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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24 [사츠나츠] 꿈
  2. 2015.01.15 히지리카와 남매
  3. 2014.12.07 토키오토 1030
  4. 2014.10.17 [토키오토]Drop
  5. 2014.09.19 토키오토AU
  6. 2014.02.18 레이아이AU
  7. 2014.02.17 레이아이 조각
  8. 2014.02.16 우타케이 기념 조각글
  9. 2014.01.21 ROT 조각글
  10. 2014.01.19 토키오토 조각글

[사츠나츠] 꿈

2016. 11. 24. 23:07 from UTAPRI/NOVEL
지인분을 위해서 쓰는 사츠나츠! ^^)9 오랜만의 우타프리! 마지레젠 7화 네타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시노미야 나츠키는 종종 꿈을 꾼다. 뚜렷하게 이어지는 자각몽은 그에게 있어서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환한 보름달이 뜬 날. 드물게 바이올린을 연주한 날.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빛가루를 본 날. 파도소리를 들은 날. 유독 노랫소리가 곱게 흘러나오는 날. 온전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을 보고 싶은 날.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꿈 한편에서 걸어나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저와 꼭 닮은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면서도 녹빛 눈에 담긴 건 온전한 애정과 걱정이었다. 나츠키는 그런 사츠키를 보며 활짝 웃었다. 꽃이 피어나는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그 미소를 정면에서 목격한 사츠키는 하늘을 한 번 노려보았다가 바닥을 한 번 노려보고는, 나츠키와 시선을 맞췄다.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사츠키가 등장하는 꿈 속의 광경은 자주 변했다. 이곳은 그의 꿈. 나츠키의 심상 세계이기에 나츠키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다고 전해들었다. 오늘의 풍경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바닷가와 몹시도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별이 박힌 바다를 내려다보며 사츠키가 나츠키의 옆에 앉았다. 


“나츠키. 요즘 나를 너무 자주 부르는데.”

“삿쨩은 싫나요?”

“싫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 녀석들이 제대로 못 하는 거 아니야? 말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 날카로움이 나츠키에게는 절대 향하지 않겠지만 제 소중한 동료들에게는 그 까슬까슬함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츠키는 급히 고개를 저어 그 말을 부정했다. 동료들도 하루쨩도 어리고 귀여운 선배도 언제나 나츠키에게 다정했다. 좋아해주고 있었다. 다만 나츠키가 사츠키를 부르는 이유는 그가 보고싶어서였다. 나츠키의 안쪽에서 고이고이 잠들어있을 또 다른 보호자가 그리울 때 그를 청했다. 


 아이돌 생활은 즐거운 만큼 가혹한 일들도 많았다. 이제껏 사츠키에게 보물처럼 보호받아왔던 것에서 졸업하여 홀로 그것에 맞서 걸어야만 했으니, 그만큼 힘들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는 나츠키였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다. 그리고 나츠키에게는 사츠키라는 누구보다도 온전한 자신의 편이 있었다. 


“많이 힘든 거야? 아프다던가. 괴롭다던가.”

“으으응. 괜찮아요.”


 사츠키의 시선이 불안하게 나츠키를 훑었다. 그는 나츠키의 가장 가까운 보호자이기에, 어쩌면 그 시선은 마음의 상처마저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날카롭게 츠켜떠지는 눈매가 걱정으로 누그러진 모습은 나츠키와 몹시도 빼닮아 있었다. 그런 사츠키의 모습을 보며 나츠키는 웃었다. 병아리 날개짓처럼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힘든 현실에 종종 상처를 받더라도 나츠키는 금방 그 위에 약을 덧바르고 회복할 수 있었다. 소중한 하루쨩과, 스타리쉬의 모두들과. 그리고 언제 어느 순간에도 함께 있어 줄 온전한 자신의 편. 사츠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냥 삿쨩이 보고 싶어서요.”

“......뭐야, 그게.”


