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2025. 2. 17. 22:02 from WORLD TRIGGER/SS

 

월트리 칠대죄 크로스오버 보고싶다 이런 거 누가 보고 싶어해 네가 써야 해 그 자체 완전 코어 수준... 이런 거 누가 보고 싶어해 그쵸 나만 보고 싶어... 그치만 보고 싶어...

최근 월트리 버닝기간이었는데 그 사이 칠대죄를 보면서 칠대죄 좋지... 남에게 추천은 못해주겠지만 좋아... 나 다이앤을 사랑하는듯 아무래도 N년 전부터... 하면서 같이 불타올라서 이런 크로스오버 혼종을 보고 싶어진 듯 

 

 

칠대죄 시작을 인간과 인간 아닌 자들이 나뉘어있지 않던 아득한 고대의 이야기... 이런 느낌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칠대죄 이후 묵시록까지 끝나고 (아직 묵시록이 어떻게 끝날지 전혀 모르겠지만) 인간과 인간 아닌 종족의 세계가 나뉜 뒤 2~3000년의 시간이 흐르고 월트리 세계가 찾아왔다는 느낌으로... 칠대죄에서 생존자는 요정왕인 킹이랑 요정계에서 살고 있던 다이앤 정도? 엘레인도 요정이니까 살아있을 듯 일곱개의 대죄에서는 멜리오다스랑 고서까진 살아있을 것 같은데 멀린은 묵시록 스토리에 따라 생사가 참 묘연할것같아서 생략하고 반은 불사를 엘레인에게 줬으니 역시 인간이라면 이정도면 죽어주는 게 예의겠죠... 아무래도... 슬프지만...

 

트리온이라는 게 과거 마력 기관의 퇴화한 형태라던가... 요정계는 요정왕의 숲이 있는 행성 (지구엔 없고 난성국가로 떠돌아다니면 좋겠네) 과 아주 극소수의 교류를 할 뿐인데 요정이 쓰는 마법을 흉내내는 형태가 인간이 사용하는 트리온 사용의 근원이라거나 하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면 좋겠다 사실 인간도 마법을 사용했고 마력이 있고 성기사가 있었지만 전투가 사라지고 모든 건 천천히 퇴화하여 사라졌고... 과학이 발전하고 기록이 사라지고 전승이 변하며 과학으로 인간의 퇴화한 마력기관 (= 트리온 기관) 을 사용하는 법을 익힌 게 트리온체라거나... 

사이드 이펙트는 그 퇴화된 마력기관 중에서도 조금 강한 사람들 (그리하여 트리온량이 많은 사람들) 이 자신의 마력을 살짝 깨운 형태인거지... 하지만 퇴화한 기관이기에 고대 성기사들처럼 자유자재로 조절이 불가능해서 사이드 이펙트라는 부작용 형태로 남는 거고... 

 

아무튼 이런 설정 아래 칠대죄와 월트리를 같은 세계관으로 묶은 상태에서 게라드의 환생체를 지금도 지키고 있는 오슬로 환생체 관계인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쥰을 보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너무 그뭔씹이라서 적으면서도 부끄럽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분명 이걸 맛있어할걸... 이건 오슬로 환생체가 아직 묵시록에서 등장하지 않은 2025년 2월 중순에 기록된 기록입니다... 미래엔 부끄러울거야 그렇지만 이 순간의 조온습을 즐거야하기에 꿋꿋하게 적는다... 보고싶다... 오슬로가 三눈을 하고 있잖아 그런 눈이 월트리에 너무 많이 나오잖아 환생체여도 괜찮을 것 같잖아 어쩔 수 없단 말이야 

 

시작은 아라시야마가 오슬로였는데 지금 적으면서 생각해보면 진이 오슬로인쪽이 좀 더... 그럴듯한가? 둘 다 나쁘지 않은듯... 게라드도 초대 요정왕의 여동생급인 고위 요정이라서 세계가 분리되고 난 뒤 거의 3천년이 지나서야 수명이 다해서 사망하고 미카도 시에 소년으로 환생하는데 이제껏 내내 바로 환생하지 않고 게라드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오슬로가 그제야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하면 좋겠다... 마엘의 마법으로 오슬로는 1턴은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 가능한 버프를 들고 있었기에 오슬로는 과거 3천년 전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는 어린 인간이고 게라드는 요정이었던 전생은 꿈에서도 상상 못하고 있는 소년이 된다... 아 역시 오슬로가 진이고 아라시야마가 게라드인쪽이 좀 더 대입이 쉽네...

 

이 망상의 시작은 아라시야마(=오슬로)는 예전에 종종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진이나 카자마 타치카와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사실 자기는 전생에 요정을 지키는 강아지였다는 말을 해뒀었고 대부분 그걸 농담으로 받았었는데 그 중 사토리만 믿는듯 아닌듯 그래도 멋있어요! 하고 외쳐줘서 아라시야마가 사토리에게만 좀 더 자세한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랑... 킹에게 요정어로 편지를 써서 부디 내 동료들이 무례하게 굴었더라도 내 얼굴을 봐서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내용을 적어 원정을 가는 사토리에게 맡겼다가 요정왕의 숲에서 트러블이 일어났을 때 킹이 원정 멤버들의 마음을 읽고 사토리가 전해 준 편지까지 확인한 뒤 월트리 멤버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씬에서 시작했는데... 이 설정일 경우 진이 먼저 태어나고 아라시야마가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게라드의 환생을 확인하고 오슬로가 환생했다는 점에서 납득이 쉬워짐 

 

적다 보니 역시 진이 오슬로고 아라시야마가 게라드인쪽이 좀 더 대입은 쉽다... 계속 아라시야마를 지키고 있었고 동생을 사랑하는 장남 포지션이 되었다는 점에서 예전에 여동생으로서 오빠를 흠모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는데 이번에는 예언의 마력 (이제는 사이드이펙트지만) 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지금 시대 인간은 무척 약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컸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생이 요정왕을 지키던 정령이었어도 지금은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구나 하면서 현생과 전생 밸런스를 다시 맞추기도 하고 그랬을 것 같네.... 이쪽 설정도 괜찮으니 어느 쪽이든 맛있는 쪽을 골라 상상해 먹어야지 

 

하지만 결국 보고 싶은 건 난 3천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로우 죽고 오슬로가 태어나서 게라드를 지킨 시간만 거의 3천년 가까운 시간이었던 것 같고) 너를 지켜왔다고 하면서 농담하며 웃는 진이랑 거짓말같진 않지만... 하면서 잠시 눈을 깜박였다가 나도 그랬을 거야. 하고 웃어버리는 아라시야마가 보고싶은거다 진아라의 한쪽만 알고 있지만 사실 거의 6천년 묵은 연애사가 보고싶다 겸사겸사 게라드도 환생해서라도 제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요정공주는 행복해져야 할 권리가 있는데... 

 

그리고 킹이랑 디안느가 부부세월 3천년 보내서 농익은 부부 된 것도 너무너무 보고싶어 킹이랑 오슬로 환생체랑 느긋하게 마주 앉아서 오슬로가 환생하지 않았던 3천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묵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너무 보고싶네... 오슬로 환생체 묵시록에 나와서 행복해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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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도, 도우러 가지 않아도 괜찮은건가요?!

도우러?! 옐로 선배를?! 내가 왜?! '이 숲에서!' '싸운다!' 이 조건 아래라면 옐로 선배야말로 최강이야!!

 

 

같은 대화를 보고 싶다... 숲의 수호자... 배틀보다 싸움이 강한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모브랑 골드 느낌인데 (이런 느낌으로 혁혁하게 활약해주시는 골드 씨에게 언제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느낌표 좀 지우면 실버여도 괜찮을 것 같음... 호연부터는 옐로를 조용하지만 숨겨진 힘이 있는 선배 정도로 인식할 것 같은데 (사유 : 호연은 그래도 바다괴물 무찌를 때 옐로가 볼트태클 막타를 치는 걸 봤기 때문에 약하다고 느끼진 않겠거니) 성도는 제대로 옐로를 강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

아니 물론 호연 이후 신오 애들부터는 대선배랑 만날 기회부터 거의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ㅋㅋㅋㅋㅋ) 그래... 너무... 늘었죠! 이해합니다 저도 아직도 신오 이후 애들이랑 낯가립니다 블랙이랑 화이트는 나온지 그래도 10년은 되어가는 것 같은데도... 아직도! 이거 뭐 낡다 못해서 먼지 날리는 오타쿠인데 그렇게 됐습니다 

 

실버야 말할 것도 없이 고향 찾기부터 함께 시작해서 숲에서 함께 싸우고 로켓단한테 납치된 자기 찾으러 와줬고 와타루도 옐로를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땅땅해줘... 이쯤되면 옐로를 강자라고 생각 안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고 크리스는 좀 긴가민가하지만 역시 알 것 같고, 골드는 사실 몰랐어도 재밌고 좋을 것 같은데 옐로한테 선배 힘 좀 써줘야겠어! 하고 볼트태클 쓰게 만들 걸 봐서는 아는 것 같음 옐로의 강함... 멘탈이나 마음같은 어렴풋한 영역이 아니라 (그리고 난 이 부분이야말로 도감 소유자에서 옐로가 엄청나게 상위권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로 강함... 포켓몬 레벨 쭈우우욱 올리는 치트키같은거 역시 주인공이 쓰면 쾌감이 일잖아요 주인공 라인이라 다행이지 정말 적이었으면 어쩔뻔했어 무서워서 

 

그런 의미에서 옐로는 대체 언제 재등장하는 거죠? 레드랑 블루도 오루알사때 등장했고 그린도 엑와에서 등장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옐로는... 언제...? 저희 애 성장 모습을 저도 좀 보고싶습니다만... 그래서 저희 애가 키는 좀 컸나요? 

 

간만에 스페 읽고 있는데 책이 엄청 낡은 책이라서 초반부가 상당히 너덜너덜한 탓에 새로 살까... 아니 E북 나와주면 좋겠다... 같은 생각 중... 물론 아마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0.01%의 희망을 아련하게 응시하고 있음 일본에서는 E북 있는데 한국에서는 안 해주려나... E북 나오는 김에 초반부 좌우반전이랑 오역들도 어떻게 해주면 좋겠지만() 꿈도 못 꿀 레벨이라 그냥 막연하게 원하기만 하고있음.......

 

지금 한국 정발은 못 따라간지 좀 됐지만 XY편이 나오고 있다는 것 같은데 그거 끝나면 오루알사... 다시 슬슬 스페를 살 때가 된 걸까 싶음 물론 오루알사편이 정발되기까지도 또 몇년 걸리겠지만() 스페 초반부 애들도 설정상 벌써 20대라서... 20대 맞나? 30대까지 찍었나? 여하튼 서먹해하고 있는 중... 시대의 흐름을 포켓몬과 함께 느끼고 있는 기분()()

제가 이 티스토리에 포케스페 좋아한다고 처음 적기 시작한 게 14년... 지금 10년이 지난건가요? 곧 11년이 되잖아? 그런데 글 적기 이전부터 평범하게 좋아했기 때문에 10년 + a임 우와... 

 

좋아하는 애들이 원작에 등장하지 않은 지 까마득하지만 여전히 좋아함 그리고 좋아하는 요소가 과거랑 별다를 바 없이 좋아해서 솔직히 좀 웃었음... 저 14년도 글 읽고 왔는데 지금 위에 적은 글이랑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설정 면에서 변한 게 하나도 없음 너무 소나무라서 스스로가 웃길 지경 벌써 몇 년 전인데 과거의 내가 좋다고 적었던 글의 완성도나 묘사의 조악함은 차치하고 (으악 너무 보기 부끄러움 진짜) 설정같은건 정말정말 여전히 취향이었다... 사람 취향이란 건 절대 변하지 않는구나... 저는 말랑외유내강 옐로를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상록시티 사람들이 친분 쌓는 걸 정말 간절히 원하고 있구나... (ㅋㅋㅋㅋㅋㅋ)

 

그치만 역시 지금 생각해도 좋음... 아무도 납치되지 않는 세계선을 만들어줘... 마사라 세 명 사이좋게 소꿉친구로 지내는데 그 와중에 그린은 할아버지 연출로 상록시티 짐리더 아들이랑 만날 일이 있어서 그린과 실버가 먼저 아는 사이가 되고 그 가로연줄로 상록 짐리더 비주기가 보호하고 있던 옐로랑 와타루랑 연 트고... 그러는 어느 날 상록숲에서 길을 잃은 실버 (그러나 하필 상록숲이라서 위기감이 전혀 없었던) 가 마찬가지로 상록숲에서 길 잃은 블루 (이쪽은 무서워서 울고 있었는데 자기보다 어린 실버를 만나버려서 눈물 꾹 참고 숲을 같이 헤맴)와 만나서 청은남매가 연을 트기 시작하고... 그렇게 마사라 셋과 상록시티 셋이 연 엮이기 시작하는... 시작하는 평화로운 시공에서 우당탕탕 코미디 찍는 거나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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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ES 신입 사원 연수회 : 앙상블 스타즈!! 통합 온리전에 나오는 신간/구간 인포입니다. 

