도까지. 왜냐하면 그 뒤 사토리랑 토키에다, 마지막으로 아야츠지가 입대하기까지 대충 1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아야츠지가 들어와서 부대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오퍼레이터가 되어서 부대를 짜고 친밀도를 쌓을만큼 시간을 겪기까지가 음음음 그렇게 따지면 홍보 '부대' 자체는 약 1~2년 정도밖에 안된 걸지도... 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네츠키씨의 유능함을 느끼게 되고...

 

  사실 또 의문이 있는데 아라시야마 부대에서 정말 최근에 입대한 막내 키토라를 제외하면 제일 마지막에 입대한 건 아야츠지임. 그럼 그 전에 아라시야마 부대는 과연 어떤 식으로 운용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있는데... 개인 부대인 우루시마 부대조차도 대장+오퍼레이터 조합으로 현재 원작 진행 시점에서는 팀에는 오퍼레이터가 필수적임. 하지만 몇 년 전 체계가 잡히기 전에는 오퍼레이터 숫자도 부족했을 거고... 역시 오퍼레이터 없는 팀도 있었던 걸까? 사실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되는게 아라시야마/카키자키 정대원 시기 > 아야츠지 입대 시기까지 거의 딱 1년쯤 걸리는데 그 사이가 붕 뜨게 되어버려서... 아니면 그 자리를 다른 오퍼레이터가 채워줬던 걸까? 원작에서 이 정보가 풀릴지 안풀릴지 모르겠지만 뇌피셜적으로 아마도 오퍼레이터 없이 대장+대원3 구도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퍼레이터 없이 움직이니까 대장의 판단에 무게가 실리는데... (이하 모두 뇌피셜 개인상상) 아마 이 구 아라시야마 부대는 아라시야마-카키자키가 거의 차등없이 대장 두 명 구도로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함 자기 자신+대원 한 명을 각각 데리고 활동하면 그럭저럭 오퍼레이터 없이도 어떻게든 망치지는 않을 정도로 커버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랭크전이 시작되기 전에 작전을 철저하게 짜면 되지 않을까 싶고 (사실 이 때 랭크전도 확실한 형태와 규칙으로 있었을지조차 의문임 그렇게 생각하면) 

  뭐 아무튼 오퍼레이터 없이 오로지 대장 명령에 의지해서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으니 사토리와 토키에다가 대장에게 의지도가 높은? 그건 아닌데 대장을 무척 좋아하는? 대원이 되는 건 약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생각함 카키자키도 지금까지도 무척 좋아하는 선배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하고 두 사람은 아라시야마보다 3살쯤 어리기도 하고 이 시기에는 아라시야마 고딩이고 이 둘은 중딩인가? 와중에 믿음직하고 좋은 선배 둘과 함께 부대를 짜서 활동하는 자체는 이 둘에게 무척 재미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대장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아라시야마를 무척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흐름이지 않았을까. 나중에 아야츠지가 들어오고 오퍼레이터가 네 명의 상황을 즉시 알리면서 지시 내리는 게 편해졌더라도 아마 아라시야마-카키자키 투톱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마 칸다가 있을 시기 유바 부대와 이 구 아라시야마 부대가 무척 유사했을 것 같음. 아라시야마는 대장이면서도 그보다는 역할적으로 에이스로 점수를 따러 가고, 카키자키가 지시권을 가지고 대원들을 이끌고 건실하게 하나씩 쳐내고.

