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전력 60분. 「해바라기」
아마도 아이돌AU.
사와무라 에이준은 꽤나 인기 있는 아이돌이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아홉. 그보다 훨씬 젊고 앳된 아이돌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조금 애매한 나이에 데뷔하였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놀랄 정도로 승승장구. 노래나 춤도 괜찮았지만 주로 예능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성공한 아이돌이었다. 능력은 있어도 운이 없거나 운은 있어도 능력이 부족해 채 꽃피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수많은 아이돌들을 생각한다면 사와무라는 정말로 운도 타고나고, 또 재능도 충분히 있었기에 아름답게 피어난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고 어딜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며 나쁜 소문도 거의 따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했던 사람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사와무라 역시도 그것을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있는 힘껏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 역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매니저, 이름은 미유키 카즈야. 졸업 직후 저가 붙잡아버린 사람이었다. 그것도 온전히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붙잡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미유키가 품고 있는 마음에 매달려서 붙잡아버린. 그런 사람. 그는 사와무라의 매니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위해 언제나 노력해주었다. 그리고 미유키는 사와무라같은, 과거 아직 장래가 한참 불투명했던 새내기가 아닌 톱 아이돌의 매니저를 해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 언젠가 미유키는 별로 주눅들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었고, 사와무라 역시도 그러면 제가 톱 아이돌이 되면 되잖슴까! 하며 당당하게 웃었지만, 그 사실은 결국 사와무라에게 있어서 은근한 죄책감으로 마음 한편에 묻어있었다.
*
“수고했어, 사와무라.”
“고맙슴다!”
사와무라는 막 미유키가 건내준 물을 받아마시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뺨을 타고 흘러 떨어지는 땀이 화장에 섞여 끈적했다. 하지만 공연 자체는 대성공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기에 사와무라는 기분좋게 웃었다. 자신을 보며 울고 웃고 환호해준 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벅차올랐다. 무대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그 얼얼한 함성이 고스란히 피부에 묻어있었다. 몇 번이고 팔을 쓸어내리며 사와무라는 환하게 웃었다. 기뻐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와무라의 모습을 보며 미유키는 짓궂게 웃었다. 공연이 끝나서 괜찮다는 판단이 내려졌는지, 미유키는 이미 반 쯤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도 사와무라와 거의 흡사한 감정이 소리없이 내려앉아있었다.
“오늘로 첫 공연인데 이렇게 들뜨면 어떻게 해? 앞으로 일주일동안 전국순회라고.”
“알고있슴다! 걱정마십쇼, 잘할테니까!”
“그래, 그래. 오늘만큼만 해라.”
그 말은 ‘방금 공연은 좋았어.’ 혹은 ‘오늘은 괜찮았어.’ 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였기에, 사와무라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잘했다지만 이렇게 쉽게 칭찬해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자 의혹이 짙어졋다. 고양이를 쏙 빼닮은 눈이 급하게 미유키를 훑어보았다. 섬세하게 세로꼴로 뜨여진 눈은 미약한 경계심까지 담고있었다. 그 행동이며 표정 하나하나가 한 가지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사람 진짜 미유키 카즈야인가?!’ 하는, 우습지도 않은 의심. 나 참. 바보같다고 해야할지 한결같다고 해야할지.
그리고 그 대꾸에 미유키는 조금 당황했다가, 씩 웃었다. 사와무라는 별 생각없이 던졌던 말에 언제나 상상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고는 했었고, 그에 일일히 놀라는 것은 이제 졸업한 지 오래였다. 칭찬을 해 줘도 이런 반응이라니 어떤 의미에서는 참 칭찬하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었다. 미유키 카즈야의 아이돌은.
“왜? 너무 쉬우면 오늘보다 앞으로 훨씬 더 힘을 쏟아서 잘하겠다는 그런건가?”
“엑!? ...아니, 그럼요! 당연함다!”
오늘 사와무라가 무대에서 얼마만치의 기력을 쏟아부었는지 고스란히 알고있으면서도 미유키는 그런 말을 했고, 사와무라는 기꺼이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끝난 무대 뒤. 흐린 조명만 겨우 닿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사와무라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의지와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까지 섞여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의 눈동자는 미유키가 처음 사와무라의 매니저를 하겠다고 결정한 그 날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에 순간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베어물었다. 그래, 미유키는 이 사와무라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그의 곁에 있기로 결정했으니까. 사와무라는 미유키가 그를 좋아하고 있기에 이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것도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결국 독점욕 강한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곁에서 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자 결정한 이유는 저 눈이었고, 사와무라의 사랑스러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토록이나 빛나는 사람이니까, 너희들도 보아라. 그리고 사랑해라. 그런 오만하기까지 한 감정.
그러니까 이럴 때는 기특하다고 해 줘야겠지? 미유키는 소리없이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각자 바쁜데다가 정신이 없어서, 공연이 끝난 아이돌과 그 아이돌을 챙기고 있을 매니저에게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직후 미유키는 곧장 사와무라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찍었다.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수준의 입맞춤이었지만, 사와무라의 뺨이 단박에 붉어졌다. 이미 천천히 식어가는 공연의 열기 탓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미유키가 또 한 번 소리없이 미소지었다. 사와무라에게서 이런 표정을 이끌어낼수밖에 없는 사람은 미유키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단 그는 만족하고 있었다.
*
“미유키, 여기 또 미유키 글 떴슴다.”