통판 예정은 없으며, 웹 공개 계획은 있으나 정확히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는 일단 미정입니다. 

현장판매만 계획되어 있으며, 선입금/수량조사는 진행하지 않습니다. 

 

 

 

 

01. 니키마요 단편 <좋아해요, 시이나 씨> NEW

 

 

떡제본 / 전연령 / 니키마요 / 후기 제외 59페이지 / 7000원

ES 설립으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어느 날, 아야세 마요이의 전격 아이돌 은퇴, 연예계에서 벗어난 그는 잠적해버린다. 그리고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데... 시이나 니키는 유감스럽게도 그 순간 깨달아버린다. 나는 마요 쨩이 없는 삶을 살 수 없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울어버려도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 후회하고 있는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기본적으로 로맨스 잔뜩+코미디 적당히+판타지 요소도 팍팍 뿌린 시이나 니키 회귀물.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6140826

 

 

01-1. 니키마요 단편 <사랑이란 무엇인가> OLD

 

떡제본 / 전연령 / 니키마요 / 52p / 6000원

본문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2313187

이 책은 구간으로, 이미 본문이 무료 웹공개되었습니다.

이 책이 소장본이라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원하시는 분들만 구입해주십시오. (재고 3권) 

 

 

 

 

02. 린히메 단편 <A partner in crime> NEW

 

떡제본 / 전연령 / 린히메 / 후기 제외 59p / 7000원

코즈믹 프로덕션 소속, 스무 살 아마기 린네는 뜨지 못한 아이돌이다. 곧 해가 바뀌는 겨울, 아이돌 세상은 ES의 설립으로 술렁이는 가운데 린네는 사에구사 이바라에게 부름받는다. 누군가에게 아이돌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그 대가로 당신에게 무대를 드리죠. 이바라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던 린네는 거래를 받아들이고,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연애 요소는 무척 낮고, 논커플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만 적는 사람은 린히메라고 적었습니다. 메인 스토리 이전 과거 날조. 린네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5972846

 

 

 

 

03. 카나카오 단편 <발자국을 따라서> NEW

 

중철본 / 전연령 / 카나카오 / 24p 내외 (예상치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 3000원 

오늘이야말로 카오루와 첫키스를 하겠어요. [츄] 해버릴거에요. 모두에게 비밀로 거대한 야망을 가지고 잡았던 데이트 당일 남자친구가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변에 있는 수많은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아 카오루를 찾아 나선 유성 블루 신카이 카나타. 그는 과연 무사히 하카제 카오루를 찾아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을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카나타 시점으로 진행되며 카나카오지만 카오루의 등장률은 낮습니다.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6234753

 

 

 

04. 돌발본 : 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습니다 나온다면 R18 씬만 가득 있는 책이 나올지도 안나올지도... 안나온다고 생각하고 나오면 럭키 정도로 인식해주세요 

 

Posted by 별빛_ :

01. 니키마요 단편 <사랑이란 무엇인가>

떡제본│전연령│니키마요│52p│6000원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2119351

 

 

02. 카나카오 단편 <Hello, please marry me!>

중철본│전연령│카나카오│16p│2000원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2249651

 

 

03. 린히메 단편 <첫키스는 눈 깜짝할 새!>

중철본│전연령│린히메│16p│2000원

샘플 : https://milkyway-u.postype.com/post/12258765

 

 

사전예약은 종료되었습니다. 행사장에는 사전예약본 + 극소량의 현장판매본만이 판매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별빛_ :

[카나카오]

2021. 6. 29. 03:14 from ENSTARS/NOVEL

 

  카오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귀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게 스스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귀 뿐만 아니라 얼굴이며 목덜미까지 화끈거렸다. 상대가 귀엽다는 듯 제 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더더욱 그랬다. 카나타 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라는 말로 시작하는 온갖 항의가 가슴에 맴돌았다가 입천장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에 고스란히 녹아내렸다. 안 그래도 꽉 감고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 치사해. 정말 치사하다. 제일 큰 문제는 그 치사한 카나타 군에게 도통 이길 수 없는 저 자신이다. 아니면 이길 마음도 들지 않는 이 감정이거나. 


  진짜 불공평해. 좋아하면 지는 거라는 말은 카오루도 알고 있다지만, 카나타 군도 나 좋아하는데? 그런데 왜 카나타 군은 나한테 이기기만 하는 거야. 그 어처구니없는 불공정에 카오루는 답잖게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었다. 치사해. 카나타 군은 치사해. 저 좋을대로 마음껏 카오루의 입안을 잔뜩 헤집다가 마지막으로 쪽 소리내어 떨어지는 입술에 카오루는 그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얼굴이 익은 문어마냥 따끈하고 말랑해져 있다는 사실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카오루, 귀여운 얼굴이네요~.”
“카나타 군은 왜 이렇게 멀쩡한 거야…….”

 

  우리 방금 키스했는데, 나는 지금도 심장이 터져서 쓰러질 것 같은데 같이 키스한 카나타 군은 왜 그렇게 깔끔한 얼굴로 방실방실 웃고 있는거야. 키스하는 내내 느꼈던 불공평함이 다시 솟구쳤다. 붉어진 얼굴을 아직 수습도 채 못했으면서 선 고운 눈썹이 잔뜩 좁혀지고 뾰로통하게 뺨이 부어올랐다. 삐죽삐죽 성게마냥 불만을 표시하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는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 웃었다. 

 

  저 자신이 아무리 불평을 말해봤자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얼굴을 하고 있는 연인을 보며, 카오루는 다시 한 번 입을 삐죽였다. 카나타는 분명 자신이 첫 번째 연인이었고 카오루도 키스는 카나타가 처음이었다. 둘 다 상대에게 첫 키스를 바쳤고 그 때는 분명 둘 다 엇비슷하게 뻣뻣했던 것 같은데, 카나타는 대체 뭘 어디서 어떻게 한 것인지 키스할 때마다 쑥쑥 실력이 늘더니 지금은 입맞춤 하나로 카오루를 새빨갛게 만들만큼 능숙해졌다. 카오루는 지금도 입술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정말 치사했다. 

 

  키스할 때마다 목석처럼 굳어져서는 구명줄이라도 잡는 것처럼 카나타의 등이나 옷자락을 잡는 것밖에 못하는 카오루에 비해 카나타는 조금씩 카오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키스도 귀라던가 허리라던가 분명 만졌다. 죽을만큼 부끄러운 것과 별개로 카나타가 생각보다 손이 빠르다는 걸 카오루는 매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싫지 않다는 것도. 이러다가 어느 날 카나타가 키스하다 넘어뜨리면 홀랑 넘어가버릴지도 몰랐다. 아직 둘이서 그런 쪽 이야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기는 하지만 어쩐지, 아니, 나 이렇게 쉬운 남자가 아닌데! 아니, 아닌가? 생각해보면 카나타 군에게는 매번 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 진짜! 

 

  몇 번이고 삐죽거리다가 저 혼자 생각에 잠기더니, 끝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골이 난 듯, 부끄러운 듯 어쩔 줄 모르는 연인을 앞에 두고 카나타는 꽃처럼 곱게 웃었다. 제 연인은 어떤 표정도 참 잘 생겼다는 소감도 속으로 몰래 남겼다. 도록 눈을 굴려 벽에 붙은 시계를 확인한 카나타가 살짝 몸을 움직였다. 

 

“카오루~.”
“응?”

 

  쪽. 물처럼 다가온 카나타가 다시 한 번 카오루에게 가볍게 뽀뽀했다. 매끈한 뺨이 따끈따끈했다. 카오루가 입을 쩍 벌리는 모습을 보며 카나타가 살랑살랑 연인의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요~. 늦장 부리면 지각해 버릴 거에요.”
“어? 어……. 으, 응. 그렇긴 한데.”
“후후. 또 놀러와요.”

 

  아니, 난 이제 이 수족관, 이 방에만 들어오면 카나타 군이랑 한 키스가 생각나서 곤란할 지경이라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이렇게 이 백 퍼센트 사적으로 써도 돼? 묻고 싶은 질문이 턱끝까지 올라왔으나 카오루는 참아냈다. 제 손을 잡고 능숙하게 길을 찾아 나가는 카나타의 뒤를 쫒으며 카오루는 잠시 주변을 장식한 수조를 흘려보았다. 

 

  둘 다 아이돌을 하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데이트는 무척 은밀하고, 바깥에 내보일 수 없는 종류였다. 그나마 학창시절부터 친구로 유명했기 때문에 손도 못 잡고 너무 가까이 붙을 수는 없어도 단 둘이서 놀러라도 나올 수 있는 거지, 오랫동안 친구 아니었으면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무조건 둘 사이에 누군가 끼워서 나왔어야 할 뻔했다. 카나타 친구인 레이라던가, 카오루 친구인 치아키라던가. 누가 끼든 힘들 뻔 했으니 계속 친구라고 공언해둬서 다행이라고 카오루는 몰래 생각한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의 취향상 주로 가는 곳은 바다였지만, 바다에 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해양생물부 부원인 소마가 생각나거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놀리고 싶어지는 귀여운 후배가 보고싶어져서 소마나, 같은 서클인 시노부며 세나까지 부르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보니 제대로 된 ‘데이트’ 가 하고 싶어질 때는 도리어 수족관에 왔다. 

 

  카나타가 경영하는 이 수족관에서는 CCTV가 없거나 관계자 외, 혹은 카나타 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있다보니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였다. 어린 시절 추억도 있고, 학창 시절 같이 이곳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도 있으니 여러가지로 소중하긴 한데 이런, 이런 식으로……. 여기서……. 

 

  카오루는 카나타에게 붙잡히지 않은 쪽 손으로 몇 번이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곧 출구고, 밖으로 나가면 다시 말끔한 얼굴의 아이돌 하카제 카오루가 되어서 친구인 신카이 카나타와 거리와 간격을 지키며 표정을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니 이제 그만 좀 생각해야 하는데……. 

 

  입안 살을 아프지 않게 자근자근 씹으며 카오루가 몇 번이고 심호흡했다. 아이돌, 나는 아이돌이다.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할 수는 없어. 팬들이 사랑해주니까. 터질 것 같은 심장도 제 입술이며 뺨에 닿았다 떨어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르르 휘어지는 상냥한 눈도 모두 꽁꽁 싸매서 제 안 구석에 잘 보관해둬야 했다.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기 직전, 카오루는 가까스로 제 페이스를 회복했다. 나가는 문을 앞에 두고, 단단히 맞잡고 있던 손이 아쉽게 떨어졌다. 미련 가득한 손길로 손바닥을 한 번 쓸었다가 손가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간지러운 온기에 카오루는 한 번 어깨를 움츠렸다가 펴며 웃었다. 이럴 때의 카나타는 귀여웠다. 돌아가야 한다고 머리로 아는 것과 별개로 영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얼굴로 저를 응시하는 연인의 시선을 느끼며 카오루는 모르는 척 먼저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동조해서 망설여버리면, 또 키스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키스받으면 다시 빠르게 수습해 낼 자신이 없었다. 분명 늦어버릴거다. 

 

  문을 열자 에어컨과 수조 특유의 냉기로 서늘했던 공기가 빠지고 열에 데워진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우왓, 더워. 이제 여름이네. 무심코 중얼거리며 손으로 볕을 가린 카오루가 몇 걸음 앞서 걸었다. 

 

“카나타 군은 이제 잡지 촬영하러 가야 하지? 시간 맞춰서 갈 수 있겠어?”
“멀지 않답니다. 괜찮아요~.”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카나타는 이제 일하러 가야 하고, 카오루는 기숙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물론 카오루도 날짜가 바뀌기 직전 즘에는 또 유닛 스케줄이 있었다. 유닛 컨셉이 컨셉이다보니 카오루는 심야 방송이 제법 있었다. 카나타는 반대로 해가 떠 있을 무렵 스케줄이 많았고. 오늘처럼 쉬는 시간이 딱 맞는 법은 드물었다. 인기 아이돌이란 그런 법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힐긋거리며 카오루나 카나타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으니 아쉽더라도 손 한 번 잡을 수 없다. 멋지게 그려진 아이돌의 완벽한 미소 속에 아쉬움을 곱게 접어 넣으며 카오루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중에 또 봐, 카나타 군. 카나타도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찬가지로 곱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또 봐요, 카오루. 