 

  여기서 다시 홍보 얘기로 돌아오자면... 약 4년 전 네츠키 씨에게 눈도장을 찍은 이후부터 아라시야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조금씩 차근차근 홍보에 발을 들였을 거라고 생각함. 공식적으로 '홍보 부대' 가 되기 전부터 아라시야마도... 그리고 어쩌면 사토리나 토키에다도. 그래서 홍보 부대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별 거리낌 없이 오케이 할 수 있도록. 이것도 네츠키 씨 계산일까? 생각하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함 시민들도 본인들도 스스로가 보더를 대표하는 대원으로 나서는 게 익숙해지도록 만들어두기... 보더 부대라는 게 의외로 흔쾌히 빠지거나 해산하거나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이지만 아라시야마 부대는 그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처음은 간단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함. 사실 시작부터 기자+텔레비전 데뷔로 시작해서 그보다 더 무거운 일이 별로 없었을 거고... 아마 아라시야마가 방과후 활동으로 할 수 있을만한 일, 정도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보더 일을 하면서 부활동같은건 안했을 것 같고 보더에 왔을때 틈틈히 도울 수 있는 일 정도를 했을 것 같음. 잡지 인터뷰라던가, 가벼운 사진 몇 장. 뭐 그렇게... 토키에다나 사토리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대장이 찍는다는데 같이 찍을래? 같이 인터뷰할래? 그런 느낌으로 아마 자연스럽게 홍보에 익숙해지는 시기가 있었을 것 같음. 본인들은 큰 자각이 없지만 보더 본부에서 미디어대책실로 제일 자주 찾아가는 대원들이 되는거지 거기 입대 이후 한번도 갈 일 없던 대원들도 주변에 수두룩빽빽한데... 

  거기에 다들 홍보에 적성이 있는 성격이었던 것도 큼. 아라시야마는 자신이 적성 있음을 4년 전 기자들 앞에서 네츠키에게 증명했었고 토키에다나 사토리는 어떨까 싶어서 네츠키도 같이 해볼래요? 같은 느낌으로 아라시야마랑 같이 슬쩍 이끌어 데려와봤는데 이쪽도 적성이 있던 거지. 무엇보다 이쪽은 대장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대장의 미소나 응원, '역시 너희들이야 믿고 있어' 같은 뉘앙스의 대장의 칭찬에 안심하고 어깨에 힘을 푸는 기질이 있음 이 절대적인 대장을 향한 신뢰... '대원' 으로서 홍보부대의 적성에 이것도 들어간다고 생각함. 대장이 흔들리지 않을 때 대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홍보부대로 활동하기에 어려움은 없음. 대장의 성향에 맞춰서 대원이 이끌린다는 느낌인데 아무튼 아라시야마 주변에 홍보에 적성이 있는 사람들이 이끌린 건지... 그런 식으로 다들 홍보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함. 카키자키도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홍보부대가 된다는 점에는 부담을 느껴서 탈퇴해버린 거고...

 

  이런 식으로 홍보활동 자체를 '어렵지 않다' 고 한 번 인식시킨 뒤에 스케줄이 휘몰아쳐도 이걸 빡빡하다고 느끼지 않는 대범한 성향의 애들로 크지 않았을까 (+천성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바쁘더라도 아! 뭐이리 바빠요 나 못해하고 드러눕지는 않고 누구나 이 정도는 바쁘지 않나? 보더에서는 부지런한 사람 많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는? 차이?) 사실 아라시야마 부대 초인이라고 생각함... 홍보 활동이라고 하면 결국 행사참가, 라디오, 잡지, 인터뷰, 가끔 텔레비전, 광고...... 그런 대외적 활동에다가 신입들 들어오면 신입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도 아라시야마 부대가 하던데 그 일도 하고. 사실 이것만 봐도 빼곡하지만 여기에 보더 활동이 얹어짐. 방위활동이랑 랭크전. 기본적으로 다들 상승욕도 있고 홍보부대니까 더더욱 실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러니 당연히 일주일에 몇 번은 개인 훈련 시간도 빼둬야 하고, 작전 짜는 시간 상대 로그 보는 시간도 있어야 하고, 방위 활동도 누구한테 떠넘길 사람들 아니니까 당연히 제 부대 몫은 할거고. 그 위에 학교가 얹어지는 거지. 아라시야마 원작시점에서 대학생이지만 그 이전으로 넘겨서 홍보활동 시작할 무렵에는 고등학생이었을텐데, 사토리 제외하면 다들 성적그래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음. 아마 사토리도 낙제는 안할거고... 그럼 개인 공부하는 시간도 있다는 거임. 잠은 대체 언제 자는 거지? 

