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전력 60분. 「눈물」
이것저것 미래날조(..)라고 해야 할까... 주의해주세요!
사와무라 에이준은 감정이 풍부했다. 그는 잘 웃는 만큼 잘 울었고, 그리고 금방 다시 웃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하는 세이도 야구부원들에게 있어서 그 모습은 익숙한 것이었고, 어디서든 울고 있는 사와무라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순정만화를 붙잡고도, 또는 조금 기쁘거나 조금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사와무라는 잘 울었다. 그것은 사와무라에게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 번 엉덩이를 걷어차주거나 손등으로 한 번 때려주면, 또 금방 눈물을 그치고 버럭대고는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볍지 않게 흘리는 눈물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닦아내고 또 일어서는 것이 사와무라 에이준이었다. 그런 사와무라를 보고 경탄하는 일반부원들마저 있을 정도로 그는 참 꿋꿋한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눈물은 딱히 드문 것도 아니었고, 운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챙겨줘야 한다는 의미 역시도 아니었다.
미유키 역시도 세이도의 야구부원으로써 몇 번이고 사와무라의 우는 얼굴을 본 적 있었다. 투수로써 자신의 피칭에 만족하지 못해서, 시합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서라는 이유로도 사와무라는 몇 번 울었고, 반대의 의미로도 울었다. 가끔은 식사의 반찬이 맛있다는 의미로도 웃으며 울었으니 딱히 비싼 눈물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그럴 때마다 미유키는 웃고는 했다. 바-보. 하고 입을 벙긋여 놀린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사와무라는 옷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아버리고는 버럭 화를 냈으니까. 미유키는 그 사실에 평범하게 만족했다. 어떤 의미로든 결국 눈물흘리는 사와무라보다는 고양이눈이 되어 버럭 화를 내는 사와무라 쪽이 편했으니까. 그런 일상이었다.
야구부의 여름은 뜨거웠고, 땀이 줄줄 흘렀으며, 그만큼 눈물이 흐르고,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시간이었다. 매미 우는 소리마저 묻혀버릴 정도의 배팅 소리가 울리고, 세이도의 여름은 길었다. 수백 수천개의 고등학교가 희망하는 길고 긴 여름이었다.
여름이 끝난 것은 한 개의 경기가 끝난 순간이었다. 딱 두 번만 더 이긴다면 우승이었다. 코시엔의 우승이라는 최고의 명패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번을 이기지 못해 벽앞에서 무릎꿇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휘둘러진 배트가 어슬퍼니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이 미유키 카즈야를 포함한 세이도 삼학년들의 마지막 고교 공식 경기였다.
미유키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랐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울음을 터트리는 부원들이 있었다.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졌다는 것 역시도 알았다. 미유키는 천천히 제 손의 미트를 바라보았다가, 정면을 보았다. 사와무라가 보였다. 울고 있었다.
한 쪽 눈을 불편하게 찡그리고 황금색 눈의 소년은 눈물흘리고 있었다. 괴롭다는 듯이 일그러진 얼굴이 올곧게 미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쉴 틈 없이 떨어지는 짠물이 그 뺨을 가득 채웠다. 차마 목소리도 나오지 못해서 사와무라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울고 있었다. 미유키는 그 모습을 조금 생소하게 바라보았다. 이번 경기에서 사와무라는 잘 던졌고, 실점도 없었다. 진 것을 사와무라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벤치에서 응원하는 목소리도 귀청 터져라 잘 들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무라는 마치 제 실수로 졌다는 것처럼 울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그렇기에, 미유키는. 잠시 머뭇거린 그는 사와무라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가볍게 몇 번 토닥여주었다. 무언의 말이었지만 괜찮다는 의미였는데, 그것을 알아챈 것인지 아닌 것인지. 사와무라는 제 어깨에 얹어진 손에 뺨을 기대고 훨씬 서럽게 눈물을 터트렸다. 꽉 막혀있던 목구멍이 뚫린 것처럼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띄엄띄엄 미유키의 이름이 섞여들었다. 미안하다는 사과 역시도 있었다. 손등에 닿는 뜨거운 액체가 금방 가득 차서 곧 흘러내렸다. 온통 손을 적신 눈물을 닦아낼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도리어 미유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삼학년이 은퇴하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 다음 세대의 일이었다. 주장직을 이어주고, 마음을 이어주었으니 남은 자들의 할 일은 공백을 지우고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일 앞자리에서 다른 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 된 사와무라와, 1학년 여름부터 주전 멤버의 자리를 가지고 있던 다른 두 명의 일이었다. 은퇴경기까지 모조리 끝마친 미유키는, 가끔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세이도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그에게 내밀어져오는 손은 많았고, 프로에 들어갈 생각인 그는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세이도 야구부원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생소했다.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사이나쁜 친구 씨는 그런 미유키를 보며 특유의 웃음소리로 한 번 웃고 말고는 했다.