 

 

 

***

 

 

 

“오! 체리네요, 맛있겠다~.”
“란 군이랑 유우타 군 몫도 사 놨어. 씻어서 먹어.”
“야호~!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신이 나서 통통 튀는 발랄한 주황색 머리카락을 응시하며 카오루도 조금 즐겁게 웃었다. 저 쌍둥이는 대화하는 상대를 즐겁게 하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카오루는 조금 멋쩍어지기까지 했다. 기숙사에 들어오는 길에 본 과일가게에서 체리를 보고 맛있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카오루의 목적은 좀 더 다른 곳에 있었다. 같은 방 유우타와 나기사에게는 낯부끄러워 절대 말 못 할 이유지만. 바구니에 두어 주먹 넘게 담긴 체리를 열정 어린 눈으로 응시하던 카오루가 그대로 꼭지가 달린 체리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살살 씹어 달콤한 과육은 삼켜 먹고, 카오루는 그대로 체리 꼭지를 혀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카오루는 지고만 있는 게 싫었다. 저도 자존심이 있는데, 최소한 능숙하게 카나타와 키스하고 싶지 않겠냐 말이다. 이래뵈도 배덕의 아이콘 UNDEAD의 양대간판인데! 닳고 닳은 섹시한 이미지로 팔리고 있는데! 물론 아이돌이니 실제로는 아니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지만! 어디 가서 쪽팔리고 낯뜨거워 말도 못 할 일이었다. 정말 최소한, 카나타의 혀가 들어오면 저도 거기에 제대로 응해주고 싶었다. 허나 문제가 있다면 키스를 잘 하는 방법 같은 걸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최선의 연습은 실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카나타랑 키스만 하면 떨려 죽겠는데 연습이고 뭐고, 정신이 쏙 빠져 버리니 카나타와의 키스는 제외. 카나타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키스는 애초에 고려할 가치도 없으니 제외하고, 그러다보면 풍물로 들은 우스갯소리라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혀로 이 체리 꼭지를 매듭 지을 수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 카오루는 혀 끝에 닿는 체리 꼭지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이걸 어떻게 매듭을 지으라는 건지. 몇 번이고 헤매도 혀만 아프고 딱히 묶이지는 않았다. 몇 번 실패하고 나니 오기가 솟았다. 하카제 카오루는 본디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요령이 좋고 센스도 있다. 지금은 영 영뚱한 곳에 기운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하나, 둘, 셋……. 몇 번이고 실패하다가 가까스로 매듭다운 매듭을 묶은 게 여덟 번 째 체리였다. 한 번 성공하면 그 이후는 쉬웠다. 요령을 깨친 카오루는 금새 체리 꼭지를 뚝딱 묶어냈다. 

 

  ……이건 이제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키스랑 이거랑 요령이 비슷한 건가? 이런 식으로…… 하면 되나? 느즈막히 연습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낸 카오루가 심각한 표정으로 묶은 체리 꼭지들을 내려다보았다. 연습이 된 것 같냐고 물어보면 애매하다는 답밖에 줄 수가 없었다. 일단 혀를 움직일 수는 있겠는데, 카나타랑 키스 중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한 번, 그리고 이렇게 하면 카나타가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만큼 카나타를 그렇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면 또 한 번 고개를 기울이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은 했는데 의문만 남은 연습이었다. 몇 번 고개를 갸웃갸웃 좌우로 기웃거린 카오루가 곧 남은 체리들을 정리하고 묶은 꼭지들을 버린 뒤 침대로 가 앉았다. 

 

  끄으응.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제 몫의 체리를 씻어 와서는 냠냠 먹기 시작한 유우타를 턱 괴고 쳐다보며 카오루는 전혀 딴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카나타 군이랑 키스를 잘 하지. 카나타 군은 왜 능숙해져서 나한테 이런 부끄러운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거야. 카나타 군은 어디서 키스 배워 왔어. 나는 여전히 적응을 못 하고 있는데 카나타 군은 괜찮아? 나랑 키스하는 거 좋아? 내가 이렇게 굴고 있는데도? 카나타 군은, 카나타 군은……. 머릿속이 푸르고 녹빛으로 꽉 차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이것도 다 카나타 군 때문이야. 책임을 제 연인에게 밀어버리며 카오루가 몇 번 고개를 흔들었다. 감히 인기 아이돌의 머리를 개인 한 명으로 꽉 채워 버리다니, 카나타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몇 번이고 제 안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카나타를 쫒아내려 노력했다가 실패한 카오루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 상상하니 보고 싶다. 우스운 일이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진짜 중증이다. 이상하다, 사귀기 전엔 안 이랬건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카오루는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한계를 모르고 부풀어 오르는 풍선 같았다.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카오루 본인도 모르는 풍선. 제대로 된 첫 연애라 그런 건가? 아니면 아이돌이라? 하루 24시간 내내 같이 있을 수 없어서? 그도 아니면 들키면 안 된다는 위기감? 그런 거에 불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고민해도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걸 다 차치하고, 그냥 카나타가 웃고만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행복하고 들떴다. 잔잔하게 파도치는 해안가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을 때와 비슷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제나, 언제나. 신카이 카나타만 줄 수 있는 감정. 웃는 얼굴로 타인을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을 아이돌이라고 한다지만, 카오루도 팬들을 미소짓게 만들 수 있지만. 역시 카나타가 카오루에게 주는 감정은 역시 달랐다. 

 

  그냥……, 카나타 군이라면 뭐든 괜찮다고. 전혀 멋있지도 않고 평소 이미지를 와장창 깨 먹는 행동거지라고 해도 카나타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이 감정. 카오루는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카나타를 사랑했다. 그와 입을 맞출 때면 그 거대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펑 터질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얼어버렸다.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정직하게 몸으로 드러나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는 파업을 해 버렸다. 키스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그 탓도 컸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나머지 얼어버리는 탓.


  팬, 아니 팬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 찬 거대한 돔 무대에 혼자 서는 일이 생기더라도 제대로 무대를 진행하며 그 사람들을 제 팬으로 만들어버릴 배짱이 있는 하카제 카오루가! 

 

  큰일 났네. 정의하고 나니까 천 배쯤 부끄러운데……. 카오루가 양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카나타의 생각을 이렇게나 하고 나니 또 카나타를 만나고 싶어졌다는 점이었다. 만나서, 또 키스하고 싶었다. 연습한 보람도 없이 또 뚝딱거릴 확률이 높다지만 그래도. 그래도……. 

 

  진짜 낯 부끄러워서 죽겠다. 아이돌로서 팬에게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표정을 베개에 파묻어 숨겨버리며, 카오루가 입을 꾹 다물었다. 반짝거리는 금발 사이로 드러난 귀가 새빨갰다. 카나타에게 키스받았던 몇 시간 전과 똑같이.

 

 

 

***

 

 

 

  카나타는 이불 속에 완전히 파묻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몸을 웅크렸다. 같은 방을 쓰는 히요리나 린네가 언젠가 지나가듯 한 번쯤 카나타에게 그러면 덥지 않느냐 물어봤지만, 카나타는 고집스럽게 이불 속에서 라디오를 듣는 행동거지를 고집했다. 당연히 더워서 당장이라도 차가운 물에 풍덩 들어가고 싶을 정도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고, 무엇보다 라디오의 소리가 잘 들리는데다가 주변의 소음이 한결 차단되고, 라디오를 들으며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장점들을 고려하자면, 놀랍게도 카나타는 더운 것조차 감수할 수 있었다. 히요리나 린네가 그다지 나쁜 룸메이트는 아니었지만─뭐, 제 세계를 뚜렷하게 구성하는 카나타 기준으로 나쁜 룸메이트가 되기도 힘들겠다만─카나타도 제 연인의 라디오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순간 정도는 오롯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연인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표정 같은 건, 연인에게만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UNDEAD의 이미지답게 느즈막한 밤, 22시에 시작하는 하카제 카오루의 한 시간짜리 라디오는 카나타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귀엽고 성실한 연인이 최선을 다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 않은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종종 카오루가 저에게 말하는 기분이 들어서, 가끔 제 옆에 없는 카오루가 절실하게 보고 싶어지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카나타는 과감하게 감수하고 있었다. 이 라디오는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기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을 때에는 전화를 걸어버리기도 하면서.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카오루가 첫 번째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성실하나 욕심 있는 청자답게 사연보다는 카오루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카나타가 살짝 눈을 감았을 때, 문득 주변이 살짝 어수선해졌다. 이불 속에 쏙 들어찬 카나타의 귀까지 들어오는 깨끗한 노크 소리 세 번. 밤이 늦었는데 손님이라니, 극히 드문 일이었다. 방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딱히 기다리던 손님은 아니었던 듯, 한 텀 늦게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해.”

 

  앗. 이불 바깥 소식에 관심을 끄고 카오루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던 카나타의 귀에 새로운 카오루의 목소리가 얇게 겹쳐졌다. 손님의 목소리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히요리와 린네에게 사과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를 들으며 카나타가 라디오를 끄고 이불을 헤쳤다. 회색 눈동자와 시선이 얽힌 건 카나타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쏙 내민 순간과 거의 동시였다. 카오루. 진짜 카오루였다. 

 

“카나타 군에게 잠깐 볼일이 있어서. 미안, 카나타 군. 잠깐 나와줄 수 있어?”
“저 말인가요? 괜찮긴 하지만…….”

 

  카나타가 버둥버둥 우선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카오루, 분명 날짜 바뀔 때 쯤 스케줄이 있다고 헀었는데. 힐긋 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시각이 22시에서 대략 15분 정도 지났으니, 이동시간까지 고려하면 삼십 분 내에 카오루는 기숙사에서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볼일? 낮에 데이트 할 때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고개를 몇 번이고 갸웃거리면서도 카나타는 망설임없이 카오루에게 다가갔다. 살짝 땀에 젖어 달라붙은 카나타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정리해주며 카오루가 카나타를 데리고 방 바깥으로 나왔다. 

 

  ES의 기숙사에서는 사람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카나타의 방에도 린네와 히요리가 있고, 카오루의 방에도 란과 유우타가 있고. 기숙사 건물에도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카오루는 어떤 요령인지, 인적 드문 계단에서도 CCTV에 찍히지 않을 사각을 잘도 찾아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오는 길에 한 명도 마주치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CCTV의 사각을 잘 찾아내는 건, 카오루가 유메노사키 시절 아이돌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신경쓰며 행동했었으니 의외랄 것도 아니었지만. 

 

“카오루, 바쁘지 않나요~? 갑자기 할 말이 생긴 건가요?”
“한 20분쯤은 시간 남았으니까 괜찮아.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래도…….”

 

  바로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더라도 아이돌 중에 제 기척 죽이는 게 특기인지 뭔지 잘도 은밀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카오루는 카나타와의 대화를 하는 둥 마는 둥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카나타의 뺨이 불만으로 막 빵빵하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할 때 쯤이 되어서야 카오루는 만족하고 카나타와 시선을 맞췄다. 

 

“일하러 가기 전에 카나타 군이 보고 싶어서 불렀어.”
“…….”

 

  정말 별 일이었다. 부끄럼쟁이 카오루가 이런 발언이라니. 심지어 일정이 안 맞아서 한 달이고 못 만났던 때도 아니고, 당장 오늘 데이트를 했는데! 쌓일 뻔 했던 카나타의 불만이 마법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쁨과 약간의 수줍음이 한가득 채웠다. 그리고 자갈처럼 굴러온 작은 걱정도. 혹시 이 반나절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게 아닐까. 기쁘지만 순진하게 기뻐해도 괜찮을지 혼란스러워하는 카나타를 앞에 두고, 카오루도 잠시 혀로 입술을 축였다. 너와 키스하는 연습을 하다가 너를 향한 감정이 너무 부풀어 올라서 촬영 전에 직접 보고 싶어졌다, 따위의 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둘 다 서로의 생각에 잠긴 탓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움직인 건 카오루였다. 일단 시간에 쫒기는 사람은 그였으니까. 살짝 손을 뻗어 연인의 손가락에 살짝 제 것을 엮어낸 카오루가, 최대한 노력하였으나 그래도 쑥스러움을 영 이기지는 못한 표정으로 눈썹을 내리며 웃었다. 그 표정이 더없이 사랑스러워서 카나타는 속입술을 깨물었다가 행복하게 웃었다. 둘 다 남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카오루가 와 줘서, 카오루의 라디오를 못 들었어요.”
“다음에 들어 줘. 끝나면 바로 홈페이지에 방영본이 올라오니까.”
“실시간으로 듣고 싶었는데.”
“실물 하카제 카오루는 싫었어?”

 

  싫을 리 없잖아요. 두런두런 이어지는 대화와 동시에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반듯한 이마가 툭, 닿았다. 동그랗게 이마로 전해지는 온기와 코가 맞닿는 거리. 가까이에서 보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그 속에 저 자신이 실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만나러 와 줘서 기뻐요, 카오루.”
“……응.”

 

  아, 키스한다. 카오루는 무심코 그리 생각했다. 그냥, 그냥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느리게 눈을 감았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무척 순간적인 떠오름이었으나, 키스하는 카나타의 얼굴이 궁금했다.

 

  쪽, 입술이 닿았다. 카나타의 녹색 눈동자는 여전히 빤히 카오루를 보고 있었다. 쪽쪽, 닿았다가 떨어지고 또 닿았다가 떨어지고. 가볍게 몇 번이고 봄비처럼 키스해오는 카나타의 세례를 받던 카오루가 살짝 허리를 뒤로 뺐다. 