  아마 홍보활동 초기가 제일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함. '공식 보더 홍보부대' 가 나선 만큼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어둬야 하니까 일은 많고, 홍보부대 활동이 다듬어지지 않았으니 그걸 다듬기 위해 이런저런 걸 배우고 몸에 익혀두고... 이 다듬는다는게 좀 더 사람들 앞에서 조직을 대표하는 누군가로 계속 시선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거라고 해야하나. 어딘가에 등장했을 때 자기 자신의 존재로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는 언동을 하도록, 좀 더 신뢰감 있게 말하는 법, 발표하는 법, 시선처리, 매끄러운 발성, 뭐 기타등등 그런거. 아이돌이 완벽하게 자기 자신 다듬듯 그런 식으로? 위기 상황에 도착해서 아라시야마 부대 도착했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고 신속하게 대피해주세요 하면서 지시하는 게 능숙해지도록? 대외적인 상황에서 실수하면 이미지 타격이 크니까 자다가 갑자기 사이렌이 울려서 뛰쳐나가 출동한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읊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교육했으면 좋겠음. 사실 이걸 익히게 만든 다음에 홍보부대로 출범시켰겠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르니까 실전 겪으면서도 계속 다듬었겠지. 처음엔 그거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원작시점에서는 완벽하게 몸에 익은 상태였으면 좋겠다. 애들이 중학생일 때는 의무교육 시기니까 21시 이후에는 일시키면 불법이던가? 아무튼 보더는 홍보부대에게 불법적인 그런 걸 하지 않아요 그러니 아마 일정상 아라시야마가 제일 바쁘고, 토키에다랑 사토리는 법적으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정해져있으니까 그 때 돌아가서 씻고 작전공부하거나 저격훈련하거나 공부하고 자거나 했겠지 아라시야마는 마지막까지 일함. 아라시야마는 대장이니 역시 아무리 대원들의 스케줄을 빠듯하게 잡아도 아라시야마 스케줄이 제일 빽빽할거라는 확신의 뇌피셜이 있음. 그러니 대원들도 더더욱 열심히 하게 되겠지 대장이 제일 바쁜 걸 알고 있으니까...

 

  여기서 가지를 더 펼치자면 이렇게 홍보부대로서 익혀야 할 것을 몸에 익히는 시기+카키자키 탈퇴+개인적인 학업=문제까지 합쳐져서 이 때 아라시야마 부대 자체는 상당히 침체기였을거라고 생각함 순위 떨어진다는 소리죠 팀적으로 기둥 역할을 하던 카키자키가 나가고 다들 너무 바빠서 개인 훈련이나 상대팀 로그를 보거나 그럴 시간이 많이 없어져서... 다들 이런 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수면시간을 줄일 타입이라고 생각하는데 중학생이던 토키에다나 사토리가 아슬아슬하게 7시간 채워잔다면 아라시야마는 아슬아슬 5시간 채울까... 말까? 하던 시기여서 더 줄일 수면시간도 없고... 아라시야마가 에이스이자 대장+홍보부대로서의 무언가... 로 어깨의 짐을 느낀다는 걸 대원들이 당연히 더 뼈저리게 느낄거고... 경애하는 대장이 힘들어하는데 대원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결국 자기 수면시간 깎아서 각자 개인훈련에 시간을 쏟을 것 같음. 아야츠지는 부대의 형태가 변했으니 새로운 작전이 필요하니까 새로운 스리문셀 형태의 작전들을 파고들기 시작하고 사토리는 트윈 스나이프를 실전에서 쓸 수 있게 갈고닦고 토키에다는 아라시야마에게 제안해서 텔레포터>크로스파이어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거지... 홍보 부대로서 이들이 안정감을 갖기 시작할 때쯤 이 때 자기훈련에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아 A급 부대로 승격한다거나.