 사츠키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은근히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묻어나는 그 표정을 보며 나츠키가 소리죽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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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리카와 남매

2015. 1. 15. 19:09 from UTAPRI/NOVEL



러님의 만화( https://twitter.com/fedil2/status/555403186651938816 )를 조금 이어보았습니다 ㅇ.<)S2




포옥, 하고 새하얀 숨을 내쉬며 마이는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새하얀 얼굴과 동그란 보라색 눈만 파란 목도리에 대비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대형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속에서 노래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서. 언제나 제 옆에서 조곤조곤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던 기억 속의 오라비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그 모습에 어린 아가씨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마이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오라버니는 이제 예전의 그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학교를 제외하면 별로 돌아다니는 데도 없이 늘 집으로 돌아와 소녀와 함께 있어주곤 했던 오라비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한 마이로서는 전화 한 통도 겨우 일 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한 지금의 상황이 적잖이 섭섭했다. 

물론 오라비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은 마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를수가 있을까. 전화 한 통을 주고받을 때마다 오라비의 목소리에서는 안타까움이 줄줄 흘러넘치고 있었다. 너를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상냥한 목소리는 그렇게 속삭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이는 괜찮아요, 라고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가 노래부르는 모습이 좋으니까. 물론 거짓은 아니었지만 괜찮다는 건 별로 진실도 아니었다. 마이는, 이제 겨우 두 손으로 나이를 세게 된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해준 오라비의 손길이 그립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방도없는 상황에 죄스러움을 견디지 못할 오라버니의 모습만큼은 결코 보고싶지가 않아서, 마이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 되내일 뿐이었다. 

있죠, 마사토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마이의 오라버니죠? 

차마 묻지 못할 질문을 꼭꼭 삼키며 마이는 스크린에 비치는 마사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저택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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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키오토 1030

2014. 12. 7. 01:05 from UTAPRI/NOVEL


작게 숨을 훔치는 소리에 오토야가 조용히 눈을 굴렸다. 꾸벅꾸벅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거 봐, 역시 밤을 새는 건 무리라니까. 그리 생각하며 오토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이미 새벽 늦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힐긋이며 오토야는 소파에 오랫동안 앉아있던 탓에 이리저리 굳은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뼈가 두둑이는 소리에도 한 번 돌아보지도 않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당연히라고 해야 할까, 아이의 눈은 이미 반 이상이 감겨있었다. 잠에 취해 어쩔 줄 모르면서도 애써 눈을 뜨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일견 애처롭기까지 해서 오토야는 쓰게 미소지었다. 

천천히 위아래로 꾸벅거리는 아이의 뺨에 오토야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악보를 쥐고 있었기 때문일까, 차가운 손의 체온에 아이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듯 펄쩍 뛰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에 오토야는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오랜기간 아이돌로서 활동한 연륜이 그대로 묻어 있는 매력적인 미소에 아이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그 뺨이 얼핏 붉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어두웠기 때문에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많이 졸리지, 토키야?"

"아, 아니요... 괜찮아요."

억지를 부리듯 눈에 힘을 주며 입을 앙다무는 것을 보며 오토야는 조금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 우기고는 있지만 역시 눈엔 여전히 잠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고작 열 살짜리 소년으로서는 새벽 늦게까지 잠을 참고 있는 것부터가 한참 무리인게 당연했다. 그리고 내일 토키야의 모습을 생각하자면 지금 당장에라도 침대에 눕혀 재우는 게 옳았다. 

"그래도 이만 자야지."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토키야를 오토야는 별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보았다. 한참은 어린아이여서 그런지 오토야의 눈엔 토키야의 행동이 어린아이의 허세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토키야는 그런 오토야의 기색을 일부 눈치챘다.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 실망이 스쳐지나갔다. 시선을 피해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정말로, 속상했다. 

"음, 그럼 내가 졸리니까. 같이 자주지 않을래?"

명백히 달래는 말투. 하지만 부드럽게 눈을 휘며 건내는 부탁은 토키야에게 다분히 유혹적이었기에 어린 토키야는 입을 앙다문채 고민했다. 도록도록 바닥을 굴러다니는 토키야의 시선을 알아챈 오토야는 그저 웃으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올라와 오토야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는 청색의 눈을 마주했다. 

"아저씨."

"그러니까 아저씨는..."

그 예쁜 입에서 튀어나오는 섭섭한 단어에 오토야가 반사적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 모습에 토키야가 재미있다는 듯이 빙그레 눈을 휘었다. 휘어진 눈꺼풀 사이로 만족감 어린 눈이 감춰졌다. 그래도 이런식으로나마 오토야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소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새 행복해졌다. 별 수 없는 어린애 심리였다. 

"아저씨, 졸려요? 자고 싶어요?"

"그래, 그래..."

