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크게 칭찬해주십쇼!! 사와무라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미유키는 자신보다 18. 44m 거리에 떨어져 서 있는 후배를 바라보며, 잠시 멋쩍게 미소지었다. 물론 포수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잠시 자신의 미트 속에 들어온 공을 바라보던 미유키는 그것을 사와무라에게 던졌다. 가뿐히 그것을 받아낸 사와무라가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며, 미유키는 다시 포구자세를 취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현재의 공 주고받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공을 받을 때마다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좋아합니다.」
공을 받을 떄마다 울려오는, 이 목소리를 듣고있다보면.
세상에는 개성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 흔히 소설책같은 곳에서 나오고는 했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된 지 오래인 능력들이었다. 개인마다 개성은 모두 달랐고, 그 중 세이도 야구부 소속 미유키 카즈야가 가지고 있는 개성은 사이코메트리였다. 물건을 만지거나 사람과 접촉하는 것으로 그 과거와, 기억과, 얽혀낸 생각들을 읽어내는 극히 드물게 발현되는 능력. 미유키는 개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능력자였고,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태어날 적부터 지니고 있던 개성이었기에 이제는 멋대로 흘러들어오는 기억을 잊어버리는 데에도 능숙해졌고, 타인의 기억과 생각을 읽는 것에 무덤덤해진 지 오래였지만 이 목소리만큼은 미유키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처음 들었던 그 순간부터, 익숙해질만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미유키는 투수가 자신에게 공을 던져주는 것이 좋았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미유키가 독점하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더군다가 공을 던질때의 투수의 생각이란 기본적으로 단 하나. 미트에 던져넣는다는 생각이 제일 뚜렷하기 때문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있는 경우가 적기도 했다. 그건 어딘가에 닿을 때마다 생각을 읽어버리는 미유키를 한결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미유키는 자신이 받은 공에 다른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미유키가 지금 상황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상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명확했다.
“사와무라, 늘 말하지만... 너 너무 잘 들려.”
“큽, 시끄럽슴다!! 멋대로 듣지 마십쇼!!”
그걸 조절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지... 미유키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버럭버럭 소리치는 사와무라를 보며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사와무라가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이해했지만, 이쪽도 꽤나 머쓱했다. 개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항력의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에, 능력의 주인인 미유키도 강하게 품은 감정은 도무지 무시할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사와무라의 목소리는, 과하게 잘 들렸기 때문에.
야구공 하나에 품은 감정은 강하고, 선명하고, 그리고... 눈부셔서. 미유키는 문득 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감정을 알게 된 것은 사와무라가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것과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미유키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것도 그와 비슷한 때였다. 아니, 사실.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곧 좋아할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와무라의 공을 받을때마다, 정말 올곧은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그 어떤 것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오롯함이었다.
「좋아합니다.」
「좋아해요.」
「미유키도, 미유키의 미트도.」
「전부 좋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온 미유키였는데도 그 목소리를 듣다보면 쑥쓰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그나마 시합 중에는 시합의 승리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린다는 점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불펜에만 들어와서 공을 받게 된다면 어김없이 목소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손끝이 간질간질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야구에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 입안의 여린살을 몇 번이고 깨물수밖에 없었다.
미유키가 익숙하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여유로운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능숙한 웃음이었다.
“도대체 언제 나한테 고백할건데?”
이 질문도 벌써 몇 번째 던진 질문이었더라. 대답은 늘 정해져있었다. 사와무라의 목덜미까지 전부 발갛게 달아올랐다. 고양이처럼 뾰족해진 눈이 어쩔 줄 모르고 허공을 쩔쩔맸다.
“조금 더...! 좀 더 있다가... 이익, 기다리십쇼!!”
그럼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라. 처음 설레는 심정을 감추며 미유키가 물었을 때부터 변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미유키는 밖으로 나와 기숙사 복도를 걸었다. 제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표정이 조금은 흐렸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본 것은 늘어진 빨랫감이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던 미유키는 문득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그 시선의 끝에 잡힌 것은 유니폼의 뒷면이었다. 18번이 달려있는 유니폼. 사와무라의 것이었다. 미유키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개성을 욕심대로 써 본 적이 아예 없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미유키는 나름 제 기준에 맞게 능력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려는 행동은, 그 기준에서 조금 삐끗하는 정도였다.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결단은 빨랐다. 미유키는 유니폼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그 안에 잠들어있던 기억들이 쏟아져내려왔다.
「에이준 군, 고백하지 않을거야? 미유키 선배,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던데...」
「시선, 자주 있고.」
「그! 그야! 좀, 그렇지, 만!」
「안하는 이유라도 있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 속에 세 명의 1학년이 비춰졌다. 세탁기 앞에 옹기종기 나란히 서 있는 세 사람 중 사와무라의 표정이 특히 엉망이었다. 당황해서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미유키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야 당연히 하고 싶지만, 그게...」
「그게?」
「그 앞에만 서면, 엉망이 되어버려서.」
사와무라가 머리카락을 마구 헝크러뜨렸다.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시선을 피해버리는 모양새가, 쑥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대로 미유키 앞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장이 단련되면.」
「......」
「그 때 할거야.」
아아, 그래. 코미나토의 표정에 적당함이 서렸다. 후루야는 대충 돌아가는 빨래로 시선을 돌렸다. 반 쯤 괜히 들은 것 같다는 표정도 묻어났다. 물은 사람들 치고는 굉장히 무성의한 태도였지만, 사와무라는 그에 조금 안도한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와무라를 보는 것을 끝으로, 미유키가 유니폼에서 천천히 손을 때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그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