 

  키토라 입대는 상당히 최근 시기고 키토라는 아라시야마 부대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포지션이라고 생각함 그게 절대 나쁘다는 건 아니고... 원작에서도 아직 아라시야마 부대에게 스며들고 있는 시기? 라는 느낌. 부대 대원들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거랑 별개임. 아라시야마 부대는 뭐라고 해야하지 전체적으로 근성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오래 같은 부대로 있기도 했고 힘든 시기도 똘똘 뭉쳐서 이겨낸 때가 있어서 끈질기고 촌스러운 면모가 있다고 생각함 (이건 비주얼과는 전혀 다른 문제임) 블랙트리거 쟁탈전때 발을 묶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것만 봐도... 하지만 키토라는 좀 세련됬다고 해야하나 구질구질한 면모나 물고 늘어지는 면모는 좀 부족했는데 그게 원작초반~갈로플라전 겪으면서 점점 아라시야마 부대에게 스며드는 느낌이라 좋았음 아이의 성장은 빠르고 아라시야마 부대는 전원 신입 훈련생 교육을 맡을 만큼 가르치는 걸 잘함. 더군다나 키토라는 배우는 것도 빠르고 실제로 재능도 있음. 아라시야마 부대다운 냄새가 나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지~ 라고 생각하면 두근거림 사랑해 키토라... 실제로 키토라의 입대로 A급 부대 하위권이었을 아라시야마 부대가 중위권으로 뛴 거였을 거고 (아마) 아라시야마 부대는 꽤 오랫동안 같은 멤버 같은 인원으로 부대를 구성한 만큼 거기에 새 멤버로 끼어들기에는 아무리 배려해줬더라도 힘든 구석이 있을텐데 당당하게 그 중 한 명, 그 중에서도 에이스로 자리잡은 키토라는 대단하다고 생각함 (그리고 다들 최소 입대 3년차 고참들이면서 1년차 키토라에게 실력이 있으니 에이스 자리를 준 아라시야마 부대도 전체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함... 뭐 월트리 캐들은 대부분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서 질투하거나 꺼리거나 그런 것도 없긴하지만) 키토라는 처음부터 홍보부대라는 걸 알고 홍보부대가 뭘 하는지도 아는 상태로 들어왔기 때문에 홍보부대로서 움직임이나 행동거지, 발언을 다듬는 교육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거고 (당연히 할 거라고 예상했을 거고 미리 말도 해줬을것같음) 아직 중학생인 키토라를 이제 대학생이 된 아라시야마, 고등학생이 된 아야츠지와 토키에다와 사토리도 무척 배려해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함 자기들이 받았던 것처럼. 선배들의 애정과 배려를 한몸에 받으며 키토라도 홍보부대로서 익숙해지면 좋겠다. 

 

  아무튼 원작 시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실제로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라시야마 부대 스케줄은 보더 최고로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함. 누가 우연히 스케줄표라도 보면 매일매일 하루 분단위로 쪼개져서 일정이 있는 스케줄에 기함을 토하겠지만 정작 본인은 음? 그래도 많이 편해졌지 이렇게 생각하는 그 갭이... 좋음 본인은 정말로 개인 훈련에 투자할 시간도 있고 친구랑 소소하게 놀러다닐수도 있고 일정을 빼거나 할 수도 있어져서 되게 편해졌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띄엄띄엄 자유시간이 있는 스케줄이라니 널널하잖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뭐야 이거? 싶어지는 거죠 학교 - 보더(임무/개인훈련) - 집 일정이 사실 평범한데 말이죠 하지만 본인들은 본인들 스케줄 보면서 보기에만 좀 빡빡해보이지 하면 의외로 할만하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학교에서는 평범하게 수업/쉬는시간/점심시간 다 있으니 다들 똑같이 수업듣고 보더가 아닌 민간인들도 평범하게 학교 끝나면 방과후 활동 하는것처럼 자기들은 보더에 가는 것 뿐이고... 홍보 부대 일은 자기들 일인데다가 이제 익숙해지기도 했고 가끔 힘들지만 즐거울 때도 많고 그렇게 일하고 보더 방위활동도 다른 보더 대원들 당연히 하는 일이고 랭크전 준비는 지기 싫으니까 당연히 하는 거고... 뭐 그렇게 그냥 당연한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뿐이라서 딱히? 대단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음 대장부터 대원까지 그런 점까지 꼭 닮아있을듯 