 

“……왜 눈 안 감고 그래.”
“키스받는 카오루가 귀여우니까요~.”
“그런 치사한 말 하지 마…….”

 

  부끄러움은 왜 늘 저의 몫인지. 카오루가 잔뜩 눈썹을 늘어뜨렸다. 젠장. 역시 카나타는 너무 치사했다. 이때까지 키스했을 때도 카나타는 카오루가 긴장으로 얼어서 파르르 떠는 꼴을 모두 보고 있었단 말인가. 정말 치사했다. 허나 불공평한 상대에게 조금이나마 공평해지기 위해 카오루는 부글부글 다시 끓기 시작하는 감정을 품에 안고 또 한 걸음 다가섰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급함도 그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이번엔 눈 감아.”

 

  속삭이며 입술을 붙여오는 연인의 말에, 카나타는 순순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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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소화기

2021. 5. 12. 00:38 from WORLD TRIGGER/NOVEL

 

  진 유이치가 화가 났다.

 

  분노에 순서대로 별을 붙여서 강도를 나타낸다면 이번엔 분명 별 다섯 개 짜리 분노였다. 흔히 말하기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진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애초에 감정이 격렬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끓어오르기보다는 가라앉는 사람이었으며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의 탓인지 애초에 화날 일을 자주 마주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진 유이치는 자신의 위치와 입장,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갈무리해서 정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별 다섯 개짜리 위험인물 진 유이치를 멀찍이서 힐긋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강도로 놀란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 저렇게까지 화난 진을 처음 보거나, 아주 오랜만에 봤다. 

 

  그만큼 진의 분노는 드물었다. 그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 역시 구전으로도 전해지지 않을 만큼 드물었다. 화내는 진 유이치라니. 평소 애초에 없거나, 별 한 개로 끝나고는 했다. 아니면 그 분노의 목적이 이쪽이 아니거나. 그렇기에 잔뜩 저기압으로 화가 나서,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힌 채로, 가끔 쯧 하고 혀도 차는 진 유이치를 어떻게 해야 평소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의 짜증날만큼 여유로운 진 유이치로 되돌릴 수 있는가 모두 고민에 빠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끼리 눈빛과 통신으로 답을 찾았으나 영 괜찮은 답은 나오지 않았다. 턱을 괴고 공기중으로 제 불쾌함을 풀풀 풍기다가, 머리를 몇 번 벅벅 긁고는 또 짜증이 가득한 우울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진 유이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진이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게 좋았다. 저 상태의 진 유이치가 유지되어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진 유이치가 화가 났다. 이유는 모른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다른 대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그는 몇 없는 S급 대원에, 구 보더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경력 긴 대원이자,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으니까. 

 

  어쩌죠? 애초에 왜 화난 거야, 저 놈은. 글쎄요, 그런 걸 말해줄 상태도 아닌 것 같고...... 누가 가서 화 풀릴 때까지 개인 랭크전이나 하는 건 어때? 아까 타치카와 씨가 갔다가 한 방에 거절당했어요. 움직이고 싶지도 않나 봐요. 타마코마에 연락해 봤어? 해봤는데, 그 쪽도 잘 모르겠대. 지부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다더군. 그럼 본부에서 화날 일이 있었다는 건가? 무슨 일이 있어서 화가 난 건데? 도돌이표잖아.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존재만으로 저 녀석을 비교적 원래대로 되돌릴만한 상대를 불러 와. 누구? 타마코마 후배들은요? 진 씨가 후배들 앞에서 저렇게 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겉으로라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연락은 해 봤어. 미쿠모는 가족 일정이 있고, 아마토리는 에마와 C급 대원 친구와 같이 나갔다더군. 쿠가는 휴스랑 요타로랑 같이 보호자 코나미를 동행하고 외출. 카라스마는 아르바이트 갔고. 하필 타이밍 참.

  ......어쩔 수 없지. 대원들은 그들 중 대표에 가까운 사람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대사에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카자마 소야가 팔짱을 끼고 최후의 보루를 입에 담았다. 

 

"아라시야마한테 연락해. 미안하지만, 일 끝나고 본부로 곧장 와 달라고."

 

 

 

 

  아라시야마 부대는 오늘 아침 일찍부터 빡빡하게 홍보 일정이 잡혀 있었다. 중학생 대원 키토라가 끼어있어서 겨우 저녁 10시까지. 그러니 보더 대원들은 그에게 굳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다른 부대들은 청소년이 다수인 만큼 아무리 길어도 7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보더에 7시간 이상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건 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훈련을 하는 경우였고, 다들 그건 노동이 아닌 놀이나 자기계발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보더 내부도 아닌 외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하는 홍보 부대, 아라시야마 부대는 이리저리 떠안고 있는 부담이 컸다. 대장인 아라시야마는 분명 마지막까지 대원들을 집에 데려다 준 다음에야 퇴근할테니까. 그러니 보더에 있는 그들은 굳이 아라시야마를 불러 오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그들끼리 진 유이치를 해결하고 싶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태산같은 진 유이치의 화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뭘 하든 틱틱거리기만 하니 보더 분위기가 이보다 더 심각하게 나빠지기 전에 히든 카드를 부를 수밖에. 부르면 분명 와 주리라는 것도 알았다.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아라시야마에게 빚을 마음 속에 하나 달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 빚은 진이 갚아 줄 거다. 불합리하고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였다. 

 

[진이 말인가요? 보더에서 화를 낸다고요?]

"그래. 상태가 좀 심각해."

[화를 내고 있어요? 지금도?]

"믿기 힘들겠지만. 최대한 빨리 원상복구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일이 끝나고 바로 보더 본부로 와 줄 수 있어?"

[본부로 말인가요?]

"꼴사납게 화가 나 있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멀쩡해질 때까지 보더에 있거나 암약이나 할 겸 밖을 어슬렁거리겠지. 여기 잡아두마."

[부탁드려요, 카자마 씨. 최대한 서둘러 볼게요.]

"그래."

 

  믿음직한 대답에 카자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못마땅한 표정의 진이 서 있었다. 역시나 드문 일이었다. 평소 표정이 반대인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허나 화난 진을 보고 불안함 따위를 느끼기에 카자마는 많은 역경을 스스로의 근성과 노력과 능력으로 넘어온 소형이고 고성능인 완벽한 남자였기에, 그는 무심하게 진을 응시했다. 

 

"아라시야마가 오는 미래를 봤어. 카자마 씨, 비겁해."
"제일 합리적인 길을 고른 거야."

"난 아라시야마 때문에 화난 거라고."

  이건 좀 의외다. 카자마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의외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언제나 진 유이치를 평소와 다르게 고장내는 건 늘 아라시야마였다. 불쾌할만큼 싱글벙글하는 진도, 어처구니 없을 만큼 풀이 죽은 진도 아라시야마가 만들어내고는 했으니 잔뜩 화가 난 진 유이치도 만들 수 있겠지. 그는 유연하게 생각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ㅡ 으로 시작되는 6가지 질문 중 충족된 건 '누구' 하나밖에 없었지만 카자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라시야마랑 만나서 해결해."

 

  그리고 화난 게 아라시야마 때문이라면 그를 부른 카자마의 행동은 역시 정답이다. 카자마는 한 번 가볍게 코웃음치고는 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나머지는 아라시야마가 알아서 해 줄 터다. 

 

 

 

 

  진은 턱을 괴고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카자마가 단단히 못을 박고 간 뒤로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한 풀 줄었다. 이제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라도 해 준 모양이었다. 카자마 씨 말이라면 누구나 믿을테니 안심하고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간 거겠지. 아라시야마가 올 때까지 진이 도망가지 않도록 몇 명 정도는 감시역으로 붙어있지만, 진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당장 붙잡히는 미래가 보이니 굳이 고르지 않기로 했다. 다른 대원들에게 뒷덜미가 붙잡혀 놓아달라고 두 손 들고있는 모습을 아라시야마가 목격하는 미래가 참으로 선명했다.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 멀쩡하게 앉아서 여전히 화내고 있다는 걸 어필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가지 말라고 미래가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진이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새벽녘, 아라시야마가 출근하기도 전 코로의 산책에나 어울려 줄 겸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해가 겨우 뜨기 시작하는 시간에 나가서 아라시야마를 만났다. 그리고 가장 확률이 높은 아라시야마의 미래가 언제나처럼 그 앞에 비췄다. 아라시야마의 미래는 확률적으로 행복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객관적으로 운이 좋은 사내였다. 아주 좋은 하루일 경우가 3할, 평범하게 좋은 하루일 경우가 6할,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하루일 경우가 1할.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1할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최악이었다. 아니, 최악일 예정이었다. 새벽같이 아라시야마의 얼굴 한 번 보자고 잠을 포기하고 나온 진은 가장 확률 높은 미래에서 아라시야마가 날계란, 혹은 뺨을 맞는 것까지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피할 수 있는 미래다. 피할 수 있는 미래인데. 진은 이미 거기서부터 조금 화가 났었다. 안티 보더는 어디에나 있었고, 일정 부분 진 역시도 할 말 없게 만드는 합당한 주장과 의견이 있었기에 그들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늘 보이는 미래는 달랐다. 아라시야마를 공격하는 상대가 원하는 건 합의나 토론,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이 아니라 모욕과 그 모욕으로 터져나올 만한 젊은 패기와 분노. 건방지고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을 행동거지들이었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아라시야마는 무척 부당하게 곤욕을 치루는 주제에 후배들을 감싸고 저 혼자 그걸 모두 받고 참았다. 아니, 참을 예정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미래가 보이는 진만 아는, 속이 터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릴 일이었다. 화가 났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라고 해도 화가 나고 서러웠다. 그런데 아라시야마는 말하기도 힘든 걸 겨우겨우 설명해준 진의 말을 듣고 참으로 여상하게 되묻기만 했다.

 

'그 미래를 피하면 보더에 다른 불이익은 없을까?'

'아라시야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미래가 얼마나 험악한데 무슨 보더의 불이익을 따져. 그렇게 따지면 네가 다치는 게 제일 큰 불이익이라고.'

'홍보부대라고는 하지만 나도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으니까. 그게 공개되면 보더 쪽이 훨씬 동정적 여론도 받을 거고. 물론 우리 대원들이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건 조금 곤란하기는 하겠지만, 조금 참아주고 보더에 이익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참아도 괜찮은데.'

'......난 안 괜찮아.'

 

  진 유이치는 바로 거기서 정말 화가 났다. 별 다섯 개 짜리 화남 상태 진 유이치를 탄생시킨 건 바로 이 아라시야마의 진심 어린 말이었다. 그리고 정말 분한 건, 그런 아라시야마에게 진은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점이었다. 청년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제 자신보다 보더의 안위를, 그리고 그로 이어지는 전체의 안전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건 진도 아라시야마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라시야마에게 있어서 보더는 굳건할수록 좋다. 그게 곧 그의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과 그 사람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니까. 진에게도 마찬가지. 진은 언제나 불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가꿨다. 모두가 다치지 않고 행복한 세상은 진이 보는 시야에서 가장 멀지만 진이 제일 꿈꾸는 미래였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줄세우다보면 진도 아라시야마도 자연스럽게 제 자신은 가장 뒤에 두기 마련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머리로 알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제 순서를 계산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존중을 물 흐르듯 생략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은 속이 상했다.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주제에서 두 사람은 절대 서로를 이길 수 없었다. 꼭 닮아 있었으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속상하다고 말하고 화내면 아라시야마는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겠지만, 언젠가 진은 비슷한 상황에서 꼭 같은 결론을 내고 행동해버릴터다. 그 때 아라시야마는 슬퍼할지언정 진에게 화내지 않을테니 진이 여기서 화내는 건 공평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았다. 머리로는.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머리로만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감정이겠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겠지. 고작 인간인 진은 아라시야마가 신경 쓰리라는 사실을 보았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덧붙이는 말 없이 새벽에 그렇게 아라시야마와 헤어져버렸다. 그리고 보더에 와서 꼴사납게 제 분노를 허공에 쏟아냈다. 계속 제 안에 고아두었다가는 언제 어디에 쏟아부을지 몰라 무서웠으니 영문 모르고 진의 분노에 놀랄 사람들에게 미안했으나 별 수 없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미래에서 아라시야마는 가장 확률이 높던 미래를 피하고 안전하게 오늘의 일을 끝마쳤다. 새벽에 진을 만났다가 그렇게 헤어진 탓이지만, 진은 미간만 한 번 좁히고 말았다. 아라시야마가 육체적으로 고난을 겪을 미래는 이제 진과 아라시야마만 아는 과거가 되었는데도 속에 응어리 진 것은 그다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끝내 아라시야마가 달려올 때까지 진은 입을 꾹 다물고 보더 라운지의 한 자리를 지켰다. 그가 상냥하게 제 자신을 달래주면 아무리 계속 화내고 싶어도 결국 물에 들어간 솜사탕처럼 약해질 제 자신을 알았다. 이미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이치, 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옆에 바짝 앉은 온기에 벌써 한 풀 꺾였다가, 손을 잡으며 다음부터 조금 더 조심하겠다며 속삭이는 말에 녹아버리겠지. 문제의 근본은 둘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결국 눈 감고 눈앞의 달콤한 사실만 먹고 넘겨버릴 터다. 그 사실에 진은 조금 슬퍼졌다. 내가 죽어서 앞으로 오래오래 무사히 끝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닥치면 나도 너도 스스로를 던져버리겠지만, 진은 좀 더 이기적이게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만큼은. 나는 늘 그런 사람을 사랑했고 그런 사람이라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두 명이나 잃은 진 유이치는 마지막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진!"