이젠 아예 포기한 듯 무심한 척 몇 번 고개를 끄덕이는 오토야를 보며 토키야는 곱게 웃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상을 하고 있는 아이가 웃는 모습은 충분히 보기 좋았기에, 오토야 역시 마주 웃어주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토키야가 손을 뻗었다. 맞잡은 오토야의 손은 토키야보다 몇 마디는 더 컸다. 

"가서 자자. 나 자장가 불러줘요."

"그래, 그래."

토키야가 고집을 포기하고 잠들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에 기뻐서 오토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토키야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조숙한 토키야가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구는 상대는 오토야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그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몰라도 괜찮았다. 토키야 본인 스스로가 어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아직은 몰라도 괜찮았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아닌데..."

푸념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토키야가 부드러이 눈을 휘었다. 오토야, 오토야. 차마 아직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단어를 속으로 꿀꺽 삼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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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토키오토]Drop

2014. 10. 17. 23:36 from UTAPRI/NOVEL



그 날은 쌀쌀한 날씨에 그 해 처음으로 가디건을 걸치기 시작한 날이었다. 토키야는 바닥에 떨어져 천천히 말라 바스러지는 낙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을 닮은 선명한 붉은색이 인상적인 단풍잎에 토키야는 별 감상 없이, 그저 은행이 아니라는 것에만 작게 만족해할 뿐이었다. 

정녕 그뿐인 감상을 속으로 남기며 붉은 잎들을 훑어 보던 토키야의 눈에 무언가가 담겼다. 결코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낯설 것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 그렇게 흙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그것이 믿을 수 없어 토키야는 몇 발자국 다가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전문가가 아닌 그의 눈으로는 그리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허리를 굽혀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얹어보았다. 

놀랍게도, 비록 식어가고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따뜻했다. 그리고 오싹하리만치 선명히 제 존재를 알려왔다. 토키야는 단박에 그것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피. 사오토메 학원의 한적한 단풍나무 아래에서 발견하기에는 과할 만큼 연관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한 웅덩이나 되는 피였다. 


토키야는 본인 스스로도 제 얼굴이 질려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당연했다. 비록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입학했다는 제법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결국은 아직 20살도 채 되지 않은 그였다. 그의 인생을 전부 통틀어 보아도 이토록 많은 피를 볼 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에서 보게 되었다는 충격은 생각보다 상당했다. 어쩐지 머리 한 구석이 찌르르 울리듯 아파왔다. 

그리고 문득 그는 피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이상하리만큼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었지만 어설프게나마 흔적을 쫒을 정도는 되었다. 

고민했지만, 결과는 나왔다. 온 몸에 고슴도치마냥 경계심을 얇게 두르고 그는 그 흔적을 따라 밟았다. 한 발자국 더 걸을 때마다 비릿한 피 비린내가 풍기는 듯 한 불쾌한 느낌에 그는 옅게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피 특유의 냄새에 코가 완전히 적응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특출나게 향이 짙어졌다는 것을 토키야는 깨달았다. 그리고 다섯 발자국 더 걸었을 때, 그는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단풍과 피를 섞어놓은 것 같은 지저분한 적색이었다. 아니, 사실 본색은 노을과 같은 고운 단풍색임이 틀림 없으리라. 다만 여기저기 얼굴 여기저기에 흐르고 굳은 피 탓에 그리 보였다. 옷 역시 전체적으로 붉은 색이 강한 차림새였기에, 언뜻 봐도 시선을 쉬이 땔 수 없는 상대임은 확실했다. 다만 토키야는 그와 다른 의미로 얼굴을 찡그렸다. 의외로, 그리고 놀랍게도. 상대는 토키야가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코 여기서 이런 말도 안되는 꼴로 있을 상대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토키야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상대가 토키야보다 몇 배는 더 놀란 듯 보였다. 검은 무언가로 입을 가리고 있어서 표정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휘둥그레 휩뜬 눈과 경악한 기색이 역력한 분위기는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옆구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음에도 상대는 벌떡 일어섰다. 그 행동에 고여 있던 피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것에 토키야는 소리없이 경악했다. 가장 큰 상처가 허리였을 뿐 온 몸이 자잘한 상처투성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뺨도, 팔도, 다리에도. 마치 칼과 같은 날붙이에 베인 듯한 엷은 상처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토키야에게 다가왔다. 상처의 고통이라고는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토키야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질리기까지 했다. 허나 그런 그의 심정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듯, 상대는 토키야의 손목을 붙잡았다. 경악할만한 악력이었다. 토키야는 순식간에 미간을 좁혔다. 팔에 힘을 주어 봤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토키야?"


