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는 족속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였다. 루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흰 모자를 대충 움켜쥐어 깊게 눌러쓴 소년이 방금 전까지 붙잡고 있던 악보를 길게 찢었다. 소리가 길게 갈라졌다. 듣기 싫은 소리에 표정이 찌푸려졌지만, 그 안에 미미한 만족감 역시도 섞여들어가 있었다. 악보 위 얼룩덜룩하게 묻은 잉크자국이며 음표들을 멀리 치워버리며 루비가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종이에 덮여있던 맨바닥에 몸을 뉘이며 소년이 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 불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천장이 고스란히 보였다. 오늘처럼 가끔 이유없는 감정이 치솟는 날에는 천장을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도심 한가운데이기에 썩 깨끗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흐리멍텅하고 수 적은 별이나마 볼 수 있도록 천장을 뚫어놓고 싶은 충동. 물론 실제로 행했다가는 당장에 달려와서 버럭 화를 낼 소녀가 있었기에 한 번도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그래, 나의 별. 나의 사파이어. 어여쁜 내 아가씨. 소년이 문득 예쁘게 미소지었다.
소년은 별을 좋아했다. 우주도 좋아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그곳에 홀로 부유하고 있다는 감각이 찾아오고는 했다. 그리고 그 부유감 아래에서 소년은 곡을 쓰고는 했다. 혹자는 그것을 소년의 천재성이라 칭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에게 사랑받는 족속들은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고는 했기에, 소년과 완전히 같은 방법을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지만 그와 닮은 형식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자들은 두엇 만난 적 있었다.
별이고 우주고 하나같이 절대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거리에 있어서, 그곳과 교감하는 형식의 천재들은 제법 쓸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잦지만 소년이 가장 사랑하는 별은 바로 제 곁에 있었다. 기적의 일종이었다. 바다처럼 푸르고 선명한 그 색이 얼마나 고운지. 입 밖으로 직접 내뱉는 일은 적지만 소년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존재였다. 귀중했다. 소녀에 대해 생각에 잠기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대로 옆에 손을 뻗자 밀어두었던 종잇조각이 붙잡혔다. 그것을 끌어당겨 펜을 쥐었다. 빙글 몸을 돌려 엎드려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서 거부하는 의사가 사라지자 밀려오는 것은 또다른 영감이었다. 온갖 색채를 가진 음악들이 찾아와 속삭였다. 그것을 악보에 적어내려가며 루비가 짧게 흥얼거렸다.
이번에 또 한바탕 곡을 써내면 다음 작업을 받기까지 텀이 꽤나 생길텐데. 그 사이에 어디를 놀러가 볼까. 곧 레오꼬좌 유성우가 떨어진다는데 함께 가자고 해 볼까? 루비가 옅게 웃었다. 쏟아지는 별 사이에서 함께 있어줄 사파이어를 생각한다면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노래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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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받은 리퀘는 이게 아니었는데....... (침착차분) 어째서인지 작곡가 루비X(나오지는 않았지만)체육계 사파이어가 되어버렸군요 이상하다 시작은 에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침착차분2)
대충 조금 더 썰을 풀어보자면 루비는 천재. 사파이어는 천재에서 약간 부족한 수재? 범재? 하지만 충분히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커버치고 있는 소녀입니다. 체육계라지만 대충 종목은... 높이뛰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높이뛰기. 언제나 중력을 벗어나 높이높이 뛰어오르는 사파이어를 루비는 엄청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물론 체육계와는 거리가 백만년 떨어진 루비라서 사파이어가 어떤 기록을 내는지 어떤 주목을 받는지 1도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다만 자신의 눈에 사파이어가 아름다우니 그것만으로 완전하다고... 완벽하게 자기중심적인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루비는 중학생쯤 되는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던 천재 작곡가.
루비사파 형식으로 들어오자면 둘은 소꿉친구. 부모님들끼리 친해서 아이들도 친해진 케이스에 둘 다 기억이 남이있는 시절부터 함께였기에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거나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만난건 갓난애기때였고 그 뒤 줄곧 친구로 남매로 지냈지만 먼저 자신의 설렘을 자각한 것은 루비가 아닐까 싶고. 물론 함께 자라면서 두근두근했던 순간은 서로에게 줄곧 있었지만 어릴땐 어려서 몰랐고 커서 사춘기에 돌입한 뒤에 루비는 자각했다면 사파이어는 두근두근했던 때도 음 종종 있었으니까~ 하면서 이게 설렘인지도 모르고 그냥 넘겨버릴것같군요(??) 루비의 고생길이 눈앞에 훤합니다, 네.
