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는 자동 시스템을 쓴다. 트리거 인식으로 열리거나 대실 안쪽의 사람이 열어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소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열리는 문이라는 소리다. 허나 트리거 인증 자동 허가를 받고 혼자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며, 대실 안에 있던 대원들은 문이 벌컥 열리는 환청을 다 함께 공유했다. 잔뜩 토라진 얼굴의 진 유이치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아라시야마 부대실로 찾아왔다. 이미 몇 번이고 똑같은 일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아라시야마 부대원들은 익숙하게 시선을 공유했다. 저 표정은 어필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일지 모르겠다만, 저 표정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진이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며 아야츠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를 가지런히 모아 한 쪽으로 치웠다. 다용도실에 들어선 키토라와 토키에다가 마실 것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왔고, 사토리가 소파 건너편에 나란히 놓인 의자를 끌어 옆쪽으로 가져왔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아라시야마 대원들의 연계를 보며 진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 건너편에 나란히 놓여진 의자 중 하나를 끌어 앉았다. 아야츠지와 사토리는 소파에 앉았고, 차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키토라도 아야츠지의 옆에 앉았다. 세 명이 앉아 소파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차자 토키에다는 사토리가 끌어줬던 의자에 앉았다. 아라시야마 부대 네 명과 함께 테이블에 동석한 진은 대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라시야마가 자리를 비웠으면서 동시에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이 그다지 바쁘지 않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찾아온 건 진의 사이드이펙트 덕분일 터. 간단히 말해서 아라시야마 몰래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대원들은 모두 경험을 통해 진이 어떤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진은 늘 제 자랑스러운 연인에게 심장이 멎을 뻔 한 경험을 하면, 그걸 대원들에게 불평하러 오고는 했으니까. 이러라고 진의 트리거에 아라시야마 부대실 출입 인증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해 준 건 아닌데 말이다. 뭐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남이 들었다가는 어처구니 없어 호흡도 잊을 정도의 한심한 언쟁일 터다. 허나 그들은 모두 장본인. 나름대로 싸움을 앞둔 마음가짐으로 그들은 진중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상대에게 질 수는 없었다.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은 홍보 부대라는 특성까지 덧붙여져 사람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사교를 이끄는 데에 특출난 재주가 있는 사람들 뿐이었지만, 다들 부러 말을 꺼내지 않고 완벽하게 웃는 얼굴로 진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진이 들어온 뒤로 대실에 울렸던 소리는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차와 간식을 내온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고스란히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아야츠지와 사토리, 다정하게 무표정한 토키에다, 그리고 뾰로통한 표정의 키토라. 평소라면 부드럽게 말을 걸으며 대화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줄 상냥한 사람들이 말한마디 없이 압박하는 공기는 무시무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진작에 기가 죽어버렸을 분위기였으나 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하고 이겨 온 숙련자였다.
"어제 말이야."
그리고 운을 떼는 사람은 늘 진 유이치였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그였고, 컴플레인을 걸러 온 사람도 그였으니까. 그리고 꿋꿋하게 그 컴플레인에 항의할 사람들은 아라시야마 대원들이었고. 이기는 사람은 늘 달랐지만.
"아라시야마랑 같이 있었는데."
"그렇군요."
"아라시야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진 유이치와 아라시야마 쥰은 연애하는 사이였다. 둘의 관계에 연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은 건 정확히 6개월 전. 시작은 우당탕탕 차마 말로 적기에 부끄러운 둘만의 사건사고였으나 작은 눈덩이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눈사태가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사랑싸움은 보더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대형 사고가 되었다. 그걸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연관 있는 대원들이 이리저리 뛰었던 사건들은 차마 보더 밖에 내보내지 못할 쪽팔린 사건이었다.
작게는 대원 두 명의 감정싸움이라지만 크게 보면 미래시 사이드이펙트 보유자이자 보더의 기둥 중 한 명과 보더의 홍보부대 대장이자 시노다 파 최고의 병사의 감정적 갈등이었다. 타마코마 지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다른 두 파벌과도 온건한 관계를 취하는 진이나, 시노다 파의 필두나 다름없으나 키도 파인 네츠키 씨의 총애를 받는 아라시야마 둘 다 놓치기 힘든 인재였다. 무엇보다 둘의 감정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이게 바로 보더가 얻을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이리라.