 

  라운지로 들어오며 곧장 자신을 찾아 달려오는 연인의 조금 가쁜 숨과 걱정 어린 눈을 보며, 진은 눈썹을 한껏 내리며 속으로 서글픔을 삼켰다. 아직 보이지도 않고 찾아올 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서글픔을 느끼는 건 미래를 보는 진 유이치의 별 수 없는 성품이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서글픔에서 눈을 돌려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아라시야마 쥰의 성정이었기에. 곧장 달려온 아라시야마가 흘러내리는 걱정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진의 손을 잡아 제 뺨에 대는 모습에 진은 조금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진의 표정이 안 좋다는 사실에 모든 걸 잊고 걱정하는 아라시야마가 좋았다. 이미 우울 속에 흔적도 없이 소강된 분노를 꺼내오는 대신 제 손에 닿은 아라시야마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며, 진이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그래, 또 다시 눈을 돌려 슬픔이나 우울 대신 너를 보고 있어야지. 그럼 뭐든지 괜찮을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이 슬쩍 찾아와 제 주변을 살짝 돌아다니는 것도 같았다. 위험한 미래 따위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대책 없고 막연한 믿음. 팔을 뻗어 아라시야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진은 깊은 숨을 뱉었다. 제 머리를 끌어안아 느리게 쓸어주기 시작하는 온기에 제 온몸을 맡기며, 그는 이곳이 보더 라운지라는 사실도 과감하게 눈을 감아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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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단문 이것저것

2021. 4. 23. 23:52 from WORLD TRIGGER/NOVEL

HL~ BL~ GL~ 다 섞여있는 좋아하는 커플링 단문 길이도 자유 잡다함 주의

 

 

 

 

 

01. 요네키토 

 

 

 야, 슈지. 큰일났다. 나 좋아하는 애가 생긴 것 같아. 

 

 요네야 요스케는 마치 세상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친구의 얼떨떨한 사랑고백을 듣게 된 미와 슈지는 그 당혹스러움이 고스란히 옮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껌벅였다. 순간적으로 '큰일났다' 는 문장과 '좋아하는 아이' 사이의 연관점을 즉각적으로 찾지 못한 탓이었다. 개인 랭크전밖에 모르는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는 요네야가 사랑이라니, 무척이나 어색하긴 하지만 그도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지 않은가. 좋아하는 아이 하나쯤은 생겨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보더에 재직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보다 일을 선택할 것 같은 구석이 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 금지인 조직도 아니고...... 지나가는 대원을 잘 잡고 캐물으면 남모를 사랑을 품에 안고 있는 대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는 평소답지 않게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왜 큰 일인데?"

"아니 그게,"

 

 제 부족한 설명을 그제야 깨달은 요네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버린 그의 표정이 다채롭게 순서대로 변화하는 모습을 미와는 조금 신기하게 구경했다. 곤란한데, 아니 그렇지만 말은 해야, 아 근데...... 쪽팔린데. 표정에 그렇게 써 있다. 요네야가 저토록 선명하게 표정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꽤 드문 일인지라, 미와는 퍽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래서 귓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요네야가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모양새를 너그럽게 기다려주었다. 자존심과 수줍음과 고민 사이 어드메에서 요네야는 한참을 해메는 모양이었다.  

 

"그게 말이지, 슈지."

"응."

 

 한참 고민하던 요네야가 마음을 정한 표정으로 미와를 응시했다. 

 

"나, 아무래도 키토라한테 반해버린 것 같은데. 나 어쩌냐."

 

 미와는 3초쯤 이 키토라가 누구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약간 요네야의 심각함이 옮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키토라가 아라시야마 부대, 키토라 아이?"
"......엉."

 

 눈이 높다고 해야할지, 꿈이 크다고 해야할지. 미와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친구의 의리로 삼켜줬다. 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라시야마 부대 소속 대원들은 하나같이 보더의 절벽 위의 꽃 아니던가. 가장 가볍고 말랑해보이는 사토리조차도 자신이 홍보부대라는 날카로운 인식이 박혀있어 그들이 생각치도 않는 부분에서 조심하거나 피하는 구석이 있었다. 헌데 그중에서도 제일 원칙적인, 그리고 막내인 키토라라니. 나쁜 상대는 아니겠지만 미묘한 반응을 돌려줄 수 밖에 없는 상대였다. 애초에 홍보부대인데 연애라는 걸 할 수는 있나? 미와는 의문에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보더 대원들은 모르지만, 그들에게만 해당될 암묵적 규칙이 백 개쯤 있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 아이돌보다 빡빡하게 지내고 있을텐데. 뭐, 대장이 아라시야마인 이상 대원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응원하면 응원했지 안된다고 할 것 같지 않으니, 일단 그 부분은 넘겨두기로 하고 미와는 다른 것을 고민했다. 

 키토라. 키토라인가...... 팔짱을 낀 미와가 잠시 생각했다. 요네야는 고등학생이고 키토라는 중학생이지만 고작해야 두 살 차이. 내년에 키토라가 진학하면 같은 고등학생이 되니까 큰 문제는 없을 터다. 외형, 키토라 쪽이 훨씬 미인이지만 제 대원이자 친구인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요네야도 못나지 않았으니 됐다. 미와는 기울어진 저울로 열심히 균형을 쟀다. 성격. 연애를 한다면 요네야가 키토라를 잘 받아주니 나름 균형은 맞을 듯 한데...... 문제는 여기였다. 미와는 이마를 짚고 요네야를 보았다. 

 

"앞으로 어쩌고 싶은데?"
"그야...... 기왕이면 연애?"

".......널 좋아하게 만들 방법은?"
"도와주십쇼, 슈지 님."

 

 그걸 모르니 이걸 말했지. 요네야는 미와의 어깨를 든든히 잡았다. 친구 좋은 게 뭐란 말인가. 미와는 대번 부담스러워졌다. 네이버 사냥만 목표로 삼고 달리던 삭막한 인생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분홍색에 미와는 체할 것 같았다. 제 분홍이 아니고 친구의 분홍이라 겨우 참아줄 수 있었다. 빈말로도 미와와 키토라는 친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둘 사이를 묘사하는 제일 적절한 단어는 직장동료 정도였다. 아니면 아는 사이.) 그런 미와조차도 키토라의 성정을 대충 알았다. 네이버를 생각하는 사상을 전부 제치고 순수하게 성격만 따져보면 미묘한 부분에서 미와를 조금 닮은 구석도 있었다. 조금 까칠하고, 하지만 소중하게 여길 건 제대로 소중하게 여긴다. 신뢰할 수 있는 선배에게는 정중한 편이다. 배짱도 있고 실력도 있...... 아니, 이건 전투 관련으로 넘어가잖아. 미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가 뜨며 요네야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이거 비밀이야?"
"어...... 고민 중?"
"미와 부대나 이즈미 불러서 다 같이 상의하기 부담스러워?"
"으으음~."

 

 저 혼자만으로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애초에 일 대 다수가 훨씬 더 승률이 높다는 건 보더의 기본 전략 중 하나였다. 네이버가 관련되면 머리가 뜨거워지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미와는 냉정하고 유능한 A급 부대 대장이었다. 그는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연애 소식에 다른 놈들이 도움이 될거라고는 사실 그다지 확신이 안 들었으나 이즈미는 사토리랑 친했고, 미와 부대를 부른다면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제 오퍼레이터 츠키미 씨는 믿을 만 했다. 보더는 가로선, 즉 동갑내기끼리 친하게 지내는 구석이 있었고 츠키미 씨는 아라시야마와 동갑인데다가 입대시기도 비슷하니까. 즉, 이리저리 찔러 볼 가장 유력한 구석이라는 소리다. 

 고민을 끝낸 요네야가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미와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무척이나 사적인 이유였다만, 미와 부대 대장의 이름으로 전 대원에게 귀환명령을 내릴 순간이었다.

 

 

 

 

 

 

02. 무라>콘<쿠니 

 

 

 타치카와 케이와 쿠루마 타츠야는 곤란한 시선을 공유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고 (보더에서 기본적으로 동갑내기란, 우선 친구가 되기 아주 좋은 조건과 거진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자비로운 쿠루마는 타치카와의 허술한 부분까지 대단하다고 진심어린 칭찬을 할 수 있는 배포가 있었다. 둘은 꽤 좋은 친구였다. 그러니까, 음. 이런 황당한 부분으로 이런 갈등답지도 않은 감정적 곤란함을 겪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엇다. 별 수 없는 사랑의 작대기 속에 아주 관계없으나 아주 곤란한 제 3자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참으로 머쓱한 시선을 열심히 공유했다. 주변에서 안타깝다는 듯이 보는 동갑내기 놈들의 시선은 덤이었다. 

 

 이 덜 큰 꼬맹이들이 어울리지도 않게 사랑과 전쟁 같은 걸 찍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타치카와는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대장인 저들조차 사랑과 관련 없는 건전한 삶을 살고 있건만 아직 열 여덟 살 먹은 고등학생들이 무척 곤란한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타치카와가 턱을 괴고 테이블에 과자를 하나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게 그. 콘 쨩이라면,"

"응."

 

 타치카와가 이번에는 아몬드를 하나 들어 과자 옆에 내려놓았다. 

 

"무라카미가 얘를 좋아한다고?"

"응, 아마도......"

 

 보더에서 대장이 대원을 보는 분석은 대체로 정답이기 마련이었다. 쿠루마라면 더더욱. 무라카미가 감정을 숨기는 데에 능숙한 녀석도 아니니 아마도 무라카미는 정말로 제 부대 오퍼레이터에게 연분홍빛 풋사랑을 하고 있으리라. 타치카와는 골치가 아파서 얼굴을 감쌌다. 물론 타치카와가 두 살이나 어린 오퍼레이터에게 발칙한 마음을 품어서 곤란한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얼마든지 뻔뻔하게 나갔으리라. 허나 그에게는 그보다 백 배 쯤 곤란한 이유가 있었다. 타치카와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두 번째 아몬드를 들어 과자의 빈 쪽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우리 쿠니치카도 얘를 좋아하거든."

"응......"

 

 타치카와가 부대실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이름이 바로 이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여자아이들끼리의 우정이겠거니 여겼으나 이젠 안다. 아니었다. 쿠니치카는 진심으로 콘을 좋아했다. 고등학생이 품을 수 있는 따뜻하긴 한데 가끔 데일 것 같은 발칙함과 욕심이 가득 섞인 사랑이었다. 타치카와는 무라카미보다 쿠니치카 쪽이 머릿속으로 굴려 본 생각이 더 불건전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헐렁하고 여유로워보여도 그녀 역시 A급 1위 부대의 딱 하나뿐인 오퍼레이터. 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이머이기도 한 그녀는 진심으로 온몸을 던져 전심전력으로 콘 유카에게 어택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잘 안 통했지만. 

 쿠루마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여운 오퍼레이터를 향한 귀여운 부대원의 사랑이 귀여워 응원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살짝 도와주라고 친구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얘기를 꺼낸 것 뿐인데 설마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 부대원을 향한 사랑의 라이벌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쿠니치카 씨도 참 좋은 아이인데. 하지만 스즈나리 제 1 부대의 대장인 쿠루마는 당연히 무라카미의 편이었다. 타치카와는 당연히 쿠니치카의 편이었고. 두 사람은 잠시 머리를 붙잡았다. 

 

"......어이, 니들이 지금 우리를 동정어린 눈으로 볼 때야? 니노미야 너는 이누카이한테 전화라도 해서 라이벌 추가 주문 들어오는 거 아닌지라도 물어봐야 한다고."
"뭣,"

 

 그리고 못마땅한 불만 섞인 조언에 열 여덟 살 대원을 데리고 있는 또 다른 스무 살 대장이 어깨를 굳혔다. 급히 니노미야가 휴대전화로 연락을 넣는 모습을 보며 열 여덟 살 대원이 없는 카코와 츠츠미는 조금 여유롭게 흥미로운 관계성을 응시했다. 저들도 모르는 사이 두 살 아래에서 재미있는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콘은 카코 부대에도 들어올 수 있는 인재라서 카코도 잘 알고 있었다. 귀엽고 똑부러진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무라카미와 쿠니치카. 보더에서도 굴지의 어태커와 손꼽히는 오퍼레이터의 마음을 모조리 빼앗아가다니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쿠루마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은 본인이 뭘 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지만. 