그 뒤로 흔한 소꿉친구 순정만화 클리셰같은 일을 겪으며 더 이상 친구로 남을 수 없게 된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그런 루트를 밟고... 둘 다 프로가 되서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급한 마무리... 아래쪽은 또 다른 에유의 다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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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좋아한다는 게 뭐야?]
유리벽 너머에서 물어오는 목소리에 루비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실수했다는 낭패감이 심장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인어고, 그는 인간. 결국 살아온 것이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른데. 그녀가 인간의 감정에 무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주제에 왜 하필 제 감정을 입에 담았나. 꾹 다문 입이 떨어질 줄 모르고 눌러붙었다. 벽 너머의 사파이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 속에 나풀나풀 퍼지는 갈색 머리카락과 바다를 꼭 닮은 선명한 눈동자가 보였다. 루비? 루비? 검지손끝으로 통통 두꺼운 유리벽을 두드리며 되묻는 소녀를 보며 루비는 일견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감정을 숨기는 데에는 능숙하다지만 사파이어의 앞에서는 유독 그것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인어인 사파이어의 눈에도 루비의 상태가 나빠보였는지,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걱정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도 루비였다. 전부, 루비였다.
[루비, 어디 아파?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아니,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사파이어가 미련 남은 시선으로 루비의 주변을 서성이다가, 본인이 들어있는 수조를 크게 한 번 돌았다. 그것이 그녀의 감정 정리법 중 하나라는 것을 루비는 아주 잘 알고있었다. 어쩔 줄 모르며 몇 번이고 물 속을 헤엄치는 사파이어를 루비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수조의 초라한 형광등 아래에서 엷게 빛나는 푸른 비늘도, 넓게 퍼지는 물보라같은 지느러미도, 하얀 곡선을 이루는 몸도, 길고 예쁜 팔도, 오목조목 선명한 이목구비도 전부. 전부 아름답다. 눈이 멀게 아름다웠다. 울고 싶을 정도로 그랬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목격할때마다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고, 그렇기에 절대 루비와 맻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가 아무리 그녀를 사랑해도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더없이 뼈저리게.
[루비, 내가 뭘 잘못했어?]
“아무것도.”
네가 아름다운 것도. 인간이 아닌 것도. 어렸던 그 날 이 수족관에 찾아온 나에게 웃어준 것도 네 죄가 아니었다. 그 모든것에 눈이 홀려 너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은 내 탓이었으니까. 루비가 억지로 웃었다. 양 입꼬리가 끌어올려져 미소 비슷한 것을 그려냈다. 수조 안쪽에서 나올 수 없는 사파이어이기에 최대한 루비에게 바짝 붙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다. 표정은 여전히 미련처럼 남은 걱정이 묻어있었다. 루비? 입이 벙긋이지 바로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 인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 했었지. 내 죄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감히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까지도.
“좋아한다는 건 말이야, 사파이어...”
루비가 손을 뻗었다. 닿는 것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유리벽이었다. 가볍게 밀어도 변화따위는 없었다. 그가 이곳에 발걸음했던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일무이하게 변하지 않은.
“아주 간절하게, 손을 잡고 싶다는 거야.”
손이 오무려지자 손톱끝이 유리를 긁었다. 미끄러진다는 말이 더 알맞을 정도로 간단하게 흘려져버리는 것에 비웃음을 삼키며 루비가 수조의 유리에 이마를 기댔다. 어째서일까. 유독 조절이 힘들었다. 아니, 이유는 알았다. 제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눈 앞에서 까뒤집어져버렸기에 감정을 주체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멍청했다.
[그런 거야?]
그리고 불쑥, 시야에 푸른빛이 가득 찼다. 루비가 눈을 크게 떴다. 저가 이마를 대고 있는 유리벽에 사파이어가 반대편에서 이마를 대었다. 붉은 눈에 한가득 바다가 들어찼다. 긴 시간동안 이렇게나 가까이 닿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제 5cm 가량의 유리벽만 남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고작 그 정도였다.
[그럼 난, 루비를 정말 좋아하고 있는 거네!]
난 늘 루비에게 닿고 싶은걸. 인간의 체온은 따뜻하다고 했었지? 인어에게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다고 했지만... 그래도 말이야 루비. 난... 그 이상의 말은 잇지 않고, 사파이어는 그저 곱게 웃었다. 방긋 휘어지는 시선이 숨이 멎을만큼 고왔다. 그렇기에 루비는 참지 못하고 제 입술을 유리벽에 대었다. 절대 닿지 못하는 키스였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깜박였던 사파이어가, 곧 쑥쓰럽게 웃으며 반대편 유리벽에서 똑같이 입술을 대었다.
느껴지는 것은 고작 차가운 유리벽의 냉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죽을만큼 행복해서. 그리고 딱 그만큼 비참해져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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