믿을 수 없다는 듯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금 쉬어있었다. 토키야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 토키야는 정확히 한 시간 삼십 분 전에 상대를 보았었다. 그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피나 상처와는 전혀 연관없는 모습으로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그는, 아무리 봐도 오래되어 굳어있는 상처까지 여기저기 덕지덕지 굳어있는 모양새였다. 마치 당장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장에서 구른 사람마냥.

토키야는 가만히 자신을 붙잡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네가, 왜, 여기에, 여기는. 차마 문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말들을 띄엄띄엄 내뱉고 있는 상대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토키야는 가장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말을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꽤나 영리한 그는 눈 앞의 사람이 자신이 아는 소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몹시 닮은 사람이 아닐까, 비록 그 확률이 천문학적 숫자에 가까운 것은 알았으나 그 외에는 딱히 나올 결론이 없었다. 그렇기에 토키야는 그리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상대는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우에 홀린 것과 같은 표정일까. 

빠르게 두 번, 천천히 다시 두 번. 시선을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면서 상대는 눈을 그리 깜박였다. 그렇게 바닥을 바라보는 상대의 표정이 어떤지 토키야는 알 수 없었으나, 다시 고개를 든 상대는 놀랄만큼 안정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이 본 표정이 꿈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만큼이나.


"내 이름은, 잇토키 오토야."


신분을 말하라면, 그저 그런 닌자. 만나서 반가워. 마지막 한 마디 덧붙여지는 말과 함께 자신의 손목을 놓는 상대를, 토키야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잔뜩이었다. 아니, 일단 눈 앞의 상대부터가 일단 비일상의 원인이자, 주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키야가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손이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조심스럽게 놓아주는 그 손길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애처로울 만큼이나 작게. 닿지 않았더라면 분명 몰랐을 만큼.

그것이 어쩐지 안정적인 표정으로 눈을 접어 웃고 있는 상대의 진심과 같이 느껴져서, 토키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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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토키오토AU

2014. 9. 19. 00:25 from UTAPRI/NOVEL

결국은 치솟는 마이붐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 끄적끄적....... 시대물 보는 거랑 역사 의복찾고 고증찾는건 참 즐거운데 글만 쓰려고 하면 너무 어려워서 손을 놓게 되버리는..... 결국 이게 시대물인지 뭔지 십이국기 설정이랑 이것저것 취향만 때서 붙였습니다(진실     이게 토키오토인지도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냥 토키야+오토야 같기도 하고.....?

+)쓰고나서 보니 얘가 토키오토가 맞는지조차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오토토키같기도 하고.....













*




앳된 얼굴에 작은 체구는 명백히 그가 어린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작 열 살을 갓 넘겼을까 싶은 조그마한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찬 이목구비는 분명 장래가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뚝뚝했다. 얇은 속눈썹을 의미없이 몇 번 팔랑인 소년은 물끄러미 제 아래에 무릎꿇은 수많은 관료들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기색만으로도 소년은 충분히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찔하게 소년을 찔러오는 감정의 색은 분명히 긴장과 공포를 드러내고 있었다. 겉외모로는 소년만한 손자손녀도 여럿 있을 듯 한 노인들이 그 앞에 무릎꿇고 떨고 있다는 사실이 짐짓 우스워보이기도 했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작게나마 웃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웃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몇 번 더 그들의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토키야는 속으로 가벼운 한숨을 삼켰다.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건만, 별 수 없이 그런 생명체로 태어나버린 토키야는 저리 떠는 그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동정심을 가져버렸다. 비록 그게 왕 앞에 무릎꿇으며 먼지처럼 흘려내버릴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랬다. 


제 얼굴을 누구도 보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에서 그는 짧게나마 표정에 동정심을 비추고는, 곧장 지워냈다. 사박사박 비단이 스치는 소리가 예민한 그의 기감에 선명히 잡혀왔다. 사실 그것이 아니어도 토키야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반신, 유일한 왕. 그것이 바로 그였음으로.