  뭐 이렇게 한 부대에게만 부담이 쏠리는 건 여러가지로 위험하니까 챠노 부대를 제 2의 아라시야마 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네츠키 씨나 미디어대책실도 이리저리 노력은 하고 있겠지만 상위 부대중에서 이제와서 홍보 부대로 끌어들일만한 부대도 없고 (타치카와부대 후유시마부대 카자마부대 상위 3위 대장 이름만 봐도 홍보할만한 대장 아무도없음) 하위 부대에서는 빠르게 A급까지 치고 올라오기 힘듬. 그러니 뭐...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아라시야마 부대정도로 홍보에 적합하면서 실력도 있는 부대를 갖추기는 힘들겠지 사실? 아라시야마 부대가? 기적이 아닐까요? 아라시야마 부대 전원 로또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네츠키 씨에게는? 

 

  거기다 전원 시노다파라는 것도 좋음. 그리고 아마 시노다 파라는 점도 (네츠키씨가 키도파라는 점과는 전혀 별개로) 상당히 홍보에 높은 포인트를 가져갔을 거라고도 생각함. 네이버와도 사이좋게 지내자~ 라는 타마코마파는 아예 별개로 두고, 네이버로부터 마을을 지킨다는 기본적인 공통전제를 두고 있는 키도 파와 시노다 파는 대체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유사하다고 생각함.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네이버를 해치운다 / 사람을 지킨다에서 갈린다고 생각함.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공통적인 행위에서도 네이버를 전부 해치우면 시민들도 지킬 수 있다 쪽이 키도 파라면 (이것도 물론 캐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민간인을 실드로 보호한다. 네이버를 해치우는 건 시민의 안전이 보장된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게 시노다 파라고 생각함 (이것도 물론 캐마다2) 그리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보여질 지 모르는 홍보 부대인 이상 위험한 상황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순간, 순간적으로 개인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위기상황의 판단이 시민에게 보여질 경우 키도 파보다는 시노다 파의 행동이 보여지는게 보더의 이미지적으로는 유리함. 그리고 다른 부대라면 몰라도 최소한 홍보 부대만큼은 그 순간 사람을 지켜야겠지... 그리고 아라시야마 주변은 정말 똑닮은 캐들이 모였음. 같은 부대끼리도 키도 파 시노다 파 자유인 파 제각각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라시야마 부대는 다섯명이나 있으면서도 (심지어 구 아라시야마부대인 카키자키마저) 모조리 시노다파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보더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소리고... 그 점을 엄청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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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루트 F

2021. 1. 24. 03:13 from WORLD TRIGGER/NOVEL

소꿉친구 설정 날조 다수 

 

