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끝내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 어서 오라며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카나타는 충분히 놀라고 있었다. 아직 카오루가 퇴근하지 않았거니, 하고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집 안쪽에서 카오루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점에서 카나타는 1차로 충격을 받았다.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카나타와 함께 사는 집에 합의 없이 남을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 카나타는 카오루의 목소리가 적잖이 밝고 조근조근하다는 점에서 2차로 충격을 받았고, 방문을 열어보니 카오루를 그대로 빼닮은 아이가 앉아있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충격을 받았다. 어라, 애? 어린 애? 카나타가 그 자리에서 굳었다. 평소 느긋하고 부드러운 마이페이스를 자랑하는 카나타였지만, 연인의 외도─아이의 나잇대로 본다면 적어도 5년 이상─을 눈앞에 두고도 상냥하게 웃을 정신력까지는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카나타 군. 왔어? 어서 와.”
“......”
카오루가 예쁘게 웃었다. 아이에게 손짓해 안아드는 모양새가 놀랍게도 능숙했다. 옅은 회색 눈에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도 엷게 빛나는 금발은 카오루의 것이었다. 낯을 조금 가리는지 카오루에게 얼굴을 묻고 살짝 카나타를 훔쳐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혈연이 아니라고 부정할수도 없을 만큼 닮아있었다. 사귀기 전에 카오루에게 애인이 많았던 것 정도야 카나타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되어 입을 맞춘 뒤에도 그는 알고 지내는 여성이 많았다. 연인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카나타 하나뿐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에 괜찮다고 자위했건만. 카나타는 제 모든 확신이 박살나서 산산조각나는 것을 실감했다.
아이를 예뻐하는 카오루는 눈이 부셨다. 타인에게 살짝 가시를 세우고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카오루는 좋은 남자였다. 아이돌로서 무대나 팬들 앞에서 빛나는 것과는 별개의 다정함이 있었다. 가정을 꾸려 평범하고 오순도순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카오루를 상상하는 것은 쉬웠다. 신부의 옆에 서 있는 그는 남자에게 꾸역꾸역 안길 필요도 없었고 마음껏 아이를 귀여워할수도 있었다. 상상 속의 카오루는 행복해 보였다.
카나타 군. 카나타 군? 한 손으로 휘휘 카나타의 눈 앞을 휘저어보아도 카나타는 답이 없었다. 넋을 놓은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카나타는 제 생각에 몰두하여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카오루가 아이를 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껏 숨겼으면서 어째서? 아이가 저 정도로 컸으니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하는 걸까. 당연히 고분고분 헤어질 생각은 없었고 질척하게 매달릴 각오도 했지만 무서운 건 변하지 않았다. 카오루가 읊는 이별의 말이라니 머리 위에서 얼음물이라도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카나타 군, 내 말 들려? 어디 아파?”
“카오루...”
“오늘 잡지 촬영이라고 하지 않았어? 힘든 일이라도 있었어?”
“저... 카오루가 다른 여자랑 애가 있어도 놓아주지 않을거에요... 카오루의 아이라면 제 아이보다 사랑해줄테니까 버리지 말아요...”
“하아아?”
흐으. 카나타가 눈물을 삼켰다. 부옇게 흐려진 시야로 열심히 카오루를 응시했다. 눈이라도 깜박이면 울게 될까 그러면 혹시 미움받을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절박한 심정인 카나타와는 달리 뜬금없이 튀어나온 열렬한 고백에 카오루는 일단 아이의 귀를 막았다. 아니, 아니. 허어? 하아아? 기가 차고 어이가 없는 감정과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카나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눈에 선했다. 내심 기뻐하는 제 자신의 모습에 죽을만큼 부끄럽기도 했다.
“뭘 생각하는 건지 알겠는데, 오해야, 카나타 군! 조카야, 조카라고!”
“네? 조카......”
“누나 아들이야. 나는 엄마를 닮았고, 누나도 엄마를 닮았고, 조카도 누나를 닮았고. 그러니까 닮은 거라고.”
내 아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해... 카오루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연한 회색 눈동자가 빛을 받아 엷게 황색을 띄었다. 심장 한구석이 두근두근 뛰었다. 타인에게 집착받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늘 무난하게 사람을 풀어주는 카나타가 저에게 향하는 집착은 나쁘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주며 카나타를 소개했다. 삼촌... 남자친구?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린 아이를 보며 카나타가 활짝 웃었다. 모든 고민걱정이 사라진 화창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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