가장 먼저 눈에 비친 것은 태양과 같은 붉은 색 머리카락이었다. 그것을 눈에 담자마자 토키야는 곧장 눈을 내리깔았다. 본디 자존심이 태산과 같은 그였지만, 상대에게만큼은 예외였다. 더군다나 지금 그는 그의 왕보다 높은 자리에 서 있었음으로, 눈이 마주친다면 자신이 그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어버렸다. 토키야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몹시 사양하고 싶었기에 차라리 그의 발밑으로 시선을 내려버렸다. 


화려한 금실로 수놓아진 신에서 차마 시선을 때지 못하는 재보의 모습을 보았을까, 왕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위로, 위로. 무릎꿇고 떠는 신하들에게는 시선 한 줌 주지 않은 채로, 그 장소 누구보다 어린 외모를 하고 있는 지존은 옥좌에 앉았다. 그제서야 토키야는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동그란 눈매는 머리카락과 다르지 않은 붉은색이었다. 평소 태양보다 찬란히 미소짓고는 하던 그 얼굴에는 냉담함만이 가득했다. 공포로 가득한 이 장소에서 오토야 혼자만 이질적으로 여유로웠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몹시 너그러운 왕이자 명군으로 이름높은,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자였다. 고작 아홉에서 열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외모와는 달리 이미 치세가 백을 조금 넘겨가는 그는 평소 겉모습처럼 잘 웃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부드러운 주군이였다. 다만, 지금의 그는 명백히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린 왕의 위엄을 뿜고 있는 냉엄한 군주였다. 


토키야는 다시 한 번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백명이 거뜬히 넘어가는 그 인원이 하나같이 겁에 질려 떨면서 간간히 눈물마저 흘리는 그 모습은 자비로 가득한 기린에게는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이성적인 머리는 그를 말렸으나, 결국 본능을 이길 순 없었던 그는 제 왕의 앞에 소리 없이 무릎꿇었다. 본디 체구가 자그마한것은 맞았으나,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주저앉아 깊히 머리를 숙이는 자신의 반신을 오토야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에 무슨 감정의 빛이 들어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토키야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부디 선처를, 주상."


"...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왕의 시선을 받으며 토키야는 더 깊이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다른 이였으면 불가능했겠으나, 자신의 왕의 앞에 무릎꿇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쉬웠고, 기묘하게 기쁘기까지 했다. 그렇게 토키야는 오토야의 앞에서 신하들의 선처를 빌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마치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짧았을지도 몰랐으나 그 장소에 있는 누구도 짧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작디 작은 제 반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앞에서 허리를 펴고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으로. 


왕의 입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무게를 가지고 토키야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신하들의 등을 짓밟았다.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마냥 몸을 떠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토키야는 그저 가만히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기다릴 뿐이었다. 



"...재보는 일어나시오."



왕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형의 문장에 토키야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려한 비단옷의 무릎자락이 조금 지저분해졌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저의 왕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기린이라는 것은 참으로 힘든 생명체군."



그리 말하며 쓰게 웃는 왕의 얼굴은, 토키야가 그의 앞에서 처음으로 무릎꿇은 이후 처음 보는 것이어서, 토키야는 조금 놀라버렸다. 


하지만 끝끝내 그 의미만큼은 읽어낼 수 없었다. 그는 기린이었고, 상대는 그의 왕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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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이AU

2014. 2. 18. 19:00 from UTAPRI/NOVEL

※인형술사와 그가 만든 인형 관계의 AU



"다 내 책임이야."


레이지는 가볍게 아이의 이마에 입맞추었다. 아이가 물끄러미 레이지를 올려다보았다. 두어번 눈을 깜박이는 모양새가 사랑스러웠다. 레이지는 그 눈가에 또 입맞추었다. 아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고, 이 몸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만들어졌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모든 것에 상관없이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그렇기에 결코 아이를 잃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 내가 만들어 낸 최고의 피조물. 이 아이가 비록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해 움직이는 인형이라 할 지라도 레이지는 아이를 사랑했다. 더없이 소중했다. 


"그러니까 안심해, 아이아이."

이름짓기를 아이라 지었지만 레이지는 그를 특별하게 불렀다. 그것이 좀 더 의미있으니까. 레이지의 속삭임을 듣는 아이는 무덤덤하게 속눈썹을 위아래로 팔랑거릴 뿐이었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아름답게 팔랑거리는 그 모습에 레이지는 황홀하다는 듯 다시 한 번 뺨에 입맞췄다. 