어처구니 없는 동갑내기 두 사람의 사랑싸움에 더 크게 휘말리기 전에 적당히 휘말린 죄 없는 사람들은 그 선에서 싸움을 무사히 끝내야만 했다. 그걸 위해 몇 사람이 개고생을 하고 낯부끄러운 말을 들어줬어야 하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으나 카자마가 진저리를 치고 타치카와가 질린 표정을 지었으며 카키자키가 얼굴을 쓸어내리고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 모두가 한숨을 푹 쉬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끝내 라운지 한가운데에서 사과보다도 벌겋게 달아오른 진 유이치가 키쿠치하라도 들릴까 말까 긴가민가한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좋아합니다 고백을 하게 만든 대사건. 그리고 그 말을 용케 들어낸 아라시야마가 태양보다도 찬란하게 웃는 얼굴로, 모든 라운지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성량으로 나도 좋아한다 외치며 진을 끌어안은 바로 그 사건. 아라시야마의 목소리와 미소는 사건이 무사히 끝났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특히 A급 B급 대원들─은 남의 고백을 듣고 그렇게 진이 빠진 건 처음이었으리라.
여하튼 두 사람은 바로 그렇게 모두에게 알리며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낯부끄러울만한 연애를 했다. 둘 다 공사는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이었으나 두 사람은 공적인 자리도 사적인 자리도 보더인 사람들이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를 누군가들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걸 본 적도 있었고, 나란히 기대 앉아 있는 것도 본 적 있었으며, 귀에 정담을 속삭이는 것도 본 적 있을 터다. 그보다 심한 건 본 적 없지만, 학창시절의 청춘을 보더에 갈아넣고 있는, 분홍색 부족한 대원들에게 그것만으로도 지나친 자극이었다.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시선조차도 이미 충분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낯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가끔 타마코마 지부나 미디어 대책실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오니 확실했다. 여하튼 두 사람은 그렇게 화려하게 연애 데뷔를 했다. 중요한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열고 들어온 진은 엄한 눈으로 입을 열어 상세하게 어제 있던 일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출입제한구역 안에 포함된 놀이터 그네에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홍보 부대 대장은 이 미카도 시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한 구역 바깥으로 나가면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보더 내부에서 하기 조금 더 부끄러운 연애는 대체적으로 제한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아라시야마의 방은 그의 가족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진의 방은 타마코마 내부에 있어서 자꾸 지부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을 써 줘 민망했으니 별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 넓은 제한구역에는 당연히 보더의 카메라가 들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었고 진과 아라시야마는 모두 그곳을 훤히 꿰고 있었으니 연애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냥 진의 사이드이펙트로 오늘 네이버가 등장하지 않는 방향이 어디인지 찍어 그곳에서 만나면 됐다.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올라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어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 서로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정하게 웃는 모습도 충분히 보였다. 저번에 만나고 이번에 만나기까지 그 사이에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두런두런 풀어내다가, 문득 그와 연관된 과거의 이야기를 건져내서 줄줄 대화하는 목소리는 조곤조곤 부드러웠다. 마지막으로 상당히 먼 곳에서 총소리와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밤에는 가까운 연인의 목소리만큼이나 먼 곳의 네이버를 잡는 소리도 참 잘 들렸다. 로맨틱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환경이었으나 진은 충분히 만족했다. 아라시야마가 있고 저 자신이 있고 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평화롭다.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아라시야마는 언제나 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는 그 이상 바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 대화하던 도중, 순간적으로 어두운 놀이터를 밝게 만들 정도로 환하게 웃은 청년이 그네에서 일어나 진의 앞에 다가왔다. 그네가 앞뒤로 움직이며 삐걱삐걱 작게 나던 소리가 뚝 그쳤다. 따라 일어서지 않고 여전히 그네에 앉은 채로, 진은 어렵잖게 이어질 미래를 봤다. 다가온 아라시야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신이 고개를 들면 아라시야마가 이마에 키스해주는 미래. 행복한 미래였기에 부끄러운 기색을 참아낸 진은 기꺼이 아라시야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약간의 기대와 행복을 담아서.
