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키는 초조한 심정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시간은 거의 다 되어갔지만,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유독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마 약속한 사람 탓이 아닐까. 미유키는 어울리지도 않게 나름 차려입은 옷차림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가, 벽에 등을 기댔다. 이상하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이었지만 착각이려니 싶었다. 등에 닿은 벽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머리가 좀 식는 기분이었다. 미유키는 약속이 잡힌 순간부터 이상한 제 태도를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도 알고 있었기에 좀 낯부끄럽기도 했다.
지난 겨울의 졸업식날, 유독 눈에 밟히던 선배가 있었다. 같은 야구부에 투수. 거기에 에이스 넘버를 달고 있던 사람. 그렇기에 포수였던 미유키가 선배들 중 가장 많은 대화를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직접 세 본 것이 아니니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만. 아무튼 미유키와는 달리 사교성 좋은 성격에, 밝고 씩씩하고. 후배인 미유키의 말조차도 잘 새겨들어주는 선배였다. 가끔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는 했었다만, 말 그대로 가끔이었으니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고.
좋은 선배였고, 미유키도 그 성격으로 따지면 꽤나 잘 따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은 있었다. 선배가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던 내내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사랑을 자각한 때가 바로 선배의 졸업식 날.
아니, 자각이라는 말을 조금 틀린 말일지도 몰랐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래, 새삼 반한 것에 가까웠다. 아니면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억눌러놓았던 감정이 터져나온 것일지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반하게 된 것만큼은 확실했다. 미유키는 2학년이었고, 그 무렵 3학년으로 올라갈 시기였으니 졸업하는 선배들을 보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만 정말이지 유독 눈에 밟혔고, 그랬기에 계속 곁에 있었고, 그 웃는 얼굴이. 정말이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래, 내년에도 코시엔을 차지하라 등을 두드려주는 그 웃는 얼굴에 결국 반해버린 것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졸업한 선배에게 반했다는 것은 험난한 짝사랑의 시작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나기는 커녕 메일을 주고받는 것조차 힘들었다. 미유키는 주장이었고, 주전 포수이기까지도 했다. 미유키 뿐만 아니라 그쪽 역시도 새로운 사회에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쁘기까지 했다. 그마나 합당한 이유로 메일을 보낼 수 있을 순간은 시합에서 이겼을 때였다. 그 때 한두 통 주고받는 메일마저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은 두 번 있으려나. 미유키는 비어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어쩌다 오프날이 겹친 것을 알게 되자 그 쪽에서 먼저 살 것이 있으니 나오지 않겠느냐 제안해주었고, 미유키는 속으로 감사하며 그 제안을 받았다. 혼자 설레발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미유키는 저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 특유의 큰 목소리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는데도 앳된 얼굴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미유키는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그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