 

"츠츠미 군은 누구 편?"
"음, 무라카미 쪽일까."
"나는 쿠니치카 쪽 편을 들어볼건데."

 

 쿠니치카 역시 훌륭한 K다. 무척 귀엽다는 뜻이다. 카코가 빙긋 웃으며 머리를 맞대고 한숨을 쉬는 두 동갑내기들에게 새로 채운 맥주잔을 내밀었다. 니노미야가 위로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삼각관계에 새롭게 한 축으로 포함될 사람은 현재 열 여덟 살 중에는 없다는 이누카이의 전언을 건내주는 것과 동시였다. 

 

 

 

 

 

3. 후유<토마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이다. 그리고 감정 하나 참 오래 간다. 열 여덟 살 대장에게 사랑에 빠진 토마 이사미는 이제 내년이면 그 시절 대장과 동갑이 된다. 십 년의 짝사랑은 참 길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후유시마를 좋아했다. 처음엔 대장이 미성년자의 마음을 받아 줄 리 없다는 걸 알아서 참았다. 그 다음은 대장으로서 대원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걸 알아서 참았고, 그 뒤로는 관계가 무너질 게 싫어서 참았다. 그가 토마를 토마와 똑같은 감정으로 좋아해주지 않을 걸 알아서 참았다. 그는 스나이퍼고, 맞지 않을 총알은 쏘고싶지 않았다. 어떻게 쏴도 빗나갈 게 느껴지는데 쏠 수는 없었다. 겁쟁이같다고 놀림받아도 할 말이 없었으나 처음 겪는 뜨거운 감정 앞에 사람은 누구나 나약해지기 마련이었다. 토마조차 그랬다. 무엇보다 후유시마를 잃는 게 무서웠다. 착하구나, 토마. 그리 다정하게 불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잃어버리면 방향 모를 분노가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그는 참고, 참고, 침묵하고 인내하며 기다렸다. 물론 시간만 허비한 건 아니었다. 보더에서 최고로 우수한 스나이퍼답게. 상대를 쏘아 꿰뚫어 맞출 수 있을 모든 준비를 하면서. 

 대장, 이제 내년이면 나는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대장이랑 동갑이 돼. 나는 이제 어리지 않고, 십 년 동안 보더에서 구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았어. 이 마음은 집념도 아니야. 나는 분명 대장을 좋아해. 이제 대장은 내 대장이 아니지만. 대장이 마흔 살이 되어도 좋아. 오십이고 육십이고 되어도 좋을 거야. 스물 아홉과 열 여덟은 대장이 절대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마흔과 스물 아홉 정도면 크게 차이도 없잖아. 싫다면 조금 더 기다릴게. 마흔 하나와 서른이면 덜 부담스럽겠어? 당신이 넘어와 준다면 얼마든지 기다릴거야. 언젠가 반드시, 반드시 마지막에 나한테 넘어와서 끝까지 곁에 있기만 하면 돼. 

 응? 후유시마 씨. 

 

 

 

 

 

 

04. 이즈오사 

 

 

 이즈미는 오사무의 등에 달라붙어, 그를 뒤에서 끌어안은 상태로 어깨에 목을 묻고 있는 걸 좋아했다. 품에 가득 들어차는 연인의 조금 마르고 살짝 단단해질 기미가 보이는 몸뚱이를 끌어안고 있으면 행복했다. 달짝지근한 살내음이나 달달한 향수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상대가 미쿠모 오사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즈미 코헤이는 만족했다. 바짝 몸에 힘을 주고 혹여 무게라도 실을까 긴장하던 연인이 저에게 몸을 기대고 꼼질꼼질 오래 안겨있어도 편할 자세로 고치는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더더욱 그랬다. 

 

 

 

 

 

05. 진아라

 

 만나기 전부터 알았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만난 직후에 알았다. 이 사람한테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앎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은 언제나 많은 것을 먼저 아는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흐름대로 흘러갔다. 특히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눈으로 보았던 것과 실제 일어나는 것의 차이가 커서, 미리 수많은 스포일러를 당했으면서도 진은 별 수 없이 그 순간 감정이 흔들렸다. 이건 좋아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었고,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으나 반전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 유이치는 아라시야마 쥰에게 제 마음을 줬다. 사이드 이펙트로 보았던 것보다 백 배는 아름답고 천 배 쯤 멋진 사람에게 별 수 없이 사랑에 빠졌다. 

 

 아라시야마를 어떻게 이기겠어. 진은 일찌감치 단념했다. 사랑에서 먼저 반한 사람이 진다고 한다면 진은 시작하기도 전에 졌다. 구 보더 시절부터 어태커로 일했으며 A급 1위 타치카와와 라이벌로 맞서던 진은 지는 걸 싫어하고, 질 것 같으면 판에서 발을 빼버리는 성격 나쁜 승부사였으나 사랑 앞에서는 하릴없이 나약해졌다. 들어간 줄도 모르고 들어간 판에서 싸울 거라고는 상상해보지 않던 상대를 만나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졌다. 두 말 할 것 없이 진 유이치의 완패였다. 두 손 두 발 다 든 그는 제 종잇장같은 나약함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사랑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진은 아라시야마의 앞에서 약해지는 것조차 좋아졌다. 강하지 않은 제 자신이 좋아진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이어지는 산책은 진이 아라시야마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제안은 아라시야마가 해 줬지만 말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일정에 보더밖에 적혀있지 않는 진의 생활패턴은 몹시 불규칙해졌다. 잠드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들쑥날쑥. 덕분에 일정한 시간에 타마코마에서 보내는 식사마저 들쑥날쑥 엉망이 되기 시작하자 소중한 친구의 건강을 걱정한 아라시야마가 진의 생활 습관을 고착시키기 위해 건낸 일시적인 제안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아침 일찍 강아지 코로의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시간에 일어나야 했고, 산책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가 고프니 아침을 먹었으니까. 최소 한 끼의 식사와 한 시간 이상의 운동. 진으로서는 마음은 고맙지만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 거절하고 싶어지는 제안이었다. 허나 제안해 준 상대가 누구도 아닌 아라시야마이지 않은가. 좋아하는 아라시야마와 단 둘만 보낼 수 있는 고정시간이란 놓치기 힘든 달짝지근한 먹이였다. 결국 큰 맘 먹고 진은 아라시야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매일매일 이어지는 습관으로 박아넣었다. 진의 건강을 위한 단발적인 약속은 어느 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암묵적 규칙이 되었다. 문앞에서 기다리다보면, 아라시야마가 문, 가끔은 창문을 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진! 하고 새벽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진은 이제 알았다. 

 

 덕분에 요즘 코로가 내 얼굴을 산책이라고 인식한 것 같단 말이지. 진은 천천히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끔 볼일이 있어 새벽이 아니라 낮이나 저녁에도 아라시야마를 보기 위해 종종 찾아갈 때가 있다만, 그 때마다 코로는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붕붕 휘두르며 온 집을 뛰어다녀 진은 가끔 무척 민망해졌다. 매일 산책할 때만 보는 얼굴이라고 인식하다보니, 이 얼굴을 보면 산책을 나간다고 기억해버린 것 같았다. 아라시야마의 작은 가족이 자신을 반가워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만, 그리고 그렇게 흥분한 코로를 보고 기쁜 듯 머쓱한 듯 웃으며 시간이 괜찮다면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는 아라시야마는 사랑스러웠지만. 

 

 산책 말고 조금 더 발전한 사이가 되고 싶은데. 기왕이면 코로의 산책이라는 목적이 없어도 빈 시간에 만나도 되는 사이가 좋겠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좋다. 진은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앉아 무릎에 제 뺨을 대고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는 세상 많은 일을 스포일러 당하며 살아가고 있으나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으니 고르기 힘들어 고민하게 되었다. 뭘 선택하더라도 아라시야마가 자신을 싫어하는 미래는 없다. 그런 기쁘고 비겁한 결과를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진은 무엇이 최선일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느라 종종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타치카와와 싸워서 지는 것처럼. 타치카와에게 베였을 때는 화나고 억울하고 열이 받는다면, 아라시야마와 연관된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아라시야마가 먼저 다가와줘서, 부끄럽고 기쁘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래, 이번 선택지마저 아라시야마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 진은 좀 더 몸을 웅크리고 깊게 심호흡했다. 각오를 다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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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생일

2021. 4. 9. 23:54 from WORLD TRIGGER/NOVEL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느즈막한 아침, 생일날 눈을 뜬 진 유이치가 제일 먼저 생각한 문장이었다. 

 

  물론 꿈결처럼 생각했을 뿐, 실제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진작 했지. 진 유이치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감사 인사를 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간 아침을 입에 넣으며 그런 회의적인 생각 따위나 했다. 그는 별써 몇 년 동안이나 아라시야마 쥰에게 제 마음을 뚝 떼어 아무도 모르게 건내준 상태다. 아라시야마를 좋아한다. 아마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평생 좋아할 예정이었다. 마음을 준만큼 돌려받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라시야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에게 특별한 사람은 피가 통하는 가족들 뿐이었다. 물론 친구인 이상 조금 더 특별할 수는 있겠지만......

  진은 턱을 괴고 맛있는 아침에 최대한 감흥을 가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씹었다. 생각하는 것이 우울하니 있던 맛도 달아나는 기분이었으나 아침을 해 주는 키자키에게 미안했으니, 진은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며 열심히 식사했다. 어떻게든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자마자 감사인사를 하며 지부에서 나와버렸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은 수학이나 과학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진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학업에 크게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지만─혹시 몰라 미리 변명하자면, 그에게는 성적보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불성실하게 듣던 거진 졸면서 듣던 수업 사이에서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눈은 확률싸움이고, 진은 그 확률을 잘라내고 키워내며 좀 더 나은 미래로 밀고 나가는 일을 했었다. 허나 인간이 어떻게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을까. 일부분만 보이는 미래를 이리저리 기우고 꿰매어 맞추다보면 한두 땀 정도는 빠지기 마련이었다. 진은 그렇게 놓치는 미래에 눈물지을 때도 있었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럴 모양이다. 지부 주변의 강가를 느긋하게 걸으며 진은 눈앞에 보이는 미래를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아라시야마가 저를 보며 기쁘게 웃고 있었다. 조금 발그레한 뺨이며 곱게 휘어지는 눈가가 예쁘다. 그는 속절없이 조금 행복해졌다. 꽤 확률이 높은 미래다. 아무래도 저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직 본인도 모르겠다. 생일을 맞은 건 나니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아닐거고. 뭐지? 미리 7월에 가족들이랑 보내는 생일을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나? 아니면...... 진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제 눈에만 보이는 미래의 아라시야마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무튼 꽤 높은 확률로 저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올 생일은 꽤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다시 불쑥 가슴에서 속삭이는 욕망은 곱게 접어 모른 척 했다. 행복해질 때마다 욕망은 가끔 고개를 들어 진의 가슴에 작고 선명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며 속삭이고는 했다. 말했다가는? 진은 눈을 감고 상상해보았다.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할지 몰라 표정을 굳히고 곤란해하는 아라시야마의 얼굴을. 심장을 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대번 올라왔다. 욕망은 그 상상 하나에 대번 고요해지고는 했다. 오늘도 그랬다. 진은 다시 눈을 뜨고 행복하게 웃는 미래의 아라시야마를 응시했다. 괜찮아, 웃고 있어.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생일이라고 동네방네 알리지는 않았으나 몇 년이나 보더에 근무하고 있다보면 알음알음 개인정보는 알기 마련이었다. 구 보더 소속인 진은 더더욱 그랬다. 시노다 본부장이나 린도 지부장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물을 챙겨주던가 제자에게 진의 생일을 알려주는 일도 있었으니까. 몇 년 전부터 진의 생일은 쉬이 알려졌다는 말이다. 애초에 모르던 사람들도 당일이 되니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빠르게 번지는 보더 내부에서 진의 생일 소식도 빠르게 퍼졌다. 기본적으로 호인들이 많은 보더에서 경사는 특히 발 달린 것보다 빠르게 도는 경향이 있었다. 보더를 걷고 있다보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좋아하는 쌀과자나 작은 선물 따위도 몇 개나 받을 수 있었고.  