그리고 아라시야마는 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마가 아니었다. 진과 눈이 마주친 아라시야마는 작게 웃더니, 허리를 굽히고 눈을 감아 진에게 도장을 눌러 찍었다. 가볍게 소리가 날 만큼의 키스였다. 쪽, 그리고 다시 한 번 쪽. 갑작스러운 키스에 멀뚱히 눈을 뜨고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진은 얼이 빠졌다. 부드럽게 미소짓느라 눈이 예쁜 반달 모양으로 휘더니, 곧 얼굴이 한결 가까이 다가오면서 녹빛 눈은 눈꺼풀 밑으로 숨어버리고 긴 속눈썹과 하얀 이마가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입술에 쪽. 살짝 떨어져서 눈을 뜨고 시선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다시 웃더니, 눈을 뜨고서 쪽.
"아, 아라시야마......!"
두 번의 키스를 머릿속으로 몇 번 굴려보며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진을 보며 아라시야마가 키득키득 웃었다. 어두워서 둘 다 뺨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따위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최소한 제 뺨의 열기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밤공기는 꽤 차가웠는데도, 손난로라도 된 것 마냥 따뜻했다.
"그냥 이마에 키스하는 거였잖아!"
"그럴 생각으로 일어난 거기는 했는데."
"왜 갑자기......!"
"싫었어?"
"그건 아니지만!"
이 세상 그 누가 너한테 키스를 받았는데 싫다고 생각하겠어? 자신은 공주님이 아니지만 아라시야마는 그림같은 왕자님인데. 곤란하지만 좋아서 곤란한 거였다. 한 손으로 입가를 몇 번이고 쓸어내린 진이 속으로 열심히 심호흡했다. 아라시야마는 가끔 이렇게 심장에 나빴다. 아니 좀 자주. 하지만 벌써 연애도 6개월 째. 이 정도의 두근거림은 거뜬히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진은 농담처럼 말했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었어?"
"진이 나를 올려다보는데, 어쩐지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윽, 그건......"
"그래서 그냥 키스하고 싶었어."
아라시야마가 이번에는 무릎을 굽히고 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내 그네에 앉아있던 진의 시야가 아라시야마를 따라 내려왔다. 진의 허벅지에 팔을 얹고 그 위에 제 턱을 얹어서 진을 올려다보는 아라시야마는 사랑스러웠다. 다리에 닿아오는 온기도 좋았다. 젠장, 두근거림에 내성이 생길만하면 아라시야마는 이렇게 엄청난 공격을 해댄다. 과연 아라시야마 대장. 화력전에 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남자였다. 진은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꺼냈다.
"실력파 엘리트는 아라시야마 대장을 유혹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래?"
"그래그래."
"하지만 나는 지금 유혹하고 있는 거야."
뭐. 진의 호흡이 뚝 멈췄다. 크게 벌어진 푸른 눈동자가 멍하니 제 연인을 담았다. 영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잠시 피했던 아라시야마는, 곧 눈썹을 내리며 조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넘어와 줄래?"
멀리서 들리는 네이버를 포격하는 소리와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사실 진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미 전부 네 거인데. 지금 여기서 더 넘겨줄 것도 없다고. 보더에게 바친 몫을 제외하면 진 유이치는 흔적도 없이 아라시야마 쥰에게 속해버렸는데. 방금 떨어진 심장이 네 쪽으로 굴러간 것 같은데 그거라도 가질래?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빴다. 심장이 너무 떨려서 당장 실려가도 될 것 같았다. 진 유이치는 당연히 그 유혹에 넘어갔다. 거부할 수 있는 힘도 자격도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네에...... 그렇군요......"
어느 정도 생략과 축소를 섞어 말해준 에피소드를 들은 아라시야마 부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키토라의 시선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대략 10도는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은 꿋꿋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일이 있을 때 이런 이유로 이 부대실에 찾아왔다.
"우리 아라시야마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갈수록 심장에 나빠! 이러다 진 씨가 죽겠어! AS 요청합니다, 아라시야마 부대!"
"사토리 이의 있습니다! 우리 대장에게 그런 걸 가르친 건 진 씨 아닌가요! 이쪽이야말로 저희 소중한 아라시야마 씨에게 뭘 가르치신 거에요!"
"진도 이의 있어! 그런 거 안 가르쳤어! 아라시야마가 어디선가 배워 온 거라고!"
"키토라도 이의 있어요! 저희 아라시야마 씨가 진 씨 때문에 배운 거잖아요!"