*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너를 기다렸어. 열 아홉 살의 진 유이치는 제 오랜 소꿉친구의 손을 잡고 종종 그렇게 속삭였다. 4월에 태어난 진 유이치는 삶의 첫 숨을 튼 그 순간부터 7월에 태어날 아라시야마 쥰을 기다렸다고. 사실 갓 태어난 순간부터 미래를 보았더라도 갓난아기가 무엇을 알았겠냐만은, 아라시야마는 별 말 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도리어 필요도 없는 사과를 하며 진의 어깨에 다정하게 머리를 기대거나, 정답게 손을 잡아주고는 했다. 3개월은 그런 사과를 할 만큼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부드러운 온기는 좋으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버릇처럼 또 같은 말을 했다. 줄곧 너를 기다렸어. 나는.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쥰은 소꿉친구다. 그것도 갓난쟁이 시절 걸음마를 같이 하는 사진조차 있는 진짜배기 소꿉친구. 보더에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정보였다. 딱히 비밀 정보는 아니었으니, 어쩌다 알게 되는 사람이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긴 우정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었다. 애초에 두 사람의 입대 시기나 포지션이 완전히 다른 탓이 컸다. 진 유이치는 보더 상층부 중에서도 진보다 늦게 입대한 사람이 있는 구 보더 소속이었고, 아라시야마 쥰은 4년 전 현 보더가 만들어지던 초기 시기에 입대했다. 아라시야마가 트리온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코나미 키리에조차 있다. 구 보더 소속 대원이며 동시에 아라시야마 쥰의 사촌동생. 양 쪽 모두와 연관이 있는 존재조차 있으니 아라시야마와 진이 소꿉친구였다면 진작에 구 보더 소속이지 않았을까. 

 

  ......다들 다음과 같은 전제를 깔고 그저 진과 아라시야마가 보더에서, 혹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 사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보더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만나긴 했으니까 아예 틀린 말까지는 아니고. 두 사람도 직접적으로 소꿉친구냐는 물음이 없으면 뚜렷하게 대답해주지도 않았다.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두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만났더라도 언젠가 이런 색으로 물들어 있었을 텐데. 그저 조금 빨리 만나 더 쉽고 빠르게 스며든 것 뿐이거늘. 

 

  그러니 오늘도 진 유이치는 청명하게 웃는 아라시야마 쥰의 미래를 응시하며 안심했다. 오늘도 너는 찬란하고, 내 미래의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모두 눈이 부신다. 네가 사랑하는 세상이 안전하니 네가 울 일은 없고, 네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안전하니 네가 괴로워할 일은 없고, 무엇보다 네가 안전하다.

  진 유이치는 그 사실에 다시 한 번 만족했다. 

 

 

 

 

  진 유이치는 제 기억이 존재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아라시야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이름도 제대로 없었던 미래시의 사이드이펙트와 제 삶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울고, 고민하고, 말했다가, 혼나고, 싸우고, 다시 한 번 울고, 또 새로운 미래를 보고, 머리가 아프고, 눈도 아프고, 괴로워서 토하고...... 그 시절의 기억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억들이었지만, 그 사이 단 하나. 아라시야마만큼은 선명했다. 옆에서 같이 울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혼나고, 같이 싸우고 자신을 끌어안아 달래주던 기적같은 소꿉친구. 조막만한 손발을 가진 어린 아이면서도, 아라시야마는 당차고 씩씩한 꼬마였다. 우는 진을 제 등 뒤로 숨기고, 유이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화를 내 줄 수 있던 꼬마. 

 

  그런 진이 아라시야마에게 심정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의지하게 된 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정의롭고, 다정하며, 늘 자신의 편이 되어 주는 친구. 아라시야마도 어렸던 만큼 지금의 진이 찬찬히 생각해봤을 때 서툴렀던 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동갑내기의 입장으로 봤을 때 어린 시절 아라시야마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만화에서 나오는 히어로 같았다. 언제나 진을 지키려고 해 주는 진만의 히어로. 저에게 알 수 없는 걸 보여준 하늘이 그나마 베풀어준 저를 위한 존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생각은 훨씬 더 견고해졌다. 하얀 괴물이 엄마를 데려가버렸어. 나한테 남은 건 쥰 밖에 없어. 진은 그리 외치며 몇날 며칠을 울며 보냈다. 정체 모를 희고 커다란 무언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를 저 혼자 목격한 이후로 이리저리 노력해보았지만,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겠는가. 믿어주는 사람은 언제나처럼 아라시야마 뿐이었다. 어머니도 제 아들이 미래를 본다는 것을 알아 진의 말에 불안해하긴 했으나,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나갈 수밖에 없는 몸이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뚜렷했던 진의 미래시와 달리 괴물이, 악마가 엄마를 공격한다는 진의 말이 평소보다 훨씬 모호한 탓도 있었다. 트리온병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끝내 어머니는 트리온병에게 습격당해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다. 진은 진정 혼자가 되었다.

