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마와 신스케가 짧게 눈을 맞췄다. 즐거움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한 번 미소지은 두 사람이 힐긋 시선을 넘겼다. 그 시선의 끝이 향한 사람은 페이였다. 애써 평소의 모습을 위장하고는 있었으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은근하게 보여서 보는 사람이 미소짓게 될 정도였다. 저렇게 티낼거면 그냥 행동하는 게 좋을 텐데. 텐마가 웃으며 그리 생각했다. 그래도 힘든 게 당연하겠지. 신도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커룸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면서도 페이는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듯 초조해하고 있었다. 엄지손가락 끝을 자근자근 씹는 페이를 보며 츠루기가 픽 웃었다.
“있지, 페이!”
“응!? 아, 응. 왜, 텐마?”
가벼운 부름에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는 페이를 보며 텐마가 머쓱하게 웃었다.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페이의 눈과 귀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렸던 모양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텐마가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페이가 내내 노려보고 있던 문 방향이었다. 동시에 키나코가 약 5분 정도 전에 나간 방향이기도 했다. 그 손짓에 페이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가 보는 게 좋지 않아?”
“아니... 별로...”
가 봤자 할 말도 별로 없고... 말을 우물거리며 고개숙이는 페이를 보며 텐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줘도 페이가 해주는 말이라면 키나코는 뭐든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그럴 터이지만,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것 같기에 텐마는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대신 텐마는 열심히 등을 떠밀었다.
“만나면 할 말이 생길거야! 괜찮아!”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야!”
걱정 마! 그리 말하며 활짝 웃는 텐마를 보며 페이가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작게 웃었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온화한 지지를 마주보며 페이가 작게 얼굴을 붉혔다. 라커룸에 있는 모두가 결국 페이의 내심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굉장히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감사하기도 했다. 머뭇거리던 발걸음이 결국 문 너머에 섰다. 정말 괜찮을까? 마지막으로 묻듯이 돌아보는 시선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페이! 그 말에 페이가 몸을 돌렸다. 뛰기 시작했다. 페이의뒷모습을 보며 모두가 시선을 맞췄다. 마주보고 피식 웃었다.
* * *
이제 어쩌면 좋지? 페이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표백됬다. 사실 따라오고 싶었고, 그래서 모두의 떠밀림에 감사하며 따라 나오긴 했지만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부터 깜깜했다. 뭐, 뭘 말해야 하지? 날 낳고 죽을 거라는 미래를 받은 내 또래의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정답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멱살을 움켜쥐고 당장 말하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딱 그만큼 절박했다.
훌륭한 축구선수의 다리는 금방 키나코의 뒷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게 뛸 수 있었다. 키나코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걸음걸이도 걸음소리도 늦추며 소년이 몇 번이고 자근자근 제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초조함에 잠식되어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를 구원한 것은 어머니였다. 소녀가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페이! 따라온기가? 말을 하제~!”
“아니... 그.”
키나코의 얼굴이 꽃이 피듯 환해졌다. 그에 비해 한층 어두운 얼굴을 하게 된 페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더 할 말도 찾기 힘들었다. 입만 다물고 있는 페이였지만 키나코는 그마저도 달가운 듯 페이를 이끌었다. 가볍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나코를 보며 페이가 심호흡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반드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니,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키나코.”
“응?”
시작부터 망했다. 이렇게 부르면 안 되는데. 페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엄마라고, 불렀어야만 했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페이를 보며 키나코가 그의 손등을 작게 다독였다. 괜찮으니께. 그리 말해주는 키나코의 모습에 페이가 울상이 되어 소녀를 보았다. 입술이 파르라니 떨렸다.
“있지. 오늘... 어머니의 날...”
“응응.”
“그러니까...”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페이를 보며 키나코는 마냥 웃기만 했다. 기쁜 듯, 행복한 듯.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헤아릴 수 없는 애정이 담뿍 담긴 그 얼굴을 보며 페이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반드시 전해주고 싶었던 작은 말.
“고마워요...”
엄마. 마지막 말은 채 완성되지 못하고 벙긋거리기만 했지만 키나코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렇기에 기쁘게 페이를 끌어안고 환히 웃었다.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키나코를 보며 페이가 그제야 안심하여 옅게 웃었다. 손을 뻗어 자신도 끌어안았다. 아직 그보다 작은 어머니였다. 누구보다도 감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