너를 사랑해.

속삭였다. 

그러니까 괜찮아.

비록 답이 들려오지 않는 속삭임일지라도, 상대는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는 존재일지라도. 

레이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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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레이아이 조각

2014. 2. 17. 12:20 from UTAPRI/NOVEL

※아..... 지금 제가 어제저녁 제보받은 한타영타 오타때문에 계속 죽고싶기 때문에...... 아 정말 아 한글파일 아 저도밉고 얘도 밉다는 감정을 담아서...... 레이아이 책이니까 이것도 레이아이입니다...









"가지 마, 레이지."

자신을 붙잡아오는 손길에 레이지는 뱉어내듯 조금 웃음을 흘렸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오는 연인의 손길에도 별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제 처지가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 역시, 그것을 뼈져리게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벌써 다른 동료들, 아주 옛적부터 인연을 맺어온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 둘 길을 떠나고, 남은 것은 집념에 가까운 감정으로 가까스로 발을 붙이고 있는 레이지와, 시간이 지나쳐 빗겨가버리는 아이. 단 두 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레이지는 이제 자신이 떠날 때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예전부터 무시하고 있던 그 느낌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시선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 전, 정말 처음 만났던 그 순간과 거의 변한 것이 없는 그 미려한 외모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을 꼽으라면, 거의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이 아닐까. 아롱아롱 매달려있는 그 오색빛의 감정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레이지는 웃었다. 

"가지 마, 레이지. 응? 가지 말아줘..."

평소 부탁이라고는 하지 않는 성정의 아이가 매달리듯 부탁해오는 그 모습에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미안하다고 속삭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만 가만히, 미소진 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죽는 거야. 알아, 레이지? 나를 기억해줄 사람같은거 이젠 없단 말이야."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부터 은퇴라는 이름 아래에 아이는 무대에서 모습을 감췄고, 다른 후배들과 동료들이 전부 떠나는 새에 아이의 이름은 색이 바래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와서 아이를 이렇게 바라보고, 추억을 속삭이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레이지가 유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안할수밖에 없었다. 

미안, 아이아이. 
젊었을 적 활기차게 부르던 애칭을 속삭이며 레이지가 미소지었다. 아이가 레이지를 바라보았다. 

안녕.

결국은 잔인한 이별의 말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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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우타케이가 끝난 기념으로 '수고했다.'고 말하는 룰렛과 왕자님들이 보고싶다는 생각으로 쓴 단순조각글입니다 8ㅅ8)a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무대를 뒤로 하고 돌아온 아이돌들은 다들 힘이 다 빠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비어 있는 의자에 너부러지듯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내밀어지는 물과 음료를 감사히 받으며 그들은 목을 축였다. 그러면서 주변에 시선을 던졌다. 무대의 뒤쪽은 무대 못지 않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돌들의 노래가 들려오면서 전해지는 에너지도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내뿜은 에너지도 가득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아이돌들은 잔잔히 미소지었다. 

"즐거웠다-!"

가장 먼저 온 몸을 쭉 스트레칭하듯 길게 뻗은 사람은 오토야였다. 온 몸을 풀어주며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만면에는 미소가 싱글벙글했다. 누가 봐도 정말로 즐겁다는 것을 한가득 내뿜고 있어서, 주변의 동료들은 그 미소에 전염이라도 된 듯 마주 미소지어 주었다. 

"그러게, 즐거웠어!"
"잔뜩 즐겼네요."
"다들 즐거워해주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행복에 가득 찬 동료들의 목소리에 오토야가 싱글벙글 미소지었다. 무대에서 뛰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은 한계 이상의 체력소모를 요구했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모두가 웃고 있고, 보아주고 있고, 행복해 해주고 있다면 오토야에게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리고 한사람이, 더. 오토야는 웃는 얼굴 그대로 슬그머니 눈만 돌려 옆자리의 토키야를 바라보았다. 분위기에 휩쓸린건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얼굴에 안개처럼 잔잔하게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토키야 역시 즐겁다는 기색이 만연해서, 오토야는 조금 더 기쁘게 미소지어버렸다. 

오토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토키야의 손끝에 제 손끝을 맞닿게 했다. 그 감각에 토키야가 고개를 돌려 오토야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얽히는 순간 자연스럽게 미소가 그려졌다. 부드러운 감각이 두 사람을 지배했다. 

