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전력 60분! 주제는 「늦여름 or 초가을」
여름의 끝물이었다. 늦더위라도 몰려오는지, 기온은 드물게 높기까지 했다. 마지막 하소연이라도 하듯 매미가 울고, 슬슬 새 것을 살 때가 된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애처로웠다. 사와무라는 마루 위에 드러누워 올해 여름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이라는 기한을 두고 주어진 휴식은 달콤했지만, 그것의 끝물이 다가올수록 지루해지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연습이 일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점심으로 백숙 한마리에 후식으로 수박도 크게 한조각 잘라 모조리 먹어치운 사와무라는 따땃한 배를 매만지며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당장 일어나서 공이라도 던질까, 싶었지만 지금 당장 공을 받아줄 사람도 없으니 썩 흥이 나지 않았다. 언제나 필요할 때에는 없다니까. 사와무라는 그리 중얼거리며 입을 비죽였다. 벽이나 그물망에 던지는 것도 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다 흥이 덜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밥을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잠깐만 쉬고 미유키 오면 시작해도 되겠지. 사와무라는 단순히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외출한 미유키의 입장으로써는 오자마자 공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는 것은 깨끗하게 외면한 채였다.
빨리 오라고, 미유키! 사와무라는 그리 중얼거리며 깊게 숨을 뱉어냈다. 울리듯 멀찍이서 들리는 매미소리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흐릿해지는 시야를 느끼며 사와무라는 느즈막히 저가 잠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장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한낮의 낮잠이라니, 대단한 사치였다.
사와무라가 기다리던 미유키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고작 삼십 분 조금 더 지난 뒤였다. 가을의 초입이라 불러도 될만한 날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한낮의 햇살에 고생 깨나 했는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은 한여름 못지 않았다. 팔목으로 그것들을 대충 닦아내며 미유키는 집으로 들어섰다. 제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집에 발을 디딘 사내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음에 의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사와무라? 다시 한 번 부르며 미유키는 집 안을 모조리 돌아다녔다. 사와무라의 모습을 발견한 곳은 침실과 부엌, 거실이며 화장실에 손님방까지 모조리 다 뒤진 뒤에야 걸음한 마루였다. 코드가 길게 연결된 선풍기는 소리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주변을 굴러다니는 건 익숙한 야구공. 더운 탓인지 배까지 내놓고 넓게 누워 도롱도롱 잠들어있는 사와무라의 모습에 미유키는 헛웃음을 뱉어냈다. 쓸 데 없이 걱정했잖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에 초조했던 심정을 단박에 날려버릴 정도로 평화롭게 잠든 그 모습에 괜사리 심술이 나서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만, 일단 그것은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드물 정도로 기분좋게 자고 있었으니까.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머리를 향해 돌아가는 선풍기를 발치로 옮기며 그 주위의 야구공을 치웠다. 사와무라의 잠버릇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혹시 뒤척이다가 몸에 눌려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걷어올라간 웃옷은 다시 얌전히 내려준 뒤, 짧게 그 배를 토닥여주기도 했다. 단단하게 느껴지는 근육에 포수로서 만족스럽게 웃기도 했다. 그렇게 사와무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집 안쪽으로 들어선 미유키는 얼마 안있어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스코어북과 부채를 하나 들고 나왔다.
사실 그리 집중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사와무라는 맘좋게 마루에 누워 선풍기나 돌리고 있었지만, 집 안에 들어가 문이라는 문은 모조리 꽁꽁 닫고 에어컨이라도 켜는 편이 훨씬 시원할 게 뻔했다. 그리고 매미소리나 가끔 자동차 굴러가는 생활소음도 들리지 않겠지. 하지만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리고 스코어북에 집중하며 부채질을 시작했다. 사와무라의 머리카락이 작게 흔들렸다.
스코어북을 보면서도 짬짬히 돌아보면, 자고 있는 사와무라의 얼굴이 보였다. 마냥 풀려서 헤실거리는 모습이 조금 바보같기는 했지만 가만히 침묵하면 도롱도롱하고 작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있었다. 미유키의 표정이 더없이 상냥해졌다. 사와무라가 깨어있더라면 당신은 누굼까!! 미유키 카즈야가 아니구나!! 하고 외칠 정도의 달콤함이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잘 지어주지 않는 거지만. 미유키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와무라의 뺨을 잠시 찔러보았다. 그 정도 자극에는 깨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 확신대로, 한 번 입을 우물거렸을 뿐 사와무라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오래 잠들어 있지는 마. 미유키는 속으로 속삭이며 천천히 사와무라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었다. 드물게 고요한 한낮이었다.
사와무라 에이준은 퉁퉁 부어있었다. 뾰로통한 표정이며 잔뜩 날을 세운 고양이눈이 제 불만을 온 사방에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님까! 다시 생각해보고 또 북받쳐오른 것인지, 발을 쾅쾅 구른 사와무라는 뒤를 획 돌아보며 외쳤다. 그리고 그 뾰족한 목소리가 향하는 장본인, 미유키 카즈야는 여유롭게 웃을 뿐이었다.