 

  뚜렷한 일가친척도 없는 진을 받아준 건 옆집에 사는 아라시야마네 집이었다. 갓난쟁이 시절부터 소꿉친구로, 형제처럼 지낸 입장이었으니 아라시야마 가족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진이 아라시야마 집의 군식구로서 조금씩 적응해나갈 무렵, 진의 인생에 새로운 사람이 접촉했다. 구 보더의 사람들. 모가미 씨. 진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그 시절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며 말했던 진의 발언을 건너건너 들어 한 발 늦게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하얀 괴물, 악마, 그리고 실제로 살해당한 어머니. 진은 몰랐지만 아마 트리온 반응 역시도 있었겠지. 그들은 진 유이치에게 사이드이펙트가 있을 것까지 짐작하며 무척 조심스럽게 접촉해왔다. 진도, 그들이 싫지는 않았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의지하던 아라시야마 쥰이 있는 진 유이치는 보더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저 길도 싫지는 않아. 어쩌면 행복도 있겠지. 하지만 쥰이 있는데 힘들게 싸워야하는 길을 가고 싶지 않아. 엄마처럼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싸우는 건 무서워. 행복하고 평범하게 있고 싶어. 쥰의 곁에서. 

 

  보더로 들어오라며 꾸준히 부탁해오는 사람들에게 진은 미래의 정보만 살짝 전달해주는 미약한 도움만 건내주고 꾸준히 거절했다. 그는 싸움과 친하지 않았고, 스스로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특별한 무언가보다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미래에 역시 쥰과 함께 있는 미래보다 좋은 미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안이했던 진 유이치의 세상이 다시 한 번 깨졌다. 아라시야마 쥰이 살해당하는 미래를 보았다. 최악의 미래였다. 

 

 

  최악이 갱신됨에 따라 최선의 미래도 바뀌었다. 아라시야마가 살아있다는 기본 전제가 없다면 진의 세상도 흔들린다. 우선 그가 살아남아야했다. 모든 최고의 미래 위에 생존이 올라갔다. 그가 죽지 않을 미래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보더와 손을 잡는다면...... 진 유이치가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니, 못 한다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보더와 함께하는 건 아라시야마가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최소조건이었다.

  보더의 핵심 전력, 마더 트리거라고 칭해도 부족함 없을 존재. 진 유이치가 보더에 합류한 이유는 그토록 사소했다. 내 친구가 죽지 않을 미래가 필요해. 사소하고 이기적인 욕망이었다. 

 

  

 

 

  쥰 쨩이 죽는 건 싫다며, 엉엉 우는 얼굴로 모가미 소이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뭐든 할테니 이걸 바꿔달라 울던 어린 진 유이치는 늘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보더의 실력파 엘리트로 자랐다. 아라시야마가 죽는 미래를 무사히 넘기고, 대규모 침공을 겪고, 보더의 규모가 커지고, 아라시야마도 보더에 입대하고...... 그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진 유이치의 지침은 변하지 않았다. 네가 살아서, 행복한. 

 

  이기적인 지침이나 네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이타적으로 굴어야 하니 결과적으로 눈 없는 나침반은 평화를 가리켰다. 오늘도 네 미래는 안전하고, 나는 너를 위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그럼 너는 나를 끌어안으며 무리하지 말라 속삭여준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행복 속에서 진은 만족했다. 

 

"쥰."
"응?"
"너무 좋아."

"으음? 나도 좋아해."

 

  그래, 오늘도 세계는 완전하다. 그러니 내일의 세계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게 팔을 벌려 주는 아라시야마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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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