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카오] 질투

2016. 9. 11. 01:06 from ENSTARS/NOVEL




 배덕함을 테마로 내세우고 있는 UNDEAD였지만, 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유닛멤버들의 사이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고작 두어 살 정도의 차이였지만 연장자와 연하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유닛 중 하나기도 했다. 덕분에 그들끼리 함께 있을 경우의 분위기도 상당히 온화했다. 레이에게 투덜거리는 코가와 그런 코가를 말리는 아도니스 정도가 제일 큰 소란일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를 흔드는 사람도 대부분 코가와 아도니스였다. 레온이 감기에 걸려 잔뜩 우울해진 코가라던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었는데 아이가 겁을 먹어서 기가 죽어버린 아도니스라던가. 그런 두 사람을 달래고 얼러서 평소처럼 만드는 것이 레이와 카오루의 역할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유닛 전체의 분위기를 우중충하게 만드는 사람이 하카제 카오루라는 사실은 아주 특이한 일이라는 말이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싸늘한 얼굴로 소파 손잡이를 탁탁 두드리는 카오루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대기실의 온도를 뚝뚝 떨구고 있었다. 평소 얼굴을 잘 찌푸리지도 않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눈치를 슬슬 보던 코가가 레이의 근처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팔에 난 소름을 벅벅 긁으며 시선 둘 데를 몰라 헤맸다. 화를 내는 카오루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보기보다 프로의식이 강한데다가 요령이 좋은 카오루는 대부분 웃는 상이었다. 물론 심술을 부리거나 가벼운 짜증을 낼 때는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선배라는 의식이 있어서 후배들에게까지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코가와 아도니스에게 저런 카오루는 낯설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코가와 입을 꾹 다물고 레이만 바라보는 아도니스의 모습을 확인하며 레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바닥을 노려보며 탁탁 소리를 내는 카오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의 카오루의 귀에는 레이의 한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중증이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찬 레이가 코가와 아도니스에게 손짓했다. 두 후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에게 바짝 붙었다. 


“아무래도 카오루 군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구먼. 오늘 하루쯤은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겠다.”


 작게 충고해주는 목소리에 코가와 아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모두가 사양이었다. 


“하카제... 선배가 왜 저러는지 흡혈귀 너는 알아?”

“음......”


 코가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아도니스의 눈도 비슷한 물음을 담고 있었다. 하기야 당연했다. 레이가 잠시 침묵했다. 알기야 알았다. 후배들에게 말했다가는 나중에 카오루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유였다. 연상인 이상 후배들 앞에서는 필사적으로 폼을 잡고 싶은 법이니까. 선의의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조금 저울질하던 레이는 금방 결과를 내놨다. 대단한 이유도 아니었으니 숨겨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카오루 군도 남자라는 거겠지.”

“하아?”

“뭐, 쉽게 말하자면 생각지도 못한 영역침범을 당해버린 것이누...?”


 뭐라는 거야. 코가와 아도니스의 얼굴에 대놓고 써 있었지만 레이는 모른 척 했다. 카오루의 체면을 위해서였다. 이 정도면 레이는 카오루를 위해서 노력해줬다. 내일까지 이 모양이면 다 말해버릴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레이가 턱을 괴고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카오루는 여전히 골이 단단히 난 표정이었다. 




 * 




 UNDEAD의 일정이 모두 끝난 시간은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카오루의 집중력이 영 딴 데 가있는 탓도 컸다. 카오루는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주었다. 어른답지 못했을 뿐더러 유닛 멤버들에게도 광범위 민폐였다. 감정 하나 제대로 제어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겨우 촬영이 끝났을 때 레이가 보냈던 시선이 잊혀지지 않았다. 오늘 내에 문제를 해결해 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시선이었다. 평소라면 레이도 귀엽게 보아 넘어줬겠다만 카오루는 오늘 새벽 1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리츠의 라디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레이가 촬영이 끝나자마자 라디오를 틀어도 극초반부는 놓쳤을 터. 카오루는 문득 내일 아침 해가 무서워졌다. 문제가 해결되고, 안 되고의 문제를 차지하고도 내일 레이에게 한 대 쯤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해결은 해야지. 카오루는 제 집 문 앞에 섰다. 스튜디오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이미 머리는 다 식은 뒤였다. 생각을 정리하기에 한 시간 넘게 걷는 건 꽤나 효율이 좋았다. 사실 적잖게 부끄러웠다. 손부채질로 몇 번 얼굴을 식히며 카오루가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자고 있으려나, 깨워야 하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상념을 지우며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었던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덥석 온기가 안겨들었다. 


“카오루!”

“우왓, 카나타 군?”


 저를 꽈악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연인을 보며 카오루가 허공에 팔을 몇 번 휘적이다가, 곧 카나타의 등에 둘렀다. 카나타 군? 다시 한 번 부르는 목소리에 카나타가 고개를 들었다. 카오루를 샅샅히 뜯어보는 시선은 집요하기까지 했다. 카오루는 좀 멋쩍어지는 기분이었다. 늦어서 미안, 카나타 군. 잔뜩 누그러진 목소리에 카나타의 얼굴에 언뜻 안도가 어렸다.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손길은 여전히 단단했다. 


 마주보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카나타는 뭔가 잔뜩 각오한 얼굴이었다. 카오루는 울컥 불안한 감정을 열심히 삼켰다. 뭐지, 뭐야. 언제나 그렇듯이, 카나타의 페이스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카오루의 앞에 놓여진 것은 얇은 잡지였다. 표지에는 카나타와 여성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 위에 크게 글자가 박힌 열애설. 카오루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너무 저급 잡지라 이슈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가십이었지만 그 대상이 신카이 카나타라는 것만으로도 카오루가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불쾌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카나타에게 이런 식이라도 열애설이 난 건 처음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단단히 굳은 표정으로 잡지 표지만 노려보고 있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알게 모르게 심호흡했다. 점심 무렵 레이에게 왔던 전화 덕분에 카오루도 이 잡지를 봤다고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오해하여 미움이라도 받았을까 말을 꺼내는 카나타의 태도는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카오루, 이 잡지의 「기사」 말인데요...”

