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제 삶이 참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반, 같은 부활동의 1군 주전이라는 녀석은 한없이 칠칠맞고, 소란스럽고,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여러가지 의미로 바보여서 카네마루는 그런 사와무라의 뒷목을 낚아채고 화내고 잔소리하며. 하지만 결국 챙겨주고 도와주기는 해야 하는. 여하튼 그런 식으로 잡아두지 않으면 어디로 굴러갈 지 모르는 1학년 투수 사와무라를 통제하는 것이 카네마루가 선배들로부터 건내받은 임무였다. 이제 막 1학년 여름이 기울어져가는 지금 카네마루에게 있어서 3학년 선배의 명령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고 상대와 부딪치는 시간이 길어지며 미운정도 들어버린 것인지, 본인의 상상 이상으로 카네마루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지만 이런 부분은 카네마루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기 자는 녀석 누구냐?”
“사와무라요-.”
벌써 수업은 6교시에 돌입했는데, 저 질문을 받은 것이 여섯 번째라는 것을 생각하면 통탄할 노릇이었다. 저런 녀석이 야구명문 세이도 고교의 주전이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세이도 고교 야구부 소속, 주전은 아닌 카네마루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담당교사인 국어선생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결국 염치 불문하고 카네마루는 또다시 옆 자리 남자아이의 옆구리를 찌를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좋은 것인지, 바보지만 그래도 미워할수는 없는 사와무라이기에 너그럽게 봐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같은 반의 학생들은 다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와무라의 등을 대신 두드려주었다. 사와무라군, 일어나. 사와무라의 뒷자리에 앉은 소녀가 그를 깨웠다. 그 목소리에 사와무라가 일단 몸을 일으켰다.
물론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반 쯤도 아니고 완전히 감긴 눈으로 앉아서는, 연필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고개도 반 쯤 옆으로 기울어 침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저게 진짜 가지가지하네. 카네마루는 어이가 없어서 턱을 괴고 사와무라의 등을 노려보았다. 결국 쉬는 시간의 종이 칠 때까지 사와무라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꿈나라에서 공이나 던지고 있었다.
“얌마, 사와무라. 언제까지 잠만 잘거야?! 평소보다 훨씬 심각하잖아.”
“오오, 카네마루... 괜찮아, 공은 던진다!”
“그게 문제라서 물은 것 같냐?!”
적당히 자라고! 양심없는 놈아! 카네마루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책상 위에 엎어져 헤롱거리는 사와무라를 보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평소에도 자주 조는 놈이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정신 못차리는 경우는 없었다. 뭔 일 있나. 결국 시작한 계기가 어떻든간에 사와무라에게 무르게 굴게 되어버린 카네마루는 시큰둥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뭔 일 있었어? 평소처럼 연습하지 않았냐?”
“......아무일도 없었어!”
저게 어디서 거짓부렁이야. 카네마루는 엎드린 사와무라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를 보며 소리없이 혀를 찼다. 미유키 선배 일이구만.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물론, 저 연애질 사이에 낄 생각도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다. 나한테만 폐끼치지 마라, 나한테만... 그리 한숨쉬었다만, 결국 무슨 일이 생기면 사와무라에게 붙들려 고생하게 될 것은 카네마루라는 것은 명확해서, 그는 일견 우울해졌다.
새벽이었다.
사와무라가 자율연습을 끝마친 것은 이미 날짜가 바뀐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와무라에게 있어서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장 늦은 시간까지 훈련장을 사용하다가 소등하고 나오는 것이 사와무라의 일이었다. 느즈막하게 샤워까지 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걷던 사와무라는 문득 제 앞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람은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미유키 선배? 뭠까, 이 시간에 안 자고.”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
내가 무리하지 말랬지. 그리 말하며 가볍게 이마를 때리는 미유키의 행동에 사와무라가 단박에 미간을 찡그렸다. 금방이라도 특유의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지를 것 같은 그 모습에 미유키는 자연스럽게 그 입을 막아버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빙글 웃는 그 얼굴은 기분나빴지만, 정말 기분나빴지만! 그만큼 잘 생겨서, 결국 사와무라는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억지로 삼킬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닮은 뾰족한 눈이 불만을 가득 담고 치켜올라갔다.
당장이라도 불만을 소리칠 것 같은 사와무라의 표정에 결국 한 번 더 웃어버린 것은 미유키였다. 진짜 어떡하면 좋냐. 딱 그렇게 말하고 있는 눈으로 사와무라를 내려다보던 미유키는 곧 그 손을 사와무라의 머리에 얹었다. 막 씻고 나와 아직도 반 쯤 젖어있는 머리를 거칠게 헤집는 손은 사와무라가 가장 좋아하는 포수의 손이었다. 그렇기에 사와무라는 차마 그것을 뿌리치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뭐하는 검까, 진짜! 다만 그렇게 소리죽인 외침을 던질 뿐이었다.
가서 머리 제대로 말리고 자라. 그리 말하며 등을 떠미는 손길에 사와무라는 반사적으로 몇 걸음 내딛었다. 그리고 뒤돌아 미유키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꽤나 심란했다. 어쩌면 곤란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쑥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와무라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미유키는 자연스럽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미유키가 막 그렇게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
“...안녕히 주무십쇼!”
멱살을 붙잡히고, 몸이 끌어당겨졌다. 공을 던지는 투수의 손이 제 입을 틀어막고, 가볍게 들리는 것은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바싹 다가온 사와무라의 얼굴. 어라? 미유키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깜박였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격하게 멱살을 풀어내고 몇 발자국 물러난 순간 느즈막히 상황이 정리되었다. 지금, 사와무라가.
내, 내일은 제 공부터 받아 주십쇼! 그리 외치며 뛰쳐들어가는 사와무라의 발걸음은 방 안의 사람들을 다 깨우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힘찼지만, 미유키는 그에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와무라의 뒷모습기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은 미유키는 고개를 숙였다. 불그스름한 얼굴이 부끄러웠다.
“와... 그 정도에 이 정도로 설레는 거야?”
진짜 장난 아니네. 손으로 틀어막고 그 위에 살짝 입술을 붙였다 땐 것 뿐인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두근거려 견딜수가 없었다. 온 몸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미유키는 기분좋게 잠들었고 에이준은 내가 미쳤지!!!! 하고 밤을 거의 꼴딱 새웠다는 이야기... 의외로 길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