 

  웃는 얼굴로 기꺼이 축하를 받은 청년은 이동하던 도중 개인 랭크전 라운지에 앉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B급, A급 대원들도 종종 볼 수 있는 이곳은 미래를 보기 좋은 곳이었다. 보아하니 동기들이 생일 파티를 준비해주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 부대실이지. 진은 미래 배경을 꼼꼼히 보려 애썼다. 좀 넓은 것 같은데.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실인가? B급 부대실보다는 A급 부대실이 넓다. 동갑내기 대원들 중 가장 생일이 빠른 진인만큼 올해 첫 생일파티를 큼직하게 해준다면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실이리라. 아직 연락이 없긴 한데 미리 가 있어야 하나, 아니면 타이밍이 맞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서 시간이나 떼울까. 근데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타치카와 씨한테 붙잡혀서 개인 랭크전을 오십 번은 하게 될 것 같은 미래가 있는데 말이지. 다른 곳에 있을까? 턱을 살살 쓸며 고민하던 시간이 너무 길었을까. 진은 제 어깨를 덥석 잡는 손길에 움찔 몸을 떨었다. 타치카와 씨가 벌써 왔나? 청년이 고개를 휙 돌렸다. 

 

"진! 생일 축하해!"
"아라시야마!"

  진을 붙잡은 사람은 아라시야마였다. 화창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내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순간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도 제 사랑은 참 눈부셨다. 무심코 게슴츠레하게 변할 뻔한 눈매를 애써 평소처럼 가다듬으며 진도 웃었다. 

 

"고마워, 아라시야마."

"미래, 봤지?"
"음, 아마도? 파티?"
"응, 그거. 역시 진인 이상 서프라이즈는 글렀지만 그래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꼴사나우니까, 나는 시간벌기 담당이야."

 

  연락이 올 때까지 나랑 같이 여기 있자. 미래 보는 거 삼가기야. 아라시야마가 그리 말하며 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 타치카와 씨랑 오십 번 개인전하는 미래 없어졌다. 진은 사라진 미래의 한 갈래를 느끼며 아라시야마를 응시했다. 아라시야마에게 시간벌이로 진이랑 대화나 하라며 등을 밀어 준 친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연하게 고마웠다. 

 

"선물 많이 받았네. 역시 진이야. 저녁은 지부에서 파티하려나?"
"음, 아마도. 그런 미래가 보이니까."
"저녁에도 먹을 것 같아서 일부러 케이크는 작은 걸로 골랐어. 아야츠지랑 키토라가 맛있다고 했던 가게니까 맛있을 거야."
"그래? 기대되네."
"우리 다 선물도 골라왔으니까. 나중에 케이크 먹으면서 뜯어봐. 기대해도 좋아."

 

  어떤 선물인지 어른어른 보이는 것도 같았으나 진은 애써 의식을 아라시야마에게 돌렸다. 당장 선물을 뜯어보고 놀라며 기뻐지는 감정의 파편 정도라도 진실되게 느끼고 싶었다. 물론 이미 다 안다고 하여 감정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행복해지는 순간은 분명 있다. 지금 제 친구들이 저를 위해 파티를 준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벌써 기뻐졌지만, 당장 아라시야마 부대실의 문을 여는 순간 이보다 몇 배는 더 기뻐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허나 서프라이즈는 서프라이즈로 기뻐하고 싶다는 마음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두 청년이 마주보고 웃었다. 아, 진은 문득 아라시야마의 얼굴 위로 아른거리는 웃는 얼굴을 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기쁘고 행복한 아라시야마다. 지금 이 순간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저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지? 진은 짧게 고민했다. 머릿속에 답이 속삭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짧게 의심했다. 정말 이 말이 맞는 건가? 허나 삶과 함께 미래를 보아왔던 청년의 직감이 그렇다고 속삭였기에, 그는 불신과 기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라시야마야. 고마워, 진짜 엄청 좋아해."

"나도 진이 좋아!"

 

  아하, 이래서 아침부터 그런 욕망이 어른거렸던 거구나. 아라시야마는 아침에 보았던 것과 꼭 같은 얼굴로 행복하게 웃어줬다. 진은 체념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며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찬스가 있을 줄이야. 솔직하지 못한 청년은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지 않지만, 직설적인 구석이 있는 아라시야마는 가족에게도 사랑한다는 진심 어린 말을 종종 하고는 했으니 좋아한다는 말에 크게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후쿠나 사호를 끌어안으며 하는 좋아해나 진에게 하는 좋아해나 대원들에게 하는 좋아해나, 심지어 애완견 코로에게 하는 좋아해나 뭐 다 큰 차이는 없겠지. 다행이다. 솔직한 욕망이 언어가 되어 나왔으나 아라시야마는 기쁘게 웃으며 받아줬다. 이런 겁쟁이같은 고백을 겁쟁이같은 방식으로 넘길 수 있다니. 진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기꺼이 안도하며 어깨를 조금 늘어뜨렸다. 

 

"아, 카키자키한테서 연락왔다. 이제 오래, 진."

 

  아라시야마의 휴대전화가 두 번 울었다. 곧장 내용을 확인한 아라시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진도 주섬주섬 내려놓았던 선물들을 챙겼다. 실망하는 것조차 우습다.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답을 들을 수 있던 걸 기뻐해야 마땅하겠지. 생각을 떨쳐내며 그는 선물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라시야마 부대실에 분명 굴러다니는 종이봉투가 몇 개는 있을 테니 나중에 한 개 쯤 달라고 해야겠네.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선물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던 진은 문득 제 뺨을 당기는 손길에 속절없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아주 순식간에. 

 

  쪽. 놀라 커지지도 못한 눈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가까이 담겼다. 살풋 감은 눈과 긴 속눈썹과 하얀 피부가. 그리고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진...... 어? 

  진이 멍하니 눈을 껌벅였다. 지금 무슨, 뭐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에러가 일어났다. 지직지직. 같은 광경을 반복은 하는데 인식을 못하며 멍하니 있자니, 진에게 키스한 아라시야마가 멋쩍게 웃었다. 뺨이 조금 붉다. 살짝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다. 지금 방금 무슨, 무슨 일이. 뭐야? 고장난 로봇처럼 눈만 껌벅이는 진의 품에서 선물을 절반 빼앗아 나눠 들으며 아라시야마가 조금 빠르게 속삭였다.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그리고는 재빠르게 부대실 방향으로 가 버리는 아라시야마의 뒷모습을, 진이 멍하니 응시했다. 지금 아라시야마가 저에게 뭐라고 말했지? 방금 우리 입을 맞췄던가? 꿈이나 환상이 아니고? 진이 천천히 제 입술을 매만졌다. 여기에 닿았던가? 정말 닿았던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정말이야. 나도 좋아해. 

  ......엄청 좋아해. 

  나도 진이 좋아. 

  나도 좋아해, 진. 정말이야. 

  천천히 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들고 있던 선물들을 모조리 떨어뜨릴 뻔 했다. 이 겁쟁이같은 고백 속에 진심을 어떻게 알고. 아니, 지금 네가 나를. 뭐? 

 

"아라시야마! 잠깐만!!"

 

  몇 박자는 늦게 정신을 차린 진이 급하게 아라시야마의 뒤를 쫒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기다려 줘, 아라시야마. 너 지금 생일 선물로 나한테 뭘 줬는지 알아? 아니, 그거 정말 내가 받아도 돼? 너도 절반 나한테 줄 거야? 받으면 나도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라고! 당장이라도 붙잡아서 묻고 싶은 게 속에서 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진은 급하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제 얼빠지고 못나빠진 얼굴을 수습할 여유도 없었다.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뒤에서도 훤하게 보이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아라시야마를 붙잡아 그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미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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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아라시야마. 나, 사실 미래를 보는 힘 같은 거 없어.

 

  어느 날 찾아온 고백은 은밀하고 평범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고백을 들은 대상자, 아라시야마는 도통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옅게 미간을 좁혔다. 미래를 보는 힘이야 누구에게나 없는 것이라지만 진 유이치는 홀로 그 모든 법칙 위에 서 있던 사람 아니었는가. 미래시의 사이드 이펙트 소지자, 진 유이치라는 명제를 통째로 흔드는 말에 아라시야마는 혼란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하고 늘 그러하듯 진의 말을 신뢰하고 납득하기에 진은 이제까지 미래를 보는 수많은 행동거지를 보여 왔다. 그렇다고 농담하지 말라고 넘기기에도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진은 아라시야마에게 웃지 않는 얼굴로 농담을 한 적 없었다. 

  그럼 이건 진실? 그러면 이제껏 행동으로 증명했던 수많은 말들은? 그리고 진의 예지는? 혼란에 빠져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하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 싶었지만, 영 잘 되지 않았다. 조금 초조한 듯 진은 제 손가락을 매만졌다. 긴장하기도 하고, 어쩌면 겁을 먹기도 한 태도에 아라시야마는 그제야 마음을 정했다. 진이 하는 말이 어떤 것이든, 얼마나 믿기 힘든 것이든 아라시야마는 진을 믿었다. 그를 믿기로 아주 예전에 마음을 정했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이 말이 얼마나 믿기 힘든 말이더라도 진이 말한 이상 아라시야마는 신뢰해야 했다. 한 번 눈을 꾸욱 감았다 뜬 청년은 새롭게 믿어야 하는 명제 위로 쌓이는 질문을 차곡차곡 물었다. 

 

"그러면 이제까지 했던 예지들은 뭐였어? 감?"
"아니, 그건 아니야."
"사이드 이펙트 검사는 어떻게 통과했어?"
"사이드 이펙트는 있어. 아마."
"예지는 아니고?"
"아니야."
"하지만 예지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지?"
"맞아."

 

  간단한 질답을 주고받으며 진은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색이었다. 아라시야마는 그런 진을 아주 천천히 관찰했다. 그는 제 오랜 벗에게 어떤 긴장도 주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보는 그 능력과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더 물어도 괜찮을까, 아닐까. 그만둘까 아닐까. 아라시야마의 저울에서 진실이나 의문 따위는 감정보다 낮은 가치를 가졌다. 우선 상대가 괜찮아진 다음에 천천히 들어도 괜찮았다. 특히 소중한 사람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한 아라시야마의 가치를 진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진은 크게 심호흡하며 제가 괜찮다고 행동으로 어필했다. 좀 더 물어도 괜찮다는 친구의 배려에, 아라시야마는 조금 고민하다가 물었다. 

 

"미래를 볼 수는 없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했던 일을 할 수 있었어?"
"아라시야마는 회귀나 루프라는 거 알아?"
"회귀? 루프?"

 

  아라시야마가 검지손가락으로 허공에 빙글 원을 그렸다. 이거? 무언으로 묻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비슷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라시야마를 보며 진은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계속 사는 거야. 꿈인지 현실인지 이제 모를 정도로."
"계속 산다고?"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다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 다시 진 유이치로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삶을 살아가는 거야. 계속."

"계속?"
"계속. 아주 오래."

 

  나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야, 아라시야마. 나는 과거를 보고 있어. 내가 살아온 모든 과거의 기록과 경험이 곧 미래가 될 만큼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아마도, 이게 '사이드 이펙트' 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
"과거를…."
"그래서 이걸 미래시의 사이드 이펙트 삼기로 했지."

 

  몇 번째의 삶에서, 라는 문제는 삼켜버렸다. 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살았고, 끔찍하게 오래 살아가다보면 기억은 마모되기 마련이었다. 진은 닳고 닳은 기억의 흔적만 겨우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만으로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았다. 백만 번, 아니 천만 번? 감히 헤아리기도 힘든 시간의 파편 속에서 진은 살아왔다. 

  처음엔 몇 번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 모두 붙잡고 최고로 행복한 선택을. 최선의 미래를 만들어 내가 위해 애를 썼다. 아무리 행복해도 죽으면 다시 시작되는 것에 환멸을 느낄 때까지 열심히 살았다.

  그 다음으로는 괴로워서 몇 번이고 포기했다. 스스로 삶을 몇 번이고 내던지다가, 그조차도 질려버릴만큼. 시간이 독처럼 끔찍하고 숨쉬는 것조차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스물은 커녕 열 살도 되기 전에 스러지듯 사라지던 삶들이 촘촘하게 이어졌었다. 

 

  그걸 끝냈던 게 너였어, 아라시야마. 너는 모르겠지. 몰라줬으면 하니까 말해주지 않을거야. 진 유이치는 웃었다. 아홉 살의 어느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에 처박혀 있던 날. 어머니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숨만 쉬는 아들을 위해 눈물 짓기도 지쳐가던 날에 네가 찾아왔다. 집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단단하게 정체되어 있던 긴 권태의 삶을 깨트리는 것처럼 들렸었다. 저도 어리면서 더 작은 동생들의 손을 암팡지게 잡고 죄송하다며, 야구공을 잘못 던졌다고, 다치지 않았느냐며 절절매던 어린 너는 내가 흘려보낸 모든 기력과 생명을 전부 뭉쳐 만든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오랜만에 보는 아라시야마 쥰이, 그리고 처음 보는 어린 아라시야마 쥰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보였던 반응에 어머니는 희망을 보았다. 제 아들을 위해 그녀는 아라시야마를 간절하게 붙잡았고, 아라시야마는 그런 간절함을 뿌리칠 아이가 아니었다. 