“......”

“「오해」랍니다, 정말이에요. 이 여성 분이랑 만날 때는, 「유성대」의 모두가 「같이」 있었는데...”


 사진만 보면 단 둘이서 만난 것 같았다. 아마도 구도와 편집의 마법이겠지. 카오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숙인 탓에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만 앙다문 입이며 단단히 굳은 입가는 너무 잘 보였다. 어쩌지, 설마 미움받아 버렸으면. 의식 어딘가가 까마득해졌다. 안절부절 못해 애먼 옷자락만 마구 잡아뜯었다. 오늘 아침 치아키에게서 이 잡지를 받은 뒤부터 계속 신경쓰였다. 유성대의 모두야 처음부터 무슨 일인지 알았던데다가 사진이 찍혔을 때도 함께 있었으니 별 기사가 다 뜬다며 웃고 넘겼지만, 카오루는 달랐다. 카나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빙글빙글 도는 머리를 애써 침착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마른침밖에 넘어가지 않았다. 


 만약 카오루가 각방이라도 쓰자고 하면. 잠시 나가있겠다고 하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헤어지겠다고... 이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니 그만두기로 했다. 여하튼 어느 쪽이든 싫었다. 무슨 말을 하던 발목이라도 잡고 매달릴 생각이었지만 그런 상황에 처한다는 것부터가 싫었다. 카오루... 목소리에 애처로움이 실렸다. 카오루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길게 깔리는 숨에 카나타의 몸이 바짝 굳었다. 카오루가 바닥에 놓인 잡지를 쥐어들었다. 카나타의 시선이 카오루의 손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이 기사 내용......”

“.......”


 카오루가 잡지를 돌려 카나타에게 표지가 향하도록 했다. 시선을 드니 울상을 지은 카나타가 있었다. 카오루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휘어지는 곡선도 온화한 눈도 모두 변함없이 다정했다. 잔뜩 얼어있던 분위기가 우수수 무너졌다. 카오루의 표정에 카나타가 단박에 미소를 되찾았다. 별이 깃들듯 순식간에 화사해지는 카나타를 보던 카오루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가십이고 거짓기사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카오루...!”

“카나타 군은,”


 카오루가 짧게 말을 삼켰다. 입을 다물고 바닥을 노려보는게 뒷말을 이을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나타는 얌전히 카오루의 말을 기다렸다.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잡지로 입가를 가리고 몇 번이고 망설이던 카오루가 느릿하게 뒷말을 붙였다.


“카나타 군은,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이런 얼굴 안 하니까.”

“「얼굴」이요?”

“좋아하는 걸 볼 때의 카나타 군은, 엄청 반짝반짝하니까.”


 이런 무난한 미소가 아니라, 좀 더. 카오루가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볼 때, 해양생물을 볼 때, 유성대의 모두를 볼 때 카나타는 종종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오루를 볼 때는 언제나 그런 표정이었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족하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단박에 깨달을 수 있는 표정. 카오루 쪽이 부끄러워 질 정도로 다정하고, 녹아내릴 만큼 달다. 처음 잡지의 표지에서 열애설이 터진 사진을 보았을 때는 눈 앞이 새하얗게 변할 만큼 충격을 받고 눈물이 고일 만큼 슬펐지만, 금방 깨달았다. 웃고 있었지만 무덤덤했다. 집의 문을 열고 카나타를 보았을 때 확신했다. 카나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카오루였다. 


 카오루가 조금 거칠게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지금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카나타가 바람이 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으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전화로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도 부끄러웠고, 하루 종일 꽁해서 유닛의 멤버들에게 민폐를 끼친 것도 부끄러웠고, 질투에 눈이 멀어 있던 것도 부끄러웠다. 벌겋게 물든 카오루의 얼굴을 보며 카나타가 키득키득 웃었다. 팔을 뻗어 끌어안자 카오루가 순순히 안겨왔다. 카나타의 어깨에 뺨을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진짜 반성했다고. 저런 가십잡지에 훨씬 자주 오르내리는 건 사실 내 쪽이니까... 열애설 같은 거 다 헛소리라는 거 알고 있어도 엄청 마음 아프다는 거 배웠으니까, 다음부터는 나도 조심할게.”

“「정말」이지요, 카오루?”


 카나타가 기쁘게 웃었다. 이마며 코에 쪽쪽 입을 맞추며 좋아하는 카나타의 모습에 카오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까지 붉은 얼굴로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리고...”

“음?”

“마음 아픈거랑 별개로... 엄청 질투나니까 저런 사진 찍히지 마, 카나타 군.”

“카오루도 자주 「사진」 찍혀버리면서. 나도 「질투」한다고요?”

“응. 나도 조심할게.”


 약속이에요...♪ 카오루의 뺨에 입맞추며 속삭였다. 응, 약속. 카오루가 눈을 접어 웃었다. 복잡한 상황도 부끄러운 고백도 모두 끝났고 새벽은 깊었다. 카오루의 입가에 그려진 곡선은 유혹이었다. 카나타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조금 힘을 주며 요요히 웃는 카오루를 보며, 카나타가 짙게 미소지었다. 새가 쪼는 것처럼 가벼운 입맞춤이 이마부터 얼굴까지 잔뜩 이어지다가, 점차 깊어졌다. 

 짙은 향이 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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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