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나토 료스케는 강한 남자다. 세이도 야구부 그 누구도 이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키는 크지 않아도 배짱이며 담력은 어지간한 녀석들을 모조리 걷어찰 정도였다. 1, 2학년들에게 제일 두려운 선배이자, 그만큼 존경받는 선배인 료스케는 눈치 역시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예리한 눈매에 걸린 사람은 세이도 야구부의 새 주장이었다.
가을대회를 끝마치고 3학년들은 정말 졸업만 남았을 시기. 료스케는 특유의 웃는상 그대로 미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전히 관찰의 의미를 담은 시선은 그 주인이 료스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포의 시선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천하의 미유키라도 신경쓰일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몇 번이고 머뭇거리던 미유키는 결국 물어볼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할 말 있으신가요?”
“혹시 요즘 연애해?”
미유키는 지금 이 순간 뭔가 먹거나 마시고 있었다면 그대로 추한 꼴을 보였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지. 숨을 들이키거나 어깨 움찔하지 않았겠지? 미유키는 정말 진심으로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찰나의 순간 표정에 드러난 당혹스러움은 숨기지 못했다. 료스케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상대는 사와무라?”
“......”
미유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알고 묻는 걸까, 떠보는 걸까?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무서운 점이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미유키의 모습에서 료스케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모조리 뜯어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이미 대답은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유키는 새삼스럽게 료스케가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선배와 계속 콤비를 짜온 제 악우를 다시 보았다. 어떻게 잘 해냈구나, 너.
자신을 올려다보는 료스케를 보며, 미유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알고 계셨나요?”
“아니? 그냥 찔러봤어.”
요즘 분위기가 기분나쁘게 물렁하길래. 진짜 연애중이었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은 미형의 얼굴과 겹쳐져 꽤나 화사했지만, 미유키의 눈에는 악마의 미소나 다를 바 없었다. 진짜 심술궂다. 성격 나쁘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도 다른 애들한테 이래 보이나? 새삼 감탄하며─동시에 스스로의 행동을 성찰하며─미유키는 눈을 깜박였다. 이 상황에는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런 미유키를 비웃으며 료스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볼일이 끝났으니 더 이상 일 없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더 물렁해지면 안될것 같아서.”
“...네에, 감사합니다...”
이런 것에서 감사해야 되는 게 맞는 걸까. 선배로써 배려해주신거니까 감사해야 하는 거겠지? 미유키는 속으로 고민하면서도 입으로는 착실하게 감사인사를 내보냈다. 후배로써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준 본능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료스케를 적당히 배웅한 미유키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들킨 상대가 상대인지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들켰다는 생각이 드니 곤란한 것은 사실이었다. 료스케가 입이 싼 성격도 아니니 일단은 다행이었지만...
인상을 찡그리고 고민하는 사이에 문득 소음이 가까워졌다. 문이 벌컥 열리자 들어오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사와무라였다. 고민하고 있는 제 심정과는 전혀 관계도 없다는 듯이 상쾌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있자니, 고민하는 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미유키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손짓했다. 사와무라, 이리 와 봐.
“뭠까? 할 말 있슴까?”
“있었는데, 됐다...”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손을 맞잡았다. 투수 특유의 손을 붙잡자 곧장 손가락 사이로 깍지껴 잡아오는 온기가 있었다. 시선을 드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와무라의 모습이 보였다. 손은 단단히 맞잡고 있으면서도, 온 몸으로 의아함을 표출해내는 제 연인을 보며, 미유키는 그냥 웃어줄 뿐이었다. 그래,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