"수고했어, 토키야."

물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오토야는 속으로만 그 말을 덧붙이며 빙긋 미소지었다. 그 미소를 마주보던 토키야가 제 손으로 오토야의 손등을 덮었다. 한창 무대를 뛰어다닌 덕분에 조금 높은 체온이 곧장 닿아왔다.

"당신도요, 오토야."

상냥하게 속삭여오는 그 목소리에 웃었다. 어쩐지 그제서야 정말 하나의 무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진정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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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ROT 조각글

2014. 1. 21. 16:08 from UTAPRI/NOVEL

※트위터 범님(@tigerS2roulette) 썰 기반





01. 오토야 → 레이지


 살인자가 살그머니 미소지었다. 수많은 관객 앞에 서서 익살스럽게 인사하는 광대처럼 한껏 입꼬리를 올리고 소리 없이 미소지었다. 발에 밟히는 액체가 끈적했다. 신고 있던 구두부터 시작해 온 몸이 축축하게 피로 젖는 듯 한 환상까지 느꼈다. 아니, 그게 정말 환상일까. 알 수 없었다. 살인자의 손은 확실히 피투성이였으니까. 오토야는 슬그머니 피해자의 뺨에 제 손을 얹어보았다. 뒷목이 오싹할 만큼 체온 하나 없는 레이지의 뺨이었음에도 피에 젖어 조금은 따듯한 것도 같았다. 오토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웃고 있지 않는 얼굴은 마치 우는 것 같았다. 살인자가 입술을 강하게 악물었다. 곧 그곳에서 피가 맻히더니 방울지게 굴러 떨어졌다. 눈물을 대신하는 것처럼, 그는 몇 번이고 제 입술에서 피를 떨어뜨렸다. 굳이 지혈을 하지도 치료를 하지도 않았다. 제 선배였던 사람의, 그 텅 빈 껍질같은 육체를 내려다보며 오토야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손을 뻗어 시신의 눈을 감겨주었다. 한 때 경악과 조금의 동정을 비췄던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텅 비어있었다. 그 눈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오토야는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달싹였다. 

안녕, 레이쨩. 

 살인자가 손을 흔들었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문득 오열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까지 그는 결국 완벽한 살인자였다. 

  






02. 레이지 → 토키야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흉폭한 고철덩어리를 두 손으로 가까스로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떨림은 심해지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그것을 놓쳤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마찰음이 들리지 않았다. 바닥은 이미 축축했다. 그가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당장에라도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와 성대를 긁는 듯, 그의 귓가에서 비명소리가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는 괴롭게 표정을 찡그렸다. 제 손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 해서 역겨움이 몰려왔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자기 혐오가 파도치듯 몰려왔다. 그의 눈에 결국은 눈물이 고였다. 그의 입에선 비명 대신 신음이 쏟아져나왔다. 목이 졸리는 것처럼 턱 막힌 것 같은 소리였다. 

눈 앞의 시신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무서웠다. 손을 대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질 강렬한 현실감각이 두려워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뒤를 돌아 있는 힘껏 도망치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안개처럼 사라질 환상이길 바랬다. 

허나 그것 역시 꿈. 현실은 잔혹했다. 레이지는 경련하다시피 떨리는 제 두 손을 꽉 붙잡았다. 손가락 하나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붙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무뤂부터 피가 흥건하게 젖어들어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두 손을 부여잡고, 눈에선 눈물을 흘리며, 결국 그는 사죄했다. 

미안해 톳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토키야.....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마치 비와 같았다. 그는 결국 살인자는 되지 못했다. 다만, 가장 잔인했다. 이것으로 그는 결국 그를 잊으리라. 






03. 토키야 → 오토야




토키야는 물끄러미 제 앞의 오토야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웃는 얼굴과 상냥한 눈동자가 사라진 오토야는 가련하게도 텅 비어 보였다. 토키야는 조금 고민하며 오토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직까지도 제 손에 남아있는 감각이 선명했다.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며 내장을 휘저어버리는 끔찍한 감각이 손가락과 피부 하나하나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토키야는 잠시 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리곤 주먹을 꽉 쥐었다. 소용없었다. 

