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끼손가락에 엮여져 있다는 그것.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져 있었다. 그 실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 드물게, 아주 드물게 실존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그 사실을 침묵하고는 했다. 다른 사람의 인연이 보인다는 것은 아주 위험했고, 세상에는 운명으로 엮여있지 않아도 사랑하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리어 운명을 정확히 찾아 만나는 것이 더 드물었다. 타인의 운명의 상대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으로 그 사람들을 몇 번이고 불행하게 만든 이후, 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이제 붉은 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것은 실존하는 환상처럼 특별한 무언가로써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유키 카즈야는, 바로 그 ‘특별한’ 사람에 속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이던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새끼손가락에 엮혀있는 빨간 실이었다. 얇지만 질기고, 어째서인지 벽이며 건물을 모조리 통과해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듯 싶었다. 미유키가 그것이 운명의 붉은 실임을 알아차린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였다. 미유키와 같은 사람들이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에 그 사실을 눈치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유키 카즈야는 또래보다 조금 영리하여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또 다른 점은 그런 비밀을 선뜻 말해줄 정도로 친분을 깊게 쌓은 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유키의 비밀은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기연으로 인해 지켜질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그것이 운명의 붉은 실임을 알게되자, 미유키 역시도 실 끝에 연결된 사람이 궁금할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 흥미를 잘 두지 않는 야구 외길을 걷고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호기심 정도는 가지게 되었다. 제 운명의 상대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 것들.
하지만 미유키의 운명의 상대는 아마도 먼 곳에 살고 있는 듯 싶었고, 아무리 실을 따라가도 그에 얽혀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렸던 미유키는 금방 제 짝을 찾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야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미유키는 충분히 바쁜 사람이었고, 기력을 다른 곳으로 쏟을 마음도 쏟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만날 사람이라면 만나겠고, 아니면 말겠지. 미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금방 실에 관한 것을 잊었다. 야구하는 도중 경기장 여기저기에 실이 엉켜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나 곤란한 일이었지만, 그것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생소함으로 변했던 순간이 바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세이도 고등하교 그라운드. 아마도 레이쨩이 데려온 것 같은 중학생. 처음 보는 소년이었지만 미유키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제 새끼손가락에 얽힌 끈이 어지럽게 시야를 가렸다. 상대와 이어져있었다. 빛을 받아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시끄럽게 소리치는 목소리, 야구를 하는 사람, 투수.
허, 미유키는 짧게 숨을 뱉어냈다. 투수, 투수였다. 미유키의 붉으 끈으로 이어진 사람은. 아마도 운명이라고 이름붙여진 사람은.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그래, 어떻게 미유키 카즈야의 짝이 야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미유키 카즈야의 운명으로 엮인 사람이라면 어찌 투수이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저 투수가 내 운명의 상대. 미유키는 반사적으로 제 새끼손가락을 매만졌다. 단단히 묶여있는 붉은 실이 있었다. 제대로 상대와 이어진. 사와무라, 사와무라 에이준. 미유키는 입 속으로 그 이름을 굴려보았다. 혀끝이 묘하게 간질간질했다. 단것도 같았다.
그리고 사와무라 에이준은 결국 미유키 카즈야가 있는 세이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시 한 번 소년을 만났을 때, 미유키는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관계상(..) 잘라낸 부분이 많아서 조금 아쉬운 글... 어쩌면 이어지는 무언가를 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