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제 카오루는 그 유메노사키 학원에서도 가장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유메노사키 중에서도 가장 비일상의 카테고리에 속해있는 삼기인 사쿠마 레이가 이끄는 유닛에 소속되어있고, 마찬가지로 삼기인 신카이 카나타가 부장으로 있는 부활동에 소속되어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카오루는 비일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카오루.”

“아니 저기, 그게... 요.”


 카오루는 막 저를 끌어안으려 드는 성인 남성을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시커먼 남성의 포옹같은거 전혀 달갑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외모 탓이 컸다. 험하게 생긴 것은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사한 사람이었다. 바다색 머리카락, 에메랄드 색 옅은 눈. 부드럽게 휘어지는 나긋한 눈매며 몸의 선이 곧고 수려하게 생긴 외모였다. 아이돌 양성학교인 유메노사키에 차고 넘치는 게 미소년과 미청년이라고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단박에 시선을 빼앗을만한 미남이었다. 카오루의 거절에 조금 풀이 죽은 듯, 하지만 마냥 좋다는 얼굴로 배시시 웃는 얼굴은 어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순진무구해 보였다.

 일단 3년동안 유메노사키에 진학했던 카오루가 얼굴을 모르는 성인 남성이 학교 내부에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상대의 너무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저가 아는 사람에게 딱 몇 년만 더 부과하면 이렇게 자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외향. 저를 부르는 목소리, 상대를 강제로 무장해제시키는 시선. 모조리 참 낯익은 사람이었다. 


 이거 불길한데. 절대로 불길해. 카오루가 식은땀을 흘렸다. 누르면 안 돼는 버튼이 코 앞에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딱히 특별한 삶이라던가 독특한 무언가따위 전혀 원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평범 사이에 끼어 편안하게 흐르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딱 좋았다. 틈새로 살짝 도망쳐 어려운 것은 전부 피하고 느긋하게 살 수 있다면 럭키,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는데. 강제로 문을 비집고 들어와 흙발로 걷는 사람을 보는 감각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상대는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나긋나긋하게 웃고 있지만 카오루의 손목을 붙잡은 손은 의외로 억셌다. 이런 것마저 닮아있었다. 카오루는 몇 번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깊게 한숨을 뱉는 것으로 항복선고를 했다. 


“카나타 군... ...의 형님이라던가?”

“그런 거 없답니다♪”

“......역시 본인?”

“네♪”


 어쩐지 무지 신이 난 것 같은데. 카오루는 저를 끌어안고 뺨을 부벼오는 카나타를 보며 이것저것을 적당히 포기했다. 카오루, 카오루. 저를 부르며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는 카나타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가, 팔을 들어 카나타의 등을 둘러 몇 번 두드려주었다. 다 큰 남자인 카나타가 파고드는 것이 조금 징그럽기도 하지만 상대가 카나타라면 참아줄 수 있었다. 짧았던 토닥임이 끝나고 카오루가 조심조심 카나타를 밀었다. 이번에는 카나타도 순순히 밀려주었다. 두어 발자국 떨어진 카나타는 옅게 웃으며 카오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기울어진 고개와 다정한 웃음과 조금 높은 시선 차이에 문득 상대가 정말로 저가 아는 카나타와는 달리 진짜 성인 남성이라는 느낌이 풍겼다. 낯설었다. 


 머쓱하게 뒷목을 매만지던 카오루가 카나타를 찬찬히 살폈다.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묻지 않으면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어른이 된 거야, 카나타 군?”

“「갑자기」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어른 「상태」로 잠시 찾아온 거랍니다. 카오루와 동갑인 「카나타 군」은 아마 학원 「어딘가」에 있을 거에요...”


 본인과 만나는 건 계약위반이라, 살짝 꼬아놨답니다. 그렇게 덧붙이며 웃는 카나타는 세상 걱정 하나 없어보이는 맑은 표정이어서, 카오루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질문을 꾹꾹 눌러삼켰다. 물으면 알게되고, 알게 되면 빠져나가기 힘들어진다. 카오루는 카나타가 하는 알쏭달쏭한 말들을 애써 해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도 성별이며 정체며 알 수 없던 카나타였으니 이럴수도 있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는게 제일이었다. 이런 일도 막연하게 넘겨도 되나? 본능적인 물음이 치밀었다. 답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왜 왔어? 뭔가... 할 일이라도?”

“아뇨, 그다지. 「일」 같은 건 없답니다.”


 카나타가 한 걸음 다가왔다. 거리가 바짝 가까워졌다. 카오루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영문 모를 긴장이었다. 카나타의 시선이 느릿하게 카오루를 쓸었다. 색 고운 머리카락, 긴장과 놀라움과 아직 이름붙여지지 않은 감정으로 바짝 굳은 눈. 아직 앳된 선과 덜 익은 몸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카나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실온에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무르고 단 미소였다. 


“카오루를 「만나고」 싶어서요.”

“나를?”

“네. 「카오루」를.”


 카나타의 세계에서 퇴장해버린 카오루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서 이미 지나가버린 극을 강제로 끌어넘겼다. 아직은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어린 연인. 카나타에 대한 사랑도 자각하지 못한 사람. 카나타의 시선이 유독 부드럽다는 사실에 머쓱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잃고 싶지 않아요. 더 곁에 있고 싶어요... 카나타가 진심을 속삭이는 제 마음을 짓눌렀다. 이미 와타루와 나츠메의 도움을 받아 실컷 민폐를 끼친 뒤였다. 카오루를 다시 만날 수 있던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카오루. 사랑합니다. 열 아홉의 카나타에게 양보해야 하는 고백의 말을 삼키고 또 삼키며, 스물 여섯의 카나타가 카오루를 끌어안았다. 단단히 굳은 품 안의 온기가 그에게 허락받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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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에 열 아홉의 카나타가 등장해서 스물여섯의 카나타에게 내 카오루에게 손대지 마세요, 하고 으르릉거리는 것까지 생각해보았으나 기력이 딸려서 fail... 스물여섯 카나타의 세계에 스물여섯 카오루가 어떻게 됬는지는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다만 카나타의 곁에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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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