“이야, 하지만 네가 너무 잘 자고 있더라고?”
“그래도! 시간이 이렇게 됬으면! 깨웠어야 되는 거 아님까!”
마지막 휴일이었는데! 미유키에게 공 받아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에!!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탁상시계를 단단히 잡아 마구 흔드는 사와무라를 보며, 미유키는 허탈하게 웃었다. 물론 미유키는 사와무라에게 공 받아준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한 적 없었다. 하지만 뭐, 너무 오래 재운 건 맞나? 미유키는 시선을 돌려 벌써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집에 와서 잠든 사와무라를 발견한 것이 막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이 채 안 되었을 무렵이니, 확실히 오래 잔 것 맞았다. 이제 초가을이라고는 해도 아직 해가 길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까. 미유키는 그렇게 제 행동에 정당화를 세웠다. 낯선 고요였지만 낯설기에 싫지 않았고, 처음에야 어서 일어나기를 바랬다만 오래 잠들어 저를 홀로 두는 사와무라가 꽤나 신선했기에 한 번 쯤은 그냥 두어보고도 싶었다. 그렇기에 결국 깨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군다가 몇 시간에 한 번 정도 잠꼬대로 미유키의 이름을 부르는 사와무라가 과하게 사랑스러웠던 탓도 있었다. 미유키는 스스로 그리 납득하며 얼굴에 웃음을 그렸다. 그 웃음에 사와무라가 조금 더 발끈해하는 것도 같았다. 물론 알고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지금! 지금이라도 공 받아 주십쇼!! 10구라도! 아니 20구! 40구!”
“왜 점점 늘어나는 건데?”
본래 줄이는 쪽이 맞는 거잖아?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미유키였다만 그 얼굴에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는 표정만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사와무라도 그쪽으로 더 말을 붙이지 않고 본격적으로 졸라대기 시작했다. 조른다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과격하기는 했다. 곧장 미유키의 멱살을 붙잡아 올렸으니까.
“오늘 에이스님이 공을 하나도 못던진 것의 책임을 지고 받아내는 검다!”
“아직 에이스 아니잖아?”
“미래의 에이스!”
말하는 모습은 당당했다. 그리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에이스 넘버를 받을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 다른 사람마저도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러한 무언가. 그것을 가득 담아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의 눈동자가 올곧게 미유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유키는 언제나 그 눈에 약했다. 물론 사와무라가 들었다면 거짓부렁이라며 또 목소리를 높였겠다만, 미유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이번에도 먼저 손을 든 것은 미유키였다.
“...딱 30구만이야.”
“앗싸!!”
역시 미유키!! 로 시작하는 온갖 칭찬일색들을 반은 흘리고 반은 기쁘게 받아내며 미유키는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사와무라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글러브와 야구공을 챙긴 사와무라는 벌써 준비 끝났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미유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유키는 반사적으로 그 옷차림을 눈으로 훑어내렸다. 공을 던지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옷차림이었다만, 문제가 있다면.
“겉옷 하나 더 챙겨입어.”
“에? 덥슴다!”
“공 던지고 오는 길에 추워져.”
슬슬 초가을이었고, 지금 당장이야 해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밤이 되면 기온은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뚝 떨어졌다. 더군다가 공을 주고받는 동안 데워진 몸이나 흐른 땀도 그 사이에 식을 게 뻔했고. 미유키의 주장은 타당했기에, 사와무라는 별 말 없이 그리 두껍지 않은 겉옷을 하나 더 챙겨 허리에 묶었다. 그에 미유키가 칭찬의 의미로 웃으며 한 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집 밖으로 나서며 사와무라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걷는 길과 별달리 달라진 것도 없건만, 그 시선에는 묘한 호기심과 들뜬 감정이 남아있어서 미유키는 가끔 신기하기도 했다. 시력차이를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것도 없을 텐데, 사와무라의 눈에는 언제나 특별한 것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공을 던질만한 공터는 느긋하게 걸어 십오분이면 도착했고, 그 시간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벌써 가을이 되가는 것 같슴다! 고교 시절이었으면 가을 대회 준비인가요! 아니, 3학년 선배님들의 은퇴가 먼저겠나?! 하며 쫑알쫑알 말을 붙여오는 사와무라에게 적당히 대꾸해주는 게 미유키의 역할이었다.
도착하여 부러 볼록하게 만들어둔 임시마운드에 선다면 다시 조용해질 테니까, 그때까지는 이 기분좋은 소음을 즐기는 것도 좋았기에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던져대는 온갖 말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받아주었다. 언제나처럼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티는 많이 나지 않지만... 아마 둘 다 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동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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