토키야는 피투성이의 오토야를 바라보았다. 멀쩡한 구석이라곤 어깨 위쪽이나 허리 아래쪽 부분 정도. 가장 참혹한 심장 부분을 제외하고도 오토야의 몸에 여기저기 나 있는 구멍은 흉측했다. 토키야는 저것을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새삼 낮설었다. 토키야는 제 어딘가 한구석이 부숴져 버린 것과, 그 틈새로 무언가가 들어와 앉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는다면 정말 형태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토키야는 오토야의 붉은 색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피가 조금 묻어 굳은 부분이 있었지만 여전히 햇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몇 번 그렇게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매만진 토키야는 결국 몇 발자국 물러섰다. 오토야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듯이 그렇게 바라보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그래, 미안하지 않았다. 죄스러울 지언정 잘못을 빌진 않을 것이고 혐오스러울 지언정 피하지 않을 것이다. 

잘 가요, 오토야. 

제 손으로 놓아버린 소중했던 사람에게 그는 결국 안녕을 고했다. 그 안녕의 인사가 결국 향한 곳이 누구인지만큼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

내 안의 얘네가...... 이랬던가...... 어쨌든 알오티입니다! 범님 말씀대로 애들이 애들을 죽였을 때... 인데 솔직히 어디 한군데 잘못된 구석이 있지 않는 한 이런 일 없을 것 같고..... ㅇㅇ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레이지는 총을 쓸 것 같지만 오토야와 토키야는 칼로 죽였습니다. 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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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토키오토 조각글

2014. 1. 19. 22:23 from UTAPRI/NOVEL



좋아해요. 토키야가 말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처럼 상대가 눈을 깜박였다. 의문이 한가득 들어찬 그 홍옥빛 눈을 토키야는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 눈빛에 오토야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찌르는 듯한 눈빛이 묘하게 오싹했다. 

대답해요.

토키야가 말했다. 조금은 강압적이게 들리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토키야의 시선은 부드러웠고, 목소리는 상냥했다. 어쩌면 고백하는 것처럼 다정한 그 목소리에 오토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두 손은 이미 어떻게 할 줄 몰라 주먹을 쥐었다 펴며 정신사납게 굴고 있었다.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토키야가 이렇게나 직구였던가. 오토야의 머릿속에 순간 스치고 지나간 의문이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느 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 남자의 말이 홀리는 것 같았다. 오토야는, 정말, 단 한번도 토키야에게 그런 식의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토야는 지금 명백하게 토키야에게 설레고 있었다. 

당신도 나를 좋아하지요?

상상도 해 본적 없는 말에 오토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토키야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토키야가 매끄럽게 눈가를 휘었다. 움찔 떨릴 만큼 잘생긴 얼굴에 걸려진 미소는 화가 날 만큼 아름다웠다. 본디 토키야가 미인이라는 것 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오토야였지만, 당장 그 생각을 철폐했다. 토키야는 분 할 만큼 미인이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지금 이 시대에도 틀림없이 경국지색이라는 찬사를 들었을 토키야가 유혹하듯 웃으며 속삭이는 것에 오토야는 속절없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미인계에 약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지만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인지, 어째서인지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토키야가 오토야의 팔목을 붙잡았다. 미인이라고는 하나 남성. 그것도 성인에 가까운 남성이었다. 순식간에 강한 악력으로 인해 통증을 느낀 오토야는 눈썹을 찌푸리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토키야는 여전히 요요하게 웃는 얼굴로 속삭였다. 

당신도 나를 좋아해요.

선언하는 듯한 말이었다. 오토야는 조금 반박하는 심정으로 토키야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토키야가 기쁘다는 듯이 조금 미소를 그려냈다. 

비록 지금 그렇지 않더라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거니까. 

아니, '선언하는 듯한' 말이 아니었다. 이건, 선언이었다. 이치노세 토키야가, 잇토키 오토야에게 하는 선언이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오토야는 멍하니 토키야를 바라보았다. 토키야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평소에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그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토키야는 상냥한 웃음조각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오토야의 뺨에 입맞췄다. 오토야가 순간 반항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가 떨어지는 행동에 오토야는 조금 입을 벌렸다. 화가 난다기 보다는 당황스러웠고, 분노하기보다는 놀라웠다. 

그러니까 각오해둬요, 오토야. 

그렇게 말하는 토키야를 보며, 오토야는 마음 속으로, 저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생각해버렸다. 

아, 지는 싸움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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