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루키나]

2014. 2. 4. 15:51 from INAZUMA/NOVEL


"널 좋아해."

담담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스스로 본 적도 없으니 기억할 턱이 없었다. 다만 무슨 감정을 품었는지는 안타까울만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순간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두근거렸던 심장도, 발갛게 달아오른 뺨도, 턱 막힌 듯 나오지 않은 목소리도 전부 한 가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그 고백에 명백히 설레버렸다. 

설렘과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아득한 절망감이었다. 이 곳에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 미래도, 내 삶의 끝도 전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단 한가지의 목적만 가지고서 뛰어넘어온 시간이었다. 내가 이 곳에 남을 수 없다는 것도, 이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상대의 호박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나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해."

"내는.... 알고 있지 않나, 츠루기.... 내는,"

"알아."

츠루기 뿐만 아니라, 라이몬의 전부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츠루기는 가볍게 고개를 위아래로 두어번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보여서, 나는 살짝 입을 벌렸다. 추할 지는 몰라도 별 수 없었다. 츠루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이 많다고 해도 나는 고작 중학교 1학년. 페이를 낳고 죽은 27살의 나노바나 키나코가 아니었으니까. 어른이 아니었으니까. 

이젠 뚜렷하게 눈에 보일 만큼 덜덜 떨고있는 내 자신이 보였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명백히 두려워하고 있는, 피하고 있는 내 모습에 츠루기는 무슨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다만, 작게 들리는 웃음소리가 놀랄만큼 선명하게 내 귀로 파고들었다.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츠루기는 놀랍게도, 진정으로 가볍게 미소짓고 있었다. 가끔 주장에게 짓곤 하던 '어쩔 수 없지.' 하는 듯한 미소. 나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나는.... 나는 말이야 츠루기. 나는,  차마 나오지 못하는 말들이 속에서 쌓여갔다. 내 표정이 어땠을까, 츠루기는 반 발자국 나에게 다가왔다. 그에 움찔 몸을 떨어버렸지만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츠루기를 바라보았다. 

"네가 페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 알아. 그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너보다도. 츠루기의 뒷말에 이어지지 않은 그 말이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긍정도 부정도 내뱉지 않았지만 그것이 긍정이라는 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있었다. 페이, 페이 룬. 사랑하는 내 아들, 내가 지켜야 하는.... 나는 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라고 찾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바닥만 노려다보았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네가 미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아. 어른이 되면 누구와 결혼을 할 지도 알고. 네 미래도... 다 알아."

츠루기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말들이 바늘이 되어 콕콕 찌르는 듯 했다. 다 알면서 왜 그러는 건데. 당장이라도 입에서 푸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고 싶었다. 이제껏 아슬아슬하게 잘 버티고 있었건만, 한 번의 도끼질로 단박에 휘청였다. 무너져버릴것 같았다.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더욱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뭐? 순식간에 고개가 번쩍 쳐들어졌다. 눈이 동그래졌다. 바보처럼 화들짝 놀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코 들을거라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정녕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악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츠루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는 것처럼, 그는 말했다. 

"너를 좋아하고 있어. 후회하지 않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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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