사토리와 키토라, 진이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했다. 토키에다와 아야츠지는 한 발 떨어진 심정으로 차를 마시거나 과자를 먹었다. 진심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진은 거진 장난을 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아라시야마 부대의 귀하디 귀한 대장이다. 아라시야마와 진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대원들이 일정 부분 아라시야마와 공유하던 시간을 양보해준 것도 알았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하고 무척 충족하게 행복하다고,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오는 거겠지. 연인의 대원들과 보다 친해지고 싶다는 희망사항도 있었을 것이고.
뭐어어, 아라시야마 에프터서비스를 요청하는 것도 아예 빈말은 아닐 것이다. 저들의 대장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탓에 죽을 것 같다고 투정을 부리는 진은 진심이긴 할테니까. 가장 처음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열고 중얼중얼 아라시야마를 대체 어떻게 키운 것이냐고 물어보는 진은 참 절박해 보였었다. 저희들이 키운 건 아닙니다만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줄 정도였으니까. 그 뒤로 진은 종종 아라시야마 부대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진이 이겨서 대원들이 아라시야마 씨에게 그 부분은 말해두겠다며 두 손 들고 사과한 적도 있었고, 대원들이 이겨서 진이 끄응 앓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었다. 이제까지 전적은 4승 5패.
하지만 귀하디 귀한 대장을 보더 전체까지 끌어들여 모셔가지 않았던가? 둘의 사랑싸움에 가장 진하게 휘말렸던 사람들 중 하나가 여기 있는 아라시야마 대원들이다. 둘을 무사히 엮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진이 종종 찾아오는 데에 이 이유도 있을 터다. 고생해서 엮어둔 보람이 있도록 사귀고 있다고 어필해주는 거겠지. 진도 귀한 사람이다만 여기는 아라시야마 부대. 당연히 아라시야마가 더 귀한 곳이다. 진의 편이 되어 줄 아라시야마조차 없다. 그리고 승리보다 패배 카운트가 높은 것도 마땅찮으니, 토키에다와 아야츠지는 이제 절대적인 승리의 주문을 써야겠다는 시선을 교환했다.
"진 씨."
"응?"
토키에다가 부르는 것과 아야츠지가 찻잔을 내려놓는 건 거의 동시였다. 미래라도 본 것인지, 진이 조금 불안한 듯 아라시야마 부대의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 씨, 벌써 그 사건 이후로 6개월 쯤 됐지요?"
"그, 렇지."
"6개월이에요."
토키에다가 날짜를 강조하자 사토리와 키토라가 히죽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두 사람은 대번 이해했다. 진 홀로 이해하지 못해 눈만 멀뚱히 껌벅였다.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는 실력파 엘리트에게, 사토리가 척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족한 설명을 보충하듯 명랑하게 외쳤다.
"아라시야마 부대 에프터 서비스 품질보증 기간은 끝났습니다, 진 씨~! 앞으로는 진 씨가 열심히 해나가 주세요!"
"뭣!"
"저희 대장은 빨리 배우고 잘 배우는 타입이니까요. 진 씨에게 달려 있어요."
"화이팅! 저희 대장이 매력적인 건 뭐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라시야마 씨를 데려가셨으니 당연히 감수해야죠."
"쓰러질 것 같으면 전화하세요! 토리마루에게 연락해 드릴게요~."
눈을 동그랗게 뜬 진을 응원하며 토키에다, 아야츠지, 키토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사토리가 말했다. 제각각 승리의 미소를 짓는 아라시야마 대원들을 앞에 두고, 진이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아라시야마 부대. 아라시야마가 키워낸 대원들 다웠다. 이제 저들이 끼어들지 않아도 두 사람이 잘 사귀리라 믿고 있다는 의지표현 앞에 무슨 말을 할까. 이제까지 저보다 나이 어린 대원들에게 신세졌다며 고개밖에 숙일 게 없잖은가. 지는 싸움은 잘 하지 않는 승부욕 강한 진 유이치는 완전히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아라시야마 부대 대원들에게 완전히 졌다.
대신 진은 웃고 있는 대원들에게 모이라며 손만 조금 휘저었다. 조금 뒤 제 사랑하는 연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진과 대원들을 확인하고는, 자신만 따돌리고 다섯이서 놀았느냐며 서운한 듯 입을 비죽이는 미래가 보였으니, 이제 그걸 무사히 넘길 방법이나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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