“나? ...아아, 그렇네.”
사와무라가 가리키는 노트북 화면을 미유키는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 아이돌 사와무라 에이준의 잘생긴 매니저는 사와무라의 팬클럽에서 어떤 의미로는 화젯거리였다. 그래도 어차피 그 사와무라의 팬클럽에서 돌아다니는 말인지라, 들어도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의 농담이나 외모에 대한 감탄. 혹은 사와무라의 매니저로 있어줘서 고맙다는 수준의 감사가 대부분이었기에 미유키도 그 쪽에 관해서는 크게 제지하지 않는 편이었고 말이다. 특히 감사를 들을 때에는, 확실히 기분이 좋았으니까.
이번에 올라온 글 역시도 감사에 가까운 말이었다. 언젠가 미유키와 사와무라가 함께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인지, 흐릿한 사진 한 장과 함께 기쁨으로 인한 자음과 모음으로 도배된 글이 잔뜩 덧붙여져있었다. 그런 제 팬의 모습이 귀엽기라도 한지, 키득키득 웃으며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사와무라의 뒷모습을 보며 미유키는 제 일로 시선을 돌렸다. 빼곡히 적힌 일정표는 사와무라의 것이었다.
“내일 제일 첫 스케줄은 코미나토랑 같이 찍는 화보야. 아침 여덟 시. 일찍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와무라.”
“코미나토?! 하룻치임까, 아님 형님쪽임까?!”
“동생 쪽.”
오옷, 하룻치!! 오랜만에 실물로 봄다!! 주먹을 불끈 움켜쥔 사와무라가 허공을 향해 몇 번 붕붕 휘둘렀다. 신이 난 기색이 역력한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별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데뷔 초반에 야구 고정 예능을 함께 찍으면서 코미나토 하루이치와 사와무라 에이준이 얼마나 친분을 쌓았는지는 꽤나 유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아, 거기에 후루야 사토루까지 포함해서 세 명. 신이 나서 방방 뛰는 사와무라를 적당히 방치하며 미유키는 그 옆에 자신이 써 놓은 설명을 덧붙여 읽었다.
“생화를 들고 찍는 거라네. 설마해서 묻는건데 꽃가루 알레르기 없지?”
“없슴다! 으하하! 하룻치랑 꽃이라니, 어울리네요!”
“너도 들어야 하거든?”
그 자각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미유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베게를 품에 안고 침대를 구르기 시작하는 사와무라의 옆에 앉았다. 침대 한 쪽이 움푹하게 내려앉았다. 손을 뻗어 사와무라의 베게를 빼앗아온 미유키가 문득 물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꽃, 뭐더라? 들은 적 있는것 같은데.”
“뭠까, 기억 못하는 검까?!”
“......”
긍정하면 기분 나쁜데. 부정하기에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와무라에게 지금과 같은 의미의 관심을 품고있을 때였던 것 같기는 하다만,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 중에서 지나가듯 했던 대화였으니까. 인상을 찡그리고 찬찬히 흐릿한 과거를 되짚어보고있는 미유키를 보며 사와무라는 싱글벙글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기억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그 미소에 미유키는 은근한 불만을 담아 사와무라의 머리를 꾸욱 눌러주었다.
“아, 본인이 기억 못하는 걸 저한테 화풀이 하지 마십쇼! 소중한 아이돌의 머리를!”
“네에, 네. 그래서 퀴즈라면 맥을 못 추는 소중한 아이돌 님. 그쪽은 기억을 하고 계시나보죠?”
“당연함다! 미유키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해바라기!”
뭐야, 꽤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잖아? 지금까지도 같은 꽃을 제일 좋아하고 있는 미유키는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미유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개구지게 웃은 사와무라는 미유키에게 다시 제 베게를 빼앗아 얼굴을 파묻었다.
“미유키도 한 번 기억해내 보십쇼~!”
“...오냐.”
솔직히 말해 진짜로 기억이 날 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노력은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미유키는 허탈하게 웃으며 사와무라에게 제대로 누워서 자라며 잔소리 한 웅큼을 던졌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사와무라는 왜 자신이 아직까지도 해바라기를 좋아하고 있는지. 이유는 모르는 모양이었으니까. 해를 쫒는 꽃이라니, 마치 그와 같지 않은가.
물론, 제대로 태양을 손에 넣었다는 점에서 슬슬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것을 졸업해도 될 것 같지만. 미유키는 불을 끄고 사와무라의 옆자리에 누웠다. 그 온기를 품에 끌어안으며 달큰하게 웃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더더욱 상냥해지는 미소였다. 천천히 등을 도닥이며, 미유키는 느린 숨을 뱉어냈다.
이제 밤이 찾아왔으니, 그만 잘 시간이었다.
이상하다 과거의 나는 해바라기를 저렇게 쓸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미유키의 좋아하는 꽃은 자작입니다 날조입니다(밑줄쫙) 그래도 일단 전력 60분이니까! 괜찮겠지!(?) 미사와 행쇼! (손붕붕)
'◆A >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A/미사와] 붉은 실 (0) | 2015.09.08 |
---|---|
[◆A/미사와] 문득 깨달은 순간 (2) | 2015.09.07 |
[◆A/미사와] 사람 (0) | 2015.09.02 |
[◆A/미사와] 늦여름 (0) | 2015.08.29 |
[◆A/미사와] 밤을 새웠다 (0) | 201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