여름이 끝나니 시간이 흐르는 것은 빠르기도 빨랐고, 어쩌면 느리기도 했다. 그러나 졸업식이 찾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새로운 팀으로 구성된 세이도 야구부원들은 가을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센바츠의 출전 역시도 확정지어두고 있었다. 은퇴한 삼학년들은 그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화내고 칭찬하고 웃었다. 미유키 역시도 그 틈새에 끼어서 구장을 내려다보았다. 마운드 위의 한 사람, 그리고 그의 공을 받는 또 한사람.
미유키는 조금 생소한 기분으로 학교를 돌아보았다. 졸업이었다.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는 것이고, 동시에 프로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어색하기만 했다. 프로, 프로 야구선수. 언젠가 자신의 소속된 팀의 주전 포수가 되는 것이 일단의 목표였다. 미유키의 입꼬리가 소리없이 올라갔다. 자신의 선택은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는 야구부원들이 가득했다. 품에 안겨지는 꽃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후배들에 선배에게. 후배 선수들이 선배 선수에게 전해주는 감사의 인사는 세이도의 전통과도 같았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했다. 그리고 미유키는 주장이기까지 했었으니까. 자신에게 꽃을 안겨주며 동시에 정중하게 고개숙이는 후루야를 보며 미유키는 한 번 웃고 말았다. 그 등을 한 번 때려주기도 했다. 삼학년이 된 후루야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주목받는 투수였으니까. 내년이 기대되는 것은 미유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한명의 투수도,
미유키는 그 사실을 문득 깨닫고 주변을 살폈다. 또 한명의 투수가 있어야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숨기기도 민망한 우렁찬 목소리 역시도 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미유키가 소리없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고개돌려 제 곁에 있는 후루야에게 물었다.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질문에 후루야는 표정변화 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의미였다.
미유키는 곧장 저와 함께 졸업하는 팀메이트들을 찾았다. 같은 투수인 노리의 곁에도 사와무라는 없었다. 심지어 같은 방의 룸메이트인 쿠라모치의 곁에도 없었다. 물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중 쿠라모치는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표정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조노의 곁에 있는 코미나토에게 물었다. 사와무라는? 코미나토는 잠시 생각하는 듯 싶다가 고개를 저었다. 거의 두 시간 쯤 전에 불펜에 있는 것은 보았는데요... 끝이 어물거리는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스스로에게도 없다는 의미였다.
미유키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세이도 야구부의 그라운드. 텅 빈 그곳에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 서 있었으나 교복 차림이었다. 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 졸업식까지 연습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심답게 연습중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소리없이 마운드에 서서, 포수가 앉아있는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와무라!”
미유키는 소리높여 그 이름을 불렀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보며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미유키 선배?”
사와무라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미유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 표정에 놀람이 가득했다. 어째서 여기 있슴까? 되묻는 목소리에 조금 기가 차기도 했다.
“여기서 뭐 해? 던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좀 보고 있었슴다.”
뭐야, 내가 졸업한다고 해서 새삼 감상에 잠기는 거냐? 그리 말하며 미유키는 짓궂게 웃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평소처럼 버럭 하고 화내는 대신, 한 손을 턱에 대고 잠깐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미유키를 돌아보며 환히 웃었다.
“비슷함다!”
그 대답에 도리어 미유키가 당황했다. 안경 너머로 둥글게 떠진 눈을 향해, 사와무라는 깊이 고개숙였다.
“졸업 축하드림다! 미유키 선배.”
고마웠슴다, 감사함다. 공 받아줘서 기뻤슴다. 코시엔 우승 못시켜드려서 죄송함다. 당신에게 공 던질 수 있어서 행복했슴다. 그 모든 감정을 한데 그러모아 사와무라는 웃었다.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숨이 턱 하니 막힐 정도로 찬란한 미소였다. 온전히 미유키를 위해서. 그에게 감사를 건내기 위해 피어난 미소였다. 미유키가 잠시 입을 벌렸다가, 그대로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 한 쪽이 희게 비는 감각은 생소한 것이었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소리가 낯설었다.
아, 그. ...그래, 고맙다. 미유키는 겨우 내뱉은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한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날짜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제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늦었다면 한참 늦은 자각이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 녀석에게 반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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