  그 삶이 처음이었어. 어린 너와 친해진 첫 번째 삶. 길고 긴 삶의 순환을 처음 들은 아라시야마가 그 아라시야마였어. 내 영원을 너에게 종속시킨 것도 그 삶이었어. 진 유이치는 지금도 기억했다. 그 뒤로 수많은 아라시야마 쥰을 만나 수많은 사랑을 했고, 그 수많은 사랑이 진의 기억이 되었다. 쌓이고, 마모되고, 스러져버리는 기억들 사이로 사랑만 띄엄띄엄 빛나고 있어서 그걸 연결시키다보면 먼지가 된 기억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나왔다. 

  그 삶 이전에도 너를 사랑했지만 사랑조차 지쳐버렸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권태와 탈력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사람도 너였어. 진 유이치가 아라시야마 쥰을 포기한 삶도 몇 번이나 있었다. 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친구로 응시한 적도 몇 번이나 있다. 그런데도 그 삶 이후. 내 긴 삶의 도돌이표를 너에게 말한 그 삶 이후부터 너와 만난 모든 인생이 특별해졌다. 이전에도 특별했지만, 이후로 더 특별해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말해주지 않을 터다. 너는 지금처럼, 많은 것을 짐작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아주는 지금의 아라시야마 쥰이니까. 

 

"…힘들었겠네."
"그럴 때도 있었지."
"늘 같은 삶을 살았던 거야?"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니었던 때도 있었고. 엄청 많아."

  그래도 대부분 미카도 시에 있었지. 보더에 있었어. 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진에게 가치 있는 많은 것이 여기 있었으니, 진은 중력에 이끌리는 위성처럼 미카도 시로 돌아왔다. 기억도 감정도 이곳에 묶여 있으니 몸만 떠나도 보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떠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 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아라시야마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라시야마는 늘, 깊게 생각이 잠기면 녹색 눈동자가 허공을 노려보며 몽롱하게 색이 번진다. 진은 그 색을 좋아했다. 

 

  이번 삶의 아라시야마 쥰은 친구다. 진 유이치는 수많은 아라시야마를 사랑했지만 늘 삶을 엄격히 구분하려고 애썼다. 그는 같은 사람이고 자신도 같은 사람이지만 저번 삶에서 사랑했다고 하여 지금 삶마저 사랑하는 게 옳은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명료한 이성조차 사랑과 인내로 갉아내며 버티고 있는 존재에게 가혹한 말이었으나 진은 늘 그렇듯 결벽적인 구석이 있었다. 고쳐지지 않는 천성이었다. 하지만 아주 예전에 시작했던 이 고민은 또 긴 시간을 소비한 뒤에 이미 답이 나온 난제였다. 

 

"그럼 진은 미카도 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 봤겠네."
"그렇지."
"보더의 사람들도 전부 알아?"
"아니. 의외로 전부를 알게 되는 일은 없더라."
"그렇다면 내일은 나랑 같이 보더에서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들어오는 모르는 사람을 알러 가자."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새로 인연을 만들어보는 거야. 아라시야마가 그리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긴 시간이 쌓여있더라도,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아래쪽 모래들은 다 퍼지고 흐려졌더라도 그 위에 새로운 무언가를 쌓는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잖아. 그리 말하며 손을 뻗는 아라시야마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 이미 답이 나온 난제였다. 진 유이치의 고백을 들은 아라시야마 쥰은 늘 이렇게 새로운 '처음' 을 진에게 선사했다. 어느 시기여도, 어느 관계여도 상관없었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어린 아이여도, 삼십 대여도, 죽기 직전이어도. 친구여도, 이미 연인이었더라도 아라시야마는 늘 새로운 일을 진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런 아라시야마에게 진은 가장 새로운 일을 겪고는 했다. 다시 한 번 너에게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삶을 곧 사랑으로 꾸려나가는 모든 기적의 시작이 또 하나 쌓이는 특별한 경험을. 

 

  진이 어설프게 웃으며 아라시야마가 뻗은 손을 잡았다. 응, 그러자. 

  그리고 다시 진 유이치는 천만 한 번째 사랑을 아라시야마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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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

[진아라] 북극성

2021. 2. 18. 00:38 from WORLD TRIGGER/NOVEL

 

  네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네가 가장 찬란했을 때. 너는 나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다. 

 

  병이었다. 진은 미래를 보는 특별한 사이드 이펙트의 소유자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아라시야마가 쓰러지는 미래를 본 순간 이미 늦어 있었다. 젊고 건강했는데. 그 말은 이미 떠난 사람을 추억하는 말로 남아버렸다. 보더에서도 손에 꼽히던 우수한 병사는 네이버의 침략이 아니라 작은 바이러스의 침략으로 죽었다. 사람은 참 보잘 것 없는 이유로 죽는다. 목에 사탕이 걸려도 죽고, 떡을 잘못 삼켜도 죽고, 실내와 화장실의 온도 차이로도 죽는다.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병에 걸렸다는 사망원인은 정말 어처구니 없을만큼 흔한 사망원인이었다. 쓰러지는 미래가 보여서 며칠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간 정도로는 아라시야마를 살릴 수 없었다. 며칠 더 빨리 그를 병원에 가둬두었을 뿐이었다. 

 

  진 유이치는 가끔 그 날의 꿈을 꾼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꿈. 턱이 한결 가냘프게 말라있던 아라시야마가 흰 침대 위에 누워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네 얼굴 위로 네가 죽는 미래가 겹쳐지듯 어른거려서, 진은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었다. 아니면 멀리멀리, 죽음도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으로 아라시야마를 품에 안고 도망치고 싶었다.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서, 진은 창백한 얼굴로 아라시야마 옆에 얌전히 앉았다. 아라시야마는 제 연인의 시퍼런 낯에 도리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만큼 상냥했다. 죽어가고 있는 건 저 자신이었으면서. 

 

  아라시야마는 진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내가 살 수 있을까? 진은 부정했다. 조금의 확률도 보이지 않았다. 단 1%의 확률이라도 있었으면, 진은 희망에 말라버렸겠지만 아라시야마는 분명 그거로 충분하다며 웃었을텐데. 허나 눈에 시뻘겋게 핏대가 설 만큼 미래를 헤집어도 없었다. 조각조차도, 계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답을 기다리는 아라시야마 앞에서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 작은 몸짓조차 괴로웠다. 아라시야마는 그런 걸 묻는 게 무척이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진의 대답을 들을 아라시야마는 잠깐 병원의 천장을 응시했다. 같은 무늬의 흰 색 타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천장이 아라시야마에 무슨 답을 주었는지 진은 모른다. 다만 아라시야마는 평온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나한테 트리거를 빌려 줄 수 없을까? 진은 그 부탁조차 거절했다. 그래, 알았어. 아라시야마는 무척 담백하게 거절을 납득했다. 그는 언제나 진의 선택을 믿었으니, 이번에도 그랬던 걸까.

 

  진은 천천히 그 날의 일을 곱씹었다. 태엽을 감으면 노래를 들려주는 오르골처럼, 진은 늘 제 머리에 태엽을 감고 똑같은 풍경을 머리 속에 천천히 그려냈다. 그 때 그 선택이 옳았을까, 틀렸을까, 대안은 없었을까, 있었다면 그 대안은 옳았을까, 아닐까. 진은 늘 자신의 선택을 고민했고 그만큼 이미 결정한 일을 되돌아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순간 그 둘뿐이었던 병실에서 있던 모든 일은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제 사랑과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었으니 회상한다고 하여 누가 손가락질 할 수는 없으리라. 진 유이치는 턱을 괴고 몽롱한 바다색 눈동자로 허공을 멍하니 맴돌았다. 

 

  생존확률이 제로라는 사실을 알고 난 네가 블랙 트리거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알았어, 아라시야마.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트리온은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부하들에게,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 무언가 남겨주고 싶어한다는 것도 눈을 보고 바로 알았어. 익숙한 눈이었어. 몇 번이고 봤으니까. 네 눈이 그렇게 빛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트리거를 줬더라면 성공률도 꽤 높았을 거야. 그 때 보였던 미래로 따지자면, 8할 쯤 되는 확률로 성공했을텐데. 그 정도면 미래시 중에서는 거의 이뤄지리라 말할 확률이야, 높은 확률이거든. 

 

  하지만 아라시야마, 만약 그 미래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너를 강탈하게 되는 거야. 네가 사랑했던 가족들에게서, 네가 사랑했던 부하들에게서 전부. 블랙트리거가 되어버린다는 건 결국 네 시신도, 그리하여 네가 여기 잠들어있다고 기도할 수 있을만한 마음의 위안도 가족에게서 빼앗아 버리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들도, 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전부. 그 순간이 욕심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네 가족들이잖아. 네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들한테서. 그리고 똑같이 너를 사랑해주고, 그리하여 너를 이렇게 멋지게 키워 준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미 너를 받아갔는데. 그러니 그 권리마저 훔쳐갈 수는 없었어.

  게다가 블랙트리거 아라시야마를 내가 사적인 욕심으로 절대 놓지 못하는 미래도 보였거든. 네가 나를 적합자로 골라 버려서 그래. 아니, 뭐. 그래. 너니까 적합자는 분명 상당히 많이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더 강했으니까 나는 너를 놓지 않아. 후우진조차 놓는데 정말 오래 걸렸어. 너는 얼마나 더 붙잡고 있게 될까 나도 몰라. 그 이후의 미래까지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블랙 트리거가 된 너는 분명 뛰어난 트리거였겠지. 어쩌면 너를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 그랬겠지. 블랙 트리거가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어쩌면, 너에게 트리거를 주고 네 마지막 말을 듣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전해주고 유서를 쥐여주며 마지막으로 너에게 트리거를 쥐여주는 게 옳았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어떻게 그러겠어? 그게 가장 옳은 길이고 현명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네가 죽을 걸 알고 있는데. 단 며칠이라도 네가 더 살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진이 몇 번이고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라시야마의 두 번의 물음에 모두 부정의 대답을 내놓은 진은 마지막 부탁만큼은 들어주고 싶었다. 아라시야마는 손을 뻗었고, 진은 기꺼이 그걸 붙잡았다. 맞잡는 손에는 아직 조금 힘이 들어 있었다. 아라시야마는 구명줄이라도 붙잡는 것처럼 간절하게 저를 잡아오는 연인을 보며,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정답일지, 아라시야마도 분명 고르지 못했던 게 뻔했다. 진도 그랬다. 방금 너에게 가망이 없노라 말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진은 아라시야마의 손만 잡고 있었다. 따뜻하고, 여전히 단단한. 

 

'있지, 진.'

'응.'

'외로워진다면'

 

  아라시야마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생명의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사람은 늘 진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마치 아라시야마가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찰나, 진은 예언을 받아듣는 사제가 되어 제 신이 읊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의 곁에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응.'

'타마코마에도, 본부에도. 보더는 늘 진의 편이야.'

'아닐 때도 있는걸.'

'다들 솔직하지 못할 뿐이야.'

 

  다들, 진의 편이야. 아라시야마는 그렇게 속삭여줬으나 진은 속으로 입을 비죽였다. 그럼 솔직하게 늘 내 편을 들어주는 아라시야마가 곁에 있어주면 되잖아. 울면서 매달리고 싶었다. 바로 저 자신이 아라시야마에게 마지막으로 가망이 없다는 말 따위를 지껄였으면서도, 인간은 누구나 절박한 마음으로 가망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마련이었다. 진은 꼭 그런 마음으로 아라시야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네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응.'

'하늘을 봐, 진.'

 

  아라시야마가 다정하게 진의 눈을 응시했다. 하늘을 닮은 제 연인의 눈을.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는 그 슬픈 눈을 아라시야마는 신뢰를 담아 응시했다. 

 

'내가 빛나고 있을 거야.'

'아라시야마,'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진.'

 

  너는 다섯 개의 별 중 하나인 아라시야마 쥰이니까,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하늘로 올라가면 다른 별들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괜찮아지더라도, 큰 별 하나는 이제 될 수 없잖아.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진은 어떠한 부정 한 마디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라시야마의 손을 끌어당겨 제 뺨에 대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말로 아라시야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라시야마도 그랬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아라시야마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진은 수면제를 먹고 몇날 며칠을 강제로 잠들었다. 울면서 코나미가 진의 뺨을 때리며 억지로 깨우는 순간, 진은 그 통증이 아라시야마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알았다. 네가 없는 세계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뺨을 얼얼하게 만들고 가슴 어딘가를 잘라내 버리며 시작되었다. 

 

 

 

 

 

"아라시야마."

 

  겨울 공기는 차가웠다. 진은 짧게 입김을 내뱉었다. 희게 흩어지는 공기 사이로 진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 없는 어두운 하늘을. 

 

"거짓말쟁이."

 

  네가 없는 하늘에 별 같은 건 보이지 않아. 진짜로 보이지 않는 건지, 내 눈이 흐려져 보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하지만 네가 없어, 아라시야마.

  하늘에도 땅에도 내 곁